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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ㅣ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작가의 소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소설가가 보고 느끼는 감정들이 소설의 형태로 나타나기에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는 것 같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 글이 소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읽다 보니, 작가의 에세이가 정말 좋았다.
단독 주택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그곳에서 거주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편법으로 생각한 게 농막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서 지내보니 너무 좋아 주말마다 다녔다.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어 점점 좋아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작가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오래된 주택가가 주는 느낌이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옛정서가 남아있는 장소가 주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아마 그걸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서울의 외곽 오래되고 허름한 주택을 그려 본다. 골목이 좁아 차가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을버스도 없는 낙후된 주택에서 글을 쓰고 계절을 실감하게 되는 장소. 생활하는데 있어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기꺼이 감수하게 되는 곳. 글을 쓰는 노동자로서 피할 수 없는 허리 통증을 이기기 위해 걷기 위해 산책을 나서는 사람. 그가 백수린 작가다. 최근의 에세이에서 요리하는 작가로 다가오더니 이번 에세이에서는 반려견과 오래된 주택에서 기거하는 작가를 상상하게 된다.
노견이 된 봉봉이를 잃고 슬퍼하는 작가. 아직 반려묘를 저세상으로 보내지 않아 그 감정에 백 퍼센트 공감한다고 여기기는 어렵겠지만, 반려견을 잃은 친구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는 있다. 친구는 반려견을 보내고 1년 가까이 울면서 보냈다. 경험해보지 않아 유달리 심하다고 여기기는 했으나 그건 그 사람이 느끼는 고유한 감정인 거다.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봉봉을 사랑하게 된 이후 나는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조금 더 애틋한 눈을 바라보게 됐다. 나의 개가 소중한 만큼, 다른 모든 존재들 또한 그러할 것이므로 사랑은 고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곳을 향해 흐르는 강물일 것이므로. 끝내 모두를 살게 하는 것이므로. (151페이지)
내 의지는 아니었으나, 딸아이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 딸이 직장 때문에 멀리 떠난 후, 고양이 집사는 내 차지가 되었다. 딸아이만 졸졸 따라다닌 고양이가 의지할 데가 없어 나한테 딱 달라붙은 모양새였다. 자기도 누군가한테 의지하고 싶었으리라. 지금은 안방 침대의 발치에서 떠나지 않는다. 고양이를 키우며 길고양이들에게도 관심을 주었으며 안쓰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비로소 동물을 사랑하는 감정을 배운 것 같다. 고양이를 잃는다는 생각만 해도 울음을 나올 것처럼 푹 빠져 지낸다. 그러므로 작가의 봉봉이에 관한 애틋한 감정이 나에게까지 전이되었을 것이다.
낡은 주택에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담았다. 어느 때는 불편한 이웃 때문에 힘들고, 어떤 때는 살갑게 다가와 주는 아주머니 때문에 살만한 곳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유달리 추운 겨울에 옥상의 수도가 터져 골목길을 얼음장으로 만드는가 하면, 터진 수도를 봐주는 이웃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작가가 퍽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대하는 것을 보고 느꼈다. 일부러 모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자 했고, 일부러 주민센터에 전화해서 알아보는 걸 귀찮아하지 않았다. 또 살구를 파는 할머니에게는 어떻게 대했나. 마음이 밟혀 다시 돌아와 묻는 작가를 그려 본다.
엄마 산소에 갔다가 어렸을 적 살았던 마을을 돌아보았다. 빈터가 된 곳임에도 그 장소에서 머뭇거리며 오래전 일들이 떠올랐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곳이 되었지만 유년시절을 겪은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작가 또한 아빠의 고향을 다녀온 적이 있었기에 자기가 살고 집에 살았다는 여성들을 집에 들였다. 기억의 파편은 이처럼 오래가는 것이다. 과거의 흔적이 사라졌음에도 기억에 의존하여 그때의 감정을 떠올릴 것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간직한 옛집을 향한 그리움을 알기에 기꺼이 문을 열었을 작가의 마음에 다가가 본다.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가 되고 현재는 또 미래의 시간을 예견할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일이 곧 미래를 산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을 터득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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