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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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씨앗은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씨앗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종묘상이나 인터넷에서 언제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앗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현재의 우리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반면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씨앗부터 챙길 것이다. 작물의 씨앗, 열매의 씨앗, 나무의 씨앗 등을 아주 소중히 보관할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인 2024년의 미국, 기후변화와 경제위기로 살인이나 강도, 마약, 방화, 강간 등 총성이 끊이지 않는 어느 도시. 장벽 안에 있는 사람들은 먹을 것이 있고 주민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장벽 바깥은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거나 죽은 사람의 옷을 벗기는 일이 예사다. 먹을 것이 부족해 개들은 사람을 물고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 아버지들은 가족을 보호하려 총을 구비해 성년이 되는 자식들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친다. 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다. 언제 공격당할지 모른다.


 


 

 

알갱이로 된 마약을 먹으면 불을 지르고 싶은 증상이 나타나 머리를 밀고 얼굴에 페인트칠한 로들은 불을 지르고 물건을 약탈한다. 부자들의 집만 불태우고 약탈하는 게 아니다. 약해 보이는 여성들, 아이들은 그들의 타겟이 되어 피해를 본다.

 


아버지가 대학교수이자 침례교 목사인 흑인 소녀 로런은 아버지의 하느님보다 자신의 하느님을 더 믿는다. 열다섯 살의 로런은 아버지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총 쏘는 법을 배우러 다닌다. 언제든 지금의 평화와 안온함이 깨질 거로 보여 로런은 비상 배낭(생존배낭)을 준비한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언제라도 들고 도망갈 수 있도록 말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갈아입을 옷가지 등을 포함해 작물 씨앗을 챙긴 건 의외였다. 로런은 그때부터 또래 아이들과 달랐다. 세상의 종말을 예상하고 살아남을 방법을 미리 준비했다.

 


로런은 해리와 자라와 함께, 살기 위해 북쪽으로 향한다. 돈은 이 시대에도 아주 중요하다. 돈이 많이 있으면 그것을 훔치려는 사람들 때문에 양말에 나눠 넣어 바지에 꿰매는 식으로 숨긴다. 죽은 사람의 몸을 더듬어 옷가지나 돈을 챙겨 필요한 물건을 사고 교환한다. 움직일 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움직여야 안전하다. 서로를 보호해줄 수 있으며 돌아가며 불침번을 설 수도 있다. 약탈자가 오면 방어할 수도 있다. 처음에 셋이었던 로런의 공동체는 점점 숫자를 늘려간다. 아이와 여성을 보호하며 총 사용법을 배워 유사시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한다.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지면 타인의 존재는 적이 될 수도 있는 거 같다. 원하는 장소에 들어가기 위해 싸우고 약탈하는 건 기본이다. 공동체의 일원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총을 들고 나가 그들을 구한다. 공동체의 힘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트래비스나 나티디바드가 로런의 공동체에 합류하게 된 이유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움직이던 반콜레도 마찬가지다. 혼자서는 위험하다. 특히 어린아이와 여성은 더 위험하다.

 


주인공 로런은 마약중독자인 친엄마의 영향인지 태어날 때부터 초공감증후군이다. 즉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 더 어렸을 때는 동생 키스가 빨간색을 칠해 놀려도 피를 흘렸었다. 하지만 로런은 강해져야 했다. 일부러 아버지에게 총 쏘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죽이려는 자를 향해 총을 쏠 수 있었다. 살고 봐야 했다. 눈앞에서 타인이 죽어가는 장면에 자신 또한 죽어가는 감각을 느끼는 것. 초공감을 이겨낼 수 있어야 했다.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간다. 내일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 지어 살아간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시대에도 돈은 필요하며, 돈이 많을수록 살아가기가 편하다는 것은 과거를 비롯해 현재와 같다. 오히려 종말이 다가올수록 돈 있는 자들이 이득을 취하는 건 아주 기본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오래전부터 무리지어 공동체 생활을 했던 건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들이 겪어온 지난한 삶에서 한줄기 희망을 보았다. 의지할 수 있었고, 내일을 꿈꿀 수 있었다.


 


 

 

변화는 진실이에요.

변화는 계속 진행되는 거니까요.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변해요. 크기, 위치, 구성, 빈도, 속도, 생각, 뭐든지요. 살아있는 모든 것, 지극히 작은 양의 물질 하나하나,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 그 모든 것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변화해요. 난 모든 것이 모든 방식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384페이지)

 


로런이 믿는 하느님은 변화의 하느님이다. 살아가는 사람에 따라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듯,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진행된다.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세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절망적인 상황일수록 강한 생각을 가진 자가 필요하다. 공동체를 이끌어갈 힘이 있어야 했다. 나이와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1993년에 쓴 작품이지만 현재와 다르지 않았다. 세세한 부분만 다를 뿐 전체적인 틀은 비슷하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것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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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19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예뻐요.
Breeze님, 좋은 하루 되세요.^^

Breeze 2022-04-22 09: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