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이는 가로수가 무슨 나무야?

회화나무.

그럼 그 길로 그냥 쭉 걸어와. 그러면 회화나무 가로수가 끝나고 버드나무가 시작되는 곳이 있을 거야. 세 번째 버드나무 아래서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103페이지)


 

소설 속 연인이 나누는 대화 같다. 저자가 세 번째 버드나무 아래에서 기다린다고 한 줄 알았으나 나무를 잘 아는 저자에게 친구가 한 말이었다.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하고 찾아가는데 길치인 저자가 헤매고 있을 때 친구가 보이는 나무를 물어보고 가까운 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거다. 소설 속 문장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다. 인사동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대부분 간판을 보고 찾아가게 된다. 그렇지만 저자는 어떤 나무인가를 말해야 이정표 삼아 찾게 된다.


 

숲을 걷는 것을 좋아하고 풀과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저자의 책이다. 국립수목원에서 일하고 있어서 나무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나타내는 것보다는 독자들을 나무들과 풀꽃을 이용해 초록의 숲으로 이끈다.


 


 

 

산골에서 살았던 저자는 들과 숲이 놀이터였다. 엄마를 따라 일하다가, 숲속에 들어갔다가 풀과 나무들을 보고 이름을 기억했고, 그 이름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저자는 포도를 따고 나물을 캐다가 꽃비를 맞는가 하면, 부모님의 못자리를 돕다가 산에 올라 졸참나무며 상수리나무, 굴참나무의 꽃가루를 마주한다.


 

늦잠을 자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지 못하자, 뒷산에 올라 숲속의 식물들을 바라본다. 야생화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산 초입의 계곡 주변으로 현호색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갈퀴현호색의 향기보다 못하지만, 그 향기가 좋다는 현호색이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휴대폰을 옆에 두고 책에서 언급한 식물들을 검색하며 읽었는데, 현호색의 색감이 내가 좋아하는 색이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 볼 때마다 반갑다. 풀 속에서도 찾게 되고 발견하면 더할 수 없이 기쁘다. 오래전에는 알지 못하던 나무와 풀꽃들의 이름을 지금은 조금씩 기억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다. 가로수로 사용되는 나무, 꽃에 관심을 가지니 그런 것 같다.

 


숲과 나무에 관한 이야기만 한 게 아니다. 부모님을 도우며 느꼈던 것들과 어렸을 적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말했다. 잔잔한 글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 집 사용 설명서. 시골에 가야 해 집을 며칠 비워야 하는데, 친구가 주말에 집을 쓰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며 집 사용 설명서를 썼다.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현관 자물쇠의 잠금 방향과 가스레인지 한쪽이 고장 났다는 것, 집에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것, 보일러 사용법 등을 적었다.


 


 

 

그런 세심한 성격이 풀꽃을 보고 혼자서 관찰해오다가 쇠뿔현호색이라는 신종을 학계에 발표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관찰하고 즐겼던 결과다.


 


 

 

대구에서 강원도 횡성군 둔내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인상적이다. 시외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 십여 분을 쉬게 되는데 한 남자가 출발할 시각이 다되어 들어왔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다시 나갔다. 지갑을 찾을 수 없었던지 주머니를 계속 뒤지는 듯 동전 소리가 났다. 조용히 만원권 두 장을 빼 주머니에 넣고 그 사람의 옆자리로 갈 타이밍을 쟀다. 용기를 내 그 사람 옆자리로 가 돈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이 만원을 건넸다. 언젠가 만원권은 있는데 동전이 없어 바꿔 달라고 했다가 도움을 받고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에게 베푼 것이다. 그 빚을 갚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웠다.


 


 

 

늦겨울 학교 운동장을 돌다가 몽당연필을 발견하고 어릴 적 아버지가 깎아주시던 몽당연필을 떠올렸다. 산골이라 학용품이 여유롭지 못해 쓰던 공책의 나머지 부분을 새로 만들어 주시던 아빠. 연필을 직접 깎아주셨고, 몽당연필이 되면 볼펜에 끼워 쓰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걸 보며 나도 어릴 적 몽당연필을 쓰던 때를 떠올렸다. 연필을 잃어버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들. 지금은 사무실에서도 몽당연필은 그냥 버리게 되던데,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처럼 유리병에 모아두었던 몽당연필들도 어쩐지 아름다운 정경처럼 보였다.


 

책 속에서 식물 이름을 거론할 때 그 식물의 사진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책에 나왔던 식물 사진이 가나다순으로 수록되어 있어 무척 반가웠다. 내가 알고 있는 식물과 그렇지 못한 식물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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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11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무 이야기 몽당연필 이야기. 다 좋네요 ~ 역병이 좀 잠잠해지면 여유롭게 어디든 가고 싶어지게 만드네요 *^^*

Breeze 2021-08-18 09:06   좋아요 1 | URL
정말요. 어디든 나다니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