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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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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중 단연코 눈에 띄었던 작품이 「혼모노」였다. 마치 실제 무속인을 보는 듯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이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 중에서 이런 소재의 글을 쓴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새로운 소재의 새로운 발상의 작품으로 ‘성해나’라는 작가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했다. 출판사 <무제>의 대표 박정민의 추천사로 더 인기를 끈 작품이지만, 수록된 작품들도 만만치 않았다. 재미있고, 소설을 읽는 게 즐거운 시간이란 걸 깨닫게 해주었다. 소설이야말로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하지 않겠나.
먼저 표제작이기도 한 「혼모노」를 보자. 30년 경력을 가진 무속인의 앞집에 신애기가 새로 오며 소설이 시작된다. 소위 신발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 몸주로 모셨던 장수할멈을 위해 생화를 바치는 등 최선을 다하지만 장수할멈은 감감무소식이다. 그런데 신애기가 하는 말마다 장수할멈의 말투가 배어난다. 즉 장수할멈이 자신에게서 떠나 신애기한테 옮겨간 것이다. 신애기의 집 앞은 신점을 보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그걸 지켜봐야 하는 무력감이 곳곳에 드러났다. 늙은 무속인이 벼린 칼날 위에서 작두춤을 춘다. 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이 뚝뚝 떨어지며 무속인은 비로소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마치 가짜가 진짜가 된 것처럼 그렇게 신명을 다한다.

남영동 대공분실과 오버랩되는 소설을 읽었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룬 게 아닌, 표면적으로는 건축물을 설계한 이들의 이야기다. 인간을 생각하는 건축물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인간을 위한 공간이란 생각하는 바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된다. 어떤 인간이냐에 따라 그 공간은 지옥이 될 수도, 누군가의 권력을 위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공교롭게 이 책을 읽은 후 인터넷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건축가에 관련된 기사가 있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고통과 치욕의 건축물이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스무드」를 읽고 실소를 터트렸다. 일명 ‘태극기 부대’가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예술가 제프의 방한에 맞춰 한국에 오게 된 미국인 듀이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핸드폰 배터리마저 나가자 성조기와 타이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무리를 따라갔다. 성조기를 따라가면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설픈 영어를 사용하는 친절한 할아버지가 여러 사람을 소개해주고 배터리도 충전해주었다. 친절한 사람들이라 여기며 비로소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걸 느낀다. 공동체의 힘은 노선을 떠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영화감독을 덕질하는 여자가 느끼는 가짜와 진짜 사이에서 혼란을 말한 소설이며, 「우호적 감정」은 스타트업 직원들이 소서리 마을 사업을 컨설팅하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다룬 소설이다. 나이, 성격 혹은 공동의 이익이 미치는 영향을 말했다. 우호적인 감정이라는 것도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한낱 물거품이 될 뿐이다. 「메탈」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시우와 조현, 우림의 변해가는 것들을 담은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메탈 밴드를 꿈꾸고 음악을 만들었던 나날들. 별 뜻 없이 내뱉었던 말 한마디에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은 것처럼. 관계는 되돌릴 수는 있지만, 또 되돌릴 수 없는 거라는 걸 보여준다.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만 보게 하고,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시간, 좋은 장소에서 태어나게 하고 싶은 건 당연할 것이다. 해주고 싶은 것도 많다. 그래서 「잉태기」의 엄마 마음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소설에서는 엄마인 화자가 아이를 가진 딸을 쟁취하기 위하여 시부와 경쟁이 벌어지는데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다. 딸의 마음 같은 건 중요하지 않고, 딸이 하는 말도 들리지 않을뿐더러 그저 상대방에게서 딸을 뺏어오고 싶을 뿐이다. 아이러니다. 딸은 또 이것들을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는가 말이다. 가진 자의 이면에 깃든 복잡한 감정을 보며 쉬운 건 없는 거 같다.
성해나의 소설은 다양한 주제뿐 아니라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도 다채롭다. 물론 전체의 주제는 가짜의 진짜 사이에서 진짜를 가려내는 작업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악의와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진심을 말하는 듯했다. 성해나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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