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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 End of Pacific Series 2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울림이 큰 글이다. 여행자의 감상을 주저리주저리 써내려가지도, 멋진 풍경에 대한 감탄사를 연발하지도 않는다. 읊조리듯 차분하게, 누구보다 '특별한' 시선을 그저 '담담한' 필체로 풀어내는 여행기.
이 책에는 부제가 붙어 있다. "1.5인의 대책 없는 라오스 배낭여행기!" 왜 1.5인일까? 책 표지를 넘기자마자 답이 보인다. 엄마의 여행에 세 살배기 아들이 동행했다. 이름은 중빈. 예사롭지 않은 표현력으로 엄마의 글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아이. 터키, 라오스를 거치는 동안 이 아이는 훌쩍 자라 일곱 살이 됐다.
여행기를 읽을 때면 낯선 것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신이 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무덤덤해지고 만다. 어찌 됐건 내게는 타인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이야기이기에. 그런데 라오스 사람들이 들려준 저마다의 사연은 마치 내 가족, 친구의 이야기인 양 자꾸 울컥거렸다. 가난한 나라, 너무나 천진한 아이들, 지독하고 바보스럽게 착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욕망에 뒤덮인 나를 발가벗기는 것만 같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그냥 여행기일뿐이잖아. 너 왜 이래? 너무 감상적인 거 아냐?' 그런데 갑자기 친구 녀석이 떠올랐다. 세계 곳곳의 결핍을 돌보러 자원봉사를 다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픈 엄마를 돌보는 그 아이가. 1년 동안의 필리핀 자원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우리는 1년간 채우지 못했던 보고픔, 한 뼘 더 자랐을 서로의 생각에 대한 목마름을 단 몇 시간 만에 채워보겠다며 긴긴 이야기를 나눴다. 내내 눈시울이 뜨거웠고, 울컥울컥했다.
바로 그거였다. 그 날밤의 울컥거림. 같은 감정. 이유는 시선이다. 오소희라는 여행자의 특별한 시선. 어떤 여행자는 자기의 의식의 흐름에 집중한다. 그들에게 여행은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누군가는 멋진 풍경과 낭만을 탐닉하며 휴식을 얻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이 바라본 여행지의 낯선 풍경은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의 눈높이는 라오스인과 맞닿아있다. 물론 시작부터 달랐기에 결코 똑같을 순 없다. 그렇지만 꽤나 가깝다. 필리핀에서 현지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며 그들의 고통을 피부로 느꼈던 친구의 시선, 안타까움에 떨리던 목소리. 가진 자의 오만한 시선을 거두고 진짜 필리핀을 만났던 친구의 눈과 목소리를 라오스의 그녀도 오롯이 품고 있었다.
여운이 쉬이 가시질 않아 책에 소개된 저자의 블로그를 찾았다. 현명한 엄마와 사랑스런 아들의 대화가 그곳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짤막한 글 속에서 그녀가 여타 여행자와 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았다. 여행자의 '바라봄'에 대한 이야기, 그대로 전한다.
"여행의 일 단계는 '가서 나를 보기', 이 단계는 '가서 있는 그대로를 보기', 삼 단계는 '가서 함께 하기'란 생각을 하는데 대부분의 여행기는 일이 단계에 멈춰 있지요. 아마도 주로 싱글들이 여행을 떠나고, 그만큼 보폭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저 또한 삼 단계를 먼발치서 보았을 뿐, 그곳에 도달하기란 멀었단 생각입니다."
먼 발치서 꾸준히 지켜보다보면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는 그들 곁에 바투 설 날도 찾아오리라 믿는다. 그녀는 현재 아이를 데리고도 봉사활동이 가능한 곳을 다음 여행지로 찾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힘있는 글만큼이나 큰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그녀의 아들, 특별한 아이 중빈이의 한 뼘 더 자랄 마음이다. 특별한 엄마를 만나 처음부터 특별하게 자라난 아이. 정서가 안정된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두터운 배려를 벌써 체득한 아이.
세상의 급박한 흐름에 나를 내던지지 않고, 내 속도와 주관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하지만, 엄마 오소희와 아들 중빈이를 통해 살짝 자신을 얻었다. 아이에게 삶을 숙제로 던져주고 싶지 않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축제임을 선물로 안겨주고 싶은 현재와 미래의 부모들에게 살포시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