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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 한 명품 중독자의 브랜드 결별기
닐 부어맨 지음, 최기철.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2006년 9월 17일, 여기는 런던 도심의 한 광장. 광장 한가운데에서는 무언가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유난히 구경꾼이 많은 화형식이다. 태우는 품목이 무엇이기에?
루이뷔통 가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디다스 스니커의 줄무늬가 보이고, 랄프로렌 점퍼와 라코스테 티셔츠는 한 무더기나 된다. 사서 입기에도 아까운 저것들을 도대체 왜 불에 태우고 있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바로 그 미친 인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은 닐 부어맨. 자신을 ‘명품 중독자’라 칭하는 남자다.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만큼이나 무서운 ‘브랜드 중독’을 경험하고, 중독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오늘의 행사를 기획했다. 화형식이 있기까지 186일간의 과정을 온라인 상에 일기처럼 올리기 시작, 이는 많은 네티즌과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차라리 기증을 하라며 욕을 퍼붓는 사람, 소비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라며 지지를 보내는 사람, 태울 거면 자기에게 선물해달라는 친구까지 가지각색의 반응이 뒤따랐다.
그 어떤 비난보다도 닐 부어맨을 괴롭혔던 건 브랜드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자기 자신. 하루에도 몇 번씩 결심을 포기할까 고민하고, 진짜 아끼는 녀석들은 몰래 숨겨두는 꼼수도 써본다. 하지만,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브랜드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방법밖에 없음을 깨닫고 브랜드 제품들을 골라내기 시작한다. 처음엔 단순히 명품 가방, 옷, 신발 정도로 예상했던 브랜드의 범위가 칫솔, 샴푸, 비누 등 생활필수품 거의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닐 부어맨 그리고 독자는 함께 느끼게 된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일이 커지겠어…’
이 기록은 더 이상 닐 부어맨이라는 특정인의 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인가를 사들이는 우리, 즉 ‘소비자’ 전체에 대한 기록이다. 명품 중독자가 아니니 당신은 빼달라고? 브랜드는 명품에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공간에도, 당신의 손에 쥐어진 마우스에도,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우는가?>라는 책에도 브랜드가 붙어 있다. 브랜드라는 이름 아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소비행태와 심리에 대한 기록을 이 책은 가볍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다루고 있다. ‘소비자 행동론’ 등의 개론서나 마케팅 이론서를 접하기 전에 보면 좋을, 기본서 정도의 역할은 해낼 수 있을 만큼.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거부감을 줄만 한 요소가 몇 군데 있다. 일단, 한 개인의 브랜드 중독을 극복하기 위한 것치고는 들어간 비용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온갖 명품들을 깡그리 태워 없애는 ‘화형식’밖에는 방법이 없었을까? 자신이 내뱉은 말의 파급 효과가 예상보다 커져서 그만두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화형식을 진행한 느낌이 든 것은 나뿐일까?
한편, “소비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라는 평가도 있기는 하나,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기삿거리로 팔아먹기 위한, 과장된 수식어처럼 느껴진다. 모든 브랜드를 끊고, 시장이나 중고상을 뒤져 대체 용품을 찾아내고, 내뱉은 말을 지키겠다고 치약까지 만들어 쓰는 닐 부어맨의 모습은 우습기까지 하다.
알코올 중독을 극복했다는 것은 술을 끊었느냐가 아니라 술을 조절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브랜드 중독’ 역시 중독의 범주에 포함된다면 이 기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닐 부어맨의 행위가 네티즌의 찬반양론을 이끌어 내며 ‘브랜드 소비자’로서 각자의 소비행위를 돌아보게 한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의 186일간의 사투(아마도 그에게는?)에는 건강한 소비가 빠져있다. 그의 병명은 ‘명품의 과소비’였지 ‘브랜드 소비’가 아니었다. 병의 원인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결과는? ‘아니, 왜 굳이 그렇게까지…?’하는 의문과 함께 ‘아깝게…쩝…’이라는 씁쓸함을 독자에게 남겨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