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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 엄마 친구 아들'과 '내 친구'의 간극
요즘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지만, 어찌나 '우리 엄마 친구 아들, 딸'들은 다 잘나가시는지. 다들 수백만원 월급을 받는 직장을 다니고, 부모 효도관광 보내드리고, 집까지 센스있게 청약통장 잘 응용하여 마련하고, 결혼전에 이미 결혼준비를 마치는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엘리트'들만 가득하다.
그에 반해, 학교에서 만나는 졸업한 '내 친구'라는 녀석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을 눈치보며 겨우 때우고, 씻고 학교갈 준비를 한 후에, 엄마를 빼꼼이 쳐다보고, 불쌍한 눈초리를 보냄으로써 '만원'을 확보하고, 학교에 가서 담배한갑(2500원)을 사고, 커피 석잔을 마시고(150*3=450원), 학생식당에서 두끼를 때우면서(2000+2500 => 4500원) 공시나 임용고시에 몰빵하는 인생들을 보내고 있다. 만원에서 남은 얼마 안되는 돈을 꼬깃꼬깃 모아서, 겨우 일주일에 한번 노가리 놓고 소주 먹는 수준으로 버티는 녀석들도 수두룩하다. 어느날 겨우 엄마한테 연기가 먹혀서 2만원 받는 날 기분으로 맥주를 먹으면서 버티는 날은 기분이 좋은 날인 거지.
이 간극은 도대체 좁혀지지가 않는다. TV 드라마와 현실의 간극이 벌어진 것도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극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물론 또 모른다. 나처럼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어정쩡하게 걸터있는 이의 체감과, 'SKY + KaPot'에 해당하는 이들의 체감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테고, 지방대나, 2년 · 3년제 전문대, 혹은 대학 비진학자가 겪는 체감은 또 엄청나게 다르리라 생각한다.
난 사실, 이런 이야기들에서 한발 비껴나 있긴 하다. 당장은 유예기간(이제 1년 반쯤 남았구나.)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느끼는 이들의 압박감이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보다 더 작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88만원 세대'가 시대적 유행어가 되고 있는데, 이런 '88만원 세대'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세우는 이들은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 정말 우석훈의 말처럼 '세대간 격차'를 통해서 우리 세대를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있는 것인가?
그 와중 신문에서 마무리가 된 <<퀴즈쇼>>를 '풀무질'에서 샀고, 한달만에 읽게 되었다.
김영하, 퀴즈쇼
김영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http://blog.aladin.co.kr/hendrix/1713630 와 <<빛의 제국>> http://blog.aladin.co.kr/hendrix/1713625 을 읽으면서 느꼈었지만, 정말 말의 질감을 살려서 표현하는 작가로 내게 보인다. 성석제가 '이빨'에 능한 '이야기꾼'으로 느껴질 때, 김영하는 '말' 그 자체가 감각을 곤두서게 하는 그런 힘을 느끼게 해준다. 여전히 김영하는 탐미적인 그 '김영하'였다.
"나는 쓰고 있다. 내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기록하고 있다. 나의 펜은 혀, 종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밀도 높은 공기였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씌어진 말, 기록된 말로 가득한 방에서 우리는 말이 필요 없는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p.264)
"사랑하는 사람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아무리 대단한 영화도, 그 어떤 기상천외한 롤러코스터도 그것에 필적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거기에는 냄새가 있고 아주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역사가 있다. 무엇보다 그 방은 삼차원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나는 뚜벅뚜벅 그 안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물건들은 만져볼 수 있으며 작은 것이라면 슬쩍 가져갈 수도 있다. 천장은 그녀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처음으로 보는 바로 그 천장이며 침대는 그녀가 자신의 온몸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바로 그 침대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방에서 우리는 얼마간 탐정이고, 또 얼마간은 변태이며, 그리고 또 얼마간은 수집가다. 방은 그녀에 대해 말해주는 단서들로 가득하며 그것들은 나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p.261)
그리고 신촌쪽의 묘사는 내가 걸어갔던 길들을 자꾸 떠올리며 그 상황들을 상기시키곤 하였다.
하지만 김영하가 그런 '표현'과 '묘사'에만 몰입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가지는 장점은 그러한 도구들을 가지고 현 시대를 읽어내는 데에 있다. 예전 <<빛의 제국>>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답답함들이 떠올랐다. 같이 호흡하는 세계에 대해서 놓치지 않는 거다. 김영하의 <<퀴즈쇼>>는 이 시대의 '88만원세대'이야기고, 어디서든 벌어지는 일들이다.
숱한이들이 인용을 했었지만, '88만원 세대'에 대한 묘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p.193)
그냥 저냥 빚으로 '사생아'인 손주를 키워주었던 외할머니가 죽고, 그 외할머니의 빚으로 집이 넘어가버리고 고시원 신세를 전전하면서 알바로 생활을 해결하려 했으나 그 마저 잘 되지않고, 고시원 한달치 요금을 낼 돈이 없어 방도 빼앗긴 이민수가 택하는 것은 한타 한타로 지식인 룸펜들이 할 수 있는 막장인 '퀴즈 배틀'의 퀴즈쇼에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퀴즈쇼라는 것이 '가장 추악한' 자본주의의 단면인 것도 아니다. 실은 그나마 '우아하게' 순결한 수단인 '지식' 그 자체를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닌가. 사실 '지식' 그 자체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수익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실사구시'니 '실용'이니 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한국 사회에서 돌고 있는 맥락도 같은 것이다. 뭔가에 '쓸모', 실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어야만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다소 순환논리 같은 상황에 '지식'이라는 것은 입주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너무나 '순수한'(실은 세상에 대해서 조금은 흐리멍텅한) 이민수는 그런 퀴즈쇼를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물론 고시원 옆집 여자의 죽음이 결정타를 날리긴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가슴을 졸였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민수와 내 모습이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지식 자체를 좋아하고 실용적인 무언가에 대해서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 자체를 획득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지는 않는. 전형적인 '베짱이 형 인텔리' 같은 모습. 생각이 많고, 알려는 욕구도 강하다. 그런 이민수가 인터넷 채팅방의 '퀴즈쇼'에 집착하는 만큼, 나도 시사주간지와 신문, 그리고 또 책에 집착하고 있었고, 또 한동안 'TV 퀴즈쇼'에 나가려 하지 않았는가.
"이러다가 나도 .."하는 압박감이 잠시 들기도 했었다. 조금 떨어져 생각해 보니, 이 시대가 박멸하고 싶어하는 건 '이민수' 와 같은 형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강한 사람들이 '이민수'와 같은 사람일 거라고 위안을 했다. 왜냐면, 그런 세상의 맥락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민수는 결국 '퀴즈쇼' 서바이벌에서 돌아오고, 어떻게는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어낸다.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의 표지가 생각이 난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라." '짱돌'이 물리적인 힘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저항' 혹은 '의사전달'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구도'에 대해서 말하는 이가 오래 버티고, 또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하의 '이민수'는 헌책방으로 숨어들어가 '개인'의 생존방법을 찾아내지만, 난 김영하와 우석훈의 책들을 읽으면서 자꾸만 '공동 생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