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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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윤동주, 그의 시를 가슴에 새긴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쉬이 읽지 못하는 이유는 시를 처음 만나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시는 가슴으로 읽고 느껴야 하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그들은 시를 머리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 반짝 빛나는 별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듯이, 시를 읽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야 한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빼곡하게 메모까지 하며 배웠던 시가 저절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은 시를 읽는 방법에 대한 책도 아니고, 비평집도 아니다.

두 권의 역사소설로 한국을 대표하는 팩션작가로 우뚝 솟은 이정명 작가의 신작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때,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벌어진 간수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죄수들 사이에서, 아니 간수들까지도 '악마'라 부를 정도로 잔인했던 한 간수의 죽음, 철창 밖의 간수와 철창 속의 죄수 밖에 없는 이 형무소에서 과연 누가 그를 죽였을까?

죽은 간수(스기야마)의 교대 파트너이면서 스기야마가 죽자 그의 업무는 물론이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일까지 맡게 된 어린 학병 출신의 간수 와타나베 유이치. 의외로 살인범을 찾아내는 일은 쉬워 보였다. 평소 잔인하기로 소문난 스기야마였으니, 그에게 원한 품은 죄수가 한 둘이겠는가. 살인범은 간도에서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온 최치수라는 인물이었고, 자신이 스기야마를 죽였다고 순순히 자백까지 한다. 하지만 뭔가 꺼름칙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유이치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결과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에 한발짝 다가선다. 죽은 스기야마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시 한 편을 보고 유이치는 히라누마 도주가 이 사건에 깊이 연관돼 있음을 알아차린다.

히라누마 도주, 이것은 시인 윤동주의 창씨명이다. 민족 저항시인이라 불리는 그에게 창씨명이라니,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다. 당시 도항을 하려면 반드시 창씨명이 있어야 했다고 한다. 아무리 유학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창씨개명한 것을 오랫동안 부끄러워하며 한 편의 시를 쓴다.

참회록

파란 녹이 긴 구리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소설은 이런 식이다.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을 추적하는 곳곳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와 마주치며, 그때마다 윤동주 시인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는지 소설처럼 풀어준다. 비록 허구이기는 하나, 밑줄 쫙 긋고 메모까지 해가며 읽었을 때보다 훨씬 잘 와닿는다. 문득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한번 읽게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정명 작가는 소설 속에 시를 끼워 넣기 위해 소설을 다시 고쳐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혀내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정명 작가의 소설을 한번쯤 읽어본 작가라면 누구나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살인사건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초반에 드러나는 정황이라 스포일러가 아닐 수도 있지만, 하나만 밝혀주자면 죽은 스기야마는 잔인한 간수였지만 시와 문학을 사랑한 검열관이었고, 그를 잔인한 간수에서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꾼 것은 윤동주 시인의 시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유이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전쟁이 끝나고 전범 수용소에서 벌어진 전범 용의자 심문 때, 유이치는 한결 같이 스스로를 유죄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유이치에게는 어떤 죄가 성립될 수 있는 걸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에 등장했던 한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한나와 유이치는 같은 입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범죄행위에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나는 처벌받아야 할까? 그럴 것이다. 언젠가 미친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이 형무소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범죄는 단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범죄자들 중에는 나도 끼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전쟁이 끝나고,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 말아야 할까? (p.166)

나는 악마들의 광기에 침묵했고 죄 없는 자들의 비명에 귀를 닫았습니다. 악마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지 못했고, 더러운 전쟁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으며, 죄 없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했고, 폭격으로 죽음의 공포에 내몰린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의 죽음에 책임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잔인한 시대를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유죄입니다. (p. 289)

그동안의 이정명 작가 작품들을 살펴보면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보인다. 『바람의 화원』에서는 김홍도와 신윤복을,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한글을, 그리고 이번에는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단순히 소설의 주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한번 더 일깨워주고 되새겨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소설 속에 싣고, 시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소설을 여러 번 고쳐 썼다고 한다. 원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조선인이었으나 일본인 간수로 이야기를 다시 쓴 이유도 그렇게 하면 그의 시가 주는 힘과 감동이 더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어떻게 잔인한 간수까지 바꿔 놓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이 이 책을 읽을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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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ㅣ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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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을 이룬 암탉!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종종 듣게 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가 아닐까? 어릴 때는 참 쉽게도 대답했던 이 질문이 요즘엔 왜 그렇게도 답하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요즘 나의 꿈은 무엇일까? 과연 나에게도 꿈이라는게 있는걸까?

『마당을 나온 암탉』의 이름은 '잎싹'이다. 아무도 이름을 붙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붙여준 이름이다. 원래 '잎싹'은 양계장 속 닭장에서 매일 매일 알을 낳아야 했던 암탉이었다. 그런데 마당에 있는 암탉이 낳은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까는 걸 보고는 마당으로 나가서 자신이 낳은 알을 품어보는게 소원이 되었다. 그래서 잎싹은 품어 보지도 못할 알을 낳는게 싫었고, 잎싹이 알을 낳지 못하자 주인 부부는 폐계라며 죽음의 구덩이로 잎싹을 밀어 넣었다.

"나한테는 소망이 있었어.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암탉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바람인데, 끝내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죽는구나." (p.23)

죽음의 구덩이에 빠져 잎싹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청둥오리가 잎싹을 노리고 있는 족제비로부터 구해준다. 마당 헛간에서 묵고 있던 청둥오리를 따라 마당으로 돌아간 잎싹은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마당으로 나와 살게 됐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잎싹은 알지 못했다. 혼자서 낳은 알은 절대 병아리로 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마당 식구들로부터 구박만 받던 잎싹, 그러나 자신을 구해준 청둥오리가 있어서 덜 외로웠지만 어느날 청둥오리도 뽀얀 오리를 만나 떠났다.

결국 마당을 나온 잎싹은 청둥오리의 비명소리를 들었고, 숲에서 아주 예쁜 모양의 알 하나를 발견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어미가 돌아오지 않자 잎싹은 그 알을 지극 정성으로 품게 되는데, 마침 청둥오리도 잎싹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는 등 잎싹의 곁을 지켜준다. 하지만 청둥오리는 그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족제비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그날 잎싹과 청둥오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알에서 새끼가 깨어난다.

오랫동안 닭장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눈치가 둔했던 탓일까? 자신이 혼자 낳은 알은 병아리로 부화시킬 수 없다는 걸 몰랐던 것처럼 꽤 오랫동안 잎싹은 자신이 품고 있었던 알이 청둥오리와 뽀얀 오리의 것이라는 걸 몰랐다. 마당 식구들이 그들을 구박하고 따돌릴 때야 잎싹은 왜 청둥오리가 아기가 태어나면 마당이 아닌 저수지로 가라고 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잎싹아, 너는 훌륭한 어미닭이야. 나는 날지 못하게 된 야생 오리고, 너는 보기 드문 암탉이야.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 나는 너를 존경해." (p.81)

청둥오리가 잎싹에게 들려줬던 말처럼 비록 생김새는 달랐지만 잎싹은 아기를 제 자식처럼 보살펴주고 사랑했다. 하지만 아기는 점점 자라면서 오리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잎싹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워했다. 아기가 헤엄을 치고 날개되면서 잎싹은 아기에게 '초록머리'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초록머리는 종종 잎싹 곁을 떠났다. 그런 날이면 잎싹은 밤새 안절부절하며 초록머리를 찾아다녔고 족제비에게 초록머리가 당하지는 않을까 밤새 잠도 자지 못했다. 이런 잎싹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초록머리지만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면서 자신의 몸은 점점 야위어가는 잎싹을 보면서 우리의 어머니들도 우리를 키우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다. 그토록 잎싹을 무시했던 오리의 우두머리도 그런 잎싹에게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기까지 한다.

이건 세 번째 기적이었다. 철망을 나와서 아카시아나무 아래에 살았던 것이 첫 번째 기적이고, 알을 품은 것이 두 번재 기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고 행복한데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 족제비가 사냥에 실패했고, 초록머리가 날기까지 했다. (p.131)

하지만 그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족제비가 죽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마냥 행복한 결말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초록머리는 청둥오리떼 무리의 파수꾼이 되어 함께 떠나고 혼자 남은 잎싹은 네 새끼의 어미, 바로 족제비의 먹이가 된다.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 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p.152)

이 동화를 읽는 포인트는 세 가지이다. 첫번째는 그저 닭장 속에 갇혀 평생 알만 낳다가 죽을 운명이었던 '잎싹'의 꿈과 닭장 탈출기이다. 잎싹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었고, 결국 그 두가지 꿈을 모두 이뤘다. 하지만 그 꿈을 모두 이뤘다고 해서 잎싹은 그만두지 않는다. 잎싹은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꿈을 가지고 이루려고 하는데, 잎싹의 마지막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한 가지 소망이 있었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걸 이루었어. 고달프게 살았지만 참 행복하기도 했어. 소망 때문에 오늘까지 살았던 거야. 이제는 날아가고 싶어. 나도 초록머리처럼 훨훨,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아, 미처 몰랐어! 날고 싶은 것, 그건 또 다른 소망이었구나. 소망보다 더 간절하게 몸이 원하는 거였어." (p.189)

두 번째는 자식을 향한 어미의 아니 부모의 대가없는 사랑이다. 비록 자신과 다른 모습의 자식이었지만, 잎싹은 그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를 한다. 여기서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은 비단 잎싹 뿐만이 아니다. 청둥오리도 그랬고, 그들을 노렸던 족제비도 자신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사냥에 나섰다.

세 번째는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잎싹은 잠자리를 먹고, 족제비는 청둥오리와 닭을 잡아 먹지만 개에게는 꼼짝할 수 없다. 물론 이 먹이 사슬의 가장 꼭대기에는 우리 인간들이 버티고 있고.

동화지만 가슴 한켠을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 꿈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직 이 이야기를 만나보지 못했다면 원작동화든 애니메이션이든 한번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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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이야기 - 독서중독을 일으키는 진짜 벌레들의 유쾌한 반란
스티븐 영 지음, 우스이 유우지 엮음, 장윤선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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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 이 텍스트를 읽고 있는 이유도 책벌레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흔히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책벌레'라고 한다. 나 또한 그 수많은 '책벌레' 중 하나일테고. 보통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책에 끌리기 마련이다. 제목에 혹해서 차례를 살펴봤더니, 차례는 더 매력적인 이 책. 어찌 읽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저 책이 좋아서 스스로 '책벌레'가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좋아하는 '책벌레'가 된 이유는, 진짜 '책벌레(bookworm)'에 감염됐기 때문이란다. 이 책벌레는 워낙 크기가 작기 때문에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그저 책이 좋아서 그런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벌레는 책을 갉아먹는 작은 해충인 좀벌레(silverfish)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책벌레는 책을 사랑하여 절대 책을 먹어치우지 않는다. 또, 어떤 종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화해 온 생명체이며 아직까지는 이런 저런 설들이 많은 벌레이다. 혹자들은 이 책벌레를 무생물이라 주장하기도 하며, 한번 감염되면 완치가 불가능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벌레를 절대 미워해서도, 절대 멸종 되어서도 안되는 이유를 지금부터 알려 주겠다.

책벌레는 종류는 대략 257종 정도로, 종류가 다양한 만큼 감염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나 감염 경로도 아주 다양하다. 책벌레는 크게 읽기벌레와 쓰기벌레로 나누는데, 여기서 책벌레의 생태나 증상에 따라 다양한 책벌레로 가지치기를 한다.

꾸준히 읽는 성실읽기벌레가 읽는가 하면 장편만 골라 읽는 슈퍼장편읽기벌레도 있다.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천천히읽기벌레에 감염돼 천천히 읽으면서 오탈자만 쏙쏙 발견해 내는 오탈자발견증후군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독서습관에 따라 책모서리접기증후군, 밑줄긋기증후군도 있으며 읽지는 않고 구입하는데서 즐거움을 찾는 수집증후군, 전집구입벌레, 중고책구입버레, 전자책구입벌레 등도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이 중 문제가 되는 증후군 중 하나가 바로 한 작가에게만 너무 빠져 급기야는 스토킹까지 하는 작가스토킹증후군이 있다.

읽기벌레 보다 훨씬 더 많은 개체수를 가진 것이 쓰기벌레인데, 읽기벌레보다 문제가 많은 벌레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일기장이든 블로그든 어디든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일기쓰기벌레가 있는데, 이 벌레에 감염되면 자기역사쓰기증후군을 보이거나 자기가 쓴 것을 무조건 출판해야 하는 자비출판증후군을 보이기도 한다. 소설쓰기벌레에 감염되면 재능이 없으면서도 평생 소설을 쓴다고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런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독설을 내뿜기도 한다.

문제적 책벌레도 있긴 하지만, 결국 감염됐을 때 우리에게 유익한 점이 많은 것이 책벌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이 책벌레의 개체 수가 줄어 들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벌레를 사육하기도 한다는데, 책벌레 사육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직접 책을 읽는 것이고 최고 단계는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다양한 책벌레에 감염되어 여러 증후군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바람직한 사육자인 셈이다.

만일 천적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다. "그들의 생활환경이나 번식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명확히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책의 감소, 책에게 보내는 인간의 따뜻한 시선의 감소, 환경오염(환경호르몬에 의해 책벌레가 약해져가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등은 모두 인간이 일으킨 현상이다. 이 책에서는 책벌레의 천적은 사실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세상에 던져보고자 한다. (p.44)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스티븐 영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필명이다. 엮은이에 따르면, 버펄로 스프링필드라는 록밴드가 있었는데 그 멤버의 이름이 스티븐 스틸스와 닐 영이었고, 스티븐 영은 그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 동명의 작가가 있다는데, 스티븐 영이라는 필명의 작가는 록음악을 좋아하는 한 작가인 걸로 추측해 본다.

발견 당시 우리는 책벌레를 공포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그런 오해는 책벌레를 소외시키고 궁지에 몰 뿐이었다. 책벌레들은 지금 인간의 뜨거운 시선과 많은 책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책벌레들과의 따뜻한 교류를 위한 안내서이면서 책에 빠져드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인간과 책벌레와의 교류는 막 시작되었다. (p.48)

『책벌레 이야기』의 분류는 에세이로 되어 있는데, 재치 있는 상상력도 발휘되고 있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어떤 벌레에 감염되었는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스스로 진단하면서 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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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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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하나쯤 비밀스러운 유년의 기억이 있다!

연일 불볕 더위가 이어지는 한여름, 밤 조차 더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는게 요즘이다. 점심을 먹은 후 시원한 선풍기 바람 아래에 누워 있으면 노곤노곤 잠이 밀려온다. 보통 때라면 그렇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 지기 마련인데, 요즘은 그렇게 자고 일어나도 또다시 늘어져서 잠들고만 싶다.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단편소설들이 딱 그런 느낌이다. 한여름에 나른하게 밀려오는 낮잠 같은 느낌 말이다. 그녀의 단편들들을 살펴보면 뭔가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일상 속에서 흘러가는 정도의 사건만 있을 뿐이다. 요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파격적인 소재, 기발한 상상력, 섬뜩한 반전 따윈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 그래서 오히려 말랑말랑하게만 느껴지는 이 이야기가 오히려 중독성은 강한가 보다. 너무 말랑말랑해서 밋밋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큰 부담감 없이 또다시 찾아 읽게 된다. 더위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해서 확 개운해지는 맛은 없지만 그래도 쉽게 깨지지 않는 달콤한 낮잠처럼 그녀의 단편도 딱 그렇다.

한여름의 나른한 낮잠과 더욱 잘 어울릴 것 같은 제목의 소설집 『수박 향기』. 이 소설집에는 각기 여름과 관련된 비밀스런 기억을 간직한 11명의 소녀가 등장한다. 어느 날 문득 소녀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한 친구에게 조차 말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에쿠니 가오리는 이런 일련의 비밀스런 기억들은 유년 시절에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높낮이가 없다. 옆에서 나지막히 이야기를 읊조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녀의 글을 읽고 있는 사람도 덩달아 읊조리게 만든다. 스스로 유년의 기억을 더듬게 만들고, 나 자신도 그런 기억 하나쯤 가지고 있다고 살짝 고백하게 만든다.

나는 신칸센을 싫어한다.

질서 정연한 차량 안의 모습도, 어쩐지 현실감이 없는 안내방송도, 수레를 밀며 군것질거리를 파는 여자의 유니폼도. 깨끗하고 커다란 창문, 반질거리게 닦인 은색 창틀, 멋대가리 없는 옷걸이, 그 허술한 커튼 따위도. (p.81)

또 그녀는 아주 사소한 일상 혹은 사물도 특별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면, 목욕 같은 것이 있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곳곳에서 그녀가 목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몇 시간 동안 욕조에 몸을 담그고 그 시간을 즐기는 행위를 참 예쁘게 그려낸다. 자신이 좋아하는 목욕을 곳곳에서 언급했듯이,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도 일상 속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만들어 준다. 주인공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주 다양하다. 완전 동그란 구슬이 아닌 납작한 구슬도 있고, 종이비누도 있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있기 마련. 매미 소리만 들으면 눈앞이 어질어질해 지기도 하고, 질서 정연한 차량 안의 모습이 싫어서 신칸센을 싫어하기도 한다. 주인공들이 어떤 대상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에쿠니 가오리가 그려내기 시작하면 뭔가 의미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수박 향기』는 요즘처럼 더위를 잊을 수 없는 한여름에 부담없이 읽기에 딱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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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 - 정규 2집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노래 / 파스텔뮤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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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 음원이 공개된 오늘 하루종일 무한반복해서 듣고 있어요! 정말 좋아서 CD도 사서 소장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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