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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책, 어떤 이에게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한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대형 서점의 직원. 그는 신간 혹은 추천 도서를 골라내 진열하고, 책을 찾는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그러나 드라마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누군가와의 약속 전에 늘 들리는 대형 서점이 있지만, 언제나 발디딜 틈없이 북적거리고 시끄럽다. 책을 찾아주는 직원은 있어도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보태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럴 때마다 작지만 조용한 동네 서점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아도 있을 책은 모두 있었고, 주인 아저씨와 친분까지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서점들을 이젠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있는 동네 서점들도 모두 참고서와 문구를 함께 파는 문구점이 돼버렸다.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책이 좋아서 서점에서 10년 동안 일했으며, 출판사 외판원으로 7년 일했다. 어쩌면 그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렜다.
그의 부모님은 책과 거리가 있는 분들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책과 가까워진 것은 주간지 『위클리 리더』를 구독하면서였다. 그는 닥치는대로 책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가끔은 책서리를 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서점 직원이 되고 싶었던 그는 어리다는 이유로 늘 거절당하곤 했다. 그리고 2년 후 대학에 입학하면서 취직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서점이라는 공간은 생각처럼 '멋지기만한 곳'이 아니다. 근무 시간은 길고, 근무 환경은 나쁘다. 게다가 월급 또한 적다. 그러나 그는 좋아하는 책과 늘 함께 할 수 있고, 새로 나온 책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 책에는 어린 그가 책과 가까워지게 된 이야기에서부터 책과 함께 성장한 과정, 서점 직원과 출판사 외판원으로 일한 17년간의 이야기와 책에 대한 역사가 담겨져 있다.
_____라는 소설을 만났을 때 나는 _____살이었다. 그러고 나서 6개월 안에 나는 _____라는 작가가 쓴 다른 소설들을 모조리 읽어 치웠다. (p.54)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분노의 포도』의 작가인 존 스타인벡이다. 그는 열다섯 살에 『분노의 포도』를 처음 읽고 6개월 동안 스타인벡의 모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런 작가가 있는지 묻는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와 같은 작가가 없다. 즐겨 읽는 작가와 장르는 있지만 깊이 파고들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는 것이 늘 아쉬웠는데, 스타인벡을 좋아한다고 자신의 독서 편력을 밝히는 그가 부러울 따름이다.
꼭 새 책을 사려고 이곳에 오는 것은 아니다. 서점에만 가면 흥분을 느끼는 까닭은 장소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까지고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점을 지배하는 무언의 규칙은 여타의 소매업을 지배하는 규칙과는 전혀 다르다. … 우리가 한참 동안이나 매장을 서성거린 후에야 겨우 책 한 권을 산다 해도 서점 직원 중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서점에서는 얼마든지 죽치고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때로는 몇 시간씩이라도 말이다. (p.10)
그동안 책 자체 혹은 그것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았다. 그러나 그것을 유통시키는 사람들, 특히 서적판매상에 대한 이야기는 흔치 않았다. 그는 서적판매상의 역사와 오늘날의 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 서적판매상은 사기꾼 혹은 해적처럼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오늘날 서적판매상들은 『율리시스』와 같은 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은 책과 서적판매상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책을 사랑해서 17년동안 책과 함께했던 한 남자의 특별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책을 파는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저 책을 좋아했을 뿐인데, 그 책을 팔고 지금은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진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지 못해서 아쉽다.
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소설과 교양의 위기도 없다!
"책은 죽었다. 소설은 죽었다. 교양은 죽었다. 컴퓨터가 승리를 거두었다"(p.288) 전자책의 개발과 함께 이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의 위기'를 불러온 것은 비단 전자책뿐만이 아니었다. 라디오가 나왔을 때도 그랬고, TV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전자책 뷰어까지 있는 나름 얼리어댑터인 나조차도 전자책은 한권도 사지 않았다. 책에는 고유의 촉감과 냄새가 있다. 연인과 헤어지면 가장 그리운 것이 그 사람의 향기라고 한다. 아무리 편리함이 강조되는 시대라지만 이미 그것에 중독된 사람들이 과연 그 촉감과 냄새를 잊을 수가 있을까.
09-92. 『노란 불빛의 서점』 2009/07/12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