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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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로빈슨 크루소』 

1703년 봄, 런던을 떠난 셀커크는 항해 도중 해적들의 포로가 되기도 하고, 들소 사냥꾼에게 팔려 3년간 들소를 잡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이 한 뱃사람 셀커크는 선장과의 불화 때문에 항해 도중 기착한 태평양의 마스아티에라 섬에 홀로 남게 된다. 그는 4년 4개월 동안 그곳에 머물다가 1711년 10월 14일 영국 선박 '듀크호'를 만나 귀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섬에 최초로 머물렀던 사람은 셀커크가 아니었다. 이보다 앞서 1680년, 어떤 배가 깜빡 잊고 떠나는 바람에 홀로 남게 된 모스키토라는 이름의 인디언이 3년 2개월 11일 만에 구출된 적이 있었다. 

다니엘 디포는 셀커크의 경험담을 토대로 『로빈슨 크루소』를 탄생시켰다. 다니엘 디포는 보다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로빈슨 크루소를 암초에 부딪혀 난파한 배의 유일한 생존자로 만들었으며, 태평양이 아닌 카리브 해의 어느 섬으로 무대를 옮겼다. 또 섬에서의 많은 사건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체류기간을 28년 2개월 10일로 설정했으며, '프라이데이'라는 아주 순종적인 주변 인물을 등장시켰다. 

미셸 투르니에는 이미 고전으로 자리잡은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두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고,  뒤집어서 "다시 쓰기"를 시작한다. 

"내가 볼 때 1719년에 나온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는 극도로 충격적인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그 소설에는 방드르디(프라이데이)가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취급되어 있어요. 그는 단순히 빈 그릇일 뿐이지요. 진리는 오로지 로빈슨의 입에서만 나옵니다. 그가 백인이고 서양인이고 영국인이고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도는 방드르디가 중요한 역할을, 아니 심지어 끝에 가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소설을 써보자는 데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소설의 제목을 로빈슨이 아니라 방드르디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디포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문제점은 모든 것이 회고적인 시각에서 처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섬에 혼자 던져진 로빈슨이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그는 당장 구할 수 있는 것들만을 가지고 과거의 영국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즉 그는 난파한 배의 표류물을 주워 모아 섬 안에 작은 영국 식민지를 또 하나 만들어놓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빈슨은 오직 과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잃어버린 것을 복원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이죠. 나는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를 로빈슨 스스로가 깨닫게 되는 소설, 그것이 터무니없는 짓이라는 느낌 때문에 그의 건설 사업이, 이를테면 내부로부터 잠식되어 붕괴해 버리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는 방드르디가 불쑥 나타나서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리는 그런 소설을 말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지 상태 위에서 새로운 언어, 새로운 종교, 새로운 예술, 새로운 유희, 새로운 에로티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소설 속에서 방드르디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까닭입니다. 그는 미래를 열고 기획하며 로빈슨으로 하여금 과거의 재구성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Tournier, "Tournier face aux lyceens", Magazine litteraire, No. 226, 20~21쪽)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방드르디의 출현 이전과 이후로 이야기가 나누어진다. 

난파를 당해 태평양의 끝에 있는 섬에 홀로 머물게 된 로빈슨 크루소는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힘들게 '탈출호'를 만들지만 혼자서는 '탈출호'를 바다로 끌고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절망한 로빈슨은 진흙탕 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죽은 누이동생의 환영을 보게 되고,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정신을 차린 그는 섬을 '스페란차(희망)'라 부르며 원시 상태의 섬을 문명이 깃든 섬으로 재건하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총독이라 칭하며 헌장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서 섬을 다스린다. 완전히 세계로부터 고립된 그는 '스페란차'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스페란차'와 결합해 '만드라고라'라고 하는 딸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타자'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이 고독한 섬에 드디어 '방드르디'라는 타자가 출현한다. '방드르디'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로빈슨 크루소를 주인으로 모시며, 로빈슨 크루소는 '방드르디'를 금요일에 만났다는 이유로 '방드르디(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로빈슨 크루소는 방드르디와 함께 탈출호를 타고 스페란차에서 탈출하려 했으나, 이미 탈출호는 다 망가져 있었다.  

처음 얼마동안 방드르디는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프라이데이처럼 로빈슨 크루소를 주인처럼 잘 모셨다. 그러나 방드르디는 프라이데이처럼 문명에 길들일 수 없는 존재였다. 방드르디는 그동안 로빈슨 크루소가 일궈 놓은 문명의 섬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개를 구하기 위해 논에 물을 빼는가 하면, 염소들을 모두 풀어주고 로빈슨 크루소가 아껴둔 담배를 몰래 피다가 화약에 불이 붙어 폭발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로빈슨 크루소는 다시 문명의 섬을 가꾸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이 방드르디의 원시적인 생활을 배워간다. 머리를 기르고 수염을 자른 로빈슨 크루소는 점점 방드르디의 모습을 닮아간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로빈슨 크루소에서 방드르디로 넘어가게 된다.

어느날 '화이트버드호'가 스페란차에 출현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그동안의 섬 생활을 정리하고 귀환하고자 한다. '화이트버드호'의 선장을 통해 자신이 섬에 표류한 지 28년 2개월 19일이 지났으며, 그동안 세상도 많이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이미 문명과 멀어져버린 로빈슨 크루소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냥 스페란차에 남기로 결심을 한다. 하지만 방드르디는 몰래 섬을 떠났고, 화이트버드호의 어린 소년이 스페란차에 남는다. 로빈슨 크루소는 그 소년에게 '죄디(목요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배워왔듯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로빈슨 크루소는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타자'를 원했다. 어느날 방드르디가 왔을 때 그는 방드르디를 세상의 모든 타자로 대하며,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로빈슨 크루소는 스스로가 문명인이라 생각하며 원시인을 길들이려 했지만, 새롭게 출현한 '화이트버드호'에게는 그 또한 방드르디와 마찬가지로 원시인이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는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디포가 살았던 18세기에는 2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그리 큰 문명의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셸 투르니에가 살았던 20세기에는 하루가 다르게 문명이 변화하고 있었다. 28년 2개월 만에 섬을 벗어난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달리 새로운 문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페란차에 머물기로 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결말은 투르니에의 '뒤집어 쓰기'가 아니라 변화를 정확하게 감지한 '바로 쓰기'가 아닐까.

<밑줄긋기>

존재하지(ex-siste) 않는 것이 고집한다(in-siste). 존재하려고 고집한다. (···) 나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서 존재하고 있다는 나 자신의 확신은 그 확신에 반대하는 만인의 생각과 맞서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로빈슨의 시체의 이미지가 존재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p.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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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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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스스로가 연출가가 되어 읽어라!
   과연 희곡 작품을 책으로 읽고 그 울림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그런 이유로 제목을 볼 때마다 '고도'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쉽게 펼쳐들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사뮈엘 베케트를 꼽은 가수 이적은 "본인 스스로가 연출가가 되어서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며 추천했다. 또, 그 자신이 베케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서 글쓰기가 시작됐다고도 했다.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궁금증을 이제는 풀 때가 된 것 같다. 

막연한 기다림, 그들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달랑 한 그루의 나무만 있는 황량한 언덕의 시골길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의미없는 대화들을 주고 받으며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 온다고 했던 고도는 오늘도 오지 않는다. 그저 심부름꾼을 보내 내일 온다고 할 뿐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그렇게 매일을 이 언덕에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고도는 언제 온다는 말인가? 차라리 내일 온다는 말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오늘도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서 그만 기다리고 돌아가자고 하지만 차마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막연히 기다리기만 할 뿐인 그들처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들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는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올지 모르는 고도는 그들에게 '희망 고문'이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를 통해 현재의 시대가 20대들에게는 희망 고문이라고 했다. 물론 희망 고문을 받고 있는 사람은 20대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언젠가는 나아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안고 달려가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고.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누구인가?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고도'는 경주와 같은 옛 수도 古都도, 높이를 의미하는 高度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고도의 정체는 밝히지 않고 있다. 고도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어떤 이들은, 고도(Godot)가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의 'Dieu'의 합성어라고 하며 "고도=신"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사뮈엘 베케트 조차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며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뒀다.

   '고도'의 의미는 책을 읽는 독자들의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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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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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어머니를 향한 애도 작업!
   우리에게는 《관객모독》이라는 연극으로 잘 알려진 페터 한트케는 베케트 이후 가장 전위적인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소망 없는 불행』그가 서른살 되던 해 부인과 헤어진 후 미국으로 강연 여행을 떠났을 때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무감각해졌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그전처럼 고통 없이 잘 지내게 된다는 것이 끔찍했다고 한다.  

   나는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첫번째 이유는 종교적이니 심리학적이니 사회학적인 꿈 해석 운운하며 이 흥미로운 자살 사건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도 있을 어떤 낯선 인터뷰 기자보다는, 내가 그녀에 대해서, 또 그녀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다. 가령 무언가 할 일이 있으면 나는 기운을 얻는다. 마지막 이유는, 방식은 좀 다르겠지만 마치 인터뷰 기자처럼 이 자살을 하나의 사건으로 재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p.12) 

   이렇듯 한트케는 어머니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김형경 작가는 심리에세이 『좋은 이별』에서 이것은 죽은 어머니를 떠나보내기 위한 일종의 애도 작업이라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트케는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지만,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는 객관적인 글쓰기를 유지하려 한다.  

   만약 <이야기는 ……로 시작되었다>라고 서술하기 시작한다면 모든 것이 꾸민 것처럼 보일 것이며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사사로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당히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낼 이야기를 전하게 될 것이다. (p.13) 

   『소망 없는 불행』과 함께 실려 있는 『아이 이야기』연극 배우였던 첫째 부인과 헤어지면서 혼자 딸 아이를 기르며 겪었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원래 그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는 물론이고 자신의 피붙이조차. 게다가 작가였던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대작을 쓸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딸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피붙이는 물론이고 아이라면 누구든 간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남자는 전에는 아이들을 모두 다른 종류의 종족으로 보았다. 때로는 <절대 사로잡히지 않는> 잔인하고 자비심 없는 적대적인 종족으로, 심지어는 식인종처럼 야만적인 종족으로 보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인간의 적은 아닐지라도 불성실하고 무익하며 전혀 상식이라고는 없는, 흥에 들뜬 군중이며 무리 밖의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 지내지 않고 오래 함께 지내면 정신을 빼앗아가, 자신을 멍청하게 만드는 종족으로 보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상기되는 이와 같은 가치 평가에서 자기 피붙이도 제외시키지 않았다. (p.168) 

   시간이 흐르면서 여행자인 그는 아이들이란 누구든 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또한 기대되는 어떤 존재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 이 새로운 의식과 함께 언제나 똑같은 가능성들이 시작되었고 혼잡한 가운데 아이들의 두 눈은 ─ 그 눈을 보아라! ─ 영원한 정신을 전해 주었다. 만일 그런 시선을 못 본다면 그대는 정말 안됐다! (p.170~171) 

   페터 한트케는 '자기 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자신의 이야기들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써낸 『소망 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는 그의 관심과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관객모독』은 더이상 팔지 않는다. 최근 몇몇 출판사에서 그의 저작들을 새롭게 출간하고 있는 것에 힘입어 그의 대표작 『관객모독』도 재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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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한차현 장편소설
한차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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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최초'라 말하는 이 작가는 누구?!

   한차현, 4권의 장편소설을 쓴 등단 12년차 소설가. 하지만 난 그가 다섯번째 소설 『변신』을 발표하고서야 그의 이름을 접했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아님 말구) 누구는 한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고도 반짝반짝 빛나는 명성을 얻곤 하는데, 그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건, 그가 흔히 주류라 부르는 문학을 쓰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주류란,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안주 삼아 논할 수 있는 것쯤으로 해두자. 깊이 파고들면 골치 아파 지는 것이 그쪽 세계니까.

   그동안 한차현 작가는 『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나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 등 제목부터 톡톡 튀는 작품들을 주로 써왔는데, 그에 비하면 『변신』이라는 제목이 주는 첫인상은 다소 약해 보인다. 하지만 감히 "한국 문단 최초! 세계문학사상(아마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SF + 성경 + 정신분석 + 음모론"을 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 모두 선보인다고 한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글을 쓰는걸까?

 

   『변신』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서울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차연'이 어느날 외계 생명체와 접선한 후 그들의 안내를 따라 아내 '소원'과 함께 우주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집사였던 '소원'은 우주에서 '어떤 종교'를 접하고 지구로 돌아오지 않고, 혼자 지구로 돌아온 '차연'은 목사에서 영구제명 당하고 스스로를 이단이라 부르며 '어떤 종교'를 설파하는데 나선다.

   어떤 의미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정도의 엽기 발랄함과 SF는 이미 박민규 작가가 보여줬던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종교적인 것을 더해서 "최초"라 말했다고 해도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SF와 성경을 접목해서 어떤 종교적인 음모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움베르토 에코처럼 머리 아프게 파헤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작가가 특정 종교를 향해 펜대를 날카롭게 치켜들고 있다는 것도 한눈에 보인다. 비유 등을 통해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과는 달리 우리 문학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의 소설. 그래서 신선하고 재밌다. 그것이 지나치면 안주고 뭐고 다시 집어 넣고 싶을텐데, 딱 적당할만큼 독특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독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 만약 나처럼 독서를 통해 재미를 찾길 원한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러스트 작가 오기사가 표지 및 본문 일러스트를 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본문에서 일러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 혹시 나처럼 기대하는 독자가 있을까봐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10-058. 『변신』 2010/06/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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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이 만드는 세 가지 기적 - 원하는 대로 인생을 바꾸는 마음공부
천명주 지음 / 예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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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공, 행복, 건강! 긍정이 가져다 준 세 가지 선물,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책들은 아주 많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그 유명한 칭찬, 가짜 웃음에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우리 뇌,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 한마디의 힘.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긍정'의 힘을 알고 있지만, 긍정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특히 나는 지극한 현실주의자라 매사를 긍정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이 더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은 긍정하기 힘든 세상이니까. 책임지지 못할 긍정의 한마디로 마냥 누군가에게 기대감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가끔씩은 독한 충고를 서슴치 않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 자신이 아니기에 그들에게는 좀 더 관대하게 긍정의 말을 건넬 수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 자신을 잘 알기에, 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긍정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긍정이 만드는 세 가지 기적』의 저자는 20년 이상 몸과 마음을 닦는 수련에만 집중해 온 사람으로, 현재는 작은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심도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수련해 온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긍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고, 혹시 자신의 수련법을 홍보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수련을 하면서 수련 지도를 해 온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우리가 일상에서 마음을 련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가 말하는 마음 수련이란 그리 힘든 일도,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조용히 산책을 하고 단전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정심을 찾고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스스로를 긍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런 마음 수련을 통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긍정 하나만으로 어떻게 성공과 행복, 건강을 모두 얻을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늘 긍정적인 태도로 임하며 웃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병의 근원은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의 사람이라면 마음의 병을 어찌 아니 얻을 수 있겠는가. 이미 우리는 긍정의 힘을 알고 있지만, 다만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동안 방법을 몰라서 실천이 어려웠다면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을 활용해 보라.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저자는 좋은일 행복한 일만 기도하라고 한다. 대부분은 그런 기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기도는 충분히 행복한 기도는 아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내용을 담아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행했던 기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만 되풀이 하지 않는다. 그것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난 훌륭해. 하지만 이 일은 잘못 처리했어. 괜찮아. 이 일로 ○○○을 배웠잖아. 이 일로 인해 앞으로 모든 일이 더 잘될 거야." (p.190)

 

   그렇다고 저자가 무조건 매사를 긍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는 테레사 수녀의 예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테레사 수녀는 전쟁을 없애자는 모임 같은 데는 절대 참석하지 않았다. 오로지 평화를 위한 모임에만 참석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 전쟁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평화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평화가 인간에게 주는 행복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p.63)


 

   그동안 긍정의 힘을 일률적으로 강조하는 이야기에 질렸다면, 그래서 오히려 반감만 들었던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서 반박하지 않고 편안하게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을 때도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저자는 자신이 접했던 많은 책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 또한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긍정하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시켰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늘 여러 개의 장점보다는 하나의 단점을 더 눈여겨보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리라.

 

10-047. 『긍정이 만드는 세 가지 기적』 2010/06/0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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