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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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어머니를 향한 애도 작업!
   우리에게는 《관객모독》이라는 연극으로 잘 알려진 페터 한트케는 베케트 이후 가장 전위적인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소망 없는 불행』그가 서른살 되던 해 부인과 헤어진 후 미국으로 강연 여행을 떠났을 때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무감각해졌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그전처럼 고통 없이 잘 지내게 된다는 것이 끔찍했다고 한다.  

   나는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첫번째 이유는 종교적이니 심리학적이니 사회학적인 꿈 해석 운운하며 이 흥미로운 자살 사건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도 있을 어떤 낯선 인터뷰 기자보다는, 내가 그녀에 대해서, 또 그녀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다. 가령 무언가 할 일이 있으면 나는 기운을 얻는다. 마지막 이유는, 방식은 좀 다르겠지만 마치 인터뷰 기자처럼 이 자살을 하나의 사건으로 재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p.12) 

   이렇듯 한트케는 어머니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김형경 작가는 심리에세이 『좋은 이별』에서 이것은 죽은 어머니를 떠나보내기 위한 일종의 애도 작업이라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트케는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지만,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는 객관적인 글쓰기를 유지하려 한다.  

   만약 <이야기는 ……로 시작되었다>라고 서술하기 시작한다면 모든 것이 꾸민 것처럼 보일 것이며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사사로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당히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낼 이야기를 전하게 될 것이다. (p.13) 

   『소망 없는 불행』과 함께 실려 있는 『아이 이야기』연극 배우였던 첫째 부인과 헤어지면서 혼자 딸 아이를 기르며 겪었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원래 그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는 물론이고 자신의 피붙이조차. 게다가 작가였던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대작을 쓸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딸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피붙이는 물론이고 아이라면 누구든 간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남자는 전에는 아이들을 모두 다른 종류의 종족으로 보았다. 때로는 <절대 사로잡히지 않는> 잔인하고 자비심 없는 적대적인 종족으로, 심지어는 식인종처럼 야만적인 종족으로 보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인간의 적은 아닐지라도 불성실하고 무익하며 전혀 상식이라고는 없는, 흥에 들뜬 군중이며 무리 밖의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 지내지 않고 오래 함께 지내면 정신을 빼앗아가, 자신을 멍청하게 만드는 종족으로 보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상기되는 이와 같은 가치 평가에서 자기 피붙이도 제외시키지 않았다. (p.168) 

   시간이 흐르면서 여행자인 그는 아이들이란 누구든 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또한 기대되는 어떤 존재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 이 새로운 의식과 함께 언제나 똑같은 가능성들이 시작되었고 혼잡한 가운데 아이들의 두 눈은 ─ 그 눈을 보아라! ─ 영원한 정신을 전해 주었다. 만일 그런 시선을 못 본다면 그대는 정말 안됐다! (p.170~171) 

   페터 한트케는 '자기 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자신의 이야기들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써낸 『소망 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는 그의 관심과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관객모독』은 더이상 팔지 않는다. 최근 몇몇 출판사에서 그의 저작들을 새롭게 출간하고 있는 것에 힘입어 그의 대표작 『관객모독』도 재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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