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뭉치 사계절 중학년문고 10
김양미 지음, 정문주 그림 / 사계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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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비춰지고 싶으세요?
   흔히 아이들을 어른의 거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아이들이 그대로 보고 배우기 때문이죠. 우리의 잘못된 행동 하나가 아이들에게 엄청난 상처와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아이들 보다 덜 예민하고 좀 더 무감각한 어른들은 그 사실을 곧잘 잊어버리곤 한답니다.
   2006년 제2회 마해송문학상을 받은 김양미 작가의 두 번째 작품집 『털뭉치』에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4편의 단편동화가 실려 있습니다.

  「아래 할아버지」는 여섯 살 채운이가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할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하는 과정이 담긴 작품입니다. 2층에 살고 있는 채운이는 1층 주인집 할아버지를 ‘아래 할아버지’라고 불렀는데, 할머니가 머리에 흰색 리본을 달고 다닌 이후로 할아버지를 볼 수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했던 채운이는 할머니를 귀찮게 하지 말라는 엄마의 당부가 있었지만 할머니가 보이자 물어봅니다. 꼬치꼬치 캐묻는 채운이가 귀찮을 법도 한데, 할머니는 채운이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해줍니다.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채운이는 죽음이라는 것의 의미를 짐작하게 됩니다. 또, 채운이와 할머니의 대화를 보면서 대화의 중요성도 깨닫게 됩니다. 채운이는 성격이 매우 밝고 이해력 또한 빠른 아이입니다. 채운이가 그렇게 된 것은 주변 어른들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질문을 하나 했을 때, 귀찮다거나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해서 피해 버리면 아이는 다시 질문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 보면 말수도 줄어들고 성격도 조용히지겠죠? 

  「애벌레와 실체 현미경」은 어릴적 뇌성마비에 걸려 다리와 오른쪽 손이 불편한 결이의 이야기입니다. 3학년인 결이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리가 계속 바뀌어서 좋습니다. 예전 선생님들은 결이가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무조건 가장 앞에 앉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담임선생님은 결이도 다른 친구들처럼 자리를 바꿔가며 앉을 수 있게 해줬고 짝도 바뀌고, 무엇보다도 어떤 자리에서는 창 밖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고 늘 밝게 지내는 결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배려가 오히려 결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결이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지내고 싶어하는데, 어른들은 친구들에게 결이가 장애인이니까 더 신경 써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결이를 도와주지 않았거나 놀리면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벌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이와 친구들은 더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는거죠. 어린 결이도 느끼고 있는 것을 우리 어른들은 왜 모를까요? 몸이 불편하니까 좀 더 신경 써줘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상처주는 일은 없어야겠죠.  

  「멸치」의 주인공 혜원이는 멸치를 참 좋아합니다. 과자 대신 멸치를 먹곤 하는데, 시장 구경을 갔다가 건어물 가게에서 맛있어 보이는 멸치 5개를 맛보려고 집습니다. 혜원이의 엄마도 시장을 보러갈 때 그렇게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건어물 가게 아저씨는 혜원이를 도둑으로 몹니다. 한 어른의 도움을 받아 아저씨의 손에서 벗어난 혜원이는 집으로 들어가는 게 겁이 납니다. 혜원이의 아버지는 매우 가부장적인 분으로, 혜원이 뿐만아니라 엄마까지도 아버지에게 야단을 듣는 일이 간혹 있기 때문입니다. 밤이 늦어 집으로 들어간 혜원이에게 아버지는 대뜸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말해 보라고 합니다. 혜원이는 시장에서 있었던 일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화가 난 아버지는 혜원이에게 손찌검을 합니다. 혜원이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집을 탈출해 놀이터로 가게 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들에게 집보다 좋은 곳은 없어 보입니다. 또 무서운 아버지지만 혜원이와 동생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아래 할아버지」에서 채운이의 성격이 밝은 것은 주변 어른들의 역할이 컸다고 했죠? 반대로 혜원이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게 늘 순종적인 어머니를 보면서 성격이 점점 더 어두워지겠죠? 어른이 된 이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어릴 적 행복하지 않았던 가정환경이 원인이 됐던 경우가 많습니다. 

  표제작인 「털뭉치」는 ‘지후’라는 이름의 두 어린이와 공방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착한 공방 선생님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곤 했었는데, 이웃들은 그런 공방 선생님을 싫어합니다. 그러다간 동네가 길고양이 천국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죠. 지후는 그런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1주일에 한번씩 공방에 갈 때마다 참 즐겁습니다. 어느날 공방에 지후와 똑같은 이름의 지후가 오게 되는데, 지후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지후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궁금하던 때 지후가 길고양이를 안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원래 길고양이는 지후가 키우던 고양이었으나 몇 달 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또, 지후가 그렇게 좋아하는 고양이를 지후의 엄마는 버릴려고도 했다고 해요. 
  고양이는 자신의 몸에 난 털을 핥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몸 안에 쌓여 있던 털들을 한꺼번에 털뭉치로 토해내기도 한답니다. 우리 아이들은 고양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른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상처를 받을 때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하나 둘씩 쌓이다 보면 고양이가 힘겹게 털뭉치를 토해내야 하는 것처럼 상처를 받게 되겠지요. 

  『털뭉치』에 실린 4편의 동화는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을 통해 얼마나 상처를 받으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또 어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으세요? 

** <마해송 문학상>은 우리 창작 동화의 첫 길을 연 故 마해송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국내 아동문학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한 상입니다. 선생의 이름이 다소 생소하신 분도 계실텐데요, 그건 아마도 우리가 너무 어릴 때 선생의 작품을 읽었기 때문에 차마 작가의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거예요. 어릴적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바위나라와 아기별> 이야기가 바로 마해송 선생의 작품이랍니다. 그리고 시인이자 의사로 활동하고 있고 얼마전 가수 루시드 폴과 함께 책을 냈던 마종기 선생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2011. 07. 1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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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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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냐르글을 썼던 이유는 글만이 침묵을 지키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책은 다소 어렵다. 에세이와 동화가 한데 섞여있고, 그 위에 철학적인 이야기도 보태어 졌다. 어떤 이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읽는 것 같으면서도, 또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한 신화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도록 어설프게나마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이 소설은 「아이슬란드의 혹한」,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메두사에 관한 소론」이라는 각기 다른 성격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장인 「아이슬란드의 혹한」에서는 어떤 동화를 쓰게 된 계기를 밝히고 있다. 두 번째 장인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 그런 계기로 쓰게 된 동화이다. 마지막인 「메두사에 관한 소론」에서는 어린 시절 말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신화를 통해 사유의 깊이까지 함께 보여준다.

   메인 테마가 된 동화의 내용을 잠시 언급하자면 이렇다. '디브'라는 마을에 '죈느'라는 젊은 재봉사 청년이 있었다. 그는 바느질 솜씨가 아주 좋았는데, 맞은편 집에 살고 있던 '콜브륀'이라는 처녀가 그를 사랑하게 됐다. 죈느를 너무나도 사랑한 콜브륀은 용기를 내 죈느에게 고백을 한다. 죈느는 콜브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전 그녀에게 미션 하나를 던져준다. 콜브륀은 평소 자수 솜씨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 미션이란 죈느가 가지고 있는 벨트에 수놓인 모티프를 똑같이 재현해 달라는 것이었다. 콜브륀은 죈느와 결혼하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모티프를 재현해 내려 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울고 있는 콜브륀 집에 길을 잃은 영주가 찾아온다. 영주에게는 죈느의 벨트와 똑같은 것이 있었는데, 콜브륀에게 그 벨트를 주는 대신 '아이드비크 드 엘'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잊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름 하나쯤 기억하는 것은 아무일도 아니라고 생각한 콜브륀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한다.
   결혼 후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콜브륀은 문득 영주와의 약속이 떠올랐고 그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으나 혀끝에서만 맴돌 뿐 떠오르지가 않았다. 남편을 속였다는 자책감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불안감 때문에 슬퍼하는 콜브륀을 위해 남편이 된 죈느는 영주의 이름을 알아내러 떠난다. 하지만 영주의 이름을 알아낸 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그 이름을 말하려고 하면 순간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몇 번을 되풀이하다가 겨우 아내에게 영주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영주가 집으로 찾아와서 아내에게 자신의 이름을 묻는다. 다행히 아내는 영주의 이름을 이야기 할 수 있었고, 영주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다.
   콜브륀과 죈느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때가 있다. 기억날듯 말듯 혀끝에서만 맴도는 이야기들. 그럴 땐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그렇다. 글쓰기다. 글로 기록해 두면 죈느처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몇 번을 왔다갔다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어린시절 두 번이나 자폐증을 앓았던 경험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욕망 때문에,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혹은 직업 삼아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나는 생존을 위해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는 글만이 침묵을 지키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p.71) 이 소설 속 동화는 어린시절 경험을 통해 처절하게 느꼈던 글쓰기의 필요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야기다.
   프랑스 아카데미 공쿠르 회장은 "키냐르의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다른 책 1000권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단다. 그 정도로 이 한 권의 책에는 새기고 싶은 구절들이 참 많지만, 그가 전하고자 한 이야기를 이 아둔한 독자는 가슴으로는 받아들였지만 혀끝에서 맴돌기만 할뿐 다시 표현해 내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다.

2011/03/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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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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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의 디지털식 연애편지를 엿보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벌써 3년째 여행 중이다. 그는 매일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이 온 적은 한번도 없다. 답장이 오는게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클릭 한번만 하면 편지고 사진이고 보낼 수 있는 때에, 게다가 얼굴 보며 통화까지 할 수 있는 때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라니. 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그저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난 여행자에게서 받은 편지에 누가 답장을 할까. 그나마 주소라도 제대로 알려주면 다행일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답장이 도착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친구의 대답은 3년째 똑같다. "포기해라 그만. 그 동안 한 번도 안 온 편지가 어느 날 갑자기 올 것 같냐?" 그래도 사람이 자존심이 있지, 답장 받으면 여행도 끝이라고 공언했으면 한 장이라도 받고 끝내야하지 않을까?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장은진 작가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이번에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정기구독을 취소하기 위해 '라이크'라는 잡지사에 이메일을 보낸다. 하지만 구독 취소가 되지 않아 며칠 뒤 또 한번의 이메일을 보내고, 한달 후 또다시 이메일을 보낸다. 다행히 친절한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답 메일을 보낸다. 그녀는 철자를 혼동해 '라이크(like)'사에 보내야 했던 구독취소 메일을 '라이케(leike)'라는 남자에게 보냈던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로맨틱한 편지는 아니지만 이 남자 얼마나 친절한가. 그로부터 9달 후 그녀는 또다시 '라이케'라는 남자에게 신년인사를 담은 단체 메일을 잘못 발송한다. 친절한 이 남자는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녀에게 알려준다.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잘못 보낸 메일에 답 메일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메일만을 주고 받는 서로에게 흥미를 느끼며 어떤 사람일까를 궁금해 한다. 하지만 그녀, 그러니까 에이미는 이미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여자로 서로의 실제 모습을 궁금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보통의 연인들이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이메일을 통해 정말 짜증나도록 한다. 그 밀고 당김이 얼마나 짜증날 정도냐 하면, 차라리 그냥 책을 덮고 싶을 정도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소모적이다.
   또 이것이 바로 디지털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며칠을 기다려야 답장을 받을 수 있는 편지는 쓸 때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쓰고, 읽을 때도 가슴 졸이며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메일은 그 옛날 주고받았던 편지와는 달리 모든 것이 싫다. 쉽게 지웠다 다시 쓸 수 있으며, 주고 받는 것도 간단하고 빠르다. 그러니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소모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3년째 여행을 하며 편지를 쓰고 있는 그 남자는 단 한 사람뿐일지라도 편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에이미와 레오도 마찬가지다. 비록 직접 만나고 서로를 만져볼 수는 없지만 그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대답해 줄 상대가 있기 때문에 생이 견딜만할 뿐만아니라 즐겁기까지 하다.
   하지만 에이미와 레오의 즐거움은 레오가 이메일 주소를 바꾸면서 중단된다. 물론 두 사람이 주고 받았던 이메일로만 이뤄진 소설 또한 끝난다. 그 후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그걸로 끝이었을까? 그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살짝 귀틈해 주자면, 에이미와 레오의 뒷이야기가 담긴 책이 『일곱번째 파도』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전편보다 나은 후속편을 만나기는 어려울테지만, 그래도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찾아보길. 나는 그들의 소모적인 이야기가 짜증나서 이쯤에서 그 궁금증을 접는다.

2011/03/2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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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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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와 구성은 재밌지만, 이야기가 다소 느슨한 것 같다. 천운영의 장점이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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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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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먼 추억의 달콤한 조각을 곱씹다!
   이야기는 '기술'을 쓰고 있는 한 고문기술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기술자 중의 기술자였다. 그는 겉으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고문하는 방법을 알았고, 사람이 죽기 직전인 즉 고문을 멈춰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 그, 하지만 다른 방에서 고문을 하던 후배가 조절을 잘못해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조금만 더하면 입이 열릴 것 같은 청년의 고문도 함께 멈추고 풀어줘야만 한다.
   소녀, 아니 며칠 후면 대학생이 되는 계집애는 대학엘 가면 무엇을 할까? 그런 생각으로 한창 들떠 있다. 자신의 물건이 가득차 있는 다락방에서 하루종일 즐겁게 보내던 소녀는 이제 엄마에게 선물로 받은 하이힐을 신고 뒤뚱뒤뚱 걸어도 보고, 눈썹을 그리느라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도 한다.

   천운영의 두번째 장편소설 『생강』은 고문기술자인 아버지 '안'과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이 된 딸 '선'의 이야기로,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고문을 받고 있던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풀려난 그 청년은 자신을 고문했던 '안'의 기술과 신상을 공개한다. 그 탓에 '안'은 잠시 조직을 떠나 있어야 한다. 자신조차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라는 조직, '안'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마냥 즐거울 것만 같았던 대학 생활, 하지만 '선'은 아버지 사건 때문에 단짝 친구와의 비밀스런 수다도, 좋아하는 이와의 만남도, 그렇게 원하던 대학생활도 모두 그만둬야만 한다. 대학을 그만 둔 '선'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엄마처럼 미용실을 다니며 미용기술을 배운다.
   그런데 그때 소식도 없던 아버지 '안'이 미용실 위 '선'의 다락방으로 숨어든다. '선'에게 '안'은 더이상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욕하며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괴물'일 뿐이다. '선'에게 다락방은 꿈꾸는 공간이자 아주 비밀스런 공간이다. 그 다락방은 '선'에게 아주 소중한 공간인데,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안' 때문에 '선'은 더이상 다락방이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이제 그만 그 다락방에서 괴물이 나와주기를 바라는 '선'.

   왜 하필 '생강'일까? 기술자가 되기 전 '안'은 월부책 장사를 했다. 무거운 서류가방을 들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린 딸을 위해 늘 '생강 센베이'를 봉지 한가득 샀다. '안'이 생강 센베이를 자고 있는 딸 코밑에 들이밀면 어린 딸은 자다가도 일어나 눈도 못 뜬 채 과자를 오물오물 받아 먹었다. '안'은 그것을 "먼 추억의 달콤한 조각"(p.194)이라고 회상했다. 즉, 이 책에서 '생강'은 프루스트의 홍차나 마들렌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달콤한 기억의 한 조각을 떠올리며 다락방에서의 생활을 견뎌내고 있기도 하다.

   작가 천운영에게도 '선'의 다락방 같은 공간이 있었고, 한 고문기술자가 다락방에서 십 년을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생강』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사건들이 아니라 한 아버지와 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문기술자가 '기술'을 쓰던 그 시절을 그리다보니 정작 작가가 힘주어 이야기 하고자 했던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좀 더 산만해지고 느슨해지지 않았나 싶다.

2011/03/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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