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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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먼 추억의 달콤한 조각을 곱씹다!
   이야기는 '기술'을 쓰고 있는 한 고문기술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기술자 중의 기술자였다. 그는 겉으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고문하는 방법을 알았고, 사람이 죽기 직전인 즉 고문을 멈춰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 그, 하지만 다른 방에서 고문을 하던 후배가 조절을 잘못해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조금만 더하면 입이 열릴 것 같은 청년의 고문도 함께 멈추고 풀어줘야만 한다.
   소녀, 아니 며칠 후면 대학생이 되는 계집애는 대학엘 가면 무엇을 할까? 그런 생각으로 한창 들떠 있다. 자신의 물건이 가득차 있는 다락방에서 하루종일 즐겁게 보내던 소녀는 이제 엄마에게 선물로 받은 하이힐을 신고 뒤뚱뒤뚱 걸어도 보고, 눈썹을 그리느라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도 한다.

   천운영의 두번째 장편소설 『생강』은 고문기술자인 아버지 '안'과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이 된 딸 '선'의 이야기로,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고문을 받고 있던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풀려난 그 청년은 자신을 고문했던 '안'의 기술과 신상을 공개한다. 그 탓에 '안'은 잠시 조직을 떠나 있어야 한다. 자신조차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라는 조직, '안'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마냥 즐거울 것만 같았던 대학 생활, 하지만 '선'은 아버지 사건 때문에 단짝 친구와의 비밀스런 수다도, 좋아하는 이와의 만남도, 그렇게 원하던 대학생활도 모두 그만둬야만 한다. 대학을 그만 둔 '선'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엄마처럼 미용실을 다니며 미용기술을 배운다.
   그런데 그때 소식도 없던 아버지 '안'이 미용실 위 '선'의 다락방으로 숨어든다. '선'에게 '안'은 더이상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욕하며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괴물'일 뿐이다. '선'에게 다락방은 꿈꾸는 공간이자 아주 비밀스런 공간이다. 그 다락방은 '선'에게 아주 소중한 공간인데,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안' 때문에 '선'은 더이상 다락방이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이제 그만 그 다락방에서 괴물이 나와주기를 바라는 '선'.

   왜 하필 '생강'일까? 기술자가 되기 전 '안'은 월부책 장사를 했다. 무거운 서류가방을 들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린 딸을 위해 늘 '생강 센베이'를 봉지 한가득 샀다. '안'이 생강 센베이를 자고 있는 딸 코밑에 들이밀면 어린 딸은 자다가도 일어나 눈도 못 뜬 채 과자를 오물오물 받아 먹었다. '안'은 그것을 "먼 추억의 달콤한 조각"(p.194)이라고 회상했다. 즉, 이 책에서 '생강'은 프루스트의 홍차나 마들렌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달콤한 기억의 한 조각을 떠올리며 다락방에서의 생활을 견뎌내고 있기도 하다.

   작가 천운영에게도 '선'의 다락방 같은 공간이 있었고, 한 고문기술자가 다락방에서 십 년을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생강』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사건들이 아니라 한 아버지와 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문기술자가 '기술'을 쓰던 그 시절을 그리다보니 정작 작가가 힘주어 이야기 하고자 했던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좀 더 산만해지고 느슨해지지 않았나 싶다.

2011/03/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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