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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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자란 어른들의 슈퍼 울트라캡숑 개꼬장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여운을 남겨줬던 심윤경. 2년마다 꼬박꼬박 일관성 있게 장편소설을 써냈던 그녀가 잠시 동화의 세계로 외도를 하더니 4년만에 덜 자란 어른들의 슈퍼 울트라캡숑 개꼬장전으로 돌아왔다.

꼬장도 이런 개꼬장이 없다. 평소 꼬장 좀 부린다는 사람들도 이 가족 앞에 서면 명함 한번 못 내민다. 『사랑이 달리다』의 '나', 김혜나 일가는 온가족이 개꼬장을 부려서 누구 하나 말릴 사람이 없는, 일명 콩가루 집안이다. 가난한 트럭운전사에서 자수성가해 알아주는 병원장이 된 아버지,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외모에 이화여대까지 나왔지만 사랑 하나 때문에 트럭운전사와 결혼한 어머니, 부자 아빠를 둔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살았던 두 아들과 막내딸.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이 콩가루 집안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지금부터 나열해 보겠다.

큰 오빠 철원은 자기 살 궁리 밖에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부자 아빠의 덕을 볼 수 있을까, 혹은 장남으로 가족 때문에 피해 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 생각 뿐이다. 작은 오빠 학원은 최고 대학을 나와서인지 사고도 최고로 친다. 그동안 친 사고로 빚만 50억이 넘는데, 요즘은 컨버터블이 저렴하다며 1억이 훌쩍 넘는 외제차를 수시로 바꾼다. 그는 속도를 즐긴다. 조수석에 동생 혜나를 태우고 마치 아무도 없는 아우토반을 달리듯 미친듯이 질주한다. 39살의 혜나는 막내딸의 특권을 즐기느라 할줄 아는게 하나도 없다. 동갑내기 성민과 결혼한 후에도 부자 아빠의 카드를 남발하며 돈 아쉬운 줄 모르고 산다.

이렇게 미친듯이 살고 있던 그들에게 아버지가 제대로 미친 한방을 날려주신다. 큰 오빠 철원 보다도 나이가 어린 여자 때문에 어머니와 황혼 이혼을 한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어머니는 끝까지 우아하게 남기 위해 재산분할청구도 하지 않는다. 집안에 돈 벌 줄 아는 사람이라곤 아버지 밖에 없었는데, 아버지가 어린 여자 때문에 집에서 나가버리자 이들의 경제상황은 곤궁하다 못해 최악에 빠진다.

그나마 막내딸로 곱게 살아왔던 혜나가 덜 미친 것 같았다. 남편 성민은 혜나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최고 대학의 공대를 나와 기업에서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일하고 있다. 혜나가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화를 내더라도 이내 풀려버리는 착한 남편 성민. 그런데 아버지로 인해 그나마 있던 인맥이 끊겨버리자 성민은 지방으로 좌천되고 혜나는 그런 성민을 따라가지 않는다.

성민을 따라가지 않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커피값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작은 오빠 선배의 산부인과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는데 그곳에서 혜나는 유느님 보다 더 멋진 욱연을 만나게 된다. 세상 그 어떤 여자라도 욱연을 한번 만나면 그에게 반해 버리고, 돈 있는 남자들은 그에게 투자를 하지 못해 안달이다. 성민과의 결혼생활도 꽤 무신경 했던 혜나도 별 수 없이 그를 사랑하게 된다.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에 마하39의 속도로 달려온 사랑,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이 달리다』는 젊은 남녀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본다면, 아마도 쉰이 훌쩍 넘을 것이다. 아들보다 더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아버지, 아들의 채권자이자 평소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어머니를 흠모해 왔던 대부업자 박회장, 그런 박회장에게 흠뻑 빠져버린 어머니, 수많은 여자들의 흠모를 외면했으면서도 결국 혜나에게 넘어간 욱연, 그런 그를 완전 사랑하는 혜나. 그들의 사랑은 로맨틱 보다는 크레이지에 가깝지만 어쨌든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그들을 향해 달려온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어느 누구의 엔딩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하39의 속도로 달려온 사랑을 쉽게 멈출 수는 없지만 욱연이나 학원의 부인 수진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면 폭발하거나 포기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들과는 경제 단위가 어마어마하게 다른데다가 미친 가족처럼 묘사돼 있어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얼핏 들 수 있지만, 욱연이 횟수의 문제라고 했듯이 이건 스케일만 다를 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돈, 계급, 사랑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뉴스만 틀어도 나오지 않던가.

사실 이전의 심윤경 소설은 다소 진지하고 차분한 맛이 있었는데, 『사랑이 달리다』는 마치 박민규나 김중혁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발랄하다. 과연 이 작가가 이런 단어의 사용법을 알고 있었을까, 싶은 것들도 더러 있다. 그저 변화를 시도하는걸까? 아님 변화를 통해 성장을 하고 있는걸까? 아무도 알 수 없는 혜나 일가족의 결말이 궁금한만큼 그녀의 다음 작품도 궁금해진다.

혜나씨, 인생은 다면적인 거야. 그래서 어떤 한 면만 생각하면 전체가 우스꽝스럽게 비틀려 보이기도 하는 거지. 나도 대략 굶지나 않으면 다행인 형편이었지만, 가끔은 좋은 물건을 손에 넣거나 잘 차린 음식을 먹을 때도 있었다고. 횟수의 문제일 뿐이지. 인생은 길거든. (p.320~321)

난 수진씨가 이해되는데. 아무리 잘 버티는 사람이라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떤 일이 있거든.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흔한 일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일격이 되기도 하니까. (p.3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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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베이커리 1 한밤중의 베이커리 1
오누마 노리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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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문을 여는 『심야식당』이 있었죠. 늦은 새벽,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이 심야식당에서 배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우고 돌아갔는데, 『한밤중의 베이커리』도 비슷합니다.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라는 이름의 빵가게는 프랑스어로 '빵가게 구레바야시'라는 뜻으로 오후 23시부터 오전 29시까지, 즉 한밤중에만 문을 여는 빵가게입니다. 이제 막 오픈한지 보름쯤 된 곳인데, 점원은 흰색 요리사 옷을 입은 블랑제 '히로키'와 검정색 요리사 옷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는 '구레바야시' 두 명입니다.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구레바야시'는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의 주인이랍니다.

틈새 시장을 잘 공략한 탓인지 그런대로 손님이 이어지던 이곳에 17살의 여고생 '노조미'가 찾아옵니다. '노조미'는 '구레바야시'의 이복 여동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구레바야시'의 아내 '미와코 구레바야시'는 이 가게를 준비하던 중 사고를 당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게다가 '미와코'의 아버지는 20년 전에 돌아가셔서 '노조미'가 '미와코'의 이복 동생일리가 없지만, '구레바야시'는 아내 '미와코'가 '노조미'를 돌봐주겠다는 편지를 남겼기 때문에 아무말 하지 않고 '노조미'를 받아 들입니다.

'노조미'를 시작으로 이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에는 따뜻한 빵의 힘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노조미' 역시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사라져서 어떻게 된 사연인지도 모르는 '구레바야시'의 신세를 지고 있는데, 어린 소년 '고다마' 역시 '노조미'와 상황이 비슷합니다. 여기에 원룸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망원경으로 세상 사람들을 지켜보는 변태 각본가 '마다라메'와 지금은 홈리스가 된 여장남자 소피아, 능력있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이를 낳았지만 자신과 닮아가는 것 같아서 고다마를 버린 '오리에'까지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를 찾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사연 많고, 그만큼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구레바야시'의 아내 '미와코' 또한 늘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결혼은 했지만 '구레바야시'는 일 때문에 대부분 해외에 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레바야시'는 빵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내 '미와코'가 왜 빵이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음식인지, 왜 사람들에게 따뜻한 빵을 먹이고 싶어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빵은 평등한 음식이잖아. 길가나 공원, 어디서든 먹을 수 있어. 마주할 식탁이 없어도, 누가 옆에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어. 맛있는 빵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맛있잖아." (p.280)

"맛난 걸 먹으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웃지? 그런 빵을 만들고 싶어. 빵은 특별한 날 먹는 게 아니라 매일 먹는 거야. 맛난 빵으로 매일 웃을 수 있다면 완전 남는 인생 아닐까." (p.60)

'미와코'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빵은 참 평등한 음식입니다. 하지만 왠지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평등한 음식을 먹는 이유는,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 혼자이기 때문이니까요.

책장을 덮자마자 바로 집앞 빵가게로 달려갔습니다.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빵을 부르는 책이죠. 『한밤중의 베이커리』의 저자 오누마 노리코는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2005년에 소설가로 데뷔한, 비교적 경력이 짧은 소설가입니다. 2011년에 나온 이 책을 통해 일본에서는 기대되는 신예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고 하는데, 작품 곳곳에 신예 작가의 어설픔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연애시대』를 쓴 노자와 히사시 또한 각본가였습니다. 노자와 히사시의 소설을 보면 마치 드라마처럼 상황과 대화가 전개되는데, 오누마 노리코의 성장도 한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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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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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그의 시를 가슴에 새긴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쉬이 읽지 못하는 이유는 시를 처음 만나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시는 가슴으로 읽고 느껴야 하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그들은 시를 머리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 반짝 빛나는 별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듯이, 시를 읽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야 한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빼곡하게 메모까지 하며 배웠던 시가 저절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은 시를 읽는 방법에 대한 책도 아니고, 비평집도 아니다.

두 권의 역사소설로 한국을 대표하는 팩션작가로 우뚝 솟은 이정명 작가의 신작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때,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벌어진 간수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죄수들 사이에서, 아니 간수들까지도 '악마'라 부를 정도로 잔인했던 한 간수의 죽음, 철창 밖의 간수와 철창 속의 죄수 밖에 없는 이 형무소에서 과연 누가 그를 죽였을까?

죽은 간수(스기야마)의 교대 파트너이면서 스기야마가 죽자 그의 업무는 물론이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일까지 맡게 된 어린 학병 출신의 간수 와타나베 유이치. 의외로 살인범을 찾아내는 일은 쉬워 보였다. 평소 잔인하기로 소문난 스기야마였으니, 그에게 원한 품은 죄수가 한 둘이겠는가. 살인범은 간도에서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온 최치수라는 인물이었고, 자신이 스기야마를 죽였다고 순순히 자백까지 한다. 하지만 뭔가 꺼름칙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유이치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결과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에 한발짝 다가선다. 죽은 스기야마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시 한 편을 보고 유이치는 히라누마 도주가 이 사건에 깊이 연관돼 있음을 알아차린다.

히라누마 도주, 이것은 시인 윤동주의 창씨명이다. 민족 저항시인이라 불리는 그에게 창씨명이라니,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다. 당시 도항을 하려면 반드시 창씨명이 있어야 했다고 한다. 아무리 유학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창씨개명한 것을 오랫동안 부끄러워하며 한 편의 시를 쓴다.

참회록

파란 녹이 긴 구리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소설은 이런 식이다.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을 추적하는 곳곳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와 마주치며, 그때마다 윤동주 시인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는지 소설처럼 풀어준다. 비록 허구이기는 하나, 밑줄 쫙 긋고 메모까지 해가며 읽었을 때보다 훨씬 잘 와닿는다. 문득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한번 읽게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정명 작가는 소설 속에 시를 끼워 넣기 위해 소설을 다시 고쳐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혀내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정명 작가의 소설을 한번쯤 읽어본 작가라면 누구나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살인사건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초반에 드러나는 정황이라 스포일러가 아닐 수도 있지만, 하나만 밝혀주자면 죽은 스기야마는 잔인한 간수였지만 시와 문학을 사랑한 검열관이었고, 그를 잔인한 간수에서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꾼 것은 윤동주 시인의 시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유이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전쟁이 끝나고 전범 수용소에서 벌어진 전범 용의자 심문 때, 유이치는 한결 같이 스스로를 유죄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유이치에게는 어떤 죄가 성립될 수 있는 걸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에 등장했던 한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한나와 유이치는 같은 입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범죄행위에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나는 처벌받아야 할까? 그럴 것이다. 언젠가 미친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이 형무소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범죄는 단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범죄자들 중에는 나도 끼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전쟁이 끝나고,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 말아야 할까? (p.166)

나는 악마들의 광기에 침묵했고 죄 없는 자들의 비명에 귀를 닫았습니다. 악마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지 못했고, 더러운 전쟁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으며, 죄 없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했고, 폭격으로 죽음의 공포에 내몰린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의 죽음에 책임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잔인한 시대를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유죄입니다. (p. 289)

그동안의 이정명 작가 작품들을 살펴보면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보인다. 『바람의 화원』에서는 김홍도와 신윤복을,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한글을, 그리고 이번에는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단순히 소설의 주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한번 더 일깨워주고 되새겨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소설 속에 싣고, 시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소설을 여러 번 고쳐 썼다고 한다. 원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조선인이었으나 일본인 간수로 이야기를 다시 쓴 이유도 그렇게 하면 그의 시가 주는 힘과 감동이 더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어떻게 잔인한 간수까지 바꿔 놓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이 이 책을 읽을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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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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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그의 시를 가슴에 새긴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쉬이 읽지 못하는 이유는 시를 처음 만나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시는 가슴으로 읽고 느껴야 하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그들은 시를 머리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 반짝 빛나는 별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듯이, 시를 읽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야 한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빼곡하게 메모까지 하며 배웠던 시가 저절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은 시를 읽는 방법에 대한 책도 아니고, 비평집도 아니다.

두 권의 역사소설로 한국을 대표하는 팩션작가로 우뚝 솟은 이정명 작가의 신작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때,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벌어진 간수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죄수들 사이에서, 아니 간수들까지도 '악마'라 부를 정도로 잔인했던 한 간수의 죽음, 철창 밖의 간수와 철창 속의 죄수 밖에 없는 이 형무소에서 과연 누가 그를 죽였을까?

죽은 간수(스기야마)의 교대 파트너이면서 스기야마가 죽자 그의 업무는 물론이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일까지 맡게 된 어린 학병 출신의 간수 와타나베 유이치. 의외로 살인범을 찾아내는 일은 쉬워 보였다. 평소 잔인하기로 소문난 스기야마였으니, 그에게 원한 품은 죄수가 한 둘이겠는가. 살인범은 간도에서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온 최치수라는 인물이었고, 자신이 스기야마를 죽였다고 순순히 자백까지 한다. 하지만 뭔가 꺼름칙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유이치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결과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에 한발짝 다가선다. 죽은 스기야마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시 한 편을 보고 유이치는 히라누마 도주가 이 사건에 깊이 연관돼 있음을 알아차린다.

히라누마 도주, 이것은 시인 윤동주의 창씨명이다. 민족 저항시인이라 불리는 그에게 창씨명이라니,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다. 당시 도항을 하려면 반드시 창씨명이 있어야 했다고 한다. 아무리 유학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창씨개명한 것을 오랫동안 부끄러워하며 한 편의 시를 쓴다.

참회록

파란 녹이 긴 구리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소설은 이런 식이다.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을 추적하는 곳곳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와 마주치며, 그때마다 윤동주 시인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는지 소설처럼 풀어준다. 비록 허구이기는 하나, 밑줄 쫙 긋고 메모까지 해가며 읽었을 때보다 훨씬 잘 와닿는다. 문득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한번 읽게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정명 작가는 소설 속에 시를 끼워 넣기 위해 소설을 다시 고쳐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혀내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정명 작가의 소설을 한번쯤 읽어본 작가라면 누구나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살인사건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초반에 드러나는 정황이라 스포일러가 아닐 수도 있지만, 하나만 밝혀주자면 죽은 스기야마는 잔인한 간수였지만 시와 문학을 사랑한 검열관이었고, 그를 잔인한 간수에서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꾼 것은 윤동주 시인의 시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유이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전쟁이 끝나고 전범 수용소에서 벌어진 전범 용의자 심문 때, 유이치는 한결 같이 스스로를 유죄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유이치에게는 어떤 죄가 성립될 수 있는 걸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에 등장했던 한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한나와 유이치는 같은 입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범죄행위에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나는 처벌받아야 할까? 그럴 것이다. 언젠가 미친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이 형무소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범죄는 단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범죄자들 중에는 나도 끼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전쟁이 끝나고,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 말아야 할까? (p.166)

나는 악마들의 광기에 침묵했고 죄 없는 자들의 비명에 귀를 닫았습니다. 악마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지 못했고, 더러운 전쟁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으며, 죄 없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했고, 폭격으로 죽음의 공포에 내몰린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의 죽음에 책임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잔인한 시대를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유죄입니다. (p. 289)

그동안의 이정명 작가 작품들을 살펴보면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보인다. 『바람의 화원』에서는 김홍도와 신윤복을,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한글을, 그리고 이번에는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단순히 소설의 주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한번 더 일깨워주고 되새겨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소설 속에 싣고, 시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소설을 여러 번 고쳐 썼다고 한다. 원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조선인이었으나 일본인 간수로 이야기를 다시 쓴 이유도 그렇게 하면 그의 시가 주는 힘과 감동이 더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어떻게 잔인한 간수까지 바꿔 놓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이 이 책을 읽을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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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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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꿈을 이룬 암탉!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종종 듣게 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가 아닐까? 어릴 때는 참 쉽게도 대답했던 이 질문이 요즘엔 왜 그렇게도 답하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요즘 나의 꿈은 무엇일까? 과연 나에게도 꿈이라는게 있는걸까?

『마당을 나온 암탉』의 이름은 '잎싹'이다. 아무도 이름을 붙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붙여준 이름이다. 원래 '잎싹'은 양계장 속 닭장에서 매일 매일 알을 낳아야 했던 암탉이었다. 그런데 마당에 있는 암탉이 낳은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까는 걸 보고는 마당으로 나가서 자신이 낳은 알을 품어보는게 소원이 되었다. 그래서 잎싹은 품어 보지도 못할 알을 낳는게 싫었고, 잎싹이 알을 낳지 못하자 주인 부부는 폐계라며 죽음의 구덩이로 잎싹을 밀어 넣었다.

"나한테는 소망이 있었어.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암탉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바람인데, 끝내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죽는구나." (p.23)

죽음의 구덩이에 빠져 잎싹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청둥오리가 잎싹을 노리고 있는 족제비로부터 구해준다. 마당 헛간에서 묵고 있던 청둥오리를 따라 마당으로 돌아간 잎싹은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마당으로 나와 살게 됐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잎싹은 알지 못했다. 혼자서 낳은 알은 절대 병아리로 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마당 식구들로부터 구박만 받던 잎싹, 그러나 자신을 구해준 청둥오리가 있어서 덜 외로웠지만 어느날 청둥오리도 뽀얀 오리를 만나 떠났다.

결국 마당을 나온 잎싹은 청둥오리의 비명소리를 들었고, 숲에서 아주 예쁜 모양의 알 하나를 발견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어미가 돌아오지 않자 잎싹은 그 알을 지극 정성으로 품게 되는데, 마침 청둥오리도 잎싹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는 등 잎싹의 곁을 지켜준다. 하지만 청둥오리는 그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족제비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그날 잎싹과 청둥오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알에서 새끼가 깨어난다.

오랫동안 닭장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눈치가 둔했던 탓일까? 자신이 혼자 낳은 알은 병아리로 부화시킬 수 없다는 걸 몰랐던 것처럼 꽤 오랫동안 잎싹은 자신이 품고 있었던 알이 청둥오리와 뽀얀 오리의 것이라는 걸 몰랐다. 마당 식구들이 그들을 구박하고 따돌릴 때야 잎싹은 왜 청둥오리가 아기가 태어나면 마당이 아닌 저수지로 가라고 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잎싹아, 너는 훌륭한 어미닭이야. 나는 날지 못하게 된 야생 오리고, 너는 보기 드문 암탉이야.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 나는 너를 존경해." (p.81)

청둥오리가 잎싹에게 들려줬던 말처럼 비록 생김새는 달랐지만 잎싹은 아기를 제 자식처럼 보살펴주고 사랑했다. 하지만 아기는 점점 자라면서 오리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잎싹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워했다. 아기가 헤엄을 치고 날개되면서 잎싹은 아기에게 '초록머리'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초록머리는 종종 잎싹 곁을 떠났다. 그런 날이면 잎싹은 밤새 안절부절하며 초록머리를 찾아다녔고 족제비에게 초록머리가 당하지는 않을까 밤새 잠도 자지 못했다. 이런 잎싹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초록머리지만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면서 자신의 몸은 점점 야위어가는 잎싹을 보면서 우리의 어머니들도 우리를 키우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다. 그토록 잎싹을 무시했던 오리의 우두머리도 그런 잎싹에게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기까지 한다.

이건 세 번째 기적이었다. 철망을 나와서 아카시아나무 아래에 살았던 것이 첫 번째 기적이고, 알을 품은 것이 두 번재 기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고 행복한데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 족제비가 사냥에 실패했고, 초록머리가 날기까지 했다. (p.131)

하지만 그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족제비가 죽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마냥 행복한 결말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초록머리는 청둥오리떼 무리의 파수꾼이 되어 함께 떠나고 혼자 남은 잎싹은 네 새끼의 어미, 바로 족제비의 먹이가 된다.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 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p.152)

이 동화를 읽는 포인트는 세 가지이다. 첫번째는 그저 닭장 속에 갇혀 평생 알만 낳다가 죽을 운명이었던 '잎싹'의 꿈과 닭장 탈출기이다. 잎싹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었고, 결국 그 두가지 꿈을 모두 이뤘다. 하지만 그 꿈을 모두 이뤘다고 해서 잎싹은 그만두지 않는다. 잎싹은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꿈을 가지고 이루려고 하는데, 잎싹의 마지막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한 가지 소망이 있었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걸 이루었어. 고달프게 살았지만 참 행복하기도 했어. 소망 때문에 오늘까지 살았던 거야. 이제는 날아가고 싶어. 나도 초록머리처럼 훨훨,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아, 미처 몰랐어! 날고 싶은 것, 그건 또 다른 소망이었구나. 소망보다 더 간절하게 몸이 원하는 거였어." (p.189)

두 번째자식을 향한 어미의 아니 부모의 대가없는 사랑이다. 비록 자신과 다른 모습의 자식이었지만, 잎싹은 그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를 한다. 여기서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은 비단 잎싹 뿐만이 아니다. 청둥오리도 그랬고, 그들을 노렸던 족제비도 자신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사냥에 나섰다.

세 번째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잎싹은 잠자리를 먹고, 족제비는 청둥오리와 닭을 잡아 먹지만 개에게는 꼼짝할 수 없다. 물론 이 먹이 사슬의 가장 꼭대기에는 우리 인간들이 버티고 있고.

동화지만 가슴 한켠을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 꿈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직 이 이야기를 만나보지 못했다면 원작동화든 애니메이션이든 한번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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