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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베이커리 1 ㅣ 한밤중의 베이커리 1
오누마 노리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빵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문을 여는 『심야식당』이 있었죠. 늦은 새벽,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이 심야식당에서 배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우고 돌아갔는데, 『한밤중의 베이커리』도 비슷합니다.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라는 이름의 빵가게는 프랑스어로 '빵가게 구레바야시'라는 뜻으로 오후 23시부터 오전 29시까지, 즉 한밤중에만 문을 여는 빵가게입니다. 이제 막 오픈한지 보름쯤 된 곳인데, 점원은 흰색 요리사 옷을 입은 블랑제 '히로키'와 검정색 요리사 옷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는 '구레바야시' 두 명입니다.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구레바야시'는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의 주인이랍니다.
틈새 시장을 잘 공략한 탓인지 그런대로 손님이 이어지던 이곳에 17살의 여고생 '노조미'가 찾아옵니다. '노조미'는 '구레바야시'의 이복 여동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구레바야시'의 아내 '미와코 구레바야시'는 이 가게를 준비하던 중 사고를 당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게다가 '미와코'의 아버지는 20년 전에 돌아가셔서 '노조미'가 '미와코'의 이복 동생일리가 없지만, '구레바야시'는 아내 '미와코'가 '노조미'를 돌봐주겠다는 편지를 남겼기 때문에 아무말 하지 않고 '노조미'를 받아 들입니다.
'노조미'를 시작으로 이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에는 따뜻한 빵의 힘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노조미' 역시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사라져서 어떻게 된 사연인지도 모르는 '구레바야시'의 신세를 지고 있는데, 어린 소년 '고다마' 역시 '노조미'와 상황이 비슷합니다. 여기에 원룸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망원경으로 세상 사람들을 지켜보는 변태 각본가 '마다라메'와 지금은 홈리스가 된 여장남자 소피아, 능력있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이를 낳았지만 자신과 닮아가는 것 같아서 고다마를 버린 '오리에'까지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를 찾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사연 많고, 그만큼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구레바야시'의 아내 '미와코' 또한 늘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결혼은 했지만 '구레바야시'는 일 때문에 대부분 해외에 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레바야시'는 빵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내 '미와코'가 왜 빵이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음식인지, 왜 사람들에게 따뜻한 빵을 먹이고 싶어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빵은 평등한 음식이잖아. 길가나 공원, 어디서든 먹을 수 있어. 마주할 식탁이 없어도, 누가 옆에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어. 맛있는 빵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맛있잖아." (p.280)
"맛난 걸 먹으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웃지? 그런 빵을 만들고 싶어. 빵은 특별한 날 먹는 게 아니라 매일 먹는 거야. 맛난 빵으로 매일 웃을 수 있다면 완전 남는 인생 아닐까." (p.60)
'미와코'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빵은 참 평등한 음식입니다. 하지만 왠지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평등한 음식을 먹는 이유는,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 혼자이기 때문이니까요.
책장을 덮자마자 바로 집앞 빵가게로 달려갔습니다.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빵을 부르는 책이죠. 『한밤중의 베이커리』의 저자 오누마 노리코는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2005년에 소설가로 데뷔한, 비교적 경력이 짧은 소설가입니다. 2011년에 나온 이 책을 통해 일본에서는 기대되는 신예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고 하는데, 작품 곳곳에 신예 작가의 어설픔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연애시대』를 쓴 노자와 히사시 또한 각본가였습니다. 노자와 히사시의 소설을 보면 마치 드라마처럼 상황과 대화가 전개되는데, 오누마 노리코의 성장도 한번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