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미안 1 - 운명을 훔친 여자 아르미안 1
이유진 엮음, 신일숙 원작 / 2B(투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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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7년만에 소설로 부활한 『아르미안의 네딸들』

개인적으로 만화책을 즐겨보지 않습니다. 만화책을 볼 때는 난독증 비슷한게 있어서 친구들은 한 시간에도 몇 권씩 보는 만화책을 한 시간동안 한 권도 못 보는 경우가 많고, 궁금한건 못 참는 성격이라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야하는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연재를 기다리며 챙겨봤던 만화가 하나 있는데, 그 만화가 바로 신일숙 만화가의 『리니지』입니다. 『리니지』를 좋아했던 이유는 만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판타지한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해 한 편씩 찾아봤던 신일숙 만화가의 작품들, 그렇게 『아르미안의 네딸들』을 만났습니다.

 

27년만에 만화가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을 소설로 탄생시킨 『아르미안』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보던 그때를 떠올리게 해서 더욱 반가운지도 모릅니다.

아르미안은 BC 480년경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던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에 있었던 작은 나라입니다. 당시 여자들은 베일을 쓰고 다니며 행동을 조심할 때였는데, 아르미안은 예로부터 여왕이 지배하던 나라로 아르미안의 여자들은 얼굴을 드러내놓고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아르미안』은 선대 여왕이 죽고 그녀의 네 딸들 중 가장 언니인 레마누아가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되는 그녀들의 엇갈린 사랑과 운명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왕위를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남자, 가족까지 이용할 줄 알았던 첫째 레마누아,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미모를 가졌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얻을 수 없었던 둘째 스와르다, 태어날 때부터 여왕의 운명을 타고나 언니와 맞서야 했던 막내 샤르휘나, 그리고 다른 자매들 덕분에 늘 그림자처럼 조용히 살아야 했던 셋째 아스파샤. 이미 만화책을 본 독자라면 알고 있겠지만, 소설은 아직 완간되지 않아서 그녀들의 이야기 끝을 확인하려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만화를 소설로 쓴다는게 가능할까요? 과연 만화가 주었던 재미와 볼거리를 소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까요? 27년만에 소설로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들었던 생각입니다. 만화를 소설로 엮은이의 능력 덕분인지 소설도 만화처럼 재미있게 읽힙니다. 오히려 제게는 더 속도감 있게 읽혔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만화 속 주인공을 그림으로 모두 보여주는 만화와는 달리 소설은 읽으면서 스스로 그 모습을 그려내야 합니다. 만화를 보긴 했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주인공들의 생김새가 떠오르지 않아서 혼자 궁금해하며 나만의 주인공들을 그려봅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봤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그리고 나만의 주인공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소설 『아르미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13. 04. 1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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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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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공부에 의한, 공부를 위한 호모 아카데미쿠스!

대학만 들어가면 시험과는 끝, 자유롭게 대학 시절을 즐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대학 문턱 너머로 취업의 문이 보입니다. 다시 취업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고등학생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가까스로 취업을 하고 나면, 자기계발이니 승진이니 해서 또다시 새벽부터 학원을 전전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비단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일까요?

대한민국과 인접해 있는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명문대를 들어가기 위해 아주 어릴적부터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듯 중국 학생들도 명문대를 가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하고, 일본 학생들도 한번 입학하면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타듯 큰 힘 들이지 않고 다음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좀 더 멀리 나가볼까요? 인도에서는 인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IIT에 들어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MIT를 들어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허풍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테지만, 인구에 비해 대학이 극히 적은 인도에서 명문대에 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공부하면 빼놓을 수 없는 민족이 있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0.2% 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들이, 게다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라 없이 방황하던 유대인들이 역대 노벨상 중 23%를 휩쓴 비결은 무엇일까요? 급기야 이스라엘 제2의 수도라 불리는 텔아비브에는 '노벨상 거리'까지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 그리고 유대인들까지 공부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눈치채셨나요? 이 다섯 나라 국민들이 공부를 하는 공통된 이유는 바로 하나입니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좀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인간 대접도 못 받는 하층민에서 좀 더 높은 계층으로 신분 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공부'가 궁극의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공부'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 밖에 없는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학교에 들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입니다.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에서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달리트', 즉 '불가촉천민'이라 불렀습니다. '불가촉천민'이란 '닿기만 해도 부정해지는 천민'이라는 뜻으로, 달리트에게 인간 대접이란 꿈꿀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도 최고 명문인 IIT를 들어가 좋은 직장에 취업만 한다면 그들을 옳아맸던 신분제도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한 이유도 그들에게는 발 뻗고 잘 수 있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전세계를 떠돌아 다녀야 했던 유대인들에게 유일하게 가질 수 있었던 재산은 돈과 지식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 국민들이 공부를 안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와 같은 강력한 동기가 없었을 뿐이고, 공부를 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는 방식은 동서양이 큰 차이를 보입니다. 대한민국, 중국, 일본 학생들은 주로 혼자 공부하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나 영국 등과 같은 나라의 학생들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는 것을 즐깁니다. 암기 중심의 동양의 공부가 옳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제 우리도 세계가 질문을 통한 소통과 협력의 공부에 주목하는 이유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p.355)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인간』은 지난 3월 화제 속에 방영됐던 KBS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것들을 보다 심도있게 다룬 책으로, TV 다큐멘터리를 보듯 책 또한 술술 잘 읽힙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층 면접과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네 명의 학생들과 함께 한국, 중국, 일본, 이스라엘, 프랑스, 영국 등을 돌아보며 체득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별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통해 그 나라의 사회, 문화는 물론이고 역사적인 배경까지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혹자는 평생 해도 부족한 것이 공부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절대 떼놓을 수 없는 공부, 그렇다면 '전정한 공부'를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공부하는 인간》을 통해 앞으로의 '공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공부의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다 보니 늙는 것이고, 공부하다 보니 또 늙는 것이지요. 공부는 죽기 전까지 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허락하는 한 공부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늘 새로운 지식이 존재하고 인간은 늘 새로운 의문이 생기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결코 공부의 끝이란 없습니다."

공부는 인류 보편의 테마이자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며, 그 자체가 인류 문명을 이해하는 하나이 문화 코드다. 따라서 공부를 보면 과거의 우리가 보이고 현재의 우리, 미래의 우리가 보인다. 그러므로 아무리 험난하고 힘들어도 공부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 미래에도 인간이 가야 할 길이다. (p.358~359)

2013. 04. 0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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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
윌리엄 케네디 지음, 장영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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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신 장영희 선생님 친필 사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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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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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꿈꾸는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달콤하거나 혹은 아찔하거나.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녀의 결혼 생활이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가끔씩은 그녀가 그려내고 있는 결혼생활이 너무 달콤해 결혼생활의 로망 같은 것을 꿈꾸게도 만들고, 또 가끔씩은 정말 그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위험한 모습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알콜중독에다가 조울증 증세까지 보이는 아내 쇼코와 동성애자 남편 무츠키의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을 그린 『반짝반짝 빛나는』과 남편도 있지만 친구의 아들 토오루와 사랑을 나누는 시후미가 등장하는 『도쿄 타워』가 특히 그랬습니다.

 

   이번에 나온 신간 『잡동사니』도 그와 같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난 마흔다섯 살의 슈코와 아빠와 함께 여행을 떠난 열다섯 살 소녀 미우미는 낯선 휴양지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어린 미우미의 도발로 슈코는 낯선 여행지에서 미우미의 아빠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남편이 있는 슈코에게는 그저 낯선 여행지에서의 단 한번뿐인 아찔한 경험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 미우미가 사진을 핑계로 슈코의 어머니 댁을 방문하면서 슈코와 미우미의 만남은 계속 이어집니다.

   사실 슈코는 미우미의 아빠보다 미우미에게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열다섯 살의 소녀는 마흔다섯 살의 슈코와는 달리 무엇을 하든, 어떤 옷을 입든 예뻐보일 수 밖에 없는 나이입니다. 슈코는 그런 미우미에게 질투 이상의 감정을, 반대로 미우미는 동경 이상의 감정을 느끼며 미묘한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또 그 아이를 보고 있구나."

   "예쁘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자꾸 보게 돼. 왠지 눈길이 가고 마는걸."

   "바보 같으니. 왜 그런지 모르겠어? 질투잖아, 그거."

   "질투? 하지만 아직 어린애인걸, 말도 안 돼."

   "바로 그거야. 아이와 어른의 중간, 네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밖에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생명력이 저 아이에게는 있으니까." (p.36~37)

 

   슈코와 미우미, 두 화자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잡동사니』에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의 여자까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슈코, 아버지 뻘이자 슈코의 남편인 하라 다케오와 사랑을 나누는 미우미. 동성애자인 남편의 애인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반짝반짝 빛나는』의 여자 주인공 슈코와 이름만 같은게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다음에는 슈코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까요? 아니면 미우미가 그 바턴을 이어 받게 될까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사랑 뿐아니라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그의 물건을 버리지도 못하고 잡동사니처럼 쌓아둔 사야카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어느 쪽의 사랑도 반 이상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향한 에쿠니 가오리의 시선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잡동사니』. 당신이 꿈꾸는 사랑은 어느 쪽인가요? 달콤하거나 혹은 아찔하거나.

 

   "너무 어질러져 있지? 당최 뭘 버리질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고 말았다. 딱히 어질러져 있다는 생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방은 전혀 어질러져 있지 않다.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추억의 물건들이네요."

   "잡동사니들뿐이에요."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하지만 어쩐지 자랑스러운 듯이. (p.293~294)

 

 

 

2013. 04. 0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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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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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면서 왜 죽게 내버려뒀니?

   얼마전 중학생 때부터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한 고등학생이 유서를 써놓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서에는 학교 폭력을 없애 달라는 내용과 함께 그동안 숨진 학생을 괴롭혔던 학생들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숨진 학생이 학교 폭력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학교 측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분명 숨진 학생은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인간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 절망할까? 아니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데,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 때 절망할까?" (p.27)

 

   이 사건이 떠올랐을 때, 정말 우연찮게도 이 사건과 비슷한 내용을 다룬 『십자가』를 읽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소설 속 이야기가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쉽게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소설 『십자가』는 왕따에 시달리던 중학생 후지슌이 유서를 남겨 놓고 자살을 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 유서에는 친구 네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2명은 후지슌을 괴롭힌 친구, 1명은 후지슌의 절친, 나머지 1명은 후지슌이 짝사랑한 친구입니다. 

 

   "사나다 유. 나의 절친이 되어주어서 고마워. 유 짱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할게.

   미시마 다케히로, 네모토 신야. 영원히 용서 못 해. 끝까지 저주할 거야. 지옥으로 가라!

   나카가와 사유리, 귀찮게 해서 미안해. 생일 축하해. 늘 행복하기를 바랄게." (p.12)

 

   후지슌을 괴롭힌 친구이든 절친이든, 후지슌이 짝사랑한 친구이든 유서에 이름이 등장한 네 명은 후지슌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등에 짊어진 채, 그 이후의 인생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p.12)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 중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진 친구는 누구일까요? 아주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후지슌을 괴롭힌 친구들이 되겠죠. 하지만 절친이었던 사나다 유 또한 그 십자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절친이라면서 후지슌이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할 때 그저 지켜보기만 했으니까요. 후지슌이 죽음을 결심할만큼 힘들어 했지만, 가장 친했던 사나다에게 조차 말할 수 없었고 위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지슌의 가족들은 사나다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사나다를 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은, 사실 초등학생 때까지는 꽤 친했지만 그 이후로는 친한 사이라고 말할 정도로 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유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유리는 생일 선물을 주고 싶다는 후지슌의 마음을 거절했고 후지슌이 죽은 날은 사유리에게 거절 당한 날, 바로 사유리의 생일이었습니다. 일방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들이 좋아한 친구라고 잘해줬던 후지슌의 어머니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너희는 평생 눈을 빤히 뜨고 사람을 죽게 내버려둔 죄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수 밖에 없어." (p.56)

   

   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잊혀지고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왕따를 당하던 같은 반 친구의 자살이 당시에는 충격적이었을지 몰라도 학년이 바뀌고 졸업을 하고 시간이 흐르면 이내 잊혀지고 맙니다. 같은 반 친구들 뿐아니라 이 사건을 기사로 읽었던 사람들, 이 사건의 기사를 썼던 사람들까지 마찬가지기입니다. 하지만 사나다와 사유리는 20년이 지나도록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재판을 받거나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것보다 더 오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후지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갈 때, 반대로 사나다는 후지슌과의 기억을 되새기며 기록을 하기 시작합니다. 기록을 하면서 사나다는 후지슌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됩니다.

 

   "죄가 안 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는 법에 없으니까." (p.265)

 

   이 책에는 소설을 읽은 어린 친구들이 남긴 감상평이 실려 있습니다. 이 친구들이 남긴 감상평처럼, 더 많은 친구들이 이 책을 읽고 생각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국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학교나 부모, 외부 단체들의 개입이 아닌 그들 스스로 느끼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사람을 비난하는 말에 두 가지가 있다고 가르쳐준 사람은 혼다씨였다.

   나이프의 말.

   십자가의 말.

   "이 두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뿐, 마음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나이프의 말은 가슴에 박히지.

   당연히 굉장히 아파. 쉽게 일어나지 못하거나 그대로 치명상이 되는 일도 있어. 하지만……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 때는 찔린 순간이야."

   그러나 십자가의 말은 다르다고 했다.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p.74~75)

 

 

2013. 03. 1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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