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사랑이 품고 있는 '함정'을 보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혹은 저 사랑이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하고 말이죠. 제 경우엔 부정적인 대답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은 이 세상엔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다면 기욤 뮈소의 10번째 소설 『내일』의 주인공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요?
하버드대 철학교수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매튜. 학생들은 딱딱하고 지루한 철학을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매튜의 강의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깔끔하고 지적인 외모, 차분하고 묵직한 목소리, 매튜보다 더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할 것만 같은 이 사람, 그런데 직장과 달리 가정에서는 문제가 있습니다. 1년 전 심장 전문의였던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자 네 살 반짜리 딸을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빚을 낸 주택대출금을 갚기 위해 3층에는 동성애자 세입자까지 들였습니다. 그런데도 낡은 노트북 하나 새 것으로 바꿀 여력이 안될 정도입니다.
어느 날 그는 벼룩시장에서 중고 맥북을 하나 구입합니다. 분명 맥북을 판 주인은 포맷까지 했다고 하는데 중고 맥북에는 연인과 함께 찍은 여자의 사진과 이메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매너라는 걸 아는 매튜는 이전 주인의 이메일로 삭제하지 않은 사진이 아직 남아있다고 보냅니다.
뉴욕의 한 식당에서 와인감정사로 일하는 엠마,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녀가 만나고 있는 남자는 유부남인데 아내와 정리를 하고 엠마에게 오겠다는 말만 벌써 몇 번째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질질 끌려 다녔는데,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엠마 앞으로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합니다. 자신이 구매한 맥북에서 사진을 발견했으니 보내주겠다는 이 남자, 하지만 엠마는 맥북을 판 적이 없습니다.
사실 지금 이 상황에서 엠마가 맥북 주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두 남녀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것도 이메일을 통해서, 게다가 두 남녀는 서로에게 끌리기까지 합니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가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서로에게 끌린 두 남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낯선 상대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합니다. 마치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두 남녀처럼요. 물론 영화처럼 두 사람도 만나지 못합니다. 한껏 멋을 부리고 나갔는데, 몇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다니. 화가 난 상태로 서로에게 이메일을 보내는데, 상대는 또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오히려 큰소리입니다. 만나기로 했던 약속장소와 같은 이름의 식당이 또 있었던걸까요? 비밀은 바로 영화 《동감》입니다.
두 사람은 분명 약속시간에 맞춰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만나지 못했던 이유는, 엠마는 2010년에 매튜는 2011년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년의 시간차를 뛰어 넘어 그들을 연결시켜주고 있는 것은 바로 노트북입니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1년 후에 엠마가 노트북을 판다는 것인데 무슨 일이 생긴걸까요? 매튜는 벼룩시장에서 노트북을 판 남자를 찾아가 물어봅니다. 아마도 이쯤은 다들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여름, 엠마가 자살로 죽자 엠마의 오빠가 부랴부랴 그녀의 물건을 정리한 것입니다.
엠마가 이 사실을 믿게 하려고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 본 결과, 이미 매튜의 시간 속에서는 일어난 일이지만 엠마의 시간 속에서 바꿔버리면 매튜의 시간 속에서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때 매튜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직 아내가 죽기 전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엠마가 아내가 사고 현장으로 가지 못하도록 한다면 아내를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난 당신과 내가 겪고 있는 시간의 뒤틀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요. 이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지금 그런 일을 겪고 있는 당사자라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굳이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시간 속에서 발을 헛디딘' 것이죠. 이제, 내게는 당신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당신이 도와준다면 난 지금껏 그 어떤 인간도 잡지 못한 천운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바로 사랑의 부활이죠. 엠마,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 당신에게 케이트의 생사가 달려있어요. (p.178~179)
일단, 줄거리 언급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초반에 진행되는 부분이라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고,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이 정도는 시작이라고 여기시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두 가지 차원에서 소설을 씁니다. 첫 번째는 확실한 오락 차원입니다. 나는 독자들을 어떤 사건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하고 계속해서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매우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처럼 말이죠. 바로 이 부분이 내가 가진 이야기꾼으로서의 측면일 겁니다. 두 번째는 주제의 차원으로, 나는 내 마음에 와 닿는, 내가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다룹니다. 이번 소설 『내일』에서는 밖으로 드러나는 커플의 모습과 속내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함께 살고 있는 상대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오락적인 요소와 마음에 와 닿는 주제, 이 두가지 차원의 결합이 내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봅니다.
나는 독자들에게 히치콕 식의 서스펜스, 곧 평범한 주인공들을 특별한 상황, 불가사의한 상황에 위치시키는 방법, 주인공이 합리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경험을 하면서도 조금 지나고 나면 혹시 그 경험이 초자연적인 무엇은 아니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일종의 잠복기 같은 순간을 제시하기를 좋아합니다. (p.8)
한국에서 첫 소설 발표 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기욤 뮈소. 그의 소설의 특징은 영화와 같은 빠른 전개와 기막힌 반전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가 쓰는 소설들이 추리나 장르 분야였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가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연애 소설에 반전이라니. 이미 그를 겪어본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결코 반전에 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말이죠.
빠르게 읽히는게 가장 큰 장점인 그의 소설을, 반대로 저는 꽤 천천히 읽는 편입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잠시 책을 덮어둔 채 혼자서 다음 이야기를 머리 속에 그려보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거야, 기막힌 반전이 있을거야, 이번에는 꼭 맞출거야, 다짐하며 읽어도 어김없이 어긋나 버립니다. 특히, 『내일』은 '감각적인 로맨틱 코미디와 히치콕 식 스릴러의 환상적인 결합!'이라는 타이틀처럼, 어느 작품보다 훨씬 더 그런 특징들이 돋보입니다. 아무리 읽어도 기욤 뮈소의 반전에는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맨 처음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랑, 그 하나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지켜낸 사랑은 과연 유효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단순히 자살로 죽을 운명이었던 엠마를 살리고, 엠마와 매튜가 사랑하며 잘 살았다는 내용의 소설이 아닙니다. 『내일』을 읽으면 사랑이 품고 있는 '함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멀리.
아주 멀리. (p.381~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