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되는 시간
예전처럼 주말마다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아요.
예전처럼 꽃 이파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지도 않아요.
예전처럼 어린 날에 모아둔 앨범들을 쌓아두고 밤새 음악을 주구장창 듣지도 않아요.
예전처럼 밤을 새워 책 읽기에 빠져들지도 않아요.
예전처럼 늦은 밤의 현란한 네온사인을 올려다보며 친구들과 걷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무얼 하고 지내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참 잘 지내고 있어요.
─ 김소연의 『시옷의 세계』 p.80 ─
이렇게도 잘 지내고 있는 사람이 비단 그녀와 나 뿐이라고만 생각지 않아요.
아무 일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도… 잘 지낼 수 있어요.
그러니 예의상 잘 지내냐고 던지는 인사는 이제 하지 말아줘요.
더이상 대답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