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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평점 :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는 독자들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
라틴 아메리카 현대 문학의 이단아, 혹은 시한폭탄이라 불리는 로베르토 볼라뇨는 2003년 여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그는 간부전을 앓고 있었는데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죽기 직전에 부랴부랴 원고를 출력해 출판사로 넘겼습니다. 그가 그렇게 마무리한 작품이 바로 단편집 『참을 수 없는 가우초』입니다. 이 책에는 다섯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그의 첫 번째 유작이자 문학적 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제작인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 보르헤스가 즐겼던 상호 텍스트적 글쓰기를 적극 차용한 단편소설입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전직 변호사였던 페레다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독서와 여행을 즐기다가 아르헨티나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자 팜파스로 떠납니다. 팜파스는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라틴 아메리카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목축 지대입니다. 과연 이곳에서 페레다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말을 사고 농장을 고치고 일을 잘 못하는 팜파스의 카우보이 '가우초' 2명을 일꾼을 들여 농장 생활을 시작합니다. 술을 마시고,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농장일은 가우초보다 훨씬 더 잘 합니다. 가끔씩 유명한 작가가 된 아들이 농장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팜파스 생활이 길어지자 이제 부에노스아이레스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3년만에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는 페레다, 그는 그곳에서 생각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아서 정의의 챔피언이 될까 아니면 팜파스로 돌아갈까. 팜파스에 대해선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돌아가서 뭔가 쓸 만한 일을 해볼까, 글쎄, 토끼로 뭘 하지, 사람들과 뭘 하지, 불평 없이 날 받아 주고 또 날 참아 주는 그 가여운 사람들과 말이야." (p.50) 도시는 그에게 그 어떤 해답도 주지 않지만 날이 밝자 페레다는 결심합니다. 다시 팜파스로 돌아 가기로.
그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팜파스 중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물어봤다. 아르헨티나는 소설이야, 그러니 가짜거나 최소한 거짓이란 말이지, 그가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도둑놈과 눈꼴사나운 놈들의 땅이야, 지옥이나 다름없지. 거기선 여자만이 가치 있는 사람들이야. 아주 드물긴 하지만 작가들도 그렇긴 하지. 반대로 팜파스는 영원해. 무한한 묘지는 인간이 찾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이지. 무한한 묘지가 상상이 돼, 이 친구들아? 그들에게 물었다. 가우초들은 미소를 띠며 솔직히 그런 걸 상상하긴 어렵다면서 묘지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사람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 봐야 결국 유한한 존재라고 했다. 내가 말한 묘지란 영원성을 그대로 복제한 것일세, 페레다가 대답했다. (p.34)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상호 텍스트적인 글쓰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닙니다. 게다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텍스트를 차용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낯선 작가들이 많으니까요. 쉽게 읽히지 않는 건 비단 이 소설 뿐만이 아닙니다. 로베르토 볼라뇨 또한 이런 것에 대해 고민을 한듯 합니다. 「짐」을 보면 "시인으로서 기발한 뭔가를 찾아서 그걸 쉬운 말로 표현"(p.11)하려고 하는 짐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또, 에세이 「크툴루 신화」에도 비슷한 언급이 있습니다.
누군가 대답해 줬으면 하는 수사적인 질문이 있는데, 페레스 레베르테나 바스케스 피게로아 혹은 다른 성공한 작가들, 예를 들어 무뇨스 몰리나나 데 프라다라는 성을 지닌 젊은 작가의 작품이 그리도 잘 팔립니까? 그저 재밌고 명쾌해서 그런 겁니까? 독자를 붕 띄우는 이야기를 해서 그런 건가요? 대답할 사람 없나요? 누가 대답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아무도 대답하지 마시길. 누구도 친구를 잃는 일은 없으셔야죠. 그러니 그냥 내가 답하지요. 그들의 작품이 그저 재밌고 명쾌해서 잘 팔리는 게 아닙니다. 단지 그렇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들의 책이 팔리고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대중이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는 독자들은, 물론 모든 독자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읽는 소비자가 그렇다는 것인데, 그들의 소설과 단편을 완벽하게 이해합니다. 비평가 콘테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젊어서 그렇게 직관했을 겁니다. 가르시아 로르카가 어느 남창과 현관에 숨어들며 말했듯이, 대중은 결코, 결단코, 착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대중은 왜 착각하지 않을까요? 대중은 이해하니까요. (p.156~157)
로베르토 볼라뇨 스스로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독자들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발한 상상력을 쉬운 말로 표현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을테지만, 모든 작가들이 인기에 연연하며 쉽게 쓸 필요는 없으니까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안타까워하고 고민했습니다.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문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오직 돈과 인기만 쫓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말입니다.
카네티는 그의 저술에서 20세기 최고의 작가 카프카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처음 피를 토한 날 이후로 그 무엇도 자신과 글쓰기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글쓰기와 떨어질 수 없다는 말로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나는 카프카가 여행과 섹스, 책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길이며, 그럼에도 뭔가를 찾아서 그 길에 들어서고 길을 잃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 뭔가가 책이든, 몸짓이든, 잃어버린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그 어떤 것이 됐든, 그걸 찾아서 말입니다. 운이 따르면 늘 거기에 있었던 것, 바로 새로운 것을 찾을지도 모르지요. (p.152)
마지막 순간까지 문학에 대한 고민과 그것에 온힘을 쏟았던 로베르토 볼라뇨, 그동안은 작품들을 통해 작가로서의 면목을 보여줬다면 『참을 수 없는 가우초』를 통해서는 자신 또한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