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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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 『파리의 우울』 등 선생이 번역한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선생이 쓴 산문집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만 한 것이 벌써 몇 해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선생의 부고 소식을 듣고는 더이상 미뤄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선생의 산문집을 집어 들었습니다.

   『밤이 선생이다』는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선생이 처음으로 엮어낸 산문집입니다. 1980년대부터 2013년까지 무려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그의 어조와 문체는 한결같이 단정하고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어학자 이수열 선생은 꽤 오랫동안 저명인사들이 신문 지면에 발표한 글을 읽고 우리말의 어법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는 구절이 있으면 빨간 펜으로 수정해 글을 쓴 사람에게 우편으로 보내주곤 했었습니다. 황현산 선생 또한 몇 장의 편지를 받았지만, 선생은 이수열 선생이 지향하는 '순결주의'에 전적으로 찬동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나로서는 뿌리가 없고 본디의 결에 거슬리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관용으로 굳어졌으면 그것을 새로운 뿌리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어떤 표현법이 일어나 영어에서 연유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언중에게 그 표현이 큰 무리 없이 이해된다면 이미 우리말 속에 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들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선생이 지향하는 순결주의가 말의 표현력을 적지않게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도 접어두기 어렵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대명사 '그'를 여기서만이라도 써보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지만 사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선생의 충고를 일일이 따를 수가 없다.
   (……) 말에 관한 한 나는 현실주의자이지만, 선생의 순결주의 같은 든든한 의지처가 있어야 현실주의도 용을 쓴다. 선생의 깊은 지식과 열정은 우리말의 소금이다. 이 소금이 너무 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쳐 생각한다. 소금이 짜지 않으면 그것을 어찌 소금이라 하겠는가. 247~248쪽

   선생은 이수열 선생의 '순결주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수열 선생의 충고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 또한 이 글에서만이라도 영어식 대명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그들의 단어 선택이 거슬릴 때가 많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표현이겠지만, 굳이 신조어나 외국어까지 끌어다가 쓸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일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어려운 한자어가 아닌 이런 단어들 때문에 사전을 들춰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글로 쓰여졌지만 불편하고 잘 읽혀지지 않는 글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글이 이 지경이라는게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반면, 황현산 선생의 글들은 읽기에는 평이하고 문체는 정직하며 문장은 유려합니다. 자신의 생각들을 바르고 고운 우리말로, 정직하지만 담백하게 담아냈습니다. 너무 술술 읽혀서 아까울 정도입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 220쪽

   괴테가 쓴 『파우스트』에 나오는 유명한 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220쪽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고, 창조적 자아의 시간입니다. 낮은 분주해서 상상을 하거나 창조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빠듯한게 낮이라면, 밤에는 그런 것들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밤은 낮동안 우리가 행했던 일들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밤은 선생입니다.

   밤입니다. 이제 선생을 맞이할 시간입니다. 선생이 쓴 글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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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거품의 역사 - 돈이 지배한 광기와 욕망의 드라마
안재성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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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와 은행은 국가가 보장하는 대국민 사기다!
   우리는 왜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를 이토록 맹신할까요? 우리는 왜 돈을 은행에 맡길 때보다 빌릴 때 더 많은 이자를 줘야 할까요?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국가 재정이 거덜 나 고민하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악마의 꾀'를 불어넣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황제에게 '종이 한 장은 1천 크로네'에 해당한다는 포고령을 내리라고 말합니다. 황제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터무니없는 사기극"이라며 거절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자 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악마의 유혹'이었을 뿐입니다. 막대한 양의 지폐가 발행되자마자 거덜났던 국가 재정도 회복되고 경기도 살아나는 것 같았지만, 이내 지폐의 가치가 떨어져 부동산을 비롯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맹신하는 지폐에는 금화나 은화와는 달리, 가치 통화로서의 기능만 있을 뿐 지폐 자체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쪼개거나 부수거나 녹여도, 혹은 국가가 망해도 가치는 그대로인 금화나 은화와는 달리, 지폐는 훼손되거나 국가가 망하면 그냥 쓰레기 조각이 되어버립니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이 종이 쪼가리를 맹신합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를, 나라가 망하고 나면 10원짜리 구리값보다 못한 지폐를 '돈'이라 칭하며 믿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돈이라고 여기면서 생활하는 1만원 짜리나 5만 원짜리 지폐, 이를 '돈'이라 칭하는 것 자체가 사기란 지적이다. 14쪽

   어쩌면 과거의 인류가 지폐를 잘 모르는 게 아니라 현대인들이 지폐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정부에 의해 "이 종이쪽지는 돈이다"고 세뇌 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16쪽

   지폐는 '가짜 돈'이며, 이를 '진짜 돈'이라고 우기는 신용통화 시스템은 그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사기극이라 할 수 있다. 지폐는 돈에 꼭 필요한 상품 통화로서의 기능이 결여돼 있기에 매우 위험하고 불안정하다. 그럼에도 인류가 이 방향으로 온 것은 그것 외에 다른 선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금과 은의 양은 한정돼 있으며,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특정 국가에 너무 쏠려있다. 193쪽

  
정부는 시민들을 속여 그들의 손에 실질 가치가 액면가보다 훨씬 떨어지는 지폐를 쥐어 준 뒤 대신 액면가만큼의 금은을 약탈해 갔다. 무기가 아닌, 법과 지혜를 악용해 벌이는 세련된 약탈이었다. 196쪽


은행은 왜 우리가 '예금'한 돈으로 이자놀이를 할까?

   "우리 서로 필요할 때 돈을 빌려주자. 단, 네가 부담해야 하는 금리는 나보다 조금 높게 하자" (101쪽)

   만약에 지인이 이런 식으로 제안을 했다면 우리는 가차없이 '사기꾼' 혹은 '도둑놈'이라고 화를 냈을 것입니다. 은행은 '예금'이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돈을 적은 이자를 주고 빌려가서 쓰고는, 우리에게 빌린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때는 더 큰 이자를 받고 빌려줍니다. 즉, 자기 돈도 아닌 돈을 가지고 이자놀이를 해서 돈을 버는 셈입니다. 이런 금리 차를 '예대마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은행의 핵심 수익원입니다. 정부는 '부분 지급 준비금 제도'라고 해서 은행이 고객의 예금 중 일부만 금고에 넣어둔 채 나머지는 대출이나 투자 등으로 돌리는 것을 합법적으로 허용해 주기까지 합니다. 어차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예금'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은행 금고에 넣어둔 돈이 얼마되지 않음을 눈치챈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을 인출하려고 하면 '뱅크런'이 발생합니다. 보통 지급 준비율은 7% 정도이기 때문에 그 많은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인출하면 은행에는 지급할 돈이 당연히 없게 마련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고귀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증세 때문에 일어난 것!
   우리 인간들은 '돈'이라고 지칭하는 수단이 없으면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전쟁들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하고, 혁명을 뒷받침해 주는 것도 결국 돈입니다. 비록 제목은 『풍요와 거품의 역사』지만 그것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도 마찬가지였다. 자유, 평등, 박애 등 고귀한 말은 단지 겉포장으로 붙인 수사였을 뿐이다. 실제 원인은 '돈'이었다. 정확히는 '증세 논란'이, "세금을 늘려야 하나?"와 "늘린다면, 누가 부담해야 하나?"를 두고 벌어진 다툼이 혁명으로 연결된 것이다. 180쪽

   인류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돈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시민들이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다고 믿고 있는 프랑스대혁명 또한 주된 원인은 '돈'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크게 성직자로 구성된 제1계급, 귀족으로 구성된 제2계급, 시민으로 구성된 제3계급으로 계급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이중 성직자와 귀족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 특권을 누렸고, 가난한 시민들은 세금을 낼 돈이 없었습니다. 결국 제3계급인 시민들 중에서도 부유한 시민들인 부르주아들이 세금을 감당해 내고 있었는데, 당시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던 프랑스가 증세에 나선 것입니다.
   화가 난 부르주아들은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직자나 귀족들도 내지 않는 세금을 더 내기 싫어서 가난한 시민들을 선동했습니다. 자신들의 혁명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 어느 왕보다 검소하게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가 심해서 나라가 어렵다는 헛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고 했다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도 부르주아들이 꾸며낸 것이라고 합니다.
   역대 왕들은 '지폐'를 발행해 사기를 칠 지언정, '증세'는 가급적이면 피하고자 했습니다. '증세'는 이처럼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이 16세는 그토록 많은 왕들이 피하고자 했던 '증세' 정책을 선택한 죄로 왕의 자리에서 내쳐지고, 목까지 내쳐졌던 것입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권력 획득을 위해 선동한 상퀼로트보다 오히려 루이 16세를 비롯한 상류층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188쪽

   프랑스대혁명 당시 앞에 서서 시민들을 이끌었던 부르주아들 또한 가난한 시민 계급보다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상류층에게 더 큰 동질감을 느꼈고, 자신들도 그런 특권을 누리고 싶어했습니다. 원래 인간의 본성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인간의 본성은 매우 자본주의적이다. 사실 인간은 평등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세상에 나보다 잘나고 부유한 자와의 평등을 외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나보다 못나고 가난한 자와의 평등을 원하는 인간이 있던가? 모든 인간은 평등이 아닌 격차를, 그것도 내가 위에 올라서는 격차를 원한다. 남보다 더 성공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강력한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 열망이야말로 인간에게 제일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249쪽

   이 세상의 부는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기에 충분하지만, 부자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47쪽

   자본에는 국격이 없고, 자본가들에게는 애국심도, 고결함도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이익뿐이다. 88쪽


금융 정책에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는 당신에게!
   『풍요와 거품의 역사』는 지폐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 은행, 주식을 거쳐 비트코인까지 광범위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예를들면, 예대마진이나 뱅크런, 부분 지급 준비금 제도, 서브 프라임, 비트코인까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경제나 금융 용어들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연원을 알고나면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또한,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증세와 복지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나라가 파탄에 이르지 않고,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잘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든 인간들의 본성에는 자본주의적인 마음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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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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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는 1805년부터 1820년까지 약 15년 동안 러시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과 당시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소설입니다. 원래 그는 데카브리스트(1825년 12월 러시아에서 최초의 근대적 혁명을 꾀했던 혁명가들)에 대한 장편소설을 쓰려고 했으나, 데카브리스트의 혁명을 이해하려면 그것의 원인이 되었던 1812년의 일들을 먼저 알아야 했기 때문에 이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썼는데, 워낙 이 시절의 이야기가 방대하다 보니 정작 쓰려고 했던 데카브리스트의 이야기는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구상하고 완성하는데까지만 무려 13년이 걸렸으니까요.

   『전쟁과 평화』에는 무려 559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전쟁'을 겪고 '평화'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나름나름으로 성장합니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향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막지 못했던
안드레이 공작은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위대하다고 찬양하는 나폴레옹을 봐도 "위대함의 부질없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질없음, 살아 있는 자는 누구도 그 뜻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죽음의 더한 부질없음"(1권, 563쪽)을 떠올립니다.
   갑자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피예르는 불행합니다. 피예르가 떠밀리다시피 결혼한 아내 옐렌은 사교계에서 갈수록 빛이 나는데, 그녀가 빛날수록 피예르는 그저 무능하고 방탕한 남편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니, 러시아에서는 종교적으로 금지된 이혼을 그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린시절에 사랑을 약속한 한 남자만 평생 사랑할 줄 알았던
나타샤는 열정이 너무 넘친 나머지 위험한 사랑을 이어갑니다. 어린시절에 사랑을 약속했던 남자 대신 아내가 죽은 이후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안드레이를 열정 가득한 사랑으로 채워줬던 나타샤, 하지만 그를 향한 그녀의 사랑도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끝이 납니다.
   그들은
각자 '전쟁'을 경험합니다. 나타샤의 배신으로 다시 전쟁터로 떠난 안드레이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돌아옵니다. 피예르 또한 안드레이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참여하지만, 프랑스군에게 포로로 잡혀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체험합니다. 나타샤는 전쟁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떠나지만 안드레이와 어린 동생의 죽음과 마주하게 됩니다.
  
삶의 부질없음, 죽음의 공포, 참을 수 없는 열정 때문에 저마다 방황하던 주인공들은 이렇게 전쟁을 겪으면서 나름나름으로 성장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라, 한 시간 전에 죽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 인생이란 영원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데, 대체 이런 것으로 괴로워할 가치가 있을까? 2권, 55쪽

왜 우리는 이 전쟁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전쟁의 의미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1869년에 나온 잡지 『러시아의 기록』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 이것은 장편소설도 아니고, 서사시도 아니고, 역사적 연대기는 더더욱 아니다. 『전쟁과 평화』는 저자가 표현하기 원했고, 표현할 수 있었던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4권, 536쪽

   그렇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어느 한 장르로 국한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한 이야기와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밝혔듯이, 이것은 서사시도 역사적 연대기도 아니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역사관과 사상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원인 ─ 수십억 가지 원인 ─ 은 사건을 유발하며 우연히 동시에 겹친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특정한 원인이란 없으며,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르(사건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의 의지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상황이 겹쳐야 하고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사건은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3권 16쪽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르와 같은, 어느 한 사람만의 의지로는 전쟁이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 없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상황이 겹쳐야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의지로 이뤄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훗날 그것을 기술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역사를 기술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행중인 어떤 사건의 결과에 관해서는 늘 수많은 예상이 나오고, 그것이 어떤 결과로 끝나든 '나는 그때 이미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 법인데, 그들은 무수한 예상 중에 정반대되는 일도 행해졌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3권 158쪽

   특히, 톨스토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끝낸 뒤에 매우 긴 에필로그를 덧붙여, 훗날 사람들에게 『전쟁과 평화』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 에필로그를 통해 '자유(의지)'와 '권력'에 대해 피력합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한 '자유의지'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행하려면 그 어떤 상황도 배제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게서 '상황'은 어떤 경우에도 배제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이 있을 때, 인간은 100%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데, 역사적 사건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권력이란 대중에 의해 선출된 통치자들에게 명시적 혹은 암묵적 동의에 의해 표명된 대중 의지의 총화(4권, 482쪽)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한 권력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의지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대중 의지의 총화가 역사적 인물에게로 옮겨진다는 이론은 (…)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누가 사건의 주모자든, 이 이론에 의하면 항상 어떤 인물이 사건의 주모자가 된 것은 의지의 총화가 그에게 옮겨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권, 490쪽

   역사적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 권력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 권력은 어느 인물에게 옮겨진 대중 의지의 총화다. 대중의 의지는 어떤 조건에서 한 인물에게로 옮겨지는가? ─ 그 인물에 의해 모두의 의지가 표현된다는 조건 아래서다. 고로 권력은 권력이다. 고로 권력은 우리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말이다. 4권 491쪽

   하지만 권력자 혹은 역사적 인물들이 자신에게 옮겨진 대중의 의지를 항상 잘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톨스토이는 대중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권력 혹은 권력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처럼 비춰지지 않지만, 우리 또한 그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을 직접 느껴보세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본다는 느낌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전달해주는 소설을 나는 알지 못한다. 소설가로서 톨스토이는 신이다." ─ 서평가 이현우

   "이 소설을 읽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열린 창문 너머로 현실 세계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 슈테판 츠바이크

   서평가 이현우와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쟁과 평화』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삶과 죽음, 사랑, 전쟁, 종교, 권력, 자유의지 등 너무나도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전쟁과 평화』는 그 어떤 말로도 대신 전해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당신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을 직접 느껴보길 바랍니다.


   우연이 상황을 만들고, 천재는 그것을 이용했다. 4권 372쪽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이 사람들에게 집을 불태우고 자기와 같은 인간을 죽이게 했을까? 이 사건들의 원인들은 무엇일까? 어떠한 힘이 사람들에게 그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들었을까?
4권 468쪽 

   이 전쟁의 의미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3권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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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5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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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는 1805년부터 1820년까지 약 15년 동안 러시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과 당시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소설입니다. 원래 그는 데카브리스트(1825년 12월 러시아에서 최초의 근대적 혁명을 꾀했던 혁명가들)에 대한 장편소설을 쓰려고 했으나, 데카브리스트의 혁명을 이해하려면 그것의 원인이 되었던 1812년의 일들을 먼저 알아야 했기 때문에 이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썼는데, 워낙 이 시절의 이야기가 방대하다 보니 정작 쓰려고 했던 데카브리스트의 이야기는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구상하고 완성하는데까지만 무려 13년이 걸렸으니까요.

   『전쟁과 평화』에는 무려 559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전쟁'을 겪고 '평화'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나름나름으로 성장합니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향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막지 못했던
안드레이 공작은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위대하다고 찬양하는 나폴레옹을 봐도 "위대함의 부질없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부질없음, 살아 있는 자는 누구도 그 뜻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죽음의 더한 부질없음"(1권, 563쪽)을 떠올립니다.
   갑자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피예르는 불행합니다. 피예르가 떠밀리다시피 결혼한 아내 옐렌은 사교계에서 갈수록 빛이 나는데, 그녀가 빛날수록 피예르는 그저 무능하고 방탕한 남편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니, 러시아에서는 종교적으로 금지된 이혼을 그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린시절에 사랑을 약속한 한 남자만 평생 사랑할 줄 알았던
나타샤는 열정이 너무 넘친 나머지 위험한 사랑을 이어갑니다. 어린시절에 사랑을 약속했던 남자 대신 아내가 죽은 이후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안드레이를 열정 가득한 사랑으로 채워줬던 나타샤, 하지만 그를 향한 그녀의 사랑도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끝이 납니다.
   그들은
각자 '전쟁'을 경험합니다. 나타샤의 배신으로 다시 전쟁터로 떠난 안드레이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돌아옵니다. 피예르 또한 안드레이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참여하지만, 프랑스군에게 포로로 잡혀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체험합니다. 나타샤는 전쟁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떠나지만 안드레이와 어린 동생의 죽음과 마주하게 됩니다.
  
삶의 부질없음, 죽음의 공포, 참을 수 없는 열정 때문에 저마다 방황하던 주인공들은 이렇게 전쟁을 겪으면서 나름나름으로 성장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라, 한 시간 전에 죽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 인생이란 영원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데, 대체 이런 것으로 괴로워할 가치가 있을까? 2권, 55쪽

왜 우리는 이 전쟁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전쟁의 의미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1869년에 나온 잡지 『러시아의 기록』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 이것은 장편소설도 아니고, 서사시도 아니고, 역사적 연대기는 더더욱 아니다. 『전쟁과 평화』는 저자가 표현하기 원했고, 표현할 수 있었던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4권, 536쪽

   그렇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어느 한 장르로 국한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한 이야기와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밝혔듯이, 이것은 서사시도 역사적 연대기도 아니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역사관과 사상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원인 ─ 수십억 가지 원인 ─ 은 사건을 유발하며 우연히 동시에 겹친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특정한 원인이란 없으며,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르(사건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의 의지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상황이 겹쳐야 하고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사건은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3권 16쪽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르와 같은, 어느 한 사람만의 의지로는 전쟁이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 없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상황이 겹쳐야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의지로 이뤄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훗날 그것을 기술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역사를 기술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행중인 어떤 사건의 결과에 관해서는 늘 수많은 예상이 나오고, 그것이 어떤 결과로 끝나든 '나는 그때 이미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 법인데, 그들은 무수한 예상 중에 정반대되는 일도 행해졌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3권 158쪽

   특히, 톨스토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끝낸 뒤에 매우 긴 에필로그를 덧붙여, 훗날 사람들에게 『전쟁과 평화』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 에필로그를 통해 '자유(의지)'와 '권력'에 대해 피력합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한 '자유의지'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행하려면 그 어떤 상황도 배제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게서 '상황'은 어떤 경우에도 배제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이 있을 때, 인간은 100%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데, 역사적 사건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권력이란 대중에 의해 선출된 통치자들에게 명시적 혹은 암묵적 동의에 의해 표명된 대중 의지의 총화(4권, 482쪽)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한 권력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의지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대중 의지의 총화가 역사적 인물에게로 옮겨진다는 이론은 (…)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누가 사건의 주모자든, 이 이론에 의하면 항상 어떤 인물이 사건의 주모자가 된 것은 의지의 총화가 그에게 옮겨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권, 490쪽

   역사적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 권력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 권력은 어느 인물에게 옮겨진 대중 의지의 총화다. 대중의 의지는 어떤 조건에서 한 인물에게로 옮겨지는가? ─ 그 인물에 의해 모두의 의지가 표현된다는 조건 아래서다. 고로 권력은 권력이다. 고로 권력은 우리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말이다. 4권 491쪽

   하지만 권력자 혹은 역사적 인물들이 자신에게 옮겨진 대중의 의지를 항상 잘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톨스토이는 대중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권력 혹은 권력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처럼 비춰지지 않지만, 우리 또한 그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을 직접 느껴보세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본다는 느낌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전달해주는 소설을 나는 알지 못한다. 소설가로서 톨스토이는 신이다." ─ 서평가 이현우

   "이 소설을 읽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열린 창문 너머로 현실 세계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 슈테판 츠바이크

   서평가 이현우와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쟁과 평화』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삶과 죽음, 사랑, 전쟁, 종교, 권력, 자유의지 등 너무나도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전쟁과 평화』는 그 어떤 말로도 대신 전해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당신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을 직접 느껴보길 바랍니다.


   우연이 상황을 만들고, 천재는 그것을 이용했다. 4권 372쪽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이 사람들에게 집을 불태우고 자기와 같은 인간을 죽이게 했을까? 이 사건들의 원인들은 무엇일까? 어떠한 힘이 사람들에게 그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들었을까?
4권 468쪽 

   이 전쟁의 의미 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3권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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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단편소설이라니.
소설집을 다 읽은 건 아니고 <백야> 한 편만 읽었는데,

도입부터 첫문장까지 줄줄이 너무 아름다워서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에.
밑줄 그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책이 표지와 같은 노란색이 될 지경.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친애하는 독자여! 그토록 별빛이 영롱하고 찬란한 밤하늘을 쳐다보면 저도 모르게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하늘 아래 정녕 각양각색의 변덕쟁이와 심술꾸러기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225쪽

도스또예프스끼의 장편소설들을 몇 권 읽었지만, 이토록 감성 충만한 소설은 처음이다.

 

 

한순간의 아름다움이 그렇게나 빨리 그렇게나 돌이킬 수 없이 시들어 버림에, 그녀가 당신 앞에서 그렇게나 기만적으로, 덧없이 명멸함에 당신은 서러워한다. 그녀를 사랑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에 당신은 애달파한다...... 232쪽

여기서 '그녀'는 '봄'이다. 나도 미처 마주하지 못하고 보내버려 애달파하고 있는 봄.



하루 중에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모든 사업과 업무와 의무가 끝나고 모두들 먹고 쉬려고 집으로 총총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가는 길에 사람들은 저녁과 밤과 남아 있는 모든 자유로운 시간에 관한 색다르고 즐거운 화제를 생각해 냅니다. 251쪽

바로 지금 이 시간.

 

 

 

 

당신이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을 계속해서 사랑한다면,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내 사랑이 당신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당신이 느끼지 못하도록 그렇게 사랑할 겁니다. 당신은 다만 매순간 듣게 될 겁니다, 느끼게 될 겁니다, 당신 곁에서 감사에 넘치는, 감사에 넘치는 심장이 고동치고 있음을, 당신을 위해 뜨거운 심장이......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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