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유명세를 등에 업은 흔해빠진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펴내는 연예인들이 부쩍 많다. 특히, 예전처럼 여행이나 요리, 뷰티 등 자신의 이야기를 쓴 에세이가 아닌 연예인들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소설들이 출간돼 시선을 끈다. 이적, 타블로, 구혜선에 이어 배우 차인표가 장편소설을 펴냈다. 사실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출간 소식을 들으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기에 편승해 한 몫 챙기려는 장사 속이 아닐까 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잘가요, 언덕』은 배우 차인표가 1997년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로, 위안부로 끌려갔던 '훈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도 아니고, 흔해빠진 로맨스나 판타지도 아닌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민감한 소재를 들고 나왔다. 일단, 소재 선정은 만족! 그렇다면 그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소설로 풀어낼까? 

잘가요, 잘 가세요!
   백두산 자락의 호랑이 마을에는 작은 언덕이 하나 봉긋 솟아 있다. 호랑이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이 언덕에서 "잘 가요. 잘 가세요"를 외치며 작별을 했다. 그래서 '잘가요 언덕'이 됐다. 마을 뒤쪽에는 호랑이 산이 있는데,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호랑이와 마을 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신하들을 데려와 사냥을 하기 시작한 날부터 호랑이는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이 호랑이들을 잡으러 전국에서 포수들이 몰려 들었다.
   1931년 가을, '잘가요 언덕'을 넘어 두 사람이 마을을 향하고 있다. 그들은 백호에게 아내와 갓난아이를 잃은 황포수와 용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잠잠했던 호랑이들이 그들로 인해 또다시 횡포를 부릴까봐 반갑지 않다. 황포수는 백호만 잡겠다고, 백호가 없으면 마을의 근심거리인 육발이라도 잡아주고 가겠다고 한다. 촌장 할아버지는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그들이 안스러웠는지 손녀 순이를 시켜 밥을 챙겨준다. 용이는 그런 순이가 좋고, 순이도 철없는 마을 아이들과는 다른 용이가 좋다. 또, 호랑이를 잡으러 간 아버지가 죽자 고아가 돼 이 마을에서 혼자 자라고 있던 훌쩍이도 용이가 좋다.
   몇 달 후, 호랑이 산으로 들어간 황포수와 용이는 백호 대신 육발이를 잡아 온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용맹함을 칭찬하며 그들을 반긴다. 그러나 엄대를 비롯한 마을 아이들은 용이가 싫다. 부모님이 그들을 나무라면서 용이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황포수 부자가 움막을 비웠을 때, 엄대와 아이들은 움막에서 총을 훔쳐 호랑이 산으로 간다. 결국 아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황포수 부자는 마을을 떠나게 된다. 떠나는 그들을 아쉬워했던 이는 순이와 훌쩍이 뿐이다.
   그로부터 7년, 19살 아가씨가 된 순이는 마을을 지나가던 부부가 두고 간 샘물이를 보살피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때 가즈오 장교가 이끄는 일본 747부대가 마을로 온다. 다행히 747부대는 마을 사람들과 잘 지냈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절도 잠시! 위안부 차출을 목적으로 한 700부대가 순이를 끌고 간다. 이를 막으려던 훌쩍이는 총을 맞아 죽고, 샘물이는 몸이 불편한 촌장 할아버지에게 맡겨진다.
   이때 용이가 다시 호랑이마을에 나타난다. 순이의 소식을 들은 용이는 순이를 구하러 온 것이다. 순이를 구하러 나선 것은 용이뿐만이 아니다. 마을에서 주둔하며 순이를 알게 된 가즈오 장교도 순이를 구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아쉽게도 용이와 가즈오 장교 모두 순이를 구하지는 못한다. 용이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가즈오 장교는 총을 맞아 죽는다.
   필리핀의 한 작은 마을에서 70년만에 쑤니 할머니가 발견된다. 89살이 된 쑤니 할머니는 70년만에 고향을 방문하지만, 마을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다행히 그곳에서 쑤니 할머니는 자신을 알아보는 할머니 한 명을 만나게 된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방법!
   작가 차인표는 '일본군 위안부' 라는 민감한 문제를 정겨운 고향의 모습과 순박한 사람들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평화로운 마을에 들이닥친 일본군의 잔인함은 호랑이마을 사람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과연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용서할 수 있을까?

"용이야, 넌 힘들 땐 어떻게 했니?"
"그냥 …… 참았어."
"용이야, 이제 그만 백호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
"난 네가 백호를 용서해 주면, 엄마별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아."
"모르겠어. 용서를 …… 어떻게 하는 건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p.177~179)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용서를 구하기는 커녕 당사자들이 빨리 사라져 더이상 자신들의 잘못을 꺼내는 일이 없길 바란다. 용서조차 구하지 않는 그들을, 작가는 그냥 용서하라고 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용서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당한 고통으로 평생 발 뻗고 잘 수 없었던 할머니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의 원수인 백호를 죽이기 위해 복수를 키웠던 용이처럼 평생 힘들어해야 할테니까. 
   물론 용서도 구하지 않는 그들을 용서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용서를 받으려면 용서를 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더 늦기전에 그들 또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작가가 할머니들의 고통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작가 또한 그들을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랫동안 이야기를 쓰면서 그 생각이 바꼈다고 한다. 
   작가는 이 한 편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무려 10여년을 보냈다. 그의 문장을 읽어보면 그 10여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야기의 주무대가 되는 백두산 자락의 호랑이마을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을만큼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독성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만큼 잘 읽힌다. 읽기 전에는 홍보성 멘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작가로서의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는 이어령의 추천글이 이해가 된다.

09-40. 『잘 가요, 언덕』2009/03/31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독서광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식 단련법

   책과 자료가 너무 많아 그것들을 위한 5층짜리 고양이 빌딩을 세운 다치바나 다카시. 그는 독서와 자료수집을 통해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그는 그 많은 책과 자료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일까?

   『지식의 단련법』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1983년에 《책》이라는 잡지를 통해 연재한 기사들을 엮어 펴낸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해서 자신의 지식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신문은 물론이고 잡지, 정기간행물, 입문서, 전문서, 컴퓨터 등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그가 '록히드 사건'과 관련해 수집한 기사의 스크랩북은 무려 350권에 달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정보라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수집에서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는지 목적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아무 목적없이 수집하는 것은 시간 낭비요, 시간이 지나면 버리게 될 쓰레기만 모으게 되는 것이다.

   엄청난 독서가인 그는 자신의 독서법도 공개한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한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는다면 얻고자 하는 정보가 있는 부분만 발췌해서 읽으면 된다.

   책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작가가 글을 잘못 썼다면 더이상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또한, 정리된 지식을 얻는 데는 책이 제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필요한 책은 반드시 사서 읽어라고 한다. 도서관에서밖에는 찾을 수 없는 자료일 때만 도서관에 가라고 한다.   

   그는 인쇄된 종이 자료뿐만이 아니라 컴퓨터, 녹음기,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한 자료 수집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시민의 독서생활에 있어서 도서관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절대 반대다. 공공기관에서 무료로 대형 식당을 여기저기 만들어 그곳을 시민들의 식생활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식의 어리석은 의견을 부르짖는 사람은 공산권에서도 소수일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 자신이 읽을 책 정도는 스스로 골라 스스로 사고 늘 곁에 두면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p.93)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1983년에 연재한 기사를 엮은 것으로 인터넷과 다양한 저장 매체가 활성화돼 있는 현재에 활용하기에는 시의성이 떨어진다. 물론 모든 방법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일찍 소개됐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방법을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09-39. 『지식의 단련법』2009/03/29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 그 후 - 환경과 세계 경제를 되살릴 그린에너지 혁명이 몰려온다
프레드 크럽.미리암 혼 지음, 김은영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더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그린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라!

   얼마전 한 신문에서 탄소펀드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탄소펀드는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투자해 얻은 탄소배출권을 국제시장에서 에너지 다(多)소비 기업 등에 팔아 수익을 얻는 금융 상품이라고 한다. 최근 몇 년동안, 환경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아마도 이 탄소배출권일 것이다. 세계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각 나라(기업체)마다 탄소 배출량을 할당해 놓은 다음, 할당받은 배출량보다 적게 배출한 나라(기업체)는 여분의 할당량을 다른 나라(기업체)에 팔 수 있게 했다. 그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시장 논리에 맡겨진 이상 세계는 더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그를 대신할 그린에너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동안 과학자들과 기업들은 태양 에너지 개발에 힘썼다. 그러나 그 속도는 반도체 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 만약 그들이 태양 에너지 개발의 필요성과 시급함을 좀 더 느꼈더라면 그 개발 속도는 빨라졌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태양 에너지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태양이 없을 때도 공급할 수 있도록 태양 에너지를 저장하고 각 지역으로 전송하는 것이다. 비용 또한 문제다. 100% 자연자원이고 완전히 재생가능한 자원인 태양 에너지의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다. 우리는 그 태양 에너지 개발에 좀 더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태양 에너지 외에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대체 에너지가 있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현재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바이오연료들이 바로 그것이다. 얼마전 브라질에서는 석유 대신 설탕을 이용한 바이오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선보였다. 그러나 바이오연료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인 에너지와 식량을 서로 경쟁하게 만들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잠재력을 합해도 태양에너지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몇 가지 장점이 있는 해양에너지도 있다. 해양에너지는 태양에너지와 달리 항상 이용가능하다. 또 그 에너지는 태양이 일으킨 바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농축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지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다. 열에너지는 지각판의 침입과 방사성물질의 붕괴를 통해 지각 내부에서 항상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물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대체 에너지 개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고, 무엇보다도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눈앞에 커다란 기회가 놓여 있다. 미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거대하고도 역동적인 시장의 힘을 통제하는 것이 바로 그 기회다. 우리 중 누구도 더 이상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지구온난화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재능이 있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시간의 문이 열려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p.315) 

   앞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린에너지 혁명의 필요성과 시급성만 느낀다면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 더늦기 전에 그린에너지 혁명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09-38. 『지구, 그 후』2009/03/29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되짚어보라, 당신도 누군가의 리스트에 오르내릴 수 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박연차 리스트니, 장자연 리스트니 하며 온통 리스트 이야기 뿐이다. 전자는 좀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후자는 마지막 남은 것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발버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어찌됐든 관련자들은 그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릴까봐 안달이 났고, 사람들은 과연 그들이 누구일까 궁금해서 몸살이 났다. 
   아마 비밀에 관심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비밀에는 관심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도 어느 순간 발설자를 향해 레이더를 뻗치고 있을 것이다. 비밀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르는 특성이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몇 사람의 입을 거치다보면 부풀려지는 경우가 있다. 또 한 사람에 의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몇 달 전에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사랑 받았던 한 여배우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악성 루머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작가 제이 아셰르가 루머를 소재로 한 소설을 12년만에 펴냈다. 그의 소설 속에는 '베이커의 13'이라는 리스트가 등장한다. 고등학생인 해나 베이커는 악성 루머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든 후 자살한다. 그 리스트를 받은 사람들은 바로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녀는 왜 그들에게 리스트를 보낸 것일까?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은 소포 안에는 7개의 테이프가 들어있다. 그 테이프를 듣던 클레이 젠슨은 깜짝 놀란다. 테이프에서 얼마전 자살한 해나 베이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루머의 시작을 이야기한다. 그녀에겐 가슴 떨렸던 추억이 함께했던 상대의 입을 통해 추잡한 루머로 변한다. 클레이는 더이상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면 절대 들을 수 없는 '비밀'이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되짚어 본다. 분명 자신은 그녀를 괴롭힌 적이 없는데 왜 이 테이프를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는 깨닫는다. 자신 또한 그들과 같은 공범이라는 것을. 그는 루머의 주인공과 한데 얽히는 것이 싫었고, 그래서 도와달라는 그녀의 신호를 외면했다. 그녀는 자살을 결심하기 전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도움의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죽음을 선택한다. 

   표지 때문일까? 작가는 당연히 여자일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나 베이커를 표현하기 위해 여자친구들과 자주 수다를 떨었다는 글을 보고서야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일단 그 작가에게 사과부터 해야겠다. '루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제목을 보고 칙릿처럼 가벼운 내용의 소설이겠거니 여겼기 때문이다. 작가는 '비밀'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썼지만, 그 내용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종종 루머와 마주친다. 매일 접속하는 인터넷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추측성 기사가 난무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통된 화제가 떨어지면 가십을 입에 올린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누군가의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되짚어 보라. 당신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외면한 공범일 수도 있다.

09-37. 『루머의 루머의 루머』2009/03/27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들아, 어디 가? 아빤 여긴 있는데!

   방송 연출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장-루이 푸르니에가 사랑하는 두 아들을 위해 40년동안 꽁꽁 숨겨왔던 두 아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그러나 장-루이 푸르니에의 두 아들은 아버지가 쓴 책을 읽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다른 아이들처럼 똑똑하거나 예쁘지 않아서 실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처럼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푸르니에와 그의 아내는 세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태아를 유산시키지 않고 또 낳는다. 다행히도 세번째 아이는 정말 예쁘고 똑똑한 딸이었다. 그는 당시 담당 의사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노골적으로 말씀드리죠. 두 분은 정말 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장애아를 둘이나 두고 계시니까요. 세 번째 아이도 장애아라 칩시다. 지금 상황과 그리 달라질 것이 있습니까? 이번에는 이 아이가 정상아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얘기는 180도 달라지겠죠. 더 이상 실패 속에 머물지 않아도 되는 거에요. 이 아이가 바로 여러분 인생의 행운이 될 테니까요.(p92~93) 

   장-루이 푸르니에는 두 아들 마튜와 토마가 크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푸르니에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아들의 머리 속에는 마치 지푸라기만이 가득한 것 같고 그들의 몸은 점점 굳어져 제대로 가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글을 읽을 수도, 제대로 들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아이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얼굴만 봐도 장애가 있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두 아들을 보이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 오히려 남들처럼 아이들 교육에 신경쓰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거북해하는 표현들도 그는 서슴없이 말한다. 그런 그를 보며 어떤 이들은 장애를 가진 부모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반문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의 표현은 마튜와 토마 역시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랑스런 아들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테다. 

   "아빠 어디 가?" ─ "고속도로를 타러 간단다. 역방향으로 말이야. " 
   기억력이 1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 토마는 차를 타고 갈 때면 줄기차게 같은 질문을 되풀이한다. 슬슬 지치기도 할텐데, 푸르니에는 그때마다 재치있게 대답한다. 그는 오히려 반복되는 토마의 질문을 재밌어 한다. 

내 아이들과 있을 때는 반복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뭐든 다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싫증도, 버릇도, 지루함도 내 아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구식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p.97)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튜의 몸은 점점 굳어서 열다섯 살이 됐을 때는 평생 밭만 갈아온 늙은 농부의 모습이 됐다. 마튜가 더이상 하늘을 볼 수 없게 됐을 때, 푸르니에는 척추수술을 시켜준다. 드디어 마튜의 몸이 펼 수 있게 됐을 때, 3일만에 세상을 떠난다. 보고 싶었던 하늘 나라로.  

   마튜의 죽음에 순간 울컥했지만, 절대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 그것은 초지일관 유머러스하게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푸르니에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가 더욱 감동적이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09-35. 『아빠 어디 가』2009/03/25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