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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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높고(高山子) 외롭고(孤山子) 옛산에의 꿈을 잃지 않았던(古山子) 김정호!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그는 우리 역사상 가장 정확하고 정밀한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전국을 두 발로 누비며 지형과 거리를 실측해 표시했으며, 정확한 축적은 물론이고 글 대신 기호를 사용해 보기 쉽게 했다. 또 이전에는 필사본이 대부분이라 백성들이 쉽게 지도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을 안타깝게 여겨 목판본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그였지만, 우리 역사는 그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해 어느 곳에서 태어났는지도 불분명하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흥선대원군이 그가 바친 《대동여지도》를 보고 국가기밀이 누설될까봐 염려해 옥에 가뒀다고도 전했다. 그러나 뒤에서 그를 후원했던 사람들이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어 신빙성이 없다고 한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일찍이 제 나라 강토를 깊이깊이 사랑한 나머지, 그것의 시작과 끝, 그것의 지난날과 앞날, 그것의 형상과 효용, 그것의 요긴한 곳과 위태로운 곳을 그리는 데 오로지 생애를 바쳐 마침내 그 모든 걸 품어안은 이가 있었던 바, 그가 바로 고산자라 했다. 평생 산을 그리워했으되 그 산 중에서도 옛산을 닮고, 옛산에 기대어 살고 싶은 꿈이 있어 스스로 고산자라 불렀다고 했다. (p.9)


   위대한 지도를 만들었지만 역사가 그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소설가 박범신이 문학의 세계를 통해 고산자 김정호의 삶을 복원해냈다. 어쩌면 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박범신이 소설가로서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그는 김정호가 왜 평생을 한발 한발 내디디며 지도 그리는데 온힘을 다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김정호의 아버지는 홍경래가 일으킨 난을 진압하러 23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가던 중 죽음을 맞이했다. 김정호는 관에서 내 준 지도 때문에 아버지와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잘못 그려진 지도를 믿고 길을 나섰던 아버지와 사람들은 산 중에서 길을 잃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가 죽은 것이다. 제대로 그려진 지도만 있었더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지도는 필사본이 많았던 탓에 잘못된 것을 또 잘못 그린 것이 많았고, 그나마도 지도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일반 백성들은 쉽게 얻을 수도 없었다. 지도는 높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 저기로 장사를 떠나고, 이동할 일이 많은 백성들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다. 정확한 지도만 있다면 아버지처럼 죽는 백성도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김정호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산자의 대동여지도는 그런 면에서 획기적이라 할 것이네. 축척과 방위가 놀랄 만큼 정확하고 실증적이라 그 말일세. 게다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알아보기 쉬운 그 기호들 좀 봐. 놀랍게 과학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어. 실학정신의 기본이란 이런 것일세. (p.195)


   그 어느 지도보다 정확하고 정밀한 《대동여지도》, 분첩이 가능하고 목판 인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지도를 가질 수 있었으며 쉽게 휴대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위대한 지도지만, 《대동여지도》에는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독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 만들어진 다른 지도에는 있는 '독도'가 가장 정확하다는 《대동여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박범신은 이 또한 아쉬웠으리라. 그래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 적고 있다.

   울릉도는 열다섯번째 첩의 가장 오른쪽 절로 배치된바, 만약 우산도를 새기려면 울릉도에서 우산도가 이백 리는 안 된다고 쳐도 최소한 팔십 리 간격의 절이 두 세 개가 더 필요해진다. 그중에서도 두 절은 바다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축척을 무시하고 다른 지도들이 그렇듯 울릉도에 바짝 붙여서 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새기는 것도 불편하거니와, 아무것도 없는 빈 목판을 끼워맞춰 지도를 찍어내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더구나 우산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다.

   대동여지도를 그릴 때 그의 뜻은 지도로써 사람살이를 이롭게 하자는 것에 두었으니, 목판본으로 제작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모든 작은 섬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새겨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럴 필요성도 없다. 필사본과는 사정이 이렇게 다르다. 대동여지도는 펼쳐놓으면 동서로 대략 스물두 척이나 되는데다가 목판만 해도 앞뒤를 다 이용한다고 해도 육십이 넘는다. 판각 자체의 어려움 때문에, 그가 스스로 그렸던 동여도에 수록된 지명을 대동여지도에서 오히려 오천여 곳이나 뺀 것도 그렇거니와, 그러저러한 제작과정의 어려움이나 효용성 때문에 우산도를 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잘했다는 건 아니다. 효용성 때문이라 해도 다 새겨넣지 못한 게 마음 아픈 일임엔 틀림없다.   (p202~203)


   만약 오늘날 일본이 독도를 두고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망언을 퍼붓는 것을 김정호가 알게 된다면, 어느 누구보다 독도를 그려넣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지 않을까. 
   《대동여지도》는 모두 22첩의 목판으로 제작됐으나, 아쉽게도 현존하는 것은 12첩에 불과하다. 그것을 만든 김정호처럼 또 어느 산천을 소리없이 떠돌고 있을까. 

09-80. 『고산자』 2009/06/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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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 에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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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이라고 모두 같은 미혼은 아니랍니다!
   며칠전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 예전 같으면 생일이라고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녔겠지만, 이젠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나이라는 것이 디지털 시계처럼 정각 0시가 될 때마다 먹는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먹어가는 것이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반갑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요즘엔 내 나이를 물어 보고는 꼭 한마디씩 던진다. 애인은 없는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아직 없다면 소개까지 시켜준단다. 친구들을 만나고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소리다. 하물며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 조차.
   난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는 것이고, 혼자서는 도저히 외로워서 못 살 것 같으면 적당한 사람을 소개 받아 결혼하면 되는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는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이 더 좋다. 그러니까 내가 아직 미혼인 것은 내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이지, 누군가가 혀를 찰만큼 안타까운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말한들 무엇하랴. 그저 미혼인 사람의 변명으로만 치부할 뿐인데.

결혼 반대? No! 결혼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마치 이런 내 심정을 대변이라도 해주려는듯 언니네트워크에서 새로운 책이 나왔다. 예전부터 언니네트워크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언니들, 집을 나가다』는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 여덟 가지'라는 부제가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책은 이른바 언니라고 불리는 스물 여덟 명의 여성들이 가족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참, 남성도 한명 있다. '제1부 눈물 흘리지 않고 가족과 이별하기'에서는 유독 힘들다는 언니들의 독립 이야기를, '제2부 이토록 다양한, 결혼하지 않고 잘 살기'에서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혼하지 않는 비혼(非婚) 이야기를, '제3부 뻔한 질문 따윈 두렵지 않아'에서는 혼자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혼하지 않는 것을 '비혼'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그것을 선택하거나 선언하는 사람들이 유별나게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혼'이라고 하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결혼 못한 사람'이라고 치부해 버리기 마련이다. 의미는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지만, 스스로 선택했다는 뜻의 '비혼'이라는 말이 얼마나 듣기 좋은가. 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을 유별나게 묘사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책 속에 등장하는 언니들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만약 같은 여건이 주어졌다면, 나 또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흔히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해보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반대로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귀찮게 돈 들여가며 해볼 이유도 없는게 아닌가. 결론은, 요즘 TV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던데 생각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고.

09-78. 『언니들, 집을 나가다』 2009/06/2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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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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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가장 아프고 슬펐다!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처음 접한 것은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되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닉네임처럼 뒤늦게 연재 소식을 들은 나는 1편부터 차곡차곡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것을 싫어해 연재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들을 원래 싫어하는데다가 모니터를 통해 긴 글 읽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그래서 한 두 편 읽다가 이내 창을 닫아버리겠지 생각했던 것이, 내용 전개도 빠르고 재밌어서 몇달 동안 연재됐던 이야기들을 단숨에 읽어버리고 내일 연재될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그렇게 재미나게 읽었던 연재소설이 드디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미 연재될 때 읽은 소설인지라 다시 읽으면 재미가 덜하겠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은 소설이니 종이 책으로 한번 더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소설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모니터 상으로 읽는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미를 종이책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행간이 드러났고, 빨리 읽을 때와 천천히 읽을 때가 보였고, 소설 속으로의 몰입이 훨씬 쉬웠고, 그래서 읽는 이의 감정도 증폭됐다. 한마디로, 두 번 읽어도 재밌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스무 살이 가장 예쁜 나이라고 말한다. 가장 예쁜 나이 스무 살 때, 우리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예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한 스무 살 때, 그들은 가장 아프고 슬펐다.
   1980년의 광주에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그들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취업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재수 준비를 했다. 주인공인 해금이는 대학에 떨어지고 타자 학원엘 다녔다. 그들은 각자의 스무 살을 보내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아픔을 겪는다. 대학엘 간 친구들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강제로 군대에 보내지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 친구는 기술을 배우기는 커녕 월급조차 못 받고, 공장마다 노동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들이 즐비했다. 또 어떤 친구는 총에 맞아 죽은 친구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 하고, 또 한 친구는 가족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들이 가장 예쁘고 즐거워야 할 때, 그들은 그것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 없었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상처 뿐이다. 그렇게 그들이 가장 예뻐야 할 스무 살의 겨울이 저물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공기중에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한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밥먹고 웃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 게 이상해. (p76)


그들이 겪은 과거와 지금의 상황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도 지나온 과거를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 과거는 재미없는 소재일 수도 있다. 한때 우리 문학은 그런 과거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문학이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되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암울하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무거웠다.  

   공선옥은 무겁고 암울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그리고 암울하지 않게 그려냈다. 무겁고 암울한 것의 반대는 가볍고 경쾌한 것이리라. 그러나 절대 가볍고 경쾌한 것은 아니니, 무겁지 않고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재미나게 읽히지만 그것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아픔이다. 지금의 세대는 겪지 않은 과거지만, 현재가 그 과거와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픔과 함께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가슴앓이도 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떠돌기도 하면서, 바람 앞에 선 들꽃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기도 하면서, 그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우리의 청춘은 조금씩 단련되어가리라. (p300)


09-77. 『내가 가장 예뻤을 때』 2009/06/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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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 - 레드우드 숲에서 그랜드 캐니언까지, 대자연과 함께하는 종횡무진 미국 기행
차윤정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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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연을 관리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미국은 여행하기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나라다. 아기자기한 매력이 없다. 워낙 넓어서 그 큰 땅덩어리 중 어디를 얼마만큼 돌아다녀야 미국 여행 좀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전 미국 여행기라는 것은 모른채 그저 제목에 혹해 읽은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에서 저자는 무려 230일동안 미국을 횡단하다. 참으로 긴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 전역을 밟아보지 못했다. 이 정도되면 여행이 아니라 노동이다.  

   숲에서 노는 게 취미이자 업이라고 말하는 숲 생태 전문가 차윤정은 가족들과 함께 10일간의 미국 여행길에 오른다. 그녀는 10일동안 미국의 어디를 가려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숲을 따라 여행 일정을 잡았다. 언뜻 그녀의 일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면 보통은 도시를 중심으로 계획을 잡을텐데 숲이라니, 그것도 아프리카나 아마존도 아닌 미국에서 말이다.
   늘 빼곡히 들어선 도시의 빌딩 숲과 호화찬란한 불빛을 봐온 우리가 미국의 숲을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그녀의 여행을 따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미국의 숲을 볼 수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 뻗은 거대한 나무들, 물이 부족한 사막 한가운데 심은 나무들, 최대한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으려고 만든 조형물들은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들이다.
   미국인들은 도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는데만 힘을 쏟지 않았다. 과거에는 무분별한 벌목으로 사막화를 부추기고 생태를 파괴시켰다 하더라도, 현재는 그것을 보존하고 복원하는데 힘쓰고 있다. 그래서 몇 사람이 감싸 안아도 모자란 레드우드 숲을 볼 수 있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기차로 여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라스베이거스의 기적이었다. 사막 위에 세워진 호화찬란한 도시에는 정말 이곳이 사막이 맞을까 의심될 정도로 많은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라스베이거스는 물 부족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후버 댐의 건설과 이로 인해 만들어진 거대한 인공호인 미드 호수 덕분에 물 공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지만 미드 호수 수량은 줄었다고 한다. 그래서 잔디를 벗겨내고 사막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도 줄이고 있단다. 
   비단 라스베이거스가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에 물 부족을 겪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또한 물 부족 국가가 아닌가. 지난 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제한 급수를 실시한 곳도 여럿 있었다. 그들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뻗어나가는 모습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생태학적인 접근도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자연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미국은 원생의 자연을 간직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의 자연은 유럽인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아메리카 원주민에 의해 변형되어 있었고, 유럽인인 들어오면서 수탈의 차원이 한층 높아졌을 뿐이다. 그러나 존 뮤어 같은 선지자들에 의해 미국은 자연보호운동이 일찍이 시작되었으며, 한번 시작한 정책은 강력하게 추진되어 벼랑 끝의 자연을 붙잡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지나며 보는 미국의 황홀한 자연은 사실 무지한 사람에 의해 한순간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 세대가 미국에서 배워야 하는 진정한 미래 가치는 바로 이런 것들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p.154~155)

   내가 이 책을 통해 읽길 원한 것은 숲 생태전문가로서의 전문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녀는 여행 내내 숲만 돌아본 것이 아니다. 라스베이거스와 유니버설 스튜디오처럼 유명 관광지도 다녔다. 물론 여행하면서 유명 관광지를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대자연과 함께하는 종횡무진 미국 기행'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독자 또한 그런 것들을 읽게 될거라 기대하기 마련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온통 숲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로만 가득했다면 이 책이 지루하게 느껴졌을까?

09-79. 『숲에 바져 미국을 누비다』 2009/06/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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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책만 읽는
이권우 지음 / 연암서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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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책만 읽는 이와의 연결 통로는 역시 책이다!
   『죽도록 책만 읽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나같은 사람을 또 한명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죽도록 책만 읽는'이라는 수식어 다음에 올 단어가 무엇인지도 알았기 때문이다. 죽도록 책만 읽으면 바보지. 그 옛날 우리 조상들도 책만 보는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을 가리켜 바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과연 나는 죽도록 책만 읽고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아니란다. 죽지 않기 위해 매일 밥으로 된 양식을 먹고 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돈벌이도 하고 잠도 잘만큼 잔다. 그러니까 죽도록 책만 읽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나마 이 외의 시간들은 대부분 책을 읽는데 할애하니 좀 읽고 산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미 자신을 책읽기의 달인인 '호모 부커스'라 칭했던 이권우가 네 번째 서평집을 펴냈다. 책만 읽고 싶어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스스로 도서평론가라는 직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그는 과연  어떤 책들을 읽을까. 그의 독서 세계는 다양하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들을 문학, 인문, 과학, 예술 등 7개 부문으로 나눠 11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다양하게 읽는 그와는 달리 문학만 즐겨 읽는 탓으로 그가 소개한 대부분의 책들을 읽지 못했고, 몇몇 책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얼마전에 읽었던 닉혼비의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가 떠오른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대부분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라 공감할 수 없어서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도록 책만 읽는』도 똑같은 상황인데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내가 몰랐던 책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아무래도 닉 혼비가 내 스타일이 아니거나 내가 런던스타일이 아니었나보다.
   각설하고, 서평집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다.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은 그녀의 감성이 돋보였고, 김탁환의 『뒤적뒤적 끼적끼적』은 작가의 고민이 엿보였다. 그렇다면 이권우의 『죽도록 책만 읽는』은? 이 책은 독자로서의 주관적인 평이 돋보인다. 무조건 재미있고 유익한 것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책들의 장단점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서평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어떤 서평은 도서평론가라는 직함에 어울리게 날카로움을 보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서평은 과연 그를 프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만큼 글쓰기가 매끄럽지 못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있게 본 것은 그가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그는 어떻게 서평을 쓰느냐였다. 정해진 틀이 없이 자신만의 서평을 쓰는 것은 좋지만, 신문이나 블로그에 실리는 칼럼도 아니고 책을 펴내는 것인데 글쓰기의 기복은 없어야하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머리말을 통해 저자 스스로가 전문성이 부족한 글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으니, 그의 목록을 엿보는 대가라 여기리라.

09-78. 『죽도록 책만 읽는』 2009/06/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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