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내 꿈아
박문성 지음 / 여우볕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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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재능은 과신 말고, 자신의 노력은 신뢰해야 한다!  

   학창시절, 내게는 뚜렷한 꿈이 없었다. 여느 아이들이 그러듯이 그때 그때 좋아보이는 것이 내 꿈이 됐다. 뚜렷한 꿈이 없었다는 것은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는 말이 된다. 오랜 시간을 목표없이 방황하다가 대학교 졸업반이 돼서야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축구 전문기자. 아주 어릴적부터 축구가 좋아 쫓아다녔고, 내 전공은 신문방송이었다. 좋아하는 것과 배우고 있는 것을 짜맞춘 꿈이었다. 그러나 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그 꿈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열심히 축구장을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뿐. 
   졸업 후 몇 년이 지났고, 한참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축구 전문기자를 해보지 않겠냐는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이미 그 꿈을 잊어버린지는 오래였고, 일 때문에 오랫동안 축구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섰다. 이제서야 내 삶의 물꼬가 트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 개막 1주일을 앞두고 축구 전문기자로 합류했다. 마감을 넘기고 내가 만든 잡지가 나오자마자였다. 당연히 그동안의 공백을 메울 준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축구장 한번 가보지 않은 기자보다는 내가 훨씬 낫지 않냐는 말도 힘이 되지 않았고, 나보다 축구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없어 조언을 구할 수도 없었다.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3월이라지만 아직은 차가운 바람에 1주일 내내 서 있었으니 몸이 먼저 무너질 수 밖에. 
   그렇게 나는 스스로 내 꿈에게 안녕을 고했다. 뚜렷하게 목표 한번 세운적 없었고, 그래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이내 다른 길을 택한 나는 내 꿈이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그것을 움켜 잡을 수가 없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러나 후회를 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좋아서 쫓아다녔을 뿐 그것을 위해 들인 노력은 없으니까.

   꿈은 선명한 목표의식이다. 또 꿈은 목적지를 표시하는 좌표다.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선 반드시 좌표가 필요하다. 꿈이 없다는 건 목적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삶의 여정, 그 출발은 바로 꿈이다. (p.16)

미리 한계를 긋지 마라! 그 무엇도 틀에 가둘 순 없다!  

   박문성, 축구 중계를 보는 사람이라면 그의 얼굴 한번쯤은 봤을 것이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다. 축구해설가 하면 보통은 은퇴한 감독이나 선수, 나이든 해설가가 맡기 마련인데 그는 젊기 때문이다. 
   원래 그는 축구매거진인 베스트일레븐에서 글을 쓰는 기자였다. 그런 그에게 축구해설가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는 기자였다. 당연히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축구해설가를 해낼 수 있을만큼 충분한 준비가 돼 있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켜쥐었다. 덕분에 축구 전문기자로, 칼럼리스트로, 축구해설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축구 팬에서 축구 전문기자로, 또 축구해설가로 활약하고 있는 그가 참 운좋은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사랑한다 내 꿈아』에는 자신의 꿈을 향한 그의 열정과 노력이 담겨 있다. 또 그의 꿈만이 아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있다. 특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던 선수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비록 그것이 흔해빠진 감동 스토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불안은 조급함을 낳는다. 서두르면 미래를 차분히 그릴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곤 한다. 우리가 불안하고 조급한 건 이성이 아닌 마음이 이미 그렇게 정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미치도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일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일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도전과 쉼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더 큰 아름다운 도전을 위한 삶의 지혜인지 모른다. 분주함과 초조함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한발 떨어져 호흡을 가다듬는 느림이 소중한 오늘이다. (p.237)

   그와 나를 비교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둘 다 같은 것을 좋아했고 같은 꿈을 꿨다. 그리고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뤘고, 나는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꿈과 자신을 믿으며 끊임없이 준비했지만, 나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불안해하며 이내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준비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꿈이 없는 시대라고 했다. 꿈조차 꿀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그러나 꿈조차 꾸지 못한다면 더이상의 희망은 없다. 꿈조차 제대로 갖지 못해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09-89. 『사랑한다 내 꿈아』 2009/07/0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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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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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원이 이야기하는 우리 디자인은, 눈물겹다!
   톡톡 튀는 제목의 책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걱정을 하게 된다. 제목만큼 톡톡 튀는 책이면 어떡하지? 물론 톡톡 튀면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다만, 독특함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읽을거리를 빼먹는 책들이 있다는게 문제다. 특히 이런 문제는 광고나 디자인 관련 책들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이건 책이 아니라 카탈로그 혹은 전단지를 보는 기분이다.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걱정스러운 마음에 책을 들자마자 책장을 휘리릭 넘겨본다. 일단, 텍스트와 그림이 적절히 사용됐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럼,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홍동원, 그는 출판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디렉터다. 출판디자인, 즉 편집디자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충 이미지를 짜맞춰서 명함을 만들고 전단지를 만드는 사람쯤으로 여긴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대다수의 편집디자이너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작업물을 내놓아야 한다. 작업량은 많고, 새로운 디자인을 생각해 낼 시간이나 자료는 턱없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이미 만들어 놓은 작업물에 이름과 사진만 바꿔 내놓을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런 열악한 편집디자인의 세계에서 이름을 얻은 몇 안되는 아트디렉터다. 
   그는 "노느니 글을 쓰자"고 맘 먹었다. 그의 스승은 '꼭 글을 쓸 줄 아는 디자이너가 되라'(p.9)가 되라고 그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월간 《디자인》에 6년째 자신의 글을 싣고 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그는 벌써 6년째 글을 쓰고 있다. 나름의 글쓰기 철학도 있다. 보이는 것처럼 쉽게 쓰자! 그의 전공 분야인 편집디자인과 관련해 전문적인 이야기를 썼다면, 한때 편집디자인 좀 해봤다는 나도 아마 지루해 했을 것이다. 그는 이런 독자들의 눈높이를 간파했으리라.
   그는 편집디자인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함께 풀어 놓는다. 혹시 과거 검찰 로고를 기억하는가? 나는 몇 년 전에 바뀐 로고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이 로고를 그가 만들었다. 당시 검찰 담당자가 그에게 친절하고 예뻐 보이는 명함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을 본따 디자인했단다. 처음 검찰청에 들어갈 때 바짝 쫄아있던 그가 '수호천사 같은 명함'을 만들어 건네면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에 담당 검사도 감동했다.

   경찰의 포돌이를 보자. 포돌이가 친절한 경찰의 상징인지는 몰라도 그런다고 노래방 주인에게 '삥'이나 뜯고, 범인과 짜고 뒷돈 챙기고 풀어 준다면 포돌이가 어떻게 친절해 보이겠냐. 그러니까 쓸데없이 웃기는 캐릭터 만들지 말고 검찰 서류나 간판 그리고 모든 시각적인 디자인 요소들에서 권위적인 요소를 일단 빼자. 그리고 부드러운 정도로 만족하자. (p22)

   또 그는 좋은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밀튼이 만든 'I ♥ NY'은 뉴요커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아는 디자인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디자인이 있었다. 바로 2002월드컵 때 전국민들이 입고 다녔던 빨간 티셔츠 'Be the Reds!'.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좋은 디자인은 흔치 않다. 
   사람들은 외국의 멋진 디자인을 따라하기 바쁘다. 디자이너도 그렇고, 클라이언트들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자료 조사만 해도 좋은 디자인을 얻을 수 있는데, 클라이언트들은 촉박한 기한을 주고 디자이너들을 닦달하기만 한다. 이런게 바로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그리려면 충분히 관찰해야 하는데 날아가는 비둘기의 똥구멍을 어떻게 보고 그리겠는가.   그는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우수 사례를 무작정 따라하기보다는 우리만의 디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신화 속 캐릭터를 살려내야 하고, 우리만의 글꼴을 만들어야 하며, 서울의 풍경을 만들어야 한단다.
   한편, 윈도우즈에 세 들어사는 '한글'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쏟아내게 했다. 우리에게는 '한글'이라는 막강한 워드 프로세서가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윈도우즈에 세 들어 살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면 방을 빼야한다. 안타깝게도 윈도우즈는 MS 오피스 패키지를 끼워 팔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우리글이 예쁘게 보이는 '한글'이 있음에도 말이다. 문제는 윈도우즈라는 거대 기업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사용자들은 프로그램은 돈 주고 사면 안되는 것으로 안다. 아무리 가격을 낮춰 팔아도 절대 돈 주고 사지 않는 것이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한글'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는 디자인 현장에서 느꼈던 점, 그의 디자인 철학, 디자인 역사와 좋은 디자인의 조건 등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때론 유쾌하게, 또 때론 울분을 토하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은 그저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자신만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생각할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09-86.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2009/07/0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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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 : 조선 선비가 본 드넓은 아시아 샘깊은 오늘고전 10
방현희 지음, 김태헌 그림 / 알마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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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맛깔나는 고전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사회 교과서에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접했다. 얼마나 중요한 책이면 교과서에까지 등장할까.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책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과연 이런 내용의 책도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은 했지만, 그날 이후로도 나의 고전 탐독은 멈추지 않았다.
   최부, 무엇보다 우리 역사를 좋아했던 나는 그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 그가 남긴 『표해록』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국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걸까, 아니면 내 기억에만 없는걸까. 이쯤되면, 양심 선언이라도 해야할 것 같다. '고전'이라는 말만 들으면 내용 불문하고 무조건 읽어버렸던 내가 우리 고전은 멀리했다. 아니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유명한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이제서야 읽고 있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김탁환의 소설을 통해 맛봤다. 그러니 기억에 없을 수 밖에. 남의 나라 고전은 줄줄이 외고 다니면서 정작 우리 것에는 어렵고 지루하다며 등 돌리고 있었던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표해록(漂海錄)』은, 제목 그대로 '바다에서 표류한 일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최부는 1487년 추쇄경차관으로 임명돼 제주로 파견된다. 그러나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인 나주로 돌아가다가 기상 악화로 표류하게 된다. 최부가 탄 배는 파도에 밀려 중국 남부의 해안까지 떠내려 간다. 당시 조선에서 북경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북경 아래 지역인 강남 일대에는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최부 일행을 발견한 중국 사람들은 그들을 왜적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최부는 자신이 조선의 선비임을 입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해적을 만나기도 하고, 왜적으로 오인받아 목숨이 위태롭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최부 일행은 북경에 당도한다. 중국 황제는 그들이 정식 사신단은 아니었지만 조선으로부터 온 손님이기 때문에 선물을 하사한다. 선물을 받으면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는데, 상복을 입고 황제를 만나는 것은 중국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친상을 당한 최부가 상복을 벗고 길복을 입는 것 또한 조선의 예에 어긋나는 일이다. 최부는 예를 거론하며 끝까지 상복을 고수하려고 한다. 이 상황을 보고 최부가 예를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해야 할까, 아니면 괜히 고집을 피운다고 해야할까. 조선시대 때는 이 상복 때문에 그 유명한 '예송논쟁'까지 벌이지 않았던가. 당시 시대를 비춰 본다면 충분히 최부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다가 중국 황제의 노여움을 사 귀국이 늦어지거나 못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효가 아닌가. 중국 땅에 왔으니 중국 법을 따르라는 중국 관리의 말에 다행히 최부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가 지나온 길은 당시 조선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던 곳이다. 그래서 그 여정을 담은 이 기록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는 견문을 정리해 올리라는 성종의 명에 따라 자신의 여정을 자세히 기록한다. 또, 중국 사람이 수차로 물을 푸는 것을 보고 그 제작법을 익히기까지 한다. 

우리 고전 읽기, 어렵고 지루하다면 청소년을 위한 고전부터 시작하라!
   『표해록』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세계 3대 중국 견문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기행문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나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비하면 덜 힘들고 간결한 기행이다. 알마에서 나온 『표해록』은 '청소년을 위한 고전'이다. 어쩌면 우리 청소년들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펴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다음에는 완역판에 도전해 봐야겠다. 그때는 우리 고전의 참 맛을 볼 수 있겠지.

09-83. 『표해록 : 조선 선비가 본 드넓은 아시아』 2009/07/0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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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루앙프라방 -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
최갑수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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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듭난다. 그 장소는 오직 길이다!
   루앙프라방, 참 예쁜 이름이다. 써놓은 글자 모양도 예쁘고, 그것을 부르는 소리도 예쁘다. 어느 예쁜 카페의 이름일까? 아니면 유럽의 작은 마을 이름일까? 낯선 이름이 궁금해 표지 속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그런데 사진 속 아이들의 피부색은 유럽인의 그것이 아니다. 혹 과거 유럽의 지배하에 있었던 아시아나 남미 지역에 있는 마을일까?
   그랬다. 루앙프라방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라오스의 유서 깊은 도시라고 한다. 루앙프라방은 왕정이 폐지되기 전까지 라오스 왕국의 수도였단다. 아름다운 메콩 강을 배경으로 라오스 전통 건축물과 프랑스 식민 시대의 건축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루앙프라방의 왕궁 박물관에는 황금 불상이 있는데, '루앙프라방'은 '큰(루앙) 황금 불상(프라방)'이라는 뜻이란다. 아직 책은 읽지 않았지만, 사전 조사(!)만으로도 어떤 곳일지 가슴이 설렌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루앙프라방을 저자는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이라는 큰 제목 아래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다. 목요일은 제목 그대로 산책과 낮잠과 위로가 필요한 요일이다. 주5일 근무제로 바뀌면서 금요일만 버티면 이틀간의 달콤한 휴식이 주어진다. 일주일 중 가장 몸이 힘든 요일이지만, 오늘만 지나면 휴일이라는 생각에 그럭저럭 버틸 힘이 난다. 그러나 목요일은 다르다. 몸은 금요일보다는 덜 지치겠지만, 달콤한 휴일을 맞이하려면 무려 이틀을 버텨야 한다. 적당한 촉매제가 없다면, 몸과 함께 마음까지 지칠 수 있다. 이럴 때 잠깐의 산책과 낮잠, 그리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 그것들이 있으면 몸과 마음 모두 북돋을 수 있다.

   목요일처럼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 루앙프라방은 가장 적당한 곳이다. 루앙프라방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 남들보다 적어서 불편하기는 하지만 슬프지는 않은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욕심내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며 천천히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그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유롭게 위로의 말을 던지기도 한다. 여행자들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그들을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업가들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한다. 얼굴 가득 번진 그들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전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 미소는 게으른자의 기름진 것이 아닌 진짜 천사만이 지을 수 있는 해맑은 것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들의 미소가 담긴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보는 이를 저절로 웃게 만드는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왜 사람드은 루앙프라방을 떠나기 아쉬워할까요?"

"아마도 이곳에서 시간의 실체와 마주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언제 시간과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시간 앞에서 옹졸했고, 급했고, 주저했고, 불안했고, 고독했지." (p33)


   반할 수 밖에 없었던 사진과 함께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루앙프라방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작가의 화법이다. 때론 그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당신이란다. 내용으로 추측해 본다면 헤어진 당신이기도 할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웬 사랑 타령이냐며 코웃음을 쳤겠지만, 그의 고백에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이야기가 그녀에게까지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아름다운 도시를 모르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멋진 곳을 소개해 준 그에게 한마디의 응원을 남기며.

   길에서 헤매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제 갈 길을 찾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마세요. 느긋하게 길을 가면 되요. 어쩌면 길을 잃는다는 것도 행운일 수 있으니까." (p48)

09-83. 『목요일의 루앙프라방』 2009/06/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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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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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도전해 보라! 당신이 선택한 범인은 둘 중 누구인가?
   코난 도일에게는 셜록 홈즈가, 애거서 크리스티에게는 포와로가 있었고, 요코미조 세이시에게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긴다이치 고스케가 있었다. 인기있는 추리 소설가에게는 환상의 짝궁이 있기 마련. 현재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도 그런 인물이 있다. 바로 가가 교이치로 형사.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동안 캐릭터 사용을 자제해 왔다고 한다. 캐릭터의 성공 여부에 따라 작품의 성패도 따라갈 수 있고, 워낙 쟁쟁한 캐릭터들이 많아 부담도 컸으리라. 가가 형사는 그런 그가 20여년 동안 애정을 쏟으며 키워온 캐릭터다. 
   아마도 여름 시즌을 겨냥했으리라. 이번에 가가 형사 시리즈가 한꺼번에 네 권이 나왔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는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세번째 작품이다. 참고로 가가 형사가 처음 등장한 작품은 『졸업』이었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한다. 10년째 도쿄에서 혼자 살고 있던 소노코는 내일 집으로 내려간다며 오빠에게 전화를 건다. 고향에서 교통 지도계 경찰인 오빠 야스마사는 금요일 저녁 소노코의 전화를 받고 그녀를 기다리지만 월요일까지 그녀는 소식도 없고 회사에도 결근을 한다. 느낌이 심상치 않았던 야스마사는 소노코의 아파트로 찾아간다. 그리고 죽어있는 소노코를 발견하게 되는데...
   처음 소노코를 발견했을 때는 자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가지 단서를 통해 타살이라는 것을 확신한 야스마사는 타살을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리고나서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당연히 자살이라고 결론 짓지만, 야스마사는 소노코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즈음  가가 형사가 나타난다. 가가 형사 또한 야스마사처럼 타살의 흔적을 발견하고 범인을 쫓고 있다. 
   용의자는 초반부터 2명으로 압축된다. 한명은 소노코의 애인이었던 준이치이고, 나머지 한명은 소노코의 친구 가요코다. 준이치와 가요코는 소노코를 배신했다. 소노코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겼던 것이다. 이쯤되면 너무 쉽게 사건이 해결되는 것 같아 김이 샌다. 다른 작품에서 봤던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 것 같아 실망감도 든다. 그러나 끝까지 사건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 둘 중 누군가 소노코를 죽였는데, 확실한 단서를 잡을 수가 없다.

   타살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야스마사는 자신의 손으로 범인을 밝혀내기로 결심했다. 세상에는 내 손으로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이건 결코 남의 손에 맡길 일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에게는 누이의 행복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빼앗긴 분함은 범인이 체포되는 정도로는 결코 가라앉힐 수 없었다. (p91)

   『방황하는 칼날』에서 죽은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아버지가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오빠 야스마사가 소노코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선다. 한편, 가가 형사는 야스마사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것을 막으려고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용의자 X의 헌신』에서처럼 투톱을 내세워 재미를 더하고 있다. 앞선 작품에서는 사건을 은폐하려는 이와 풀려는 이의 두뇌싸움이 재미를 더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누가 먼저 진실을 밝히는가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결국 누가 어떻게 진실을 밝혔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잔인하게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끝까지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열쇠를 고스란히 작품 속에 남겨둔채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책의 끝부분에는 "추리 안내서"라는 것이 봉인돼 있다. 독자들의 추리를 돕자는 것인데, 사실 본문을 제대로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추리할 수 있는 부분이니 유용성은 없다.
   지금 당장 도전해 보라! 당신이 선택한 범인은 둘 중 누구인가?

09-82.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2009/06/2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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