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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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에서 매일 듣게 되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날의 코로나19 상황을 들으면서 매일 접하게 되는 'PCR 검사'.

PCR(중합효소 연쇄반응)은 현재 유전 물질을 조작하여 실험하는 거의 모든 과정에 사용하고 있는 검사법으로, 검출을 원하는 표적 유전 물질을 증폭하는 방법(132쪽)이다. 이 PCR 검사를 통해 코로나19 검사뿐 아니라 과거에는 해결할 수 없었던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가 처음 PCR 기술을 발견했을 때는 주목받지 못했다. 멀리스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의 특허권을 신청하고 광고지를 제작해 적극적으로 실용적 가치를 알렸고, 1993년에는 이 기술로 노벨 화학 상을 수상했다. "현재 PCR 기술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는 위험한 전염병의 병원균을 신속히 검사하고, 법의학에서는 혈액, 모발, 정액, 타액, 피부조직 등에서 DNA 샘플을 얻어 분석, 감정하는 데 사용된다. 생물학 연구에서는 PCR 기술이 유전적 변화를 검사하는 유용한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유전자의 특정 조각을 증폭하여 직접적으로 관련된 DNA 구역을 분석할 수 있게 되어 해당 유전체(게놈) 전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이 기술은 계속 개선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생물학 영역에서 통용되고 있다. PCR의 활용도는 점점 넓어지고 있고, 새로운 상업적 기회도 여전히 열려 있다."(134~135쪽)

이렇게 PCR 기술이 이윤을 창출하는 기술로 자리 잡자, 생각지도 못한 우선권 소송이 일어난다. 멀리스는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 '세터스 코퍼레이션'에서 일할 때 PCR 기술을 발견했고, 그 사용권은 세터스 코퍼레이션이 갖게 됐다. 그런데 듀폰 社가 세터스로부터 권리 침해를 당했다며 고소를 한 것이다. PCR 기술은 196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하르 고빈드 코라나가 1970년대 초에 연구한 결과물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며, 듀폰 社는 코로나의 논문에 관한 저작권 양도를 받았으므로 결과적으로 세터스가 듀폰 社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라나는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했으며, 법원은 듀폰 社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 분자생물학자 아서 콘버그는 코라나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듀폰 社의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PCR 기술은 콘버그의 연구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누구나 DNA를 증폭해 낼 수 있었지만 멀리스처럼 한가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정말 어이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노벨상까지 수상한 콘버그는 이렇게 자신의 이력에 흑역사를 남긴 것이다.

진지하고 성실하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용기와 개척 정신이 없는 사람이다. 10쪽

놀랍게도 이런 흑역사를 과학사에서 찾는 게 어렵지 않다. 『과학자의 흑역사』는 천문학, 생물학, 수학, 화학, 물리학 부문에서 과학자들이 범한 26개의 실수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실수들은 이론과 관련된 것들도 있지만, 심리적 혹은 인격적인 문제로 초래된 것들도 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라도 피해 갈 수 없다. 스티븐 호킹, 아인슈타인도 오류를 남겼다.

지성과 냉철함으로 똘똘 뭉친 과학자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는 자신의 업적 때문에 혹은 자신의 명성과 권위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는 그의 실수담이 나오는데, 그는 자신의 실수를 지적한 과학자를 권위로 눌러버렸고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지 않았다. 원자론을 제창한 돌턴은 '원자'를 '분자'로 용어만 바꾸면 원자론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더욱 완벽하게 이론을 정리할 수 있다는 아보가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 50년 넘게 원자론과 분자론의 발전은 가로막혔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전통적 사고방식 때문에 새로운 발견을 인정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퀴리 부부의 딸과 사위, 즉 졸리오퀴리 부부는 학술적 교류와 이론적 사고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앞두고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인공방사선을 발견해 노벨 화학 상을 받았는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연구에 좀 더 민감했다면 중성자와 양성자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이런 이론적인 문제도 있지만,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경쟁자나 제자에 대한 질투는 어쩔 수가 없었다. 험프리 데이비는 질투심과 허영심 때문에 제자 패러데이가 발견한 것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데이비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발견은 패러데이의 발견이라고 하면서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이 있다. 어떻게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할 분야 혹은 대상을 정할 수 있었을까?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392쪽)고 했다. 아마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발견하고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생소한 과학자들과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이론(특히, 수학은)이 가끔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흑역사'들이 비단 과학자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 과학자 역시 사람이듯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들처럼 '흑역사'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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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0-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만으로도 굉장히 읽고 싶네요.
듀폰은 가해자로 피해자로 참 여러 군데 화자되는 것 같아요. ㅎㅎㅎ
다 돈과 권위 이런거 때문인 것 같어요 ㅎㅎ
인간의 흑역사인가 그 책도 잼있던데 ㅎㅎㅎ
소개 감사합니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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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태엽 감는 새가 태엽오래전에 문학사상사에서 4권짜리로 나온 『태엽 감는 새』를 본 적이 있는데, 내용은 궁금했지만 도서관에는 언제나 1권이 대출 중이었고 부담스러운 권수에 표지 디자인도 너무 예스러워서 읽어보진 않았다. 바뀐 제목 때문에 긴가민가 했었는데,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미국 출간을 계기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개고한 문고판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소설 자체가 더 날렵해졌다고 하는데, 표지 역시 매력적으로 바뀌었고 권수도 세 권으로 줄었다. 물론 읽는 분량에는 차이가 없겠지만, 네 권에서 세 권으로 줄어든 것만으로도 권수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 줄었다고나 할까.

태엽 감는 새는 실제로 있는 새야.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소리밖에 못 들었어. 태엽 감는 새는 이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서 세계의 태엽을 조금씩 감아. 끼익끼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태엽을 감지. 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몰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훨씬 더 복잡하고 멋들어지고 거대한 장치가 세계를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사실은 태엽 감는 새가 온갖 장소에 가서, 가는 곳곳마다 조금씩 태엽을 감기 때문에 세계가 움직이는 거야. 태엽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에 달린 것처럼, 간단한 태엽이야. 그 태엽을 감기만 하면 되지. 하지만 그 태엽은 태엽 감는 새 눈에만 보여.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253쪽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화자 오카다 도오루는 최근 실직한 이후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잡지사에 다니고 있는 아내 구미코는 급하게 일자리를 찾을 필요 없다며 좀 더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중,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로부터 걸려온 다소 음란한 전화, 서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아내가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보라고 한다. 골목 끝에서 본 적이 있다고 해서 나섰다가 만난 소녀 가사하라 메이. 메이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소녀의 집 마당을 가로질러 미야와키 씨네 마당으로 간다고 한다. 도오루는 메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양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려보기도 한다. 메이는 도오루를 '태엽 감는 새 아저씨'라고 부른다. 결국 고양이를 찾지 못하자 아내는 도오루에게 점술가 가노 마르타를 만나보라고 한다. 초자연적 능력을 소유한 여자로 무상으로 상담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사라진 고양이에 대한 단서는 얻지 못했고, 대신 그녀의 여동생, 가노 크레타가 도오루의 처남인 와타야 노보루에게 겁탈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 아내 구미코 역시 집을 나간다.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며, 이혼을 원한다는 편지를 남긴 구미코. 가족이었던 아내와 고양이는 집을 나가고, 대신 이상한 여자들만 도오루 곁을 맴도는 시기. 심지어 도오루의 의식을 파고드는 이상한 꿈까지 꾸게 된다.

한편, 도오루와 아내는 구미코 집안이 높이 평가하는 점쟁이 혼다 씨를 만나곤 했었는데, 마미야 중위라는 사람이 혼다 씨가 도오루에게 남긴 유품을 전달하러 온다. 하지만 그 유품 박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마미야 중위는 자신과 도오루를 만나게 하려던 것이 혼다 씨의 유품이었다고 추측한다.

혼다 씨와 마미야 중위는 1930년대, 일본이 중국에서 벌였던 전쟁 중에 만난 사이로 그들은 그곳에서 벌어진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오루는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체험한다.

모든 것은 고리처럼 이어져 있고, 그 고리의 중심에는 태평양 전쟁 전의 만주가 있고, 중국 대륙이 있고, 1939년의 노몬한 전투가 있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3』, 277쪽

아내가 사라진 현실의 문제와 마미야 중위의 전쟁 이야기, 그리고 꿈속 이야기가 뒤엉켜 있는 복잡한 구조의 소설이다. 그로 인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들의 잔인함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게도 만들지만, 이야기 자체는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보통 하루키라고 하면 일본인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상실의 시대』를 가장 먼저 꼽기 마련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류의 소설보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해변의 카프카』 같은 하루키만의 환상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소설들을 더 좋아한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역시 후자의 부류에 속하는 책이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통해 하루키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솔직히 어렵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인생에 길들면, 끝내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것조차 모르게 돼.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128쪽

우리가 이렇게 보고 있는 광경은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야.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것이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사실 세계는 훨씬 더 어둡고, 깊은 곳도 있고.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100쪽

사람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는 의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계속 똑같이 살 수 있다면, 누가 사는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겠어요.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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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맨서 환상문학전집 21
윌리엄 깁슨 지음, 김창규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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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읽는 물건이 아니야! 기억과 마음은 전혀 다른 것!

'사이버펑크'를 표방한 『뉴로맨서』는 발표하자마자 각종 SF 문학상을 석권하며 SF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매트릭스나 사이버스페이스 등과 같은 개념들은 이후 여러 작품에 영향을 주었고, 《매트릭스》와 《공각기동대》, 《코드명 J》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뉴로맨서(Neuromancer). 사자(死者)의 땅으로 가는 좁은 통로. 뉴로(Neuro)는 신경, 은빛 길을 뜻해. 로맨서(Romancer)는 마술사(necromancer). 나는 죽은 자들을 불러내지. 379쪽

『뉴로맨서』의 배경은 사이버스페이스가 일상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근미래다. 주인공 '케이스'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기업의 비밀을 해킹해 돈을 버는 '카우보이(지금으로 따지면 '해커'가 될 것이다.)'로, 한때는 최고로 손꼽혔지만 고용주의 정보를 훔치다 걸려서 더 이상 사이버스페이스로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능력'을 찾기 위해 일본 지바(1980년대에는 일본이 이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고 작가는 생각했을 것이다.)로 왔지만 약물중독으로 시궁창 같은 삶을 이어갈 뿐이다.

이때 '몰리'가 접근해 자신과 함께 '아미티지' 밑에서 일하자고 제안한다. 아미티지는 수술을 통해 케이스의 능력을 되찾아주는 대신 그의 몸에 독주머니를 심었다. 일이 끝나면 독주머니를 제거하는 효소 주사를 줄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독주머니가 그대로 몸속에서 녹아 이전처럼 시궁창 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한다. 케이스는 아미티지 역시 '윈터뮤트'라는 AI에게 고용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윈터뮤트'의 또 다른 쪽 AI인 '뉴로맨서'와도 만나게 된다. 자율성이 금지되어 있는 AI, 그들이 케이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윈터뮤트'는 다국적 대기업 테시어 애시플 가문의 소유로, 자신의 자율성을 막고 있는 물리적 족쇄를 풀기 위해 케이스를 고용했던 것이다. 윈터뮤트는 보안 시스템은 해제할 수 있었지만, 심지어 로봇 청소기 같은 것들도 조정이 가능했지만, 아주 간단하면서도 전통적인 자물쇠로 채워진 것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열 수 없었다. 사람들은 윈터뮤트를 통제하기 위해 물리적인 수동 보조 장치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쪽 AI인 '뉴로맨서'는 정서적인 공감 능력을 표현할 수 있고, 윈터뮤트와는 달리 자신만의 인격을 창조해 낼 수 있다. 즉, 윈터뮤트가 좌뇌라면 뉴로맨서는 우뇌 역할을 했다. 만약 이 두 AI가 합쳐진다면 신과 같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분리해 놓았고, 반대로 AI는 합쳐지길 원했을 것이다.

윈터뮤트가 승리했다. 그는 뉴로맨서와 어떤 식으로 인가 맞물려서 다른 무엇이 되었다. (…) 윈터뮤트는 집합적인 정신이었고 결정권자였으며 외부 세계에 변화를 가하는 쪽이었다. 뉴로맨서는 인격이었다. 뉴로맨서는 불멸이었다. 마리 프랑스가 윈터뮤트의 내부에 자신을 해방하고 뉴로맨서와 일체가 되고자 하는 충동을 집어넣은 것이 분명했다.

윈터뮤트. 조용하고 차갑게, 애시풀이 잠든 동안 천천히 줄을 치는 인공 두뇌학의 거미. 그는 자기 식으로 테시어 애시풀을 무너뜨리기 위해 죽음의 거미줄을 자아냈다. 415~416쪽

『뉴로맨서』에는 몸은 이미 죽었지만 인격이 복제되어 ROM에 저장되어 있는 전설적인 카우보이 맥코이 파울리가 등장한다. 그는 뇌전도 그래프가 세 번이나 일직선을 그리며 뇌사해서 '일직선 딕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일직선 딕시'처럼 몸은 죽었지만 기억이나 인격이 복제되어 그 데이터가 영원히 살아있다면? '일직선 딕시'는 일이 끝나면 자신의 인격도 제발 죽여달라고 케이스에게 부탁한다.

윈터뮤트 역시 그렇게 복제된 데이터와 마음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에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 떠오른다. 인간과 똑닮은 AI '클라라'가 등장하는데, 다른 모든 것은 복제할 수 있어도 '마음'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책의 제목이 '윈터뮤트'가 아닌 '뉴로맨서'인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아무리 AI가 진화를 거듭해도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은 그런 정서적인 측면 때문이라는 것.

"마음은 읽는 물건이 아니야. 봐, 너도 '읽는다'는 개념에 물들어 있잖아. 나는 네 기억을 건드릴 수 있지만 기억과 마음은 전혀 다른거라고." 267쪽

읽는 게 쉽지 않은 소설이다. '사이버스페이스'나 '매트릭스' 같은 지금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과 정의가 달라서, 게다가 앞서 언급한 대부분의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용어의 개념을 잡는 게 힘들었다. 윌리엄 깁슨이 1984년에 발표한 『뉴로맨서』를 2011년에 구매해서 2021년에 읽었다. 이렇게 묵혀두지 않고 그때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새롭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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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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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탈레반의 박해를 보면서 떠오른 책이다. '환상문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이 소설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시녀 이야기』 속 '길리어드 공화국'은 여성의 지위를 '임신 가능 여부에 따라' 철저하게 계급으로 나눈 사회다. '길리어드' 속 여성들은 '출산 기계'이기 때문에 따로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옷도 취향대로 입을 수가 없으며, 남성과 함께가 아니라면 자유롭게 외출도 할 수 없다.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계급은 '사령관의 아내'다. 그녀들은 파란색 옷을 입을 수 있으며, 정원을 가꾸거나 뜨개질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녀들 밑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는 '하녀' 계급이 있는데, 그들은 둔탁한 녹색 옷을 입고 있다. 이들 밑에는 가임기를 지났거나 불임인 여성들을 부르는 '비(非)여성' 계급이 있다. 여기에 좀 더 특별한 계급인 '시녀'들이 존재한다. 그녀들은 온통 빨간색으로 몸을 가리고 있다.

발을 감싼 빨간 구두는 굽이 낮지만 그건 춤을 추기 위한 게 아니라 척추를 보호하기 위한 거다. 빨간 장갑은 침대 위에 놓여 있다. 장갑을 집어 들고 손가락을 하나씩 밀어 넣어 손에 낀다. 얼굴을 감싼 가리개를 제외하면 옷은 전부 붉은 색이다. 피의 색, 우리를 정의하는 색이다. 치마는 발목까지 오는 풍성한 주름 스커트이고, 드레스엔 가슴까지 이어지는 판판한 앞판과 손목을 덮는 긴 소매가 달려 있다. 하얀 가리개도 규정에 따라 지급된 보급품으로서 시야를 제한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우리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목적도 있다. 나는 한 번도 빨간 옷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17쪽

나는 국가적 자원이다. 100쪽

우리는 아기를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145쪽

'시녀' 계급은 출산을 위해 특별히 관리되는 계급이다. 만약 사령관의 아내들이 정상적으로 출산을 하지 못하면, 이 시녀들이 배정된다. 일종의 대리모 개념인데, 그녀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배정된 사령관의 이름을 따 '오브OOO' 이런 식으로 불린다. 만약 임신에 실패하거나 정상적으로 출산하지 못하면 다른 시녀가 배정되고, 그 시녀에게 그 이름이 주어진다. 시녀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모두 실패하면 비여성으로 강등되어 방사선 등으로 오염된 곳으로 추방된다. 사령관이 불임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제 불임의 남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오직 애를 낳을 수 있는 여자와 낳을 수 없는 여자가 있을 뿐. 그게 법이다.(94쪽)

그들에게도 자유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그 시절을 '구시대'라고 부른다. 20세기 중반, 환경파괴와 인구 감소(그들은 '대재앙'이라 불렀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국에서 극단적인 종교 해석과 가부장제를 내세운 세력들이 대통령을 죽이고 계엄령을 선언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인 '전체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새로운 신분증이 생겨났고, 여성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된 재산을 가질 수 없었으며 카드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낙태 수술과 재혼도 허용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직장에 다녔다는 게 이상하다. '일(Job)'. 웃기는 단어다. '일(Job)'이란 남자들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 배변 훈련시킬 때, '어디 큰일 한번 치러볼까'라고 말한다. 개한테도 쓴다. 카펫에다 일을 치렀다고. 그러면 신문지를 말아서 때려주는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다 직장에 다녔다니,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옛날엔 수천 수백만에 달하는 여자들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땐 그게 정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과거의 종이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255쪽

필기도구도 없고, 글쓰기도 금지된 시기에 한때 '오브프레드'로 불렸던 시녀가 이 이야기들을 테이프에 녹음해 기록으로 남겼다. 2195년에 이 녹음테이프를 발견한 사람들은 '오브프레드'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 기록을 남기게 됐을지를 추측할 뿐이다.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기밀법 위반'이라며 밴을 탄 남자들에게 잡혀간 '오브프레드', 당시 임신한 상태로 추측되는 '오브프레드'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시녀 이야기』는 독자들의 요청으로 마거릿 애트우드가 34년 만에 발표한 『증언들』로 이어진다. 후속작을 함께 준비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더 좋은 세상이라 해서, 모두에게 더 좋으란 법은 없소. 언제나 사정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조금 있게 마련이지. 312~313쪽

나는 과거에서 온 망명자다. 다른 망명자들이 다 그러하듯 내가 두고 떠나온,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풍속과 관습을 자꾸만 그리워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바라보면, 그런 것들이 하나같이 기괴하게만 느껴지고, 나 역시 그런 풍속들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거다. 20세기의 파리에 홀로 앉아 차를 마시는 백러시아 인처럼, 나는 하릴없이 과거를 부유하며 그 아득한 행로들을 되찾으려 한다. 나는 요즘 툭하면 눈물을 찔찔 짜고, 스스로를 잃어버린다. 흐느낌. 그래, 이건 우는 게 아니라 흐느끼는 거다. 나는 이 의자에 앉아 스펀지처럼 눈물을 짠다.

그리하여. 더욱더 기다린다. 기다리는 숙녀. 옛날에는 임신복을 파는 가게들에 그런 이름을 붙였는데. 기다리는 여자라니, 기차역에 있는 사람한테 더 잘 어울리는 말이다. 기다림이란 장소를 뜻하기도 한다. 기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기다림'이 될 수 있다. 내게는 이 방이 '기다림'의 장소다. 여기 있는 나는, 괄호 사이의 백지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여백이다. 227~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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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스 형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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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감되게 '인생'을 그려내는 작가라니!

최근에 '인생 작가'가 생겼다. 요즘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소설 한 권을 읽고 흠뻑 빠져버려서 멈출 수가 없었고, 『버지스 형제』를 마지막으로 결국 그녀의 모든 작품을 읽고 말았다. 여러 권을 읽다 보면 어딘가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녀의 작품은 모두 좋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루시 바턴과 그의 어머니로 추측되는) "엄마와 나는 버지스네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다."(9쪽) 그 이야기들이 유일하게 엄마와 나를 연결해 주고 지탱해 주는 것이었으니까.

버지스네 아이들은 모두 셋이다. 지금은 성공한 변호사가 된 큰아들 짐과 한때 형사 전문 변호사였던 밥, 그리고 그의 쌍둥이 여동생 수전. 그들은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다. 밥이 4살 때 자동차 기어를 만지며 놀다가 차가 굴러가 자기 아버지를 치여 죽게 했고, 밥은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밥은 형처럼 성공한 삶(흔히 정의하는 그런 삶)을 살지 못했다. 아내와 이혼한 뒤로는 술을 벗 삼아 살고 있는데, 그나마 가까이 형과 형수가 있어서 의지하며 살고 있다.

이때 수전의 아들 재커리(잭)가 메인 주에 정착한 난민 소말리족을 대상으로 '증오범죄'를 저질러 고향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수전은 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미 휴가 계획이 잡혀 있던 존 대신 밥이 고향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밥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잭의 웃는 얼굴이 신문 1면에 나오게 만들었다. 심지어 소말리족 여자를 차로 칠 뻔해서 짐의 차를 메인 주에 두고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짐은 이런 밥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났다. 왜냐하면 짐은 메인 주를 빛낸 인물이었고, 장차 정치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자신의 이름이 더 크게 거론되게 만든 것이다.

짐은 난민과 관련된 평화 집회에서 자신이 연설을 하면 잭의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밥과 함께 메인 주로 간다. 오히려 그 연설 때문에 잭의 사건은 더 꼬여버리고, 심지어 잭이 집을 나가버린다. 잭이 사라지던 날, 마지막으로 잭이 전화를 걸었던 사람도 짐이었지만 짐은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자괴감에 빠진 짐은 밥에게 고백한다. 사실 아버지를 죽인 것은 8살이었던 자신이라고. 아마도 짐은 그 사건 때문에 평생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안고 살았던 것이고, 자신 때문에 또한 명의 가족이 사라지자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늘 형과 함께 했던 밥은 형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이사를 해버린다. 심지어 형과 형수의 연락도 받지 않는다. 더 이상 "버지스로 살아가지 않으려는 것"(439쪽) 이었다.

이때 짐에게 성희롱 고소 협박 사건이 발생해 직장을 잃고 아내와 이혼까지 하게 된다. 짐은 예전의 짐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짐의 소식을 들은 밥이 짐을 데리러 간다. 짐과 밥은 메인으로 돌아간다. 가족이 있으니까, 그곳이 고향이니까.

이쯤 되면 제목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제목이 '버지스 남매들'이 아니라 『버지스 형제』인 걸까? 사실 수전은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 어머니는 딸보다 아들을 더 좋아했고, 언제나 수전에게만 화를 냈다. 그래서 수전은 아버지를 죽인 것이 밥이 아니라 자신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두 형제는 뉴욕에 살지만 여전히 고향에 머물러 있는 수전, 그녀는 형제로부터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심지어 수전은 난민이 된 소말리아인들 보다 더 외로웠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난민들에게 우호적이며 돕고 있다는 걸 내세우는 것은 좋아하지만 정작 가까이 있는 이웃이나 지인은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보지 않으니까.

친구들은 늘 서로에게 관심 있는 척했고, 그게 사회가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321쪽

어떻게 보면 밥은 실패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밥에게는 몇 초 만에 타인의 작은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어디에 있어도, 누구와 있어도 밥에게서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혼한 전 부인(심지어 재혼해서 생긴 아이들에게까지)까지 스스럼없이 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정도다. 어떻게 보면 짐이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밥이 있어서 이 가족들이 여전히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 내내 서로에게 다정하지 않았던 주인공들이 가족애를 나누며 훈훈하게 끝나서 흡족스러웠던 소설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려내는 '세상'은 소소하고 잔잔하다. 가끔씩 큰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이웃의 이야기니까. 뉴스 속에서나 볼법한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으면 살아가고 있고,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말하는 작가. 그래서 '인생 작가'가 되었다. 이토록 공감되게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녀의 작품이 겨우 여섯 권뿐이라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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