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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태엽 감는 새가 태엽오래전에 문학사상사에서 4권짜리로 나온 『태엽 감는 새』를 본 적이 있는데, 내용은 궁금했지만 도서관에는 언제나 1권이 대출 중이었고 부담스러운 권수에 표지 디자인도 너무 예스러워서 읽어보진 않았다. 바뀐 제목 때문에 긴가민가 했었는데,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미국 출간을 계기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개고한 문고판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소설 자체가 더 날렵해졌다고 하는데, 표지 역시 매력적으로 바뀌었고 권수도 세 권으로 줄었다. 물론 읽는 분량에는 차이가 없겠지만, 네 권에서 세 권으로 줄어든 것만으로도 권수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 줄었다고나 할까.
태엽 감는 새는 실제로 있는 새야.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소리밖에 못 들었어. 태엽 감는 새는 이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서 세계의 태엽을 조금씩 감아. 끼익끼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태엽을 감지. 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몰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훨씬 더 복잡하고 멋들어지고 거대한 장치가 세계를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사실은 태엽 감는 새가 온갖 장소에 가서, 가는 곳곳마다 조금씩 태엽을 감기 때문에 세계가 움직이는 거야. 태엽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에 달린 것처럼, 간단한 태엽이야. 그 태엽을 감기만 하면 되지. 하지만 그 태엽은 태엽 감는 새 눈에만 보여.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253쪽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화자 오카다 도오루는 최근 실직한 이후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잡지사에 다니고 있는 아내 구미코는 급하게 일자리를 찾을 필요 없다며 좀 더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중,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로부터 걸려온 다소 음란한 전화, 서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아내가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보라고 한다. 골목 끝에서 본 적이 있다고 해서 나섰다가 만난 소녀 가사하라 메이. 메이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소녀의 집 마당을 가로질러 미야와키 씨네 마당으로 간다고 한다. 도오루는 메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양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려보기도 한다. 메이는 도오루를 '태엽 감는 새 아저씨'라고 부른다. 결국 고양이를 찾지 못하자 아내는 도오루에게 점술가 가노 마르타를 만나보라고 한다. 초자연적 능력을 소유한 여자로 무상으로 상담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사라진 고양이에 대한 단서는 얻지 못했고, 대신 그녀의 여동생, 가노 크레타가 도오루의 처남인 와타야 노보루에게 겁탈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 아내 구미코 역시 집을 나간다.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며, 이혼을 원한다는 편지를 남긴 구미코. 가족이었던 아내와 고양이는 집을 나가고, 대신 이상한 여자들만 도오루 곁을 맴도는 시기. 심지어 도오루의 의식을 파고드는 이상한 꿈까지 꾸게 된다.
한편, 도오루와 아내는 구미코 집안이 높이 평가하는 점쟁이 혼다 씨를 만나곤 했었는데, 마미야 중위라는 사람이 혼다 씨가 도오루에게 남긴 유품을 전달하러 온다. 하지만 그 유품 박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마미야 중위는 자신과 도오루를 만나게 하려던 것이 혼다 씨의 유품이었다고 추측한다.
혼다 씨와 마미야 중위는 1930년대, 일본이 중국에서 벌였던 전쟁 중에 만난 사이로 그들은 그곳에서 벌어진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오루는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체험한다.
모든 것은 고리처럼 이어져 있고, 그 고리의 중심에는 태평양 전쟁 전의 만주가 있고, 중국 대륙이 있고, 1939년의 노몬한 전투가 있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3』, 277쪽
아내가 사라진 현실의 문제와 마미야 중위의 전쟁 이야기, 그리고 꿈속 이야기가 뒤엉켜 있는 복잡한 구조의 소설이다. 그로 인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들의 잔인함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게도 만들지만, 이야기 자체는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보통 하루키라고 하면 일본인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상실의 시대』를 가장 먼저 꼽기 마련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류의 소설보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해변의 카프카』 같은 하루키만의 환상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소설들을 더 좋아한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역시 후자의 부류에 속하는 책이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통해 하루키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솔직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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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인생에 길들면, 끝내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것조차 모르게 돼.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128쪽
우리가 이렇게 보고 있는 광경은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야.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것이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사실 세계는 훨씬 더 어둡고, 깊은 곳도 있고.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100쪽
사람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는 의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계속 똑같이 살 수 있다면, 누가 사는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겠어요. 『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1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