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뉴스에서 매일 듣게 되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날의 코로나19 상황을 들으면서 매일 접하게 되는 'PCR 검사'.

PCR(중합효소 연쇄반응)은 현재 유전 물질을 조작하여 실험하는 거의 모든 과정에 사용하고 있는 검사법으로, 검출을 원하는 표적 유전 물질을 증폭하는 방법(132쪽)이다. 이 PCR 검사를 통해 코로나19 검사뿐 아니라 과거에는 해결할 수 없었던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가 처음 PCR 기술을 발견했을 때는 주목받지 못했다. 멀리스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의 특허권을 신청하고 광고지를 제작해 적극적으로 실용적 가치를 알렸고, 1993년에는 이 기술로 노벨 화학 상을 수상했다. "현재 PCR 기술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는 위험한 전염병의 병원균을 신속히 검사하고, 법의학에서는 혈액, 모발, 정액, 타액, 피부조직 등에서 DNA 샘플을 얻어 분석, 감정하는 데 사용된다. 생물학 연구에서는 PCR 기술이 유전적 변화를 검사하는 유용한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유전자의 특정 조각을 증폭하여 직접적으로 관련된 DNA 구역을 분석할 수 있게 되어 해당 유전체(게놈) 전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이 기술은 계속 개선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생물학 영역에서 통용되고 있다. PCR의 활용도는 점점 넓어지고 있고, 새로운 상업적 기회도 여전히 열려 있다."(134~135쪽)

이렇게 PCR 기술이 이윤을 창출하는 기술로 자리 잡자, 생각지도 못한 우선권 소송이 일어난다. 멀리스는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 '세터스 코퍼레이션'에서 일할 때 PCR 기술을 발견했고, 그 사용권은 세터스 코퍼레이션이 갖게 됐다. 그런데 듀폰 社가 세터스로부터 권리 침해를 당했다며 고소를 한 것이다. PCR 기술은 196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하르 고빈드 코라나가 1970년대 초에 연구한 결과물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며, 듀폰 社는 코로나의 논문에 관한 저작권 양도를 받았으므로 결과적으로 세터스가 듀폰 社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라나는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했으며, 법원은 듀폰 社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 분자생물학자 아서 콘버그는 코라나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듀폰 社의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PCR 기술은 콘버그의 연구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누구나 DNA를 증폭해 낼 수 있었지만 멀리스처럼 한가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정말 어이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노벨상까지 수상한 콘버그는 이렇게 자신의 이력에 흑역사를 남긴 것이다.

진지하고 성실하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용기와 개척 정신이 없는 사람이다. 10쪽

놀랍게도 이런 흑역사를 과학사에서 찾는 게 어렵지 않다. 『과학자의 흑역사』는 천문학, 생물학, 수학, 화학, 물리학 부문에서 과학자들이 범한 26개의 실수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실수들은 이론과 관련된 것들도 있지만, 심리적 혹은 인격적인 문제로 초래된 것들도 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라도 피해 갈 수 없다. 스티븐 호킹, 아인슈타인도 오류를 남겼다.

지성과 냉철함으로 똘똘 뭉친 과학자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는 자신의 업적 때문에 혹은 자신의 명성과 권위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는 그의 실수담이 나오는데, 그는 자신의 실수를 지적한 과학자를 권위로 눌러버렸고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지 않았다. 원자론을 제창한 돌턴은 '원자'를 '분자'로 용어만 바꾸면 원자론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더욱 완벽하게 이론을 정리할 수 있다는 아보가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 50년 넘게 원자론과 분자론의 발전은 가로막혔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전통적 사고방식 때문에 새로운 발견을 인정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퀴리 부부의 딸과 사위, 즉 졸리오퀴리 부부는 학술적 교류와 이론적 사고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앞두고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인공방사선을 발견해 노벨 화학 상을 받았는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연구에 좀 더 민감했다면 중성자와 양성자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이런 이론적인 문제도 있지만,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경쟁자나 제자에 대한 질투는 어쩔 수가 없었다. 험프리 데이비는 질투심과 허영심 때문에 제자 패러데이가 발견한 것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데이비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발견은 패러데이의 발견이라고 하면서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이 있다. 어떻게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할 분야 혹은 대상을 정할 수 있었을까?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392쪽)고 했다. 아마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발견하고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생소한 과학자들과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이론(특히, 수학은)이 가끔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흑역사'들이 비단 과학자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 과학자 역시 사람이듯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들처럼 '흑역사'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1-10-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만으로도 굉장히 읽고 싶네요.
듀폰은 가해자로 피해자로 참 여러 군데 화자되는 것 같아요. ㅎㅎㅎ
다 돈과 권위 이런거 때문인 것 같어요 ㅎㅎ
인간의 흑역사인가 그 책도 잼있던데 ㅎㅎㅎ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