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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5월 29일, 故 김영갑 선생의 4주기를 맞이하며!
제주를 담은 사진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제주에 매혹되어 20년 동안 오로지 제주만 카메라에 담았다. 때마침 돌아오는 5월 29일은 사진 작가 김영갑 선생의 4주기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에서 제주를 왔다갔다하며 사진 작업을 하다가 제주에 매혹돼 1985년부터는 아예 제주에 눌러 앉았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그는 오로지 제주만 카메라에 담았고 사진만 생각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참 맘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었고, 그의 주변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는 오직 사진만 생각했다. 돈이 생기면 필름과 인화지를 먼저 구입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들판에서 고구마나 나무 뿌리라도 캐먹으면 됐고, 추운 겨울도 전기 장판 하나면 충분했다. 잘 곳이 없으면 홀로 외로이 지내는 노인들을 찾아가 잠시 의탁하면 됐다. 물론 웨딩 사진을 찍어주고 사진관을 운영한다면 충분히 생활고를 피할 수 있었지만,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제주를 모두 담으려면 그럴 수가 없었다.
또 그는 오로지 제주만 사진에 담았다. 사람들은 그가 제주 토박이가 아니기 때문에 제주에 매력을 느끼고, 제주 사람들이 찍는 사진과는 다른 느낌의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자신이 사진에 표현하고 싶은 주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사진 한장을 찍기 위해 며칠은 물론이고 몇달, 몇년을 기다리곤 한다. 그런 기다림 끝에 여느 사람들은 잡지 못한 자연의 웅장한 변화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우리는 늘 보며 생활하기 때문에 무심히 스쳐 지납니다. 그런데 육지 사람들은 관심 있게 바라보지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익숙한 풍경일지라도 새롭게 바라보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 사진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제가 뭍의 것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눈에 익숙해진 풍경들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죠." (p128)
사진을 향한 순수한 열정, 그것만이 삶의 이유였다!
사진 생각만 하면 배고픔도 추위도 몰랐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카메라 셔터조차 누를 수 없게 됐다. 뜬금없이 손이 떨렸고, 가만히 누워있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십만 명 중 한두 명 정도 발병한다는 루게릭 병으로 그의 몸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 오로지 사진만 생각했는데, 더이상 사진조차 찍을 수 없게 된 그. 처음에는 전국 곳곳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던 그도 완치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만의 사진 갤러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폐교를 개조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힘든 몸으로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몸을 더 망칠까봐, 애써 만든 갤러리에 찾는 사람이 없을까봐 걱정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02년 문을 열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다녀갔다. 그러나 그는 투병 6년만인 2005년 5월 29일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두모악 갤러리에 고이 잠들었다. 그가 고이 잠든 갤러리는 이제는 제주에 가면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 됐고, 사진을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생각했던 삶이 아니다. 나에게 허락된 하루를 절망 속에서 허무하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 쓰러지는 그날까지 하루를 희망으로 채워가자. 내일이 불안하다고 오늘마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긴장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를 희망과 설렘으로 살아가자. 또다시 오늘이 시작되면 새로운 하루에 몰입하는 것이다. (p194)
그는 외롭고 고달픈 길을 오직 사진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걸었다. 나는 감히 그를 사진과 제주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처럼 열정으로만 살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그는 미친 사람이다. 무언가에 미쳐보지 못한 사람은 그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울컥한다. 그의 고달픈 삶이 떠올라서, 그의 열정이 느껴져서 울컥한다. 그리고 움츠려있던 용기가 울컥 솟아난다. 자연은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데, 더이상 그의 사진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문학평론가 안성수는 그가 "범인(凡人)들의 카메라로는 접근 불가능한 자연의 황홀경을 담는 신기(神技)의 깨달음"(p250)을 얻어 "자연의 영적 신비를 누설하여 신의 노여움"(p253)을 사 일찍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의 사진과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안성수의 평에 공감이 간다.
본다는 행위에도 육감이 동원되어야 한다. 만져보고 느껴보고 들어보고 맡아보고 쳐다보고 난 후 종합적인 감동이어야 한다. 일출과 일몰 사진을 통해 내가 감상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둥근 해가 떠오르고 넘어가는 과정의 풍경뿐만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 감동까지 함께 나누고 싶다. (p135)
이 책은 그가 투병 중이던 2004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2007년 그의 2주기를 맞이해 특별 애장판이 나왔다. 1부 '섬에 홀려 사진에 미쳐'는 그가 10여년 전에 써둔 글로 사진과 제주에서의 생활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2부 '조금은 더 머물러도 좋을 세상'은 그가 투병 중에 쓴 글들로 그가 병과 함께 갤러리를 만드는 과정이 담겨 있다.
09-65. 『그 섬에 내가 있었네』2009/05/21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