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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세대와 공간, 장르를 뛰어넘어 그들이 만났다!
개인의 가장 사적인 기록이 일기라면, 두 사람 간의 가장 사적인 기록은 아마도 편지일 것이다. 며칠전 이사를 하면서 보물처럼 꼭꼭 숨겨뒀던 편지들을 발견했다. 상자 가득 담긴 편지들을 꺼내들고 누구에게서 받은 편지인지 하나씩 살펴봤다.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옛 친구들의 편지도 있고, 친구들이 군대나 유학 갔을 때 받은 편지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메일을 주고 받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학창시절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친구에게서도 많은 편지를 받았다. 편지라는 것은 비밀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솔직해질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가까운 친구들과는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던 것 같다.
시 쓰는 의사 마종기와 노래하는 공학도 루시드폴이 가장 사적인 매체인 편지를 통해 만났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편지는 아니다. 그들이 이용한 것은 바로 이메일이니까. 어쨌든 그들은 세대와 국경과 장르를 뛰어 넘어 만났다.
마종기는 연세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가 됐다. 그러나 그는 어릴적부터 시인의 재능을 보였던 사람이다. 마종기는 미국에서 틈틈이 시를 쓰며 고국에서 떠나온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다.
1인 프로젝트 밴드인 루시드폴로 활동중인 조윤석은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스위스 화학회로부터는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또한 마종기 시인처럼 틈틈이 앨범을 내고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시인 마종기와 가수 조윤석은 비록 살아온 세월과 살고 있는 공간, 하고 있는 일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고국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긴 만남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들은 편지를 통해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일과 관심사도 공유하려 한다. 때론 같은 길을 먼저 걸어온 인생의 선배로 조언이나 응원을 던지기도 하고, 또 때론 바다 건너의 일상을 나누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선후배 혹은 스승과 제자처럼 다정함이 묻어난다.
덕분에 그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약간의 부러움도 느꼈다. 요즘엔 전화나 인터넷 덕분에 편지 쓸 기회도 없었고, 편지로 나눌만한 이야기거리도 없었는데 오늘은 책을 덮고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편지를 한번 적어봐야겠다.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이 가졌던 긴만남을 기대하며.
"후회 안 하는 인생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그 후회의 양과 질이 문제이지요." (마종기, p119)
09-73. 『아주 사적인, 긴만남』 2009/06/14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