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 - 레드우드 숲에서 그랜드 캐니언까지, 대자연과 함께하는 종횡무진 미국 기행
차윤정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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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연을 관리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미국은 여행하기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나라다. 아기자기한 매력이 없다. 워낙 넓어서 그 큰 땅덩어리 중 어디를 얼마만큼 돌아다녀야 미국 여행 좀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전 미국 여행기라는 것은 모른채 그저 제목에 혹해 읽은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에서 저자는 무려 230일동안 미국을 횡단하다. 참으로 긴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 전역을 밟아보지 못했다. 이 정도되면 여행이 아니라 노동이다.  

   숲에서 노는 게 취미이자 업이라고 말하는 숲 생태 전문가 차윤정은 가족들과 함께 10일간의 미국 여행길에 오른다. 그녀는 10일동안 미국의 어디를 가려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숲을 따라 여행 일정을 잡았다. 언뜻 그녀의 일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면 보통은 도시를 중심으로 계획을 잡을텐데 숲이라니, 그것도 아프리카나 아마존도 아닌 미국에서 말이다.
   늘 빼곡히 들어선 도시의 빌딩 숲과 호화찬란한 불빛을 봐온 우리가 미국의 숲을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그녀의 여행을 따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미국의 숲을 볼 수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 뻗은 거대한 나무들, 물이 부족한 사막 한가운데 심은 나무들, 최대한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으려고 만든 조형물들은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들이다.
   미국인들은 도시를 만들고 빌딩을 올리는데만 힘을 쏟지 않았다. 과거에는 무분별한 벌목으로 사막화를 부추기고 생태를 파괴시켰다 하더라도, 현재는 그것을 보존하고 복원하는데 힘쓰고 있다. 그래서 몇 사람이 감싸 안아도 모자란 레드우드 숲을 볼 수 있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기차로 여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라스베이거스의 기적이었다. 사막 위에 세워진 호화찬란한 도시에는 정말 이곳이 사막이 맞을까 의심될 정도로 많은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라스베이거스는 물 부족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후버 댐의 건설과 이로 인해 만들어진 거대한 인공호인 미드 호수 덕분에 물 공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지만 미드 호수 수량은 줄었다고 한다. 그래서 잔디를 벗겨내고 사막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도 줄이고 있단다. 
   비단 라스베이거스가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에 물 부족을 겪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또한 물 부족 국가가 아닌가. 지난 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제한 급수를 실시한 곳도 여럿 있었다. 그들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뻗어나가는 모습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생태학적인 접근도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자연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미국은 원생의 자연을 간직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의 자연은 유럽인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아메리카 원주민에 의해 변형되어 있었고, 유럽인인 들어오면서 수탈의 차원이 한층 높아졌을 뿐이다. 그러나 존 뮤어 같은 선지자들에 의해 미국은 자연보호운동이 일찍이 시작되었으며, 한번 시작한 정책은 강력하게 추진되어 벼랑 끝의 자연을 붙잡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지나며 보는 미국의 황홀한 자연은 사실 무지한 사람에 의해 한순간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 세대가 미국에서 배워야 하는 진정한 미래 가치는 바로 이런 것들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p.154~155)

   내가 이 책을 통해 읽길 원한 것은 숲 생태전문가로서의 전문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녀는 여행 내내 숲만 돌아본 것이 아니다. 라스베이거스와 유니버설 스튜디오처럼 유명 관광지도 다녔다. 물론 여행하면서 유명 관광지를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대자연과 함께하는 종횡무진 미국 기행'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독자 또한 그런 것들을 읽게 될거라 기대하기 마련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온통 숲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로만 가득했다면 이 책이 지루하게 느껴졌을까?

09-79. 『숲에 바져 미국을 누비다』 2009/06/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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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책만 읽는
이권우 지음 / 연암서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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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책만 읽는 이와의 연결 통로는 역시 책이다!
   『죽도록 책만 읽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나같은 사람을 또 한명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죽도록 책만 읽는'이라는 수식어 다음에 올 단어가 무엇인지도 알았기 때문이다. 죽도록 책만 읽으면 바보지. 그 옛날 우리 조상들도 책만 보는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을 가리켜 바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과연 나는 죽도록 책만 읽고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아니란다. 죽지 않기 위해 매일 밥으로 된 양식을 먹고 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돈벌이도 하고 잠도 잘만큼 잔다. 그러니까 죽도록 책만 읽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나마 이 외의 시간들은 대부분 책을 읽는데 할애하니 좀 읽고 산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미 자신을 책읽기의 달인인 '호모 부커스'라 칭했던 이권우가 네 번째 서평집을 펴냈다. 책만 읽고 싶어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스스로 도서평론가라는 직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그는 과연  어떤 책들을 읽을까. 그의 독서 세계는 다양하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들을 문학, 인문, 과학, 예술 등 7개 부문으로 나눠 11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다양하게 읽는 그와는 달리 문학만 즐겨 읽는 탓으로 그가 소개한 대부분의 책들을 읽지 못했고, 몇몇 책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얼마전에 읽었던 닉혼비의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가 떠오른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대부분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라 공감할 수 없어서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도록 책만 읽는』도 똑같은 상황인데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내가 몰랐던 책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아무래도 닉 혼비가 내 스타일이 아니거나 내가 런던스타일이 아니었나보다.
   각설하고, 서평집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다.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은 그녀의 감성이 돋보였고, 김탁환의 『뒤적뒤적 끼적끼적』은 작가의 고민이 엿보였다. 그렇다면 이권우의 『죽도록 책만 읽는』은? 이 책은 독자로서의 주관적인 평이 돋보인다. 무조건 재미있고 유익한 것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책들의 장단점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서평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어떤 서평은 도서평론가라는 직함에 어울리게 날카로움을 보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서평은 과연 그를 프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만큼 글쓰기가 매끄럽지 못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있게 본 것은 그가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그는 어떻게 서평을 쓰느냐였다. 정해진 틀이 없이 자신만의 서평을 쓰는 것은 좋지만, 신문이나 블로그에 실리는 칼럼도 아니고 책을 펴내는 것인데 글쓰기의 기복은 없어야하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머리말을 통해 저자 스스로가 전문성이 부족한 글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으니, 그의 목록을 엿보는 대가라 여기리라.

09-78. 『죽도록 책만 읽는』 2009/06/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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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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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보다 축구가 더 재밌는 닉 혼비의 유쾌한 책읽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영문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상 수상작이라던가 베스트셀러라는 딱지가 붙은 책들도 내게는 그저 지루할 뿐이다. 그러니 '닉 혼비'라는 사람이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도 생소할 수 밖에 없다. 
   단지 책에 대한 책 혹은 서평집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의 책을 읽어왔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고 해도 외국에 적을 두고 있는 작가의 책은 큰 재미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출간되지 않아 공감을 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도 생소한 작가의 서평집을 택한 것은 그와 나 사이에는 책과 축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분명 유쾌하게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가 레저 활동으로서 살아 남으려면, 독서의 (불분명한) 혜택보다는 즐거움을 장려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도 책을 읽지 말라고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부탁이니 읽고 있는 책이 재미없어 죽을 지경이라면 내려놓고 다른 것을 읽기 바란다. (p13)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아무래도 나는 '런던스타일'이 맞지 않은가보다. 공감할 수 없어서 느꼈던 지루함을 이 책에서도 역시 느꼈던 것이다. 닉 혼비에게는 미안하지만, 위 문장을 읽는 순간 그의 말처럼 그냥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 달에 구입한 책과 읽은 책 목록을 먼저 보여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목록 속에서 친숙한 책보다는 낯선 책들을 더 자주 발견했다. 잠깐! 이 점은 좋았다. 한국어판으로 나온 책은 따로 표시가 돼 있어서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여느 서평집처럼 단순히 서평만 나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왜 그 책을 구입했으며, 왜 읽었는지 혹은 왜 읽지 못했는지를 변명(!)처럼 늘어 놓는다. 또 어떤 달에는 권수를 늘리기 위해 가볍고 얇은 책을 주로 읽었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또 어떤 달에는 갓 태어난 아이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었다고도 말한다. 특히, 그가 좋아하는 축구 리그가 열리고 열광하는 아스날 팀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을 때는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책보다는 축구가 훨씬 더 재밌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의 글쓰기는 상당히 유쾌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서평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써내려간 글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또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책이 재밌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책보다 재밌는 것이 많다고 하는 솔직함도 좋다. 나도 그처럼 책보다는 축구를 좋아하고, 재미없는 소설보다는 TV 오락 프로그램을 좋아하니까.
   그의 말처럼 일단 독서는 재밌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독서를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데, 그러면 그 무언가를 얻고나면 더이상 책은 거들떠 보지 않게 되는게 아닐까. 나처럼 실용이 아닌 오락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두어 달 전, 책을 읽고도 거의 다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울해졌다. 하지만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읽은 책의 내용을 다 잊어버렸어도 좋아하는 책을 처음 읽는 기분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p57)

   여러분의 나라에도 펭귄 현대 클래식 시리즈가 있는가? 여기 영국에서 그 시리즈는 젊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문학애호가들에게 큰 의미를 지녔었다. 지적 진지함, 그리고 역시 책을 좋아하는 여자들과의 하룻밤에 대한 욕망/의욕의 표시로 내 친구들과 나는 눈에 띄는 연두색 표지의 펭귄 현대 클래식 시리즈 한 권을 늘 가지고 다녔다. (p236)


09-76.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2009/06/1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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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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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제도, 간단하게 말하지만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어떤 책들은 내용이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제목이나 표지, 홍보 문구 때문에 독자들이 멀리하게끔 만든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라는 제목이나 표지, 그리고 "19세기 명품 악녀가 당신에게 말을 건다"는 홍보문구는 딱 칙릿과 어울린다. 아마 나처럼 칙릿을 멀리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유시민이 추천하는 소설'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읽어보기로 했다. 

   상당히 간단한 내용의 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전인 19세기 수리남이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을 때, 부유한 농장주의 딸인 마리아가 쓴 40장의 일기로 구성돼 있다. 14살 소녀인 마리아가 남긴 일기는 여느 소녀들의 일기와 같다. 마리아는 자신이 겪은 일상과 느낌들을 솔직하게 남겼다. 저자는 마리아의 일기를 통해 당시 노예제를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인 수리남에서 살고 있던 백인들은 흑인인 수리남 사람들을 노예로 부렸다. 마리아 또한 14살 생일 때 선물로 흑인 노예 꼬꼬를 받게 된다. 그들은 노예들을 마치 물건처럼 다뤘다. 쓸모가 없어지면 팔아버리고, 남편이 눈독 들이면 예쁜 얼굴에 상처를 내고, 우는 아이는 시끄럽다고 죽여 버렸다. 이런 모습들은 어른뿐만 아니라 아직 소녀인 마리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리아는 그녀의 부모 혹은 주위 사람들이 그러듯이 노예를 아무 감정없이 물건처럼 다룬다.  

   저자 돌프 페르로엔은 그들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노예를 대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어떤 감정도 죄책감도 없이 말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행동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습을 과연 지금은 발견할 수 없을까? 그저 2백년 전에 있었던 일 뿐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이 세계 어디에선가 엄연히 자행되고 있는 일이다. 간단한 내용의 소설이지만 결코 가볍게 읽고 넘길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09-75.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2009/06/1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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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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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와 공간, 장르를 뛰어넘어 그들이 만났다!

   개인의 가장 사적인 기록이 일기라면, 두 사람 간의 가장 사적인 기록은 아마도 편지일 것이다. 며칠전 이사를 하면서 보물처럼 꼭꼭 숨겨뒀던 편지들을 발견했다. 상자 가득 담긴 편지들을 꺼내들고 누구에게서 받은 편지인지 하나씩 살펴봤다.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옛 친구들의 편지도 있고, 친구들이 군대나 유학 갔을 때 받은 편지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메일을 주고 받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학창시절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친구에게서도 많은 편지를 받았다. 편지라는 것은 비밀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솔직해질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가까운 친구들과는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던 것 같다.

   시 쓰는 의사 마종기와 노래하는 공학도 루시드폴이 가장 사적인 매체인 편지를 통해 만났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편지는 아니다. 그들이 이용한 것은 바로 이메일이니까. 어쨌든 그들은 세대와 국경과 장르를 뛰어 넘어 만났다.

   마종기는 연세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가 됐다. 그러나 그는 어릴적부터 시인의 재능을 보였던 사람이다. 마종기는 미국에서 틈틈이 시를 쓰며 고국에서 떠나온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다.

   1인 프로젝트 밴드인 루시드폴로 활동중인 조윤석은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스위스 화학회로부터는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또한 마종기 시인처럼 틈틈이 앨범을 내고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시인 마종기와 가수 조윤석은 비록 살아온 세월과 살고 있는 공간, 하고 있는 일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고국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긴 만남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들은 편지를 통해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일과 관심사도 공유하려 한다. 때론 같은 길을 먼저 걸어온 인생의 선배로 조언이나 응원을 던지기도 하고, 또 때론 바다 건너의 일상을 나누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선후배 혹은 스승과 제자처럼 다정함이 묻어난다.

   덕분에 그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약간의 부러움도 느꼈다. 요즘엔 전화나 인터넷 덕분에 편지 쓸 기회도 없었고, 편지로 나눌만한 이야기거리도 없었는데 오늘은 책을 덮고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편지를 한번 적어봐야겠다.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이 가졌던 긴만남을 기대하며.


"후회 안 하는 인생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그 후회의 양과 질이 문제이지요." (마종기, p119)


09-73. 『아주 사적인, 긴만남』 2009/06/1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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