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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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대국이 개입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분쟁을 보면서 사실 난 팔레스타인의 편이었다.

2,000년 전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유대인이 안스럽기도 했지만, 그들은 각국에서 유대인의 명성을 떨치며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고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굳이 그들은 그 땅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민족이었고, 오히려 잃어버린 땅 때문에 더 똘똘 뭉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가난했다. 그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오랫동안 그곳이 자신들의 터전이라 믿으며 편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의 중국 대륙이 예전에 우리 고구려 용사들이 누비고 다녔던 곳이라고 해서 그곳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간혹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며 우리도 돌려달라고 미친 척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 팔레스타인의 편을 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강대국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힘을 키운 유대인들의 능력은 높이 사고 싶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 강대국들은 유대인들보다 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돕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박해를 받고 나치에 의해 희생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는다.

 

『지하실의 검은 표범』은 1948년 유대인에 의한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1년 전인 1947년의 이스라엘 이야기이다.

'열 두살하고도 삼 개월'의 소년 프로피는 '영국군이 철수한 후 이스라엘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태어나기 일 년 전',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다.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이른바 FOD(Freedom or Death)라는 비밀지하조직을 결성한다. 그리고 지하조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지하실의 검은 표범》의 제목을 따 자신의 별명으로 삼는다.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영국은 유대인에게 어떤 압제를 가했기에 어린 소년마저도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것일까. 사실 책에는 구체적인 압제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소년이기 때문이다. 비록 소년이 비밀지하조직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상상만 할 뿐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일은 없다. 게다가 소년의 부모가 소년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소년이 당한 제재라고는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경감과 집에 함께 간 후 부모님께 외출 금지를 당한 정도라고나 할까.

소년은 경감과 사제지간이다. 경감이 소년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면 소년은 경감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쳐 준다. 경감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면 진정한 배신자가 될 것 같아 절대 그에게 이름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함께하는 FOD 조직원들은 그를 배신자로 단정하고 재판에 회부하기도 한다.

사실 어린 소년의 눈과 입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인지라 그리 잔혹하다거나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소년의 눈과 입을 빌려 그 분위기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림자는 빼고요, 아빠. 조금 전에 세상의 모든 일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빠 말이 거의 옳아요. 하지만 예를 들어서 그림자는 한 면만 있다는 사실을 잊으셨어요. 못 믿으시겠거든 가서 확인해보세요. 실험도 한두 번 해볼 수 있겠죠. 법칙을 증명하는 것은 예외라고, 일반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주신 건 아빠 아니었어요? 직접 저한테 가르쳐 주시곤 아빠는 잊으셨군요." (P. 19)

 

실제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당시 여덟 살이었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원래 이름은 아모스 클라우스너였다. 이야기 속 프로피처럼 과격함을 쫓던 오즈는 열네 살 때 '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오즈'로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옮은 것과 옳은 것이 부딪칠 때는 그 '옮음'보다 더 높은 가치가 이겨야 한다. 그 가치는 바로 생명 그 자체다"라는 주제를 일관되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가장 높은 가치가 바로 생명이라면,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그들의 입장을 전해줄 수 있는 작가를 찾아볼 수 없다. 아모스 오즈 같은 작가가 필요하다.

 


정말로 일어난 일의 반대는 무엇일까?

"일어난 일의 반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_ 어머니

"일어난 일의 반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_ 아버지

"일어난 일의 반대는 거짓말과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야."_ 야르데나

(P. 226)

 

2007/12/2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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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
김현진 지음 / 해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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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를 읽지 말라는 자기계발서? 아니죠~

자기계발서, 정말 싫어하는 분야다. 나도 한땐 이 분야의 책들을 탐독한 적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문학책만 읽고 있는 나를 보며 혀를 찼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책들을 읽는지 보았더니 온통 자기계발서였다. 주로 자기계발서는 행간까지 읽어내야 하는 문학책들보다 읽기가 쉬웠고, 빨리 읽혔다.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자기계발서들을 읽어 봤지만, 그 얘기가 그 얘기였다.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 단 두 글자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줄줄 늘어 쓴 이야기, 읽어도 읽어도 절대 내 생활에 적용이 되지 않는 것들, 그날 이후로 내 책장 가득 꽂혀있는 자기계발서는 완전 천덕꾸러기 신세다.

 

자기계발서를 읽지 말라는 자기계발서? 코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러면서 작가도 자기계발서를 쓰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라는 제목과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라는 부제로부터 온 오해였다. 읽다보니 자기계발서라는 범주에 넣어서는 안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을 거쳐온 한 여자가 살아온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럼 이 책은 '에세이'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자기계발서를 덮으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자기계발"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한다. 단지 계발서를 읽으면서 나도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할 뿐인데 말이다. 나중에 누군가 또 나에게 혀를 차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는 꼭 그녀의 말을 빌려 쏘아줄테다.

 

사실 나 이렇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잘난 집에서 태어나 잘나게 살다가 밑으로 추락하여 지옥을 경험하고 다시 달콤한 인생을 맛보게 된 사람의 회고담이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낮이고 밤이고 자신의 몸을 굴려 꼭대기까지 오른 사람의 성공기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네들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의 눈물을 짜내는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매체를 통해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감동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현진, 사실 그녀도 그리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고교를 자퇴하고 단편영화를 찍었고,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뿜는 사람 냄새가 났다.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아도 경제적으로는 나아지지 않는 일상, 수술비 300만원을 구할 길이 없어 고민하는 그녀, 그나마 실업급여라도 받고 있어서 다행인 그녀. 그런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서 거부감보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래 나도 저랬어, 남들은 그깟 실업급여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상당한 목돈이었고 낮밤도 휴일도 없이 일을 해도 겨우 88만원 세대일 뿐인.

힘들어도 웃어야 하고, 언젠가는 나아질거라며 긍정적인 사고로 '화이팅'해야 한다고 말하는 여느 사람들과도 다르다. 그녀는 힘들면 울어도 되고, '화이팅'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여 준다.

 

내가 유일하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슬퍼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슬퍼할 권리는 내가 유일하게 행사 할 수 있는 권리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온전한 권리입니다. (p. 41)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많고 많은데 특별한 재능도 재주도 없이, 나 아니고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자리에 꽂혀 있는 똑같이 생긴 달걀판 속의 달걀이 된 기분은 누구라도 달갑지 않은 노릇입니다. (p. 261)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전에 읽었던 이청준님의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지인 중의 한분이 이청준님께 해주신 말이라고 한다.

"자신만이 그 어려운 어둠 속 길을 가지 않고 다른 수많은 사람도 각기 자신의 어둠 속 산길을 외롭고 힘들게 가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은 우리 삶의 길에 대한 근본적 이해뿐 아니라, 그 각각의 독행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일이냐. 네 소설은 적어도 그것을 할 수 있다."

(「귀항지없는 항로」, p280)

 

그랬다. 그녀의 이야기도 나같은 독행자들에게 커다란 위로를 주었다. 혹시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사라졌다. 그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녀를 토닥여 주고 싶다.

 

책 보면서 버티면 훨씬 나아요. 자기계발서나 성공을 위한 처세학, 연애 비결이나 돈 모으는 비결 같은 실질적인 거 말고 뜬끔없는 책을 읽어보는 거예요. (...)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단 하나 있으니 그게 품위입니다. 품위를 살 수 있는 것은 단지 노력입니다. 인생에 대해 더 알려고 하는 의지, 세상이 원래 슬프고 불공평하다는 것을 아는 사색, 그 슬픔에 공명하는 연민과 사려, 돈 주고도 못 사는 것, 그런 게 있고 그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내 팔자에 대한 한탄은 대폭 감소했어요. 그리고 관용과 사색은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p. 271)

 

2007/12/2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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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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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집은 달랑 세 식구가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한꺼번에 무언가를 많이 먹는 사람들도 아니다. 덕분에 냉장고 가득 들어있는 음식물 중에 1/3 이상은 음식물 수거함으로 직행하게 된다. 그나마도 올 봄에 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으니 이 정도지, 이전에는 정말 심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싸게 많이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만 많이 나올 뿐이기 때문이다. 그냥 버려지는 음식물을 볼 때마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아까운 줄은 알았다. 그러나 이 음식마저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을 떠올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떤 이들은 이 버려지는 음식이라도 먹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당신은 알고 있었는가?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아가 심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2006년 기준으로 65억 정도, 1984년 기준으로 농업생산력은 120억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이론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왜 굶주리는가? 당연히 분배의 문제에 있다. 굶주리고 있는 나라의 대부분은 사막화로 인해 경작지가 부족하거나 그곳을 경작할 농업 기술이 부족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식량자급을 할 수 없는 나라에 당연히 식량이 넘쳐나다 못해 썩고 있는 강대국에서 원조를 해줘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강대국은 이권이 없는 곳은 애써 나서서 도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엔 등의 기구에서 나서지만 자금이 문제다. 창고 안에서 그냥 썩고 있는 식량도 넘쳐나는데 자금이 문제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지금의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시장 원리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시장가가 결정되는 곳에서, 엄청난 식량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생산량을 줄이거나 버리면서 가격을 상승시킨다. 또 자국의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라에서 앞장서서 그런 행위를 하기도 한다. 가격은 상승하고 구호 자금은 얼마되지 않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식량 기구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식량 기구라는 것도 어차피 시장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졌으니.

 

이 뿐만이 아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기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조금만 노력해도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지만, 그 나라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더이상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배고픔이 해결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 자기네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강대국들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설 것이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굶주리고 있는 나라가 내부 개혁을 통해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면 발벗고 나서서 막는 것이다.

물론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은 외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도 군사적 혹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먹는 것을 가지고 국민들과 협상 혹은 협박을 하기도 한다.

굶주림으로 인해 생기는 병은 기아 뿐만이 아니다. 각종 비타민이 결핍되어 제대로 세상을 보기도 전에 실명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밟아보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하루 혹은 일주일 정도 끼니를 거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도태설'이라는 것이 있다. 한마디로 적자생존을 강조한 것인데, 이 이론을 기근에 적용한 '토머스 맬서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렇게 인구 증가로 지구가 곤란을 겪을 때 기근이 적당히 인구밀도를 조절해 주니 고마운 일이 아니냐며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라니, 정말 자신이 그들의 처지에 놓였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강대국의 소들은 배불리 먹고 살지만 제3세계의 어린이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세계, 자신들이 행한 식민지 정책의 결과로 생긴 현상을 불편해 하며 보지 않으려는 강대국들, 정말 참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다.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사진 한장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너무 굶주려서 피골이 상접한 아이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나의 모습 또한 이 사진 작가와 별반 다른게 없지 않나,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007/12/2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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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웨어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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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나는 모험담을 좋아했다.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앨리스, 회오리 바람을 타고 오즈의 나라로 떠난 도로시, 마법 가루를 뿌리고 네버랜드로 떠난 웬디, 노틸러스호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네모 선장 등.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런 모험을 동경하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리처드는 어느날 길가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평범한 남자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으레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곤 한다. 그가 아가씨를 도와준 이후, 그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게 된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그는 지상의 틈으로 굴러떨어져 지하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그런 세계가 있을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제일 먼저 그가 도와주었던 아가씨를 찾아간다. 그녀의 이름은 도어,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을 찾고나면 그가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에 그는 그녀의 모험에 나선다.

지하세계, 말그대로 온갖 사람들이 아니 온갖 것들이 존재했다. 확실하게 없다고 생각했던 천사가 등장하는가 하면, 오래 전에 흑사병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살인자, 괴수,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능력이 있는 자 등 리처드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여행이 끝나고 도어가 찾고자 하는 것을 얻게되자 리처드 또한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된다. 이름 그대로 '도어' 그녀가 지상과 지하를 오고갈 수 있는 문이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젊은 친구, 이 사실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실 두 개의 런던이 있네. 자네가 살던 런던 지상과 세상의 틈으로 굴러 떨어진 사람들이 사는 런던 지하가 있지. 이제 자네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된 걸 걸세. 잘 있길 바라네." (p.187~188)

런던의 지하세계에는 수백 명이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수천 명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래 이곳에서 살던 사람이거나 지상에 살다가 틈으로 떨어진 사람들이다. (p. 201)

아마 우리는 각자 다른 천사를 머리에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천사는 모두 날개가 있고 머리 위에 후광이 있으며 나팔을 불며 땅에는 평화를 가져다주고 인간에게 유익한 일을 하죠." (p. 204)

 

여러 권의 무협지를 읽다보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판타지 문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네버웨어』를 읽으면서 『해리포터』시리즈와 비슷한 설정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배경이 런던이라는 것, 물론 BBC에 방영될 TV 시리즈였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설정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를 보더라도 상당수의 이야기들이 서울을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도시에는 두 가지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인간'과 '머글'의 세계처럼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가 존재한다.

두번째, 주인공의 가족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가족들은 어떤 어둠의 세력에 의해서 모두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은 리처드라고 할 수 있지만, 모험의 주체는 '도어'이다. 그녀의 가족은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래서 그녀만은 해치지 않았다.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세번째, 어떤 이야기든지 마찬가지지만 반전이 버티고 있다. 대개 그 반전이라는 것은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사람이 그들을 배신하고 이용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다양한 이야기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나 인물들이 많다.

"자, 그럼. 그냥 걸어가세요. 뒤돌아보지 마시고요." (p. 511)

지상으로 가는 리처드에게 도어가 던지는 당부인데, 이것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를 연상시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판타지 모험을 펼쳤던 영화『젠틀맨 리그』가 자꾸 떠올랐다. 이 영화와 비슷한 스토리는 없었지만, 이것 저것이 다양하게 합쳐져 있었다는 점에서 떠올랐던 것이 아닐까. 

 

"당신이 만약 런던 지하에 사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먼저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당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해요. 그리고 설사 당신의 존재를 알아채더라도 지상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죠." (p. 274)

"천사들은 일단 삐뚤어지면 어는 누구보다도 사악해지지. 루시퍼도 한때 천사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게." (p. 443)

 

2007/12/2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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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삶
칼 번스타인 지음, 조일준 옮김 / 현문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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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힐러리는 대선 출마 선언을 한다. 어쩌면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이 될지도 모르는 그녀, 퍼스트레이디로서 현명한 내조자 역할을 하고 바람끼 많은 남편의 거짓말도 덮어줄 수 있는 그녀, 처음으로 상원의원이라는 자신의 직책을 가지고 집중 조명을 받았던 그녀. 그녀가 이런 모습을 얻게 된 것은 삶을 향한 그녀의 강한 열정 덕분이었다.

어릴적 그녀는 총명한 학생이기는 했지만 남의 이목을 끌만큼 예쁜 소녀는 아니었다. 정리하지 않은 곱슬머리에 아랫니보다 돌출한 윗니, 예쁜 눈을 가려버린 안경과 히피를 연상시키는 옷차림. 말 그대로 그녀는 촌티가 줄줄 흐르는 소녀였고, 그녀의 집안 역시 그녀가 외모에 관심을 기울여 치장할 만큼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다. 특히 보수적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마저 싫어했고, 상당히 폭력적이기도 했다. 그녀의 이런 환경은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한 웰즐리 여대에서의 자신감 상실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 특유의 강인함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여느 웰즐리 여대생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녀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한다.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 그녀, 예일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빌을 만나게 된다.

힐러리는 아버지로부터 억압 받으며 살고 있는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그런 능력이 충분했다. 그러나 빌을 만난 이후 그녀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자신의 삶이 아니라 빌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녀는 빌과 함께 하기 위해 작은 시골이었던 아칸소에 머물렀고, 빌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 유세를 따라 다녔다. 빌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도 그녀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빌이 르윈스키 사건으로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도 그녀는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힐러리가 가진 정치적 잠재력은 누구보다 월등했습니다." _ 빌 클린턴 (p. 160)

 

힐러리와 빌의 결합은 환상 궁합이라 할 수 있다. 힐러리는 빌과는 달리 강인했고 추진력이 있었다.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감히 잘라버리는 결단력도 있었다. 반면에 빌에게는 그러한 특성이 부족했다. 빌은 대인관계에서도 우유부단했으며,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조차 강력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우유부단함이 빌 특유의 유대감과 친밀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힐러리와 빌은 서로에게 없는 특성을 보완해주고, 그것으로부터 시너지 효과를 창줄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의 결합이 다분히 정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힐러리는 빌을 정말 사랑했다고 했다. 그리고 빌을 처음 만났을 당시 힐러리는 굳이 빌에게 기댈 이유가 없었다. 스스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선을 바꾸고 빌과의 결혼을 선택했던 것은 정말 그녀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빌을 사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빌은 그런 힐러리를 무서워했다. 르윈스키 사건 때 그가 탄핵을 받을 위기에 처하면서도 끝까지 거짓말을 주장했던 것은 힐러리가 진실을 알게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퍼스트레이디로서 상원의원이 된 그녀, 어쩌면 예전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모습처럼 너무 자신감에 넘쳐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달라졌다. 빌이 재위했던 8년 동안 그녀는 빌의 곁에서 그를 도와주며 빌의 장점으로 여겨지는 친화력과 정치력 등을 그녀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펴기보다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도 더이상 공격적이지 않으며, 굽혀야 할 때 굽힐 줄 아는 유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힐러리의 대선 출마와 그녀의 당선 여부는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관심사다. 앞으로 그녀는 어떤 행보로 또 한번의 "클린턴 시대"를 열지 궁금하다.

 


위대한 정치가의 특성은 신념에 대한 일관성과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불굴의 정신, 그리고 지도력을 대담하게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정체성의 인식이다. (p. 759)

 

힐러리는 《살아있는 역사》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 대부분의 내용이 유령작가에 의해 쓰여진 '자서전'에서 '환희'에 대해 기술된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p. 142)

 

책을 읽으면서 칼 번스타인은 이 책을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앞서 나온 힐러리의 또다른 책인 『살아있는 역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앞서 나온 책을 너무 의식한 탓일까) 상당 부분 그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살아있는 역사』가 유령작가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하며 그 내용들을 토대로 책을 펴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단순히 연대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물론 객관적인 사실만을 읽을 수 있어서 읽는 독자는 헷갈리지 않아도 되지만, 작가의 "관점"이 없다. 그가 힐러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힐러리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처럼 갈팡질팡 하고 있다.

마지막 맺음조차 '껍질 속의 그녀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을지 모르므로.'라고 마무리 하며 결론을 내리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전직 기자라는 타이틀이 그를 중립, 아니 판단유보의 상태로 만들었던 것일까. 적어도 이런 책을 기술함에 있어서는 대상에 대한 확실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를 덧붙이자면, "A는 B(B는 C(C는 D하는 것이다)이다)이다" 처럼 괄호를 중첩 사용해서 무언가를 부연 설명하는 행위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읽는데 짜증이 날 정도다. 차라리 하단에 따로 주를 달던가.

 

2007/12/2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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