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현재 우리 집은 달랑 세 식구가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한꺼번에 무언가를 많이 먹는 사람들도 아니다. 덕분에 냉장고 가득 들어있는 음식물 중에 1/3 이상은 음식물 수거함으로 직행하게 된다. 그나마도 올 봄에 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으니 이 정도지, 이전에는 정말 심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싸게 많이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만 많이 나올 뿐이기 때문이다. 그냥 버려지는 음식물을 볼 때마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아까운 줄은 알았다. 그러나 이 음식마저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을 떠올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떤 이들은 이 버려지는 음식이라도 먹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당신은 알고 있었는가?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아가 심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2006년 기준으로 65억 정도, 1984년 기준으로 농업생산력은 120억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이론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왜 굶주리는가? 당연히 분배의 문제에 있다. 굶주리고 있는 나라의 대부분은 사막화로 인해 경작지가 부족하거나 그곳을 경작할 농업 기술이 부족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식량자급을 할 수 없는 나라에 당연히 식량이 넘쳐나다 못해 썩고 있는 강대국에서 원조를 해줘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강대국은 이권이 없는 곳은 애써 나서서 도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엔 등의 기구에서 나서지만 자금이 문제다. 창고 안에서 그냥 썩고 있는 식량도 넘쳐나는데 자금이 문제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지금의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시장 원리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시장가가 결정되는 곳에서, 엄청난 식량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생산량을 줄이거나 버리면서 가격을 상승시킨다. 또 자국의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라에서 앞장서서 그런 행위를 하기도 한다. 가격은 상승하고 구호 자금은 얼마되지 않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식량 기구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식량 기구라는 것도 어차피 시장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졌으니.

 

이 뿐만이 아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기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조금만 노력해도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지만, 그 나라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더이상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배고픔이 해결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 자기네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강대국들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설 것이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굶주리고 있는 나라가 내부 개혁을 통해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면 발벗고 나서서 막는 것이다.

물론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은 외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도 군사적 혹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먹는 것을 가지고 국민들과 협상 혹은 협박을 하기도 한다.

굶주림으로 인해 생기는 병은 기아 뿐만이 아니다. 각종 비타민이 결핍되어 제대로 세상을 보기도 전에 실명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밟아보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하루 혹은 일주일 정도 끼니를 거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도태설'이라는 것이 있다. 한마디로 적자생존을 강조한 것인데, 이 이론을 기근에 적용한 '토머스 맬서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렇게 인구 증가로 지구가 곤란을 겪을 때 기근이 적당히 인구밀도를 조절해 주니 고마운 일이 아니냐며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라니, 정말 자신이 그들의 처지에 놓였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강대국의 소들은 배불리 먹고 살지만 제3세계의 어린이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세계, 자신들이 행한 식민지 정책의 결과로 생긴 현상을 불편해 하며 보지 않으려는 강대국들, 정말 참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다.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사진 한장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너무 굶주려서 피골이 상접한 아이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나의 모습 또한 이 사진 작가와 별반 다른게 없지 않나,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007/12/2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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