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강대국이 개입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분쟁을 보면서 사실 난 팔레스타인의 편이었다.

2,000년 전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유대인이 안스럽기도 했지만, 그들은 각국에서 유대인의 명성을 떨치며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고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굳이 그들은 그 땅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민족이었고, 오히려 잃어버린 땅 때문에 더 똘똘 뭉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가난했다. 그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오랫동안 그곳이 자신들의 터전이라 믿으며 편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의 중국 대륙이 예전에 우리 고구려 용사들이 누비고 다녔던 곳이라고 해서 그곳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간혹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며 우리도 돌려달라고 미친 척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 팔레스타인의 편을 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강대국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힘을 키운 유대인들의 능력은 높이 사고 싶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 강대국들은 유대인들보다 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돕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박해를 받고 나치에 의해 희생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는다.

 

『지하실의 검은 표범』은 1948년 유대인에 의한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1년 전인 1947년의 이스라엘 이야기이다.

'열 두살하고도 삼 개월'의 소년 프로피는 '영국군이 철수한 후 이스라엘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태어나기 일 년 전',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다.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이른바 FOD(Freedom or Death)라는 비밀지하조직을 결성한다. 그리고 지하조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지하실의 검은 표범》의 제목을 따 자신의 별명으로 삼는다.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영국은 유대인에게 어떤 압제를 가했기에 어린 소년마저도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것일까. 사실 책에는 구체적인 압제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소년이기 때문이다. 비록 소년이 비밀지하조직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상상만 할 뿐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일은 없다. 게다가 소년의 부모가 소년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소년이 당한 제재라고는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경감과 집에 함께 간 후 부모님께 외출 금지를 당한 정도라고나 할까.

소년은 경감과 사제지간이다. 경감이 소년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면 소년은 경감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쳐 준다. 경감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면 진정한 배신자가 될 것 같아 절대 그에게 이름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함께하는 FOD 조직원들은 그를 배신자로 단정하고 재판에 회부하기도 한다.

사실 어린 소년의 눈과 입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인지라 그리 잔혹하다거나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소년의 눈과 입을 빌려 그 분위기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림자는 빼고요, 아빠. 조금 전에 세상의 모든 일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빠 말이 거의 옳아요. 하지만 예를 들어서 그림자는 한 면만 있다는 사실을 잊으셨어요. 못 믿으시겠거든 가서 확인해보세요. 실험도 한두 번 해볼 수 있겠죠. 법칙을 증명하는 것은 예외라고, 일반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주신 건 아빠 아니었어요? 직접 저한테 가르쳐 주시곤 아빠는 잊으셨군요." (P. 19)

 

실제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당시 여덟 살이었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원래 이름은 아모스 클라우스너였다. 이야기 속 프로피처럼 과격함을 쫓던 오즈는 열네 살 때 '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오즈'로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옮은 것과 옳은 것이 부딪칠 때는 그 '옮음'보다 더 높은 가치가 이겨야 한다. 그 가치는 바로 생명 그 자체다"라는 주제를 일관되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가장 높은 가치가 바로 생명이라면,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그들의 입장을 전해줄 수 있는 작가를 찾아볼 수 없다. 아모스 오즈 같은 작가가 필요하다.

 


정말로 일어난 일의 반대는 무엇일까?

"일어난 일의 반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_ 어머니

"일어난 일의 반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_ 아버지

"일어난 일의 반대는 거짓말과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야."_ 야르데나

(P. 226)

 

2007/12/2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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