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
김현진 지음 / 해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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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를 읽지 말라는 자기계발서? 아니죠~

자기계발서, 정말 싫어하는 분야다. 나도 한땐 이 분야의 책들을 탐독한 적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문학책만 읽고 있는 나를 보며 혀를 찼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책들을 읽는지 보았더니 온통 자기계발서였다. 주로 자기계발서는 행간까지 읽어내야 하는 문학책들보다 읽기가 쉬웠고, 빨리 읽혔다.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자기계발서들을 읽어 봤지만, 그 얘기가 그 얘기였다.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 단 두 글자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줄줄 늘어 쓴 이야기, 읽어도 읽어도 절대 내 생활에 적용이 되지 않는 것들, 그날 이후로 내 책장 가득 꽂혀있는 자기계발서는 완전 천덕꾸러기 신세다.

 

자기계발서를 읽지 말라는 자기계발서? 코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러면서 작가도 자기계발서를 쓰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라는 제목과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라는 부제로부터 온 오해였다. 읽다보니 자기계발서라는 범주에 넣어서는 안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을 거쳐온 한 여자가 살아온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럼 이 책은 '에세이'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자기계발서를 덮으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자기계발"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한다. 단지 계발서를 읽으면서 나도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할 뿐인데 말이다. 나중에 누군가 또 나에게 혀를 차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는 꼭 그녀의 말을 빌려 쏘아줄테다.

 

사실 나 이렇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잘난 집에서 태어나 잘나게 살다가 밑으로 추락하여 지옥을 경험하고 다시 달콤한 인생을 맛보게 된 사람의 회고담이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낮이고 밤이고 자신의 몸을 굴려 꼭대기까지 오른 사람의 성공기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네들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의 눈물을 짜내는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매체를 통해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감동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현진, 사실 그녀도 그리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고교를 자퇴하고 단편영화를 찍었고,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뿜는 사람 냄새가 났다.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아도 경제적으로는 나아지지 않는 일상, 수술비 300만원을 구할 길이 없어 고민하는 그녀, 그나마 실업급여라도 받고 있어서 다행인 그녀. 그런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서 거부감보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래 나도 저랬어, 남들은 그깟 실업급여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상당한 목돈이었고 낮밤도 휴일도 없이 일을 해도 겨우 88만원 세대일 뿐인.

힘들어도 웃어야 하고, 언젠가는 나아질거라며 긍정적인 사고로 '화이팅'해야 한다고 말하는 여느 사람들과도 다르다. 그녀는 힘들면 울어도 되고, '화이팅'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여 준다.

 

내가 유일하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슬퍼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슬퍼할 권리는 내가 유일하게 행사 할 수 있는 권리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온전한 권리입니다. (p. 41)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많고 많은데 특별한 재능도 재주도 없이, 나 아니고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자리에 꽂혀 있는 똑같이 생긴 달걀판 속의 달걀이 된 기분은 누구라도 달갑지 않은 노릇입니다. (p. 261)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전에 읽었던 이청준님의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지인 중의 한분이 이청준님께 해주신 말이라고 한다.

"자신만이 그 어려운 어둠 속 길을 가지 않고 다른 수많은 사람도 각기 자신의 어둠 속 산길을 외롭고 힘들게 가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은 우리 삶의 길에 대한 근본적 이해뿐 아니라, 그 각각의 독행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일이냐. 네 소설은 적어도 그것을 할 수 있다."

(「귀항지없는 항로」, p280)

 

그랬다. 그녀의 이야기도 나같은 독행자들에게 커다란 위로를 주었다. 혹시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사라졌다. 그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녀를 토닥여 주고 싶다.

 

책 보면서 버티면 훨씬 나아요. 자기계발서나 성공을 위한 처세학, 연애 비결이나 돈 모으는 비결 같은 실질적인 거 말고 뜬끔없는 책을 읽어보는 거예요. (...)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단 하나 있으니 그게 품위입니다. 품위를 살 수 있는 것은 단지 노력입니다. 인생에 대해 더 알려고 하는 의지, 세상이 원래 슬프고 불공평하다는 것을 아는 사색, 그 슬픔에 공명하는 연민과 사려, 돈 주고도 못 사는 것, 그런 게 있고 그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내 팔자에 대한 한탄은 대폭 감소했어요. 그리고 관용과 사색은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p. 271)

 

2007/12/2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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