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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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65일 동안 매일 한 권씩 읽고 쓴 책들의 기록!

   일 년 동안 일주일에 책 한 권씩 읽고 서평을 쓰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 매일 포스팅하기에 도전한 적도 있었습니다. 일 년 동안 읽는 책들이 100권이 넘으니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건 쉽게 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읽고 쓸거라며 미뤄뒀다가 주말에 일이 생겨서 겨우 시간을 맞춘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매일 포스팅하기였는데, 매일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p.35)

 

   그런데 니나 상코비치는 일 년 동안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매일 한 편의 서평을 썼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어려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덕분 입니다.

   니나 상코비치는 3년 전 언니를 암으로 잃은 후 바쁘게 살았습니다. 가족들이 언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3년 동안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보냈습니다. 그녀 자신과 가족의 삶을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채웠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으로 삶을 빽빽하게 채워도, 아무리 빨리 달리고 돌아다녀도, 슬픔과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마침 그 때 400쪽이 넘는 묵직한 『드라큘라』를 하루만에 읽어내고는 모든 일을 멈추고 '독서의 한 해'를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녀의 결심에 남편은 매주 한 권을 추천했지만, 이미 묵직한 『드라큘라』를 하루만에 읽어낸 그녀는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독서를 하나의 규율로 정해두려고 한다. 독서에는 즐거움도 있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어떤 일정에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게 몰두하지 않으면 삶의 다른 부분들이 슬금슬금 침범해 들어와 시간을 훔쳐 가버릴 수 있다. 읽고 싶은 만큼 읽지 못할 수도 있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읽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면 도피는 불가능하다. 청소해야 할 먼지라든가 개켜야 할 옷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우유도 사야 하고 저녁 식사도 마련해야 하며 설거지도 해야 한다. 하지만 1년 동안은 그런 일이 절대로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나는 1년 동안 달리지도 않고 계획도 세우지 않고 가족도 돌보지 않으려고 한다. 1년 동안 '…… 하지 않기'를 하려 한다. 걱정하지 않기, 규제하지 않기, 돈을 벌지 않기. 물론 우리 가족은 다른 수입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워낙 오랫동안 한 사람의 수입으로만 살아왔으니 한 해 더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외의 지출은 뒤로 미루고 지금 가진 것으로 지낼 것이다.

   내 계획에 따르면 매일 책 한 권씩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마흔여섯 살 생일에 시작된다. 그날 첫째 권을 읽고 다음 날 첫 서평을 쓴다. 한 해 동안의 계획은 단순했다. 어떤 저자의 책도 한 권 이상은 읽지 않는다. 이미 읽은 책은 읽지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옛날 책을 읽는다. 예를 들면 『전쟁과 평화』는 안 되겠지만 톨스토이의 최후작인 『인연』은 읽을 수 있다. (p.43~44)

 

   하지만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아플 수도 있고, 꼭 참석해야만 하는 집안 행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무려 네 아이의 엄마입니다. 비록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은 없다고 하더라도, 네 아이의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누군가의 딸로서 그녀가 해야 하는 일들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도전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네 아이들은 그녀의 도전을 응원하고, 그녀가 잘 해낼 수 있도록 그녀의 일을 분담하고 도와 줍니다.

 

   "난 운이 좋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매일 책 한권씩 읽고 있어. 너희들이 내가 그걸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지. 무라카미 하루키도 나만큼 도움을 받지는 못했을 거라고 장담해. 가족이란 게 바로 그런 거지. 서로를 돕는 거." (p.224)

 

   그녀는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책 선정에도 신중을 기합니다. 한 시간에 70쪽 정도를 읽는 그녀는 대략 250에서 300쪽짜리 책을 선택합니다. 그녀의 도전 소식을 접한 지인들이 책 추천을 할 때면 곤란해 합니다. 독서란 지극히 사적인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지인들이 추천하거나 선물한 책이 그녀와 맞지 않을 확률도 많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매일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매일 서평을 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거나 매우 재미있게 읽은 책들의 서평은 더더욱 힘듭니다. 그때의 그 감정과 재미를 글로 옮긴다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니나 상코비치 또한 이런 고민에 빠집니다.

 

   책들을 검색하면서 제목이 좋은 책은 뭐든 골라내는 것은 여전하지만, 두께가 1인치 이하인 책만 골라낸다는 점에서 조금은 달라졌다. 보통 크기(세로 9에서 10인치)에 두께가 1인치인 책이라면 대략 250에서 300쪽짜리이다. 나는 한 시간에 70쪽 정도 읽으므로 300쪽짜리 책은 네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서평을 쓰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서평을 시작한 지 며칠도 안 되어 서평을 쓰는 데 얼마나 걸릴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다섯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책이 내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그 책이 뜻하는 바를 컴퓨터 화면에서 말로 옮기기가 얼마나 쉬운 책인지에 따라 달랐다. 평균 두 시간을 예상했는데, 실제로도 그 정도의 시간이 들었다. (p.67)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사람들이 흔히 겪곤 하는 일들을 그녀 역시 겪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살고 있지만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녀가 읽었던 책들 가운데 상당 부분을 함께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는 있지만, 아직 한국에는 없는 책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책들이 더 많았더라면, '혼자 책 읽는 시간'을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었을텐데요.

 

   독서는 나의 상실과 혼란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두렵고 피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살아간다. 공포와 혼란감, 고독과 슬픔의 부담을 나누어 짐으로써 나는 내 부담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부담은 이미 덜어지고 있다. 나의 욕망은 다시 파종되고 나의 필요는 다시 심어진다. 나는 들장미 가시와 잡초가 돋아나지 않는 정원에 있고, 혼자가 아니다. 거기에는 잡초를 뽑고 태양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 모두가 있다. (p.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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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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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라는 제목이 너무 좋았고,
요즘 유행하는 디지털 장례와도 잘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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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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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춤으로 표현해 보세요!

   수많은 작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가들의 책, 『그리스인 조르바』. 그들을 매료시킨 '조르바'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작가들의 극찬 덕분에 '조르바'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려고 여러 번 읽기를 시도해 봤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을 매료시킨 조르바의 '엄청난' 매력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빨간책방》을 통해서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김중혁 작가의 솔직한 소감에 더 공감이 갑니다. 어쩌면 작가들의 '극찬'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극찬'을 보지 않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기대'란 대부분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 '나'는 사랑하는 친구를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남습니다. 전쟁터로 떠나면서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 종이를 씹으면서 얼마나 더 있겠다는 것인가? 왜 나와 함께 가지 않나? 저 멀리 카프카스에, 위험에 처한 수천만 동포가 있는데? 함께 가서 구해 주자…… 구해 주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지. 하지만 자네는 이렇게 설교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라고……. 그럼 구해야지. 자네는 설교에만 소질이 있는 건가. 왜 나랑 같이 가지 않는 건가? (……) Au revoir(안녕), 이 책벌레야!" (p.10)

 

   '나'는 사랑하는 친구를 홀로 떠나보내는 것이 슬펐지만, 친구와 함께 떠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의 그 말이 '나'의 내부에 조용한 혁명(p.14)을 일으킨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표정이 내 내부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켰던 셈이다. 나는 내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았다. 나는 이 새로운 인생에 책 부스러기를 동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달쯤 전에 내가 바라던 기회가 왔다. 내게는 리비아에 면한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 한 자리를 빌려 둔 게 있었다. 나는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 여행이 신비로운 의미를 갖는 것이기나 한 듯이 들뜬 마음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내 삶의 양식을 바꾸려고 결심했던 것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이제껏 너는 그림자만 보고서도 만족하고 있었지? 자, 이제 내 너를 본질 앞으로 데려갈 테다. (p.14~15)

 

   크레타로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나' 앞에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 하나가 나타나 같이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 '나'는 그의 공갈 비슷한 태도와 격렬한 말투, 뱃사람 신드바드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고, 세상 돌아다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함께 가기로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와 '조르바'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는줄 알았고, 책 외에는 즐길 수 있는게 없었고, 행동할 줄도 몰랐던 '나'와 달리 '조르바'는 행동이 먼저인 사람입니다. 말투와 행동은 거칠고, 머리 속에는 온통 여자와 '그것' 생각 뿐이지만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오늘'을 즐기며 삽니다. 밥을 먹을 땐 오로지 음식과 먹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며, 일을 할 때는 또 그 일에만 집중합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에 그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Carpe Diem'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인물인거죠.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p.391)

 

   조르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고 싶으면 펄쩍 뛰어 일어나 춤을 춥니다. 엄청나게 행복할 때도, 반대로 불행이 휘몰아칠 때도 그 감정들을 춤으로 표현합니다. '나'처럼 무언가에 얽매여 있고,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이기 때문에,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때 그때의 감정들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조르바가 행복에 겨워 '나'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했을 때 '나'는 싫다고 거절합니다.

 

   "춤추시겠소? 춤춥시다!" 그가 내게 졸랐다.

   "싫습니다."

   "싫다고요?"

   그는 어리둥절해진 채 두 팔을 양옆으로 툭 떨구어 대롱거리게 했다.

   "좋습니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그럼 나 혼자 추겠소, 두목. 멀찌감치 떨어져 앉으시오. 받아 버리지 않게 말이오."

   그는 펄쩍 뛰어 오두막을 뛰쳐나가 신발과 코트와 조끼를 벗고 바짓가랑이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엔 갈탄이 시커멓게 묻어 있었다. 눈의 흰자위는 번쩍거렸다.

   이윽고 그는 춤에다 몸을 맡기고, 손뼉을 치는가 하면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밭끝으로 도는가 하면 무릎을 꿇었다 다리를 구부리고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흡사 고무로 만든 사람 같았다. 그는 갑자기 자연의 법칙을 정복하고 날아가려는 듯이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늙은 육신 속에 그 몸을 들어다 어둠 속에 유성처럼 던져 버리고 싶어 안달을 부리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오래는 공중에 머물 수 없어서 땅에 떨어질 때마다 그의 몸은 몹시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몸은 사정없이 흔들리면서도 다시 더 높이 뛰어올랐다. 뛰어올랐지만 그의 불쌍한 육신은 쉴 새 없이 다시 땅에 떨어졌다. (p.104~105)

 

   하지만 갈탄광 사업이 거덜 난 이후 조르바와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조르바와 함께한 몇 달 동안 비로소 '나'도 자유롭다는게 뭔지 알게 됐나 봅니다.

 

   "조르바! 이리 와보세요! 춤 좀 가르쳐 주세요!"

   조르바가 펄쩍 뛰어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춤이라고요, 두목? 정말 춤이라고 했소? 야호! 이리 오쇼!"

   "조르바, 갑시다. 내 인생은 바뀌었어요. 자, 놉시다!"

   "처음엔 제임베키코를 가르쳐 드리지. 이건 아주 거친 군대식 춤이지요. 게릴라 노릇 할 때, 출전하기 전에는 늘 이 춤을 추곤 했지요."

   그는 구두와 자주색 양말을 벗었다. 셔츠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더운지 그것마저 벗어부쳤다. 그러고는 나를 끌어당겼다.

   "두목, 내 발 잘 봐요. 잘 봐요!"

   그는 발을 내뻗으며 발가락만으로 땅을 살짝 건드리더니 그다음 발을 세웠다. 두 발이 맹렬하게 헝클어지자 땅바닥에서는 북소리가 났다.

   그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해봐요! 자, 같이!"

   우리는 함께 춤을 추었다. 조르바는 내게 춤을 가르쳐 주고 엄숙하고 끈기 있게, 그리고 부드럽게 틀린 부분을 고쳐주었다. 나는 차츰 대담해졌다. 내 가슴은 새처럼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브라보! 아주 잘하시는데!" 조르바는 박자를 맞추느라고 손뼉을 치며 외쳤다. "……브라보, 젊은이! 종이와 잉크는 지옥으로나 보내 버려! 상품, 이익 좋아하시네. 광산, 인부, 수도원 좋아하시네. 이것 봐요, 당신이 춤을 배우고 내 말을 배우면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 (p.415~416)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p.417)

 

   하지만 조르바는 말합니다. 아직 '나'는 자신처럼 자유로워지지 않았다고 말이죠.

 

   "……당신과 함께 갈 수도 있어요. 나는 자유로우니까."

   조르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내가 오기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정통으로 내 상처를 건드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p.428~429)

 

   조르바와 헤어진 '나'는 여전히 여행을 하며 책에 파묻혀 삽니다. 조르바는 이곳 저곳을 떠돌며 '순간'을 즐기며 살고 있고, 가끔씩 '나'에게 안부를 전해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5년쯤 지났을 때, '나'는 조르바에 대한 연대기를 쓰기시작하고 그 연대기가 완성되었을 때 조르바의 죽음을 전하는 편지 한 통을 받게 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60세 때 완성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34세 때의 카잔차키스와 함께 보낸 실존 인물을 토대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는 살면서 네 사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합니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 입니다. 그가 평생 무엇을 갈구하고 중요시했는지는 그의 묘비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p.464)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유'를 갈구합니다. 조르바처럼 완전하게 자유를 누리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르바의 이야기처럼, 저마다 '자유'를 갈구하기는 하지만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줄의 길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줄의 길이만큼 누릴 수 있는 '자유'마저도 누리지 못한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차마 끊어버리지는 못하더라도, 누릴 수 있을만큼은 누리고 '오늘'을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수많은 작가들을 매료시킨 『그리스인 조르바』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많은 작가들 혹은 책 읽는 사람들이 '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p.98)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과히 나쁠 것도 없겠지요!" (p.99~100)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p.119)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 (p.222)

 

   왜? 무슨 목적으로?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p.389~390)

 

   "그래요, 조르바. 당신 덕택이에요. 나도 당신 방법을 채용해 볼까 합니다.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 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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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소재원 지음 / 마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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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위안소,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참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평생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는 것,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먹으며 오손도손 사는 것, 사람들은 이렇게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박한 꿈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나면 말이죠.

 

   일명 '나병' 혹은 '문둥병'이라 불리는 한센병은 노르웨이 의사 한센에 의해 처음 발견돼 한센병이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 병이 심해지면 감각이 없어지고 팔꿈치나 손가락 같은 부위들에 변형이 오고 지속되면 말단 부위들이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전세계 24개국을 제외하면 연간 1만 명당 1건 미만으로 발생하는 드문 질환으로, 항생제를 통한 치료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날』의 주인공이 살았던 1930년대는 달랐습니다. 당시 일본은 소록도에 강제수용소를 만들어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시켰습니다. 그들을 격리시켰던 이유는 피가 튀면 병이 전염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은 한센병 환자 뿐아니라 병에 걸리지 않은 그들의 가족까지 함께 수용하며 한 달에 한번씩 만나게 해줬습니다. 이때도 전염을 우려해 멀찍히 서서 바라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의원 일을 하다가 징병 당한 서수철은 만주에서 부상을 당한 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한센병에 감염됩니다.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죽이고 싶었지만 피가 튀면 전염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를 소록도로 보냅니다. 서수철은 전쟁터에서 홀로 보내졌지만, 소록도에는 가족과 함께 살던 곳에서 쫓겨나 소록도로 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픈 환자도 아니고, 보균자도 아니였지만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보내진 사람들. 그곳에서 그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소록도를 아름답게 가꾸는데 힘을 보탰습니다. 지금의 소록도가 관광객을 끌만큼 아름다운 이유도, 모두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예수님이 계신 곳이 바로 벽돌공장 굴뚝이 있었던 자리야.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고 사지가 벌벌 떨려. 이 주위로는 가마가 수백 개 있었지. 지금이야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어. 이곳을 우리가 왜 더 예쁘고 찬란하게 꾸몄는지 아나? 잊고 싶어서였어. 그 어떤 공간보다 어여쁘게 꾸며야 했어. 지우고 싶었거든. 지옥보다 끔찍한 이 장소를 지워 버려야만 혔거든. 우리는 해방 후에도 이곳에 살아야만 하는데 끔찍한 기억은 어떤 짓거리를 해도 지워지지 않았어. 환자 중 하나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지워지지 않을 거라며 불 질러 버리자 했었는디, 그때 이곳에서 우리를 도와주던 서양인 수녀님이 말씀하셨지. 한센병은 저주받은 병이 아니다. 한센병은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 속죄해주는 것이라고. 즉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다른 누군가의 죄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며 하느님께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 말하는 예수님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뭔지 모르것지만 참 편해지더군. 뿌듯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과 같이 구원하고 싶어지기도 했어. 그때부터는 지우기보다는 하느님께 세상 사람들의 죄를 속죄해달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세상인 천국을 잠시라도 느끼고 죄를 뉘우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으로 이곳을 만들기 시작했어. 그래서 굴뚝자리에 십자가상을 세운 거여. 우리의 고통을 하느님이 알아주시고 많은 죄인들을 속죄해 달라고 말이여.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뿌듯함이 넘쳐났어. 그리고 우리를 학대한 사회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싶어졌어. 그래서인가? 조선 땅에서 가장 예쁘고 천국과 가장 비슷하게 만들고 싶어졌어. 사람들은 우리의 피와 땀, 죽음이 이곳을 만들었다는 걸 잘 모르지. 헌디 서운하지 않아. 우리가 만든 천국에서 사회 사람인 당신들이 웃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해. 비록 우리는 이제 다 늙어버려 돌아댕길 힘도 별로 없지만 우리의 꿈과 우리의 소망만은 충분히 이뤘어. 정말 행복해.

(……) 이 낙원을 보고 천국을 느끼려고 우리를 찾아오잖여. 보기만 하면 패죽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가 만든 천국을 당신들의 천국이라 여기며 우리에게 웃어주잖여. 이제는 우리들… 사람 대접 해.주.잖.여." (p.81~83)

 

   서수철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정혼자가 있었습니다. 서수철이 의원이 된 이유도, 그녀가 몸이 약해서, 그녀가 병이 나면 직접 돌봐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서수철이 징병을 당해 마을을 떠나자 오순덕은 돈을 벌기 위해 마을을 떠납니다. 군수 공장에서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많은 돈을 내면 전쟁터로 끌려간 서수철도 다시 빼올 수 있다는 이장의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순덕이 간 곳은 군수 공장이 아니라 위안소였습니다. 오순덕은 차라리 죽여 달라고 했지만, 일본군은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일본군에게 시달리던 오순덕은 자살까지 기도했지만, 함께 있던 한 여인 때문에 끝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p.112)

 

   그녀는 오순덕에게 한글을 가르쳐 줬고, 서수철에게 쓴 편지를 전달해 줬습니다. 그리고 곧 일본이 패망할 것이니, 꼭 살아 남아서 이 모든 일들을 증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순덕은 그녀와, 그녀가 전해주는 서수철의 편지 덕분에 이 잔인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살아 남았습니다.

 

   위생적인 공중변소. '위안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즉 위안소는 대변, 소변과 같이 더러운 욕망을 배설하는 곳이라는 상징이었다. 좀더 깊이 들어가 보자면 위생적인 공중변소라는 표현은 일본인들이 위안소 안에 있는 '위안부'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오로지 성적인 욕구 해소를 위한 도구로 여겼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안소 안의 생활은 어떤 잔인함을 상상하더라도 그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p.139)

 

   서수철과 오순덕의 바람은 아주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생 오손도손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대는 그들을 이렇게 갈라 놓았고, 소록도에 격리된 서수철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오순덕은 70년이 넘도록 얼굴 한번 볼 수 없었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그들은 오직 서로가 서로를 걱정했습니다. 상대의 아픈 상처 때문에 자신을 만나는 걸 주저하면 어쩌나, 오직 그 걱정 뿐이었습니다.  

 

   "행복한 기억은 사라질 수 있고 슬픈 기억은 묻어둘 수 있어. 하지만 수치스러운 기억은 절대 사라지거나 묻히지 않아. 방법이 있다면 자네와 같이 수치심을 준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는 길이 유일해. 수치심이라는 건 상처를 준 사람만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어. 그것도 공개적으로 말이여. 이해가 잘 가지 않나?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뗘? 나 보다 힘센 녀석이 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바지를 벗게 했어. 나는 맞는 게 두려워서 바지를 내렸지. 얼마나 수치스럽것어? 힘센 녀석은 그래 놓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돌아댕겨. 시간이 지나도 바지를 내린 나는 수치심을 평생 기억하고 살어. 난 수치심과 창피함, 주위의 놀림 땜시 사람들과 연락도 못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녀석은 친구도 많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얼마나 화가 나겄어. 그런데 말이여. 내가 용기를 내서 동창회에 나가 녀석을 만나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라고 혔어. 그때 만약 녀석이 내게 무릎을 끓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한다면 수치심은 금방 사라져. 녀석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잖여. 그리고 나를 놀리던 동창들도 녀석이 잘못한 걸 아는데 잘못한 녀석의 이야기를 유머로 생각하고 말할 수 없지. 말을 하는 순간 자기들도 잘못을 하는 것이기에 나를 놀리지 않는 거여. 자기들도 잘못을 한 사람의 편이 되어 버리는 것인게. 그럼 수치심은 꺾이게 되어 있어. 근디 녀석이 그런 일이 없었다면서 나보고 스스로 바지를 내린 거라 말혀 봐. 수치심은 배가 되는 거여. 또 억울함까지 더해져 더 큰 상처로 나는 무너져 내리는 거여." (p.114~115)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만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는 상처들. 이제는 할머니들이 힘든 몸을 이끌고, 아무런 답이 없어도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을 찾아가는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잊고 지냈던 『그날』의 아픔들을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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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배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의 이야기! 

 

   *에서 *까지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으니, 『밤의 나라 쿠파』를 읽을 계획인 분들은 이 부분 피해서 읽으시면 됩니다. 단, 이 부분에 이 소설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톰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향해 말했다. 고양이에게 말은 건다는 자체가 현기증 나는 사태였지만 어쩔 수 었었다. (p.18)

 

   정신을 차려 보니 가슴 위에 회색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생긴 것은 나도 분명 잘 아는 고양이 모양이었으나 '세상에 이런 고양이가 다 있다니.' 하고 멍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거치적거리니까 치워 버리려고, 엄밀히는 손가락으로 툭 튕겨 내는 식으로 밀쳐 버리고 싶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훅 불어 버리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 고양이가 "잠깐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는데." 하고 목소리를 내다니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p.20~21)

 

   말하는 회색 고양이, 게다가 이름이 '톰'이라니. 주인공 '나' 뿐아니라 우리 모두 이 고양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떠오르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죠. 우유를 주면 맛있게 먹고, 간지럼을 태우면 까르르 웃을 것 같은 이 고양이가 나쓰메 소세키의 '그 고양이'처럼 '나'에게 시크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이죠.

 

 

 

   "얘기 좀 들어줘."

   고양이가 그렇게 말했다.

   "내가 사는 나라에 갑자기 많은 일이 일어났어."

   "놀던 공원이라도 철거됐니?"

   "공원? 그게 뭐냐."

   고양이는 말했다.

   "전쟁이 끝났거든. 끝나서 지배를 받게 되었어."

   "전쟁? 전쟁이라니 그 전쟁?"

   "그 전쟁이라는 게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전쟁이 전쟁이지."

   "고양이가 전쟁을 한다고?"

   "아니."

   그는 내 가슴 위에 오도카니 앉은 채 털을 다듬었다. 정교한 장난감을 보는 기분이었다.

   "전쟁을 한 건 인간이야. 우리는 상관없어. 다만 같은 장소에 사니까 영향은 받아. 아, 그렇지. 너는 철국 인간이냐."

   "그런 나라는 모르는데."

   "우리 나라가 전쟁을 하던 게 철국이라는 옆 나라였거든."

   고양이는 말했다.

   "그 철국이라는 나라가 지배를 하러 왔다는 거야?"

   "맞아. 며칠 전에. 우리 마을에 와서 칸토를 죽였어." (p.23~24)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나'는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취미로 도피하기 위해 센다이 항구에서 나룻배를 타고 혼자 낚시를 하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출발할 때는 분명 날씨가 좋았는데, 이내 파도가 거칠어지면서 낚시배가 뒤집히고 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풀숲에서 덩굴로 꽁꽁 묶여 있는 상태였고,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고양이와 말을 하고 있다는 자체도 당황스러운데, 이 고양이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더 당황스럽습니다. 예전에 인간들이 전쟁을 하긴 했지만, 그것 벌써 아주 오래 전에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철국이라는 나라가 마을을 지배하러 왔다니요. 도대체 '톰'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톰'은 쿠파의 병사 이야기도 들려 줍니다. 100년 전부터 마을 젊은이들이 숲에 살고 있는 쿠파를 무찌르기 위해 복안 대장과 함께 마을을 떠났는데, 해마다 복안 대장만 마을로 다시 돌아오고 쿠파의 병사들은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쿠파를 무찌른 병사들은 투명해지고, 마을에 위기가 생기면 도와주기 위해 언젠가는 돌아와 줄거라고 믿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 마을 사람들은 총도, 말도 모른다라고 합니다. 그 마을을 지배하러 온 나라 이름도 '철국'이라니, 도대체 '톰'은 어느 시대에서 온 걸까요?

   그저 '톰'의 상상이라고 하기엔 이야기가 디테일하고, '톰'도 매우 진지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인간인 '나'에게 마을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그저 공무원일 뿐인 '나'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고 이런 부탁까지 하는 걸까요?

 

   고양이 '톰'의 이야기만큼이나 묘한 소설입니다. 그저 소설이라 생각하며 읽었는데, 인간 세상을 지켜보고 있는 고양이들이 등장해서 마치 우화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읽은듯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나쓰메 소세키의 '그 고양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그 고양이'라고 부릅니다 ─가 떠오르기도 하고, 이름이 '톰'이라는 것과 생김새를 보면 한때 유행했던 '말하는 고양이 톰'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 그리고 평범한 인간인 '나'에게 톰이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이유의 비밀은 『걸리버 여행기』에 있습니다. 걸리버가 표류하다가 도착한 소인국에서, 걸리버 역시 묶인 채로 눈을 뜨게 됩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톰'이 덩굴로 '나'를 꽁꽁 묶어 뒀던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 '톰'을 발견하고 '나'는 손가락으로 툭 튕겨 내거나 훅 불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정교한 장난감을 보는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톰'이 '나'에게 마을 사람들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톰'의 몸집을 보고 마을 사람들의 몸집을 어느 정도 짐작한 '나'는 '톰'과 함께 마을로 향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이사카 고타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작가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를 당하는 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배하는 자는 자신이 좀 더 쉽게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지배가 타당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지배를 당하는 자들에게 진실을 숨기고 정보를 차단합니다. 처음부터 '쿠파'라는 건 없었습니다. 그저 마을을 지배하고 있던 '칸토'가 계속 지배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죠. 아니 '칸토'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꾸며낸 이야기죠. 마을 사람들과 복안 대장의 대화 속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아마 100년 전 전쟁에서 졌을 때 그런 조건으로 결착이 지어졌을 거야."

   "그런 조건?"

   "해마다 이쪽에서 광석을 캘 인부를 보내겠다. 그 대신 어느 정도 자치를 인정해 달라고 말이야."

   "칸토가? 아, 아니랬죠. 그 전쟁이 끝났을 당시의 이쪽 나라 국왕이 그런 제안을 했다는 거군요."

   "그것밖에 길이 없었을 테지. 그리고 그 약속대로 이 나라에서는 해마다 몇 명씩을 철국에 보냈어. 다만 국왕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이겠나"

   "일을 하러 철국에 가는 거라고 하면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인가." 이이오가 질문을 던졌다.

   "그것도 있겠지. 하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가는 자기들 몸이 위험해질 거라고 생각한 게 더 컸을 거야." 복안 대장은 오른쪽 눈을 덮은 천을 만졌다.

   "국왕이 위험해져?"

   "이 나라는 쭉 같은 집안이 국왕이 되어 왔어. 뒤집어 보면 국왕이라는 근거는 '대대로 이어져 왔으니까' 하나밖에 없는 거야. 능력은 상관이 없지. 따라서 국왕인 자기들이 철국에 굽실거리는 한심한 인간인 줄 안 순간, 그 자리에서 끌려 내려올 거라는 불안을 안게 됐더라도 이상할게 없어. 자기들 입장이 위태로워질 거라고 생각하고. 중요한 것은 진실을 전하는 것보다 위엄을 지키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야."

   그게 그렇게 되나요?" 겐은 감이 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국왕들은 쿠파의 존재를 퍼뜨리고 병사 파견을 시작했어. 옛날에 칸토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지. 국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비결을 아느냐고."

   "비결 같은 게 있습니까."

   "그 남자가 말하기에는."

   "바깥에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적을 준비하는 거다.'라고, 그렇게 말했어."

   "적을 준비한다?"

   "그래 놓고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는 거라고. '걱정 마라. 내가 너희를 그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겠다.'라고 말이야. 그러면 모두가 자신을 의지하고 반항하는 인간은 줄어든다. 칸토는 그렇게 말했어."

   "칸토가 그런 말을."

   "그 남자는 머리에 그런 생각밖에 들어 있지 않았어. 뭐 그런 이유에서 이 나라 바깥에 무시무시한 적을 꾸며 내기로 한 거야."

   "그게." 겐이 멈칫거리며 말했다. "쿠파입니까?"

   "그래, 그게 바로 쿠파다." (p.447~449) *

 

   '나'처럼 '톰'의 이야기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책을 읽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분명 현실을 지적하고 있지만, 아닌 척 고양이의 입을 빌려 전하는 것. 이게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자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이 아닐까요?

 

   "누구든 자기보다 작은 존재에 관해서는 의식이 흐려지기 마련인지도 몰라. 배짱을 부리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도 너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p21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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