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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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춤으로 표현해 보세요!

   수많은 작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가들의 책, 『그리스인 조르바』. 그들을 매료시킨 '조르바'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작가들의 극찬 덕분에 '조르바'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려고 여러 번 읽기를 시도해 봤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을 매료시킨 조르바의 '엄청난' 매력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빨간책방》을 통해서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김중혁 작가의 솔직한 소감에 더 공감이 갑니다. 어쩌면 작가들의 '극찬'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극찬'을 보지 않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기대'란 대부분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 '나'는 사랑하는 친구를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남습니다. 전쟁터로 떠나면서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 종이를 씹으면서 얼마나 더 있겠다는 것인가? 왜 나와 함께 가지 않나? 저 멀리 카프카스에, 위험에 처한 수천만 동포가 있는데? 함께 가서 구해 주자…… 구해 주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지. 하지만 자네는 이렇게 설교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라고……. 그럼 구해야지. 자네는 설교에만 소질이 있는 건가. 왜 나랑 같이 가지 않는 건가? (……) Au revoir(안녕), 이 책벌레야!" (p.10)

 

   '나'는 사랑하는 친구를 홀로 떠나보내는 것이 슬펐지만, 친구와 함께 떠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의 그 말이 '나'의 내부에 조용한 혁명(p.14)을 일으킨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표정이 내 내부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켰던 셈이다. 나는 내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았다. 나는 이 새로운 인생에 책 부스러기를 동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달쯤 전에 내가 바라던 기회가 왔다. 내게는 리비아에 면한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 한 자리를 빌려 둔 게 있었다. 나는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 여행이 신비로운 의미를 갖는 것이기나 한 듯이 들뜬 마음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내 삶의 양식을 바꾸려고 결심했던 것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이제껏 너는 그림자만 보고서도 만족하고 있었지? 자, 이제 내 너를 본질 앞으로 데려갈 테다. (p.14~15)

 

   크레타로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나' 앞에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 하나가 나타나 같이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 '나'는 그의 공갈 비슷한 태도와 격렬한 말투, 뱃사람 신드바드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고, 세상 돌아다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함께 가기로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와 '조르바'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는줄 알았고, 책 외에는 즐길 수 있는게 없었고, 행동할 줄도 몰랐던 '나'와 달리 '조르바'는 행동이 먼저인 사람입니다. 말투와 행동은 거칠고, 머리 속에는 온통 여자와 '그것' 생각 뿐이지만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오늘'을 즐기며 삽니다. 밥을 먹을 땐 오로지 음식과 먹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며, 일을 할 때는 또 그 일에만 집중합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에 그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Carpe Diem'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인물인거죠.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p.391)

 

   조르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고 싶으면 펄쩍 뛰어 일어나 춤을 춥니다. 엄청나게 행복할 때도, 반대로 불행이 휘몰아칠 때도 그 감정들을 춤으로 표현합니다. '나'처럼 무언가에 얽매여 있고,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이기 때문에,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때 그때의 감정들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조르바가 행복에 겨워 '나'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했을 때 '나'는 싫다고 거절합니다.

 

   "춤추시겠소? 춤춥시다!" 그가 내게 졸랐다.

   "싫습니다."

   "싫다고요?"

   그는 어리둥절해진 채 두 팔을 양옆으로 툭 떨구어 대롱거리게 했다.

   "좋습니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그럼 나 혼자 추겠소, 두목. 멀찌감치 떨어져 앉으시오. 받아 버리지 않게 말이오."

   그는 펄쩍 뛰어 오두막을 뛰쳐나가 신발과 코트와 조끼를 벗고 바짓가랑이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엔 갈탄이 시커멓게 묻어 있었다. 눈의 흰자위는 번쩍거렸다.

   이윽고 그는 춤에다 몸을 맡기고, 손뼉을 치는가 하면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밭끝으로 도는가 하면 무릎을 꿇었다 다리를 구부리고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흡사 고무로 만든 사람 같았다. 그는 갑자기 자연의 법칙을 정복하고 날아가려는 듯이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늙은 육신 속에 그 몸을 들어다 어둠 속에 유성처럼 던져 버리고 싶어 안달을 부리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오래는 공중에 머물 수 없어서 땅에 떨어질 때마다 그의 몸은 몹시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몸은 사정없이 흔들리면서도 다시 더 높이 뛰어올랐다. 뛰어올랐지만 그의 불쌍한 육신은 쉴 새 없이 다시 땅에 떨어졌다. (p.104~105)

 

   하지만 갈탄광 사업이 거덜 난 이후 조르바와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조르바와 함께한 몇 달 동안 비로소 '나'도 자유롭다는게 뭔지 알게 됐나 봅니다.

 

   "조르바! 이리 와보세요! 춤 좀 가르쳐 주세요!"

   조르바가 펄쩍 뛰어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다.

   "춤이라고요, 두목? 정말 춤이라고 했소? 야호! 이리 오쇼!"

   "조르바, 갑시다. 내 인생은 바뀌었어요. 자, 놉시다!"

   "처음엔 제임베키코를 가르쳐 드리지. 이건 아주 거친 군대식 춤이지요. 게릴라 노릇 할 때, 출전하기 전에는 늘 이 춤을 추곤 했지요."

   그는 구두와 자주색 양말을 벗었다. 셔츠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더운지 그것마저 벗어부쳤다. 그러고는 나를 끌어당겼다.

   "두목, 내 발 잘 봐요. 잘 봐요!"

   그는 발을 내뻗으며 발가락만으로 땅을 살짝 건드리더니 그다음 발을 세웠다. 두 발이 맹렬하게 헝클어지자 땅바닥에서는 북소리가 났다.

   그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해봐요! 자, 같이!"

   우리는 함께 춤을 추었다. 조르바는 내게 춤을 가르쳐 주고 엄숙하고 끈기 있게, 그리고 부드럽게 틀린 부분을 고쳐주었다. 나는 차츰 대담해졌다. 내 가슴은 새처럼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브라보! 아주 잘하시는데!" 조르바는 박자를 맞추느라고 손뼉을 치며 외쳤다. "……브라보, 젊은이! 종이와 잉크는 지옥으로나 보내 버려! 상품, 이익 좋아하시네. 광산, 인부, 수도원 좋아하시네. 이것 봐요, 당신이 춤을 배우고 내 말을 배우면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 (p.415~416)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p.417)

 

   하지만 조르바는 말합니다. 아직 '나'는 자신처럼 자유로워지지 않았다고 말이죠.

 

   "……당신과 함께 갈 수도 있어요. 나는 자유로우니까."

   조르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내가 오기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정통으로 내 상처를 건드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p.428~429)

 

   조르바와 헤어진 '나'는 여전히 여행을 하며 책에 파묻혀 삽니다. 조르바는 이곳 저곳을 떠돌며 '순간'을 즐기며 살고 있고, 가끔씩 '나'에게 안부를 전해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5년쯤 지났을 때, '나'는 조르바에 대한 연대기를 쓰기시작하고 그 연대기가 완성되었을 때 조르바의 죽음을 전하는 편지 한 통을 받게 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60세 때 완성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34세 때의 카잔차키스와 함께 보낸 실존 인물을 토대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는 살면서 네 사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합니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 입니다. 그가 평생 무엇을 갈구하고 중요시했는지는 그의 묘비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p.464)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유'를 갈구합니다. 조르바처럼 완전하게 자유를 누리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르바의 이야기처럼, 저마다 '자유'를 갈구하기는 하지만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줄의 길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줄의 길이만큼 누릴 수 있는 '자유'마저도 누리지 못한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차마 끊어버리지는 못하더라도, 누릴 수 있을만큼은 누리고 '오늘'을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수많은 작가들을 매료시킨 『그리스인 조르바』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많은 작가들 혹은 책 읽는 사람들이 '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p.98)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과히 나쁠 것도 없겠지요!" (p.99~100)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p.119)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 (p.222)

 

   왜? 무슨 목적으로?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p.389~390)

 

   "그래요, 조르바. 당신 덕택이에요. 나도 당신 방법을 채용해 볼까 합니다.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 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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