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소재원 지음 / 마레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소록도, 위안소,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참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평생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는 것,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먹으며 오손도손 사는 것, 사람들은 이렇게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박한 꿈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나면 말이죠.

 

   일명 '나병' 혹은 '문둥병'이라 불리는 한센병은 노르웨이 의사 한센에 의해 처음 발견돼 한센병이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 병이 심해지면 감각이 없어지고 팔꿈치나 손가락 같은 부위들에 변형이 오고 지속되면 말단 부위들이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전세계 24개국을 제외하면 연간 1만 명당 1건 미만으로 발생하는 드문 질환으로, 항생제를 통한 치료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날』의 주인공이 살았던 1930년대는 달랐습니다. 당시 일본은 소록도에 강제수용소를 만들어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시켰습니다. 그들을 격리시켰던 이유는 피가 튀면 병이 전염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은 한센병 환자 뿐아니라 병에 걸리지 않은 그들의 가족까지 함께 수용하며 한 달에 한번씩 만나게 해줬습니다. 이때도 전염을 우려해 멀찍히 서서 바라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의원 일을 하다가 징병 당한 서수철은 만주에서 부상을 당한 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한센병에 감염됩니다.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죽이고 싶었지만 피가 튀면 전염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를 소록도로 보냅니다. 서수철은 전쟁터에서 홀로 보내졌지만, 소록도에는 가족과 함께 살던 곳에서 쫓겨나 소록도로 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픈 환자도 아니고, 보균자도 아니였지만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보내진 사람들. 그곳에서 그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소록도를 아름답게 가꾸는데 힘을 보탰습니다. 지금의 소록도가 관광객을 끌만큼 아름다운 이유도, 모두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예수님이 계신 곳이 바로 벽돌공장 굴뚝이 있었던 자리야.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고 사지가 벌벌 떨려. 이 주위로는 가마가 수백 개 있었지. 지금이야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어. 이곳을 우리가 왜 더 예쁘고 찬란하게 꾸몄는지 아나? 잊고 싶어서였어. 그 어떤 공간보다 어여쁘게 꾸며야 했어. 지우고 싶었거든. 지옥보다 끔찍한 이 장소를 지워 버려야만 혔거든. 우리는 해방 후에도 이곳에 살아야만 하는데 끔찍한 기억은 어떤 짓거리를 해도 지워지지 않았어. 환자 중 하나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지워지지 않을 거라며 불 질러 버리자 했었는디, 그때 이곳에서 우리를 도와주던 서양인 수녀님이 말씀하셨지. 한센병은 저주받은 병이 아니다. 한센병은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 속죄해주는 것이라고. 즉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다른 누군가의 죄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며 하느님께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 말하는 예수님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뭔지 모르것지만 참 편해지더군. 뿌듯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과 같이 구원하고 싶어지기도 했어. 그때부터는 지우기보다는 하느님께 세상 사람들의 죄를 속죄해달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세상인 천국을 잠시라도 느끼고 죄를 뉘우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으로 이곳을 만들기 시작했어. 그래서 굴뚝자리에 십자가상을 세운 거여. 우리의 고통을 하느님이 알아주시고 많은 죄인들을 속죄해 달라고 말이여.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뿌듯함이 넘쳐났어. 그리고 우리를 학대한 사회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싶어졌어. 그래서인가? 조선 땅에서 가장 예쁘고 천국과 가장 비슷하게 만들고 싶어졌어. 사람들은 우리의 피와 땀, 죽음이 이곳을 만들었다는 걸 잘 모르지. 헌디 서운하지 않아. 우리가 만든 천국에서 사회 사람인 당신들이 웃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해. 비록 우리는 이제 다 늙어버려 돌아댕길 힘도 별로 없지만 우리의 꿈과 우리의 소망만은 충분히 이뤘어. 정말 행복해.

(……) 이 낙원을 보고 천국을 느끼려고 우리를 찾아오잖여. 보기만 하면 패죽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가 만든 천국을 당신들의 천국이라 여기며 우리에게 웃어주잖여. 이제는 우리들… 사람 대접 해.주.잖.여." (p.81~83)

 

   서수철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정혼자가 있었습니다. 서수철이 의원이 된 이유도, 그녀가 몸이 약해서, 그녀가 병이 나면 직접 돌봐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서수철이 징병을 당해 마을을 떠나자 오순덕은 돈을 벌기 위해 마을을 떠납니다. 군수 공장에서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많은 돈을 내면 전쟁터로 끌려간 서수철도 다시 빼올 수 있다는 이장의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순덕이 간 곳은 군수 공장이 아니라 위안소였습니다. 오순덕은 차라리 죽여 달라고 했지만, 일본군은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일본군에게 시달리던 오순덕은 자살까지 기도했지만, 함께 있던 한 여인 때문에 끝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p.112)

 

   그녀는 오순덕에게 한글을 가르쳐 줬고, 서수철에게 쓴 편지를 전달해 줬습니다. 그리고 곧 일본이 패망할 것이니, 꼭 살아 남아서 이 모든 일들을 증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순덕은 그녀와, 그녀가 전해주는 서수철의 편지 덕분에 이 잔인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살아 남았습니다.

 

   위생적인 공중변소. '위안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즉 위안소는 대변, 소변과 같이 더러운 욕망을 배설하는 곳이라는 상징이었다. 좀더 깊이 들어가 보자면 위생적인 공중변소라는 표현은 일본인들이 위안소 안에 있는 '위안부'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오로지 성적인 욕구 해소를 위한 도구로 여겼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안소 안의 생활은 어떤 잔인함을 상상하더라도 그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p.139)

 

   서수철과 오순덕의 바람은 아주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생 오손도손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대는 그들을 이렇게 갈라 놓았고, 소록도에 격리된 서수철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오순덕은 70년이 넘도록 얼굴 한번 볼 수 없었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그들은 오직 서로가 서로를 걱정했습니다. 상대의 아픈 상처 때문에 자신을 만나는 걸 주저하면 어쩌나, 오직 그 걱정 뿐이었습니다.  

 

   "행복한 기억은 사라질 수 있고 슬픈 기억은 묻어둘 수 있어. 하지만 수치스러운 기억은 절대 사라지거나 묻히지 않아. 방법이 있다면 자네와 같이 수치심을 준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는 길이 유일해. 수치심이라는 건 상처를 준 사람만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어. 그것도 공개적으로 말이여. 이해가 잘 가지 않나?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뗘? 나 보다 힘센 녀석이 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바지를 벗게 했어. 나는 맞는 게 두려워서 바지를 내렸지. 얼마나 수치스럽것어? 힘센 녀석은 그래 놓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돌아댕겨. 시간이 지나도 바지를 내린 나는 수치심을 평생 기억하고 살어. 난 수치심과 창피함, 주위의 놀림 땜시 사람들과 연락도 못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녀석은 친구도 많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얼마나 화가 나겄어. 그런데 말이여. 내가 용기를 내서 동창회에 나가 녀석을 만나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라고 혔어. 그때 만약 녀석이 내게 무릎을 끓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한다면 수치심은 금방 사라져. 녀석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잖여. 그리고 나를 놀리던 동창들도 녀석이 잘못한 걸 아는데 잘못한 녀석의 이야기를 유머로 생각하고 말할 수 없지. 말을 하는 순간 자기들도 잘못을 하는 것이기에 나를 놀리지 않는 거여. 자기들도 잘못을 한 사람의 편이 되어 버리는 것인게. 그럼 수치심은 꺾이게 되어 있어. 근디 녀석이 그런 일이 없었다면서 나보고 스스로 바지를 내린 거라 말혀 봐. 수치심은 배가 되는 거여. 또 억울함까지 더해져 더 큰 상처로 나는 무너져 내리는 거여." (p.114~115)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만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는 상처들. 이제는 할머니들이 힘든 몸을 이끌고, 아무런 답이 없어도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을 찾아가는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잊고 지냈던 『그날』의 아픔들을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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