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우타코 씨
다나베 세이코 지음, 권남희.이학선 옮김 / 여성신문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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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붙은 "두근두근"이라는 수식어와 표지에 그려진 따뜻한 그림을 보고 우타코씨는 분명 아가씨일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총각이든가. 그런데 이걸 어째. 주인공 우타코씨는 올해 희수를 맞은 77세의 할머니였다. 77세의 할머니에게 두근두근한 일이 과연 무엇일까.

책을 읽어 나가면서 괜히 우타코씨에게 미안해졌다. 이렇게 소녀 같은 아니 아가씨 같은 할머니를 두고, 할머니에게는 아니 노인들에게는 당연히 가슴 두근거리는 감정이라고는 없을거라고 단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타코씨는 수시로 "두근두근" 설렘의 감정을 발산시킨다. 할머니의 첫사랑이었던 할아버지의 아들을 보고도, 어릴적 같은 곳에서 자랐던 할아버지를 보고도, 할머니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보고도 할머니 가슴은 "두근두근" 거린다.

우타코씨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작은 가게를 열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고생이라는 건 누구한테나 당번처럼 돌아오는거야. 그러니 그렇게 낙심할 필요가 없다. (p. 14)"고 말할 정도로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 성격 덕분에 그녀의 사업은 계속 확장되었고, 그녀의 철없고 어리석은 아들, 딸들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그저 자식들이나 손자들만 바라보며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맨션에서 혼자 살면서 예쁜 드레스를 맞춰 입고, 희수 잔치 대신 젊은 사람들처럼 파티를 하는 그녀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타코씨는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충분히 자유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당히 맞서며 그 자유를 만끽한다.

 


여자는 고생을 한다. 남자와 사회, 양쪽으로 고생한다. 하지만 남자는 사회에서 겪는 고생 밖에 모르기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 수양을 쌓지 못한 그 심성이 그대로 표출된다... 남자는 여자 고생을 해야만 한다... 자신의 아내와 고생스럽게 어울려주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란 자동적으로 자신에게 맞춰주는 존재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인격이 진보하지 않는다. (p. 109~110)

 

서로 신경을 쓰는 사이가 신경 쓰지 않는 것보다 좋습니다. 신경을 쓰는 사이는 피곤하다고 말들 하지만, 사실은 서로 신경 쓰는 사이가 가장 편한 겁니다. (p. 152)

 

우타코씨는 77세의 나이에도 "두근두근" 거리는 "꿈쟁이 할멈(p. 115)"이다.  내 나이 스물여덟, 할머니에 비하면 아직 먹을만큼 먹은 나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꿈 같은 것을 꾸기에는 이미 먹을만큼 먹은 나이, 무언가를 향해 가슴 "두근두근" 거릴 일이 없는 알건 다 아는 나이, 더이상 설레임 같은 것은 느낄 수 없는 건조한 나이라고 생각해 왔다. 시체처럼 축 늘어지고, 곰처럼 느린 할머니는 우타코씨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스스로 끊임없이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이라 말하며 뒷북"소녀"라 부르고 있으면서 마음은 왜 그렇게 따라가지 못했을까. 할머니처럼 진짜 "꿈쟁이 소녀"가 되고 싶다.

 

2007/11/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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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가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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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나는 그녀의 문체를 좋아한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툭툭 던지는 말투, 과연 이런 것들로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일상에 대해 풀어놓는 문장들. 결코 화려하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읽는 이의 감정을 충분히 흔들어 놓는 문체.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는 나도 그런 문장들을 읽으면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울음을 토해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여분의 것, 하찮은 것,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그런 것들로만 구성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 에쿠니 가오리. 역시 그녀다운 소설이다.

 

가호와 시즈에는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친구이다.

가호는 5년 전에 헤어진 남자 친구 쓰쿠이를 잊지 못하고 있다. 마치 그녀의 시계는 5년 전에 배터리가 나가 멈추어 버린 양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안경점 직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매일 바꿔끼는 안경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는 그녀. 그렇다고 그녀 주위에 남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안경점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나카노는 말없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밤을 보내든, 자신의 성에 갇혀 있든 그저 지켜보고만 있다. 그녀 주위를 맴돌며 그녀의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절대 그녀에게 방해가 되는 선을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시즈에는 미술 선생님이다. 그녀의 직업 때문일까. 일정한 도를 넘어가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꽉 매여 있지도, 그렇다고 크게 탈선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이미 결혼한 세리자와와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아주 가끔씩 밖에 만날 수 없지만, 그녀는 세리자와와의 만남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끔씩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녀에게는 세리자와와는 달리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 나오는 쇼노스케가 있다. 그는 그녀의 대학 시절 연인으로, 때론 여자 친구들보다 더 그를 편하게 여긴다.

가호와 시즈에, 나카노, 세리자와, 쇼노스케는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 과연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밤12시에서 새벽 3시까지는 책을 읽고 목욕을 하는 시간으로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 가호, 그녀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엄지 손가락에 그려진 지문의 모양이 모두 다르듯이,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방식은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어느 누구나 방해해서는 안될 의무가 있다.

왠지 조용한 정원에 앉아 홍차 한 잔을 하며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진다.

 

전화란, 무슨 용건이 있든지, 용건은 없지만 상대방의 목소리가 듣고 싶든지,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으니가 아무튼 얘기가 하고 싶을 때 거는 것이리라. (p. 16)

 

기억은 장난감 블록과 비슷하다. 언뜻 보면 색깔도 알록달록 서로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편리하게 기획되어 있는 것이다. (p. 104)

 

"내가 왜 늘 손톱에 매니큐어 칠하는지 알아? 그러지 않으면 내가 어른이란 걸 잊어버려서 그래." (p. 122)

 

2007/11/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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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마을 전쟁
미사키 아키 지음, 임희선 옮김 / 지니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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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하라는 우편함에 꽂혀 있는 마을 소식지를 보고 "이웃 마을과의 전쟁"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전쟁 개전일로 계획되어 있던 날, 그는 어떻게 전쟁이 벌어질까 궁금해 하면서 하루를 보내지만, 전쟁의 기미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그는 "이웃 마을과의 전쟁"을 그저 농담처럼 웃어 넘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를 전쟁 정찰원으로 임명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그 어디에서도 전쟁의 징후를 찾아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정찰원 임명식에 참여한다. 그러나 정찰원이라고 해서 생계를 포기하고 뛰어 들어야 하는 별다른 활동은 없다. 그저 여느 때와 같이 생활하면서, 다만 출퇴근 길에 이웃 마을을 지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해 보고서로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그는 읍사무소에서 "이웃 마을과의 전쟁" 담당인 고사이씨와 위장 결혼을 해 이웃 마을로 들어가 정찰 활동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도 그는 별다른 전쟁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렇게 전쟁은 아무도 모르게, 게다가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진행되다가 개전할 때처럼 종전을 맞이한다. 

 

이웃 마을과의 전쟁은 아주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출퇴근을 하고, 아이들이 등하교를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마을 주민들에게 전쟁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시간과 장소를 가려 진행된다. 그리고 예산도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도 이렇게 계획적으로 일을 꾸미고 처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웃 마을과의 전쟁을 계획한 공무원들은 전쟁도 마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전쟁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희생자들도 다른 사업을 하면서 생기는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여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도 소설 속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을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출퇴근 전쟁, 취업 전쟁, 쩐(!)의 전쟁, 사랑 전쟁... 아니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전쟁이다. 우리도 모르게 희생자가 생기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작가 미사키 아키는 이웃 마을과의 전쟁 이야기를 재미있고 무겁지 않게 들려주고 있다. 게다가 그의 이야기가 틀린 것도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순히 재미에 머물지 않고 뭔가를 생각할거리를 던져준다.  

 

"전쟁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p. 207)"

 

"생각해 보면 일상이라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채로 돌고 돌면 누군가의 피가 뿌려진 땅 위에서 안주하며 누군가의 주검 위에 기반을 쌓고 사는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자기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그 차이뿐일지도 모른다. (p. 271)

 

"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을 다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전쟁은 물론 파괴적인 행위이지만, 유사 이래 우리 인간 문명이 전쟁에 의해 큰 진보를 거듭해 온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p. 306)"

 

2007/11/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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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쉽게 하기 - 인체 드로잉 -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배운다! 스케치 쉽게 하기 1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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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수업이 계속되는 시간, 노트 한 귀퉁이에다가 살짝 그려 넣은 얼굴들, 생각이 나지 않을 때 텍스트 대신 마구 끄적여 놓은 형상들. 만화 주인공처럼 예쁘고 귀여운 모습들을 그려 넣고 싶었지만 그려 놓고 나면 항상 '낙서' 뿐이었다.

중학교 때 만화가가 꿈인 친구가 한명 있었다. 그 친구는 매일 누군가의 그림을 따라 그렸고, 그렇게 따라 그리다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어엿한 만화책 한권을 만들어 냈다. 나도 그 친구를 따라 몇 번 따라 그려 보았는데,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얇은 모조지를 그림 위에 갖다대고 따라 그리는 것이었다. 매끄럽지 못한 선이 무언가를 따라 그렸다는 티를 팍팍 내주었지만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모든 사람이 화가나 만화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씩 딴 생각을 할 때마다 한쪽 귀퉁이에다가 무언가를 그려 넣곤 한다. 그러나 딱 중학교 시절 끄적이던 그 수준 그대로이다.

 

인체 드로잉의 기본은 누드이다. 미술 역사상 위대한 여성 화가를 찾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남성 화가들처럼 자유롭게 누드 모델을 두고 드로잉 연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성 화가들 조차 여성 누드 모델을 자유롭게 묘사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들에게는 미술 교육 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몇몇 화가들이 자신의 딸이나 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을 뿐이라고 한다. 즉, 인체 드로잉에 있어서 그만큼 누드 드로잉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어찌 누드 모델을 그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트레이싱지를 올려 놓고 열심히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그냥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것보다 훨씬 재미 있었다. 그냥 보면서 따라 그리다보면 결과물이 영 시원치 않다. 그래서 결과물을 이내 없애버리기도 하고, 지우개로 쓱쓱싹싹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트레이싱지를 대고 그린 결과물은 생각보다 훨씬 잘 나온다. 그래서 그리는 재미가 있다.

 

주제와 목적을 가지고 그린 그림은 어느 것이나 멋진 그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낙서'까지도 말이다. 비록 그림에는 재능이 없지만 그림을 그리는 그 즐거움을 오랫동안 누려보고 싶다.

 

2007/11/1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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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상 - 백탑파白塔派 그 두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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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탑파, 그 첫번째 이야기인 『방각본 살인 사건』에서 활약한 스무살의 이명방이 스물여섯이 되었다.
신분의 벽 때문에 출사하지 못한 백탑 서생들 중에서 간서치 이덕무가 처음으로 적성현의 현감 벼슬을 얻어 부임하게 된다. 정조는 열녀문을 내려 달라는 소가 빗발치자 이명방에게 거짓 열녀를 찾아내라고 하명한다. 이명방은 이덕무와 함게 적성현으로 내려가, 그 고을에서 올린 열녀 김아영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김아영은 부부연을 맺은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게 된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던 그녀는 2년동안 열심히 일해서 기울어 가던 시댁의 살림을 일으킨 다음 목을 매달고 자결하게 된다. 그녀는 행동이 방정했을 뿐만이 아니라 학문에도 능했기 때문에 열녀문을 내리기에는 완벽했다. 그러나 이명방과 화광 김진은 그런 완벽함이 의심스러웠다.
 
『열녀문의 비밀』은 연암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을 모티브로 쓴 것으로,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문(古文)과 금문(今文)에 대한 고민을 제기하고 있다. 고문과 금문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문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따르는 사람과 사상에가지 확대된다. 고문을 따르는 사람들은 흔히 보수 세력이라 불리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다. 금문을 따르는 사람들은 백탑파 서생들을 위시한 새로운 사상, 실학이나 서학을 전파하려는 개혁가들이다. 개혁가들은 개혁군주라 믿었던 정조가 『열하일기』의 문체를 경계하자 자신들마저 경계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 자신들이 나설 때가 아님을 한탄한다.
 
2.
김탁환은 소설 속 박지원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문도 한때는 금문(今文)이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되네." (『열녀문의 비밀(上)』, p45)

 

그렇다. 지금 우리가 고전(고문)이라 부르며 읽고 있는 것들도 그것이 쓰여진 당시에는 금문(今文, 지금의)이었다. 그리고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금문(禁文, 금지된)이었던 것들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모든 금문(今文, 지금의)이 고문(고전)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금문이 고문이 되기 위해서는 세월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당시 유행하던 수많은 글들 중에서 유독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고문(고전)으로 읽혀지는 것은 그 세월과 싸워 이겼기 때문이다. 정조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작가가 이런 오류를 범하면서도 한결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열하일기』가 궁금해진다.

 

3.

「열녀함양박씨전」은 저자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지내면서 쓴 한문단편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열'을 높히 사기 위함이 아니라 '열' 때문에 자신을 버려야 하는 폐단을 말하고자 하였다.

 

「열녀함양박씨전」의 줄거리

통인 박상효의 조카딸인 박씨는 대대로 현리를 지낸 하찮은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릴 때부터 조부모의 슬하에서 자랐는데, 효도가 극진하였다. 19세에 함양의 아전 임술증에게 시집갔으나, 술증이 본디 병이 있어 성례한 지 반년이 못 되어 죽었다. 박씨는 예를 다하여 초상을 치른 뒤 며느리의 도를 다하여 시부모를 섬기다가 남편의 대상 날에 약을 먹고 죽었다. 박씨는 정혼한 뒤 술중의 병이 깊음을 알았으나 성혼을 하였으며, 초례를 치렀을 뿐 끝내 빈 옷만 지킨 셈이었다. 작가는 박씨가 젊은 과부로서 오래 이 세상에 머문다면 친척들의 연민을 받고 또 이웃사람들의 망령된 생각도 면하지 못할 것이라 하여 상기가 끝날 때를 기다려 지아비가 죽은 그 날 그 시각에 죽음으로써 그 처음의 뜻을 이룬 점을 기리고 있다.

 

2007/11/1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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