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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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양손에 힘을 빼고 저 밑바닥을 향해 녀석을 내던진다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철퍼덕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바닥에 닿아 으스러진다해도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시체 처리의 비용을 청구하기 위해 혹여 아파트 관리실 직원이 초인종을 누른다면 나느 ㄴ애절하고 비통한 목소리로 녀석의 실족사를 위장하리라. 군청색 점퍼를 입은 그 남자가 내 어깨를 짚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못 이기는 척 쿨쩍쿨쩍 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관대한 용서를 그리워하면서 나는 지상의 저 먼 바닥을 오래도록 응시하였다.-35쪽

1989년 12월 개장한 삼풍백화점은 지상 5층, 지하 4층의 초현대식 건물이었다.1995년 6월 29일. 그날, 에어컨디셔너는 작동되지 않았고 실내는 무척 더웠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언제 여름이 되어버린 거지. 5시 40분, 1층 로비를 걸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5시 43분, 정문을 빠져나왔다. 5시 48분, 집에 도착했다. 5시 53분, 얼룩말무늬 일기장을 펼쳤다. 나는 오늘, 이라고 썼을 때, 콩, 소리가 들렸다.5시 55분이었다.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한 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에 지나지 않았다.-64쪽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는 한동안 공동으로 남아 있었으나, 1004년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아파트가 완공되기 몇 해전에 나는 멀리 이사를 했다. 지금도 가끔 그 앞을 지나간다.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저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고향이 꼭, 간절히 그리운 장소만은 아닐 것이다.그곳을 떠난 뒤에야 나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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