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절판


아버지는 꼭 허클베리네 아버지 같아요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
아버지는 광야를 달린 것이 아니고, 달릴 곳 없는 시대의 황무지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몸을 갈고 있었던 것이었다.-27-28쪽

아버지는 자상하지 않았고 가정적이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가난했고 거칠었으며 늘 울분에 차 있었다. 아버지에게 광야란 없었다. 아버지는 그 불모한 시대의 황무지에 인간의 울분과 열정을 뿌리고 갔다.나는 언제가 그런 아버지의 편이었다.-29쪽

딸아이는 어렸을 떄 침을 많이 흘렸고, 늘 젖을 토했다. 두 돌이 다 지나도록 털 밑에 수건을 매달았다. 안아 주면 늘 삭은 젖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젖 냄새에 늘 눈물겨워했다. 이것이 내 혈육이고 내가 길러야 할 내 어린 자식의 냄새로구나. 내가 배반할 수 없는 인류늬 냄새로구나-33쪽

이 글은 솔 풀판사가 토지를 완간하고 나서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는 여러 문인들의 글을 모아 간행한 수정의 메아리에 수록되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가시고 하나마나한 소리일 뿐인 내 글 조각이 남아 있으니 민망하다. 다시 고쳐쓰지 못한다.-94쪽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언어적 비극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채팅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듣기가 안 되니까, 청각장애인들이 다 모여 있는 거죠. 인간의언어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말하기,듣기,읽기, 쓰기 입니다. 말하기는 쓰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드러내 보이느 ㄴ행위죠. 그리고 듣기는 읽기입니다. 이것은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언어는 말하기와 듣기 두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148쪽

거기 이락사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순신이 바다로 떨어져 죽은 사당인데, 그 이름도 참 이순신답죠. 아무런 수사학이 없고 떨어질 '락' 자를 써서 이가 떨어진 바다라는 뜻이죠. 난 전국 사당 이름 중에서 이락사가 제일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이가 죽은 바다다. 이런 단순성이 온갖 슬픔보다 더 거대한 슬픔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저는 요즘 이런 명석성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습니다.-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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