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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 켈러 자서전
헬렌 켈러 지음, 이창식.박에스더 옮김 / 산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침 숲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를 만났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별거 없어."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앞을 볼 수 없기에 다만 촉감만으로도 흥미로운 일들을 수백 가지나 찾아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오묘하게 균형을 이룬 나뭇잎의 생김새를 손끝으로 느끼고,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껍질과 소나무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껍질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집니다. 봄이 오면 자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첫 신호인 어린 새순을 찾아 나뭇가지를 살며시 쓰다듬어 봅니다. 계절의 장관은 끝없이 이어지는 가슴 벅찬 드라마이며, 그 생동감은 내 손가락 끝을 타고 흐릅니다. 그저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데 눈으로 직접 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 본문 중 - 

   그동안 텔레비젼을 통해, 그리고 어린시절 위인전기를 통해 헬렌켈러의 삶은 우리에게 어느정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녀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 그녀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그녀와 그녀의 선생이었던 셜러번선생님의 삶은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사를 느끼게 해주었듯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며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23세살때 대학 졸업하기전에 쓴 이야기이다 보니 그 시절까지의 이야기 밖에 없고, 또 책 후반부에 이르러 좀 장황하고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듯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또 간간히 보이는 오타들도 눈에 거슬리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헬렌켈러와 그의 선생님의 삶이 주는 감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손바닥을 통해 글을 배우고, 촉각으로 사물을 느끼며, 성대의 울림과 혀놀림등을 손으로 일일이 만지며 발성법을 배우고, 정상인들도 따라잡기 힘든 수업들을 셜리번 선생님이 손바닥에 적어주는 것을 통해 수업을 받는 등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의 수천배에 달하는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헬렌켈러와 셜리번 선생님의 모습은 경이롭다 못해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보고 들으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깊이 보고, 더 충만하게 느끼며 살았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이다.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당연한 것일뿐 감사의 거리로 여겨질때는 많지 않다. 공기속에 살면서 공기를 느끼지 못하듯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놀라운 축복에 하나님께 다시금 감사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창문으로 쏟아지는 신선한 아침햇살을 보며 감사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차디찬 겨울밤의 하늘이 일년중 가장 맑고 청명하다는 사실을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햇살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보석처럼 반짝이는 호수의 아름다움을 보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 꽃이 피고 지는 모습, 얼어붙은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 하나 하나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이가 얼마나 될까. 환하게 미소짓는 이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제법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구름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청아한 새의 지저귐에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스레트 지붕을 타닥타닥 때리며 내리는 빗소리의 정겨움, 시원스레 흐르는 계곡소리, 포효하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감미로운 음악소리, 보글 보글 찌개 끓는 소리, 까르르 웃는 사랑하는 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저 사지육신 멀쩡한 것으로만도 날마다 감사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물론 녹녹치 않은 인생살이와 험악한 일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는 세상을 보노라면 차라리 안 보이고, 안 들리는게 낫다고 여길 때도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푸념의 소리일 뿐...

   만약 내가 단 사흘만이라도 못보고, 못듣고 살아가게 된다면 아마 난 보고 듣는 것만으르도 감사하며 살아갈 것 같다. 길가에 무심코 피어나는 꽃 한송이도 경이롭게 여길 것 같고 지는 저녁 노을, 차디찬 겨울 밤의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에 벅찬 감사를 느낄 것 같다.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 새가 정답게 지저귀는 소리, 감미롭게 울려퍼지는 음악소리는 천상의 소리와 같이 느껴질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찬 감격의 눈물을 흘릴 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만약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단 사흘만 볼 수 있고 그 이후로는 다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암흑세계에 살게 된다면 그 사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날은, 남편을 비롯하여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들의 얼굴을, 눈빛 하나 하나, 손짓 하나 하나까지 마음속에 새길 것이다. 내 집과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마음속에 담을 것이다.

    둘째날은, 아름다운 자연속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맑고 푸른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과 춤추는 나무들과 경쾌한 소리로 흐르는 계곡물과 아름다운 꽃들과 드넓은 바다와 붉은 저녁놀과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들 등.. 하나 하나 빠짐없이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길 것이다.

   셋째날은,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과 영화와 발레공연 등을 실컷 볼 것이다. 무대와 스크린 위의 모습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볼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둘러보며 그동안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이다. 

  이렇게 생각은 하지만 사실 만약 내가 정말로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온종일 울며불며 내 처지를 한탄하며 보낼지도 모른다. 아마도 백발백중 그럴 것이다.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가 있으나, 내게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른 채 무언가를 얻기 위해 보지도 듣지 못한 채 달려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들에게 단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무얼 하겠냐고 묻고 싶다.

  헬렌켈러의 말대로 오늘 하루만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 단 하루만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내 모든 감각을 사용하며 살리라 다짐해 본다. 마치 오늘 하루가 내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인냥 그런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게 되기를... 무엇보다 나에게 있는 것을 겸손히 나누며 살아가게 되기를...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혀, 혹은 번잡한 일상에 매여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갈때면, 내게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잃고 살아갈 때면, 나태함과 안일함에 빠질때면 그때마다 이 책을 들여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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