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문의 어머니는 늘 "인과응보니, 남에게 못 되게 굴면 그게 다 나에게 돌아온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말씀하셨다.-28쪽
선생님들도 기문을 귀여워하셨다. 단지 공부를 잘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는 짓이 아이같이 순진하면서 짓궂기도 했지만 학급일을 시키면 어린 녀석이 어찌나 열의를 다해 하는지 기특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29쪽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간다는 것, 더 잘 알아간다는 것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기쁨이었다.-31쪽
제 꿈은 외교관입니다 라고 말하는순간, 무엇이 될 줄도 모르고 하나하나 성실히 엮어만 가던 씨줄과 날줄이 확실한 모양새를 드러낸 것이다.-79쪽
그의 선한 품성에는 아버지 반명환씨의 영향이 컸다. 처음 충주로 취재를 내려갔을때 주변 사람들을 만나 그의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에이 물어뭐해? 그 양반 너그러운 건 행치마을 사람이면 다 알지."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152쪽
그가 대답을 하는 데는 원칙이 있었다. 먼저 잘한 부분을 칭찬해주는 것이었다. 격려가 동기부여를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게 안 통항 경우에는 어떻게 할 거죠?"라는 질문을 했다. 그에게 보고할 때는 반드시 대안을 준비해야 했다.-157쪽
인품도 좋은 데다 매너가 좋으니까 여자 직원들에게 특히 인기였다."장관님이 오늘 출근하는데 현관문을 잡아 주시는 거 아니겠어요."라며 장관이 베푼 작은 친절과 배려에 감동했다. 아마도 그런 장관이 드물기 때문이리라.-176쪽
반기문은 동생들의 공부를 봐주던 경험이 있어 생각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학생 아이가 못 알아듣는다면 방법을 바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가르친 학생의 성적이 오른 것을 보면서 뿌듯했다. 그렇지만 아이가 공부할 이유를 찾은 것이 더 기분 좋은 일이었다.-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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