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반생기
양주동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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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부터 무애 양주동 박사의 희한한(?) 일화에 관해 익히 들어 왔다. 한 번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다행히 몸 상한 데가 없자 "국보는 살았다!"고 외쳤던 일화가 유명하다.

 

원래 《문주방생기(文酒半生記)》는 1960년 간행되었다. 책은 〈신태양〉, 〈자유문학〉 등 문예지에 연재한 산문을 모은 것이다. 책은 '유년기', '술의 장', '청춘백서','여정초', '학창기', '교단 10년' 등 여섯 부로 나눠 무애가 자신의 반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거의 구갑(舊甲)이 흐르는 동안 당시 쓰이던 말과 글도 많이 바뀌었다. 출판사 측은 이 책을 다시 내면서 초판 《문주반생기》(신태양사)와 《양주동전집》 4권 〈문주반생기·인생잡기〉(1995, 동국대학교출판부)에 실린 영인본을 상호 대조하여 가능한 한 초판의 문맥에 충실하면서 의미가 분명한 쪽으로 교정하였다한다.

 

무애의 한학 실력이 워낙 출중한데다 언어의 유희 또한 남달랐으니 그 교정 작업이 여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후일담을 보니 자전과 사전을 비롯해 참고도서 수백 권과 인터넷 아카이브를 뒤져 가며 한글 세대를 위해 꼼꼼히 해독했다 한다. 책에 실린 편집자의 각주가 1996개나 된다하니 그저 감탄스럽다 못해 경외심마저 든다.

 

《문주방생기》 초판본. 신태양사(1960)

 

무애의 글쓰기는 참으로 독특하다. 그의 문장은 평생 의고투(擬古套) 곧, 한문 번역투를 벗어나지 못했다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에게서 유합을 배워 다섯 살에 졸업하고, 팔구 세 때 당시를 읽고 외웠다하니 가히 신동이었음에 틀림없다. 한편 아버지 역시 대단한 술꾼이었다. 무애는 아버지에게서 술 실력까지 물려받았음일까. 술에 관한 한 무애의 맞수가 여럿 있었느니, 개중 유명한 이가 작가 염상섭이었다. 염상섭은 어찌나 술을 좋아했던지 거의 취한 채 걸음을 갈지자로 걸어 호도 ‘횡보(橫步)’가 됐다.

 

특히 흥미로운 일화는 문학소녀 강경애(1906~1943)와의 연애담이다. 연애기는 1부 '문학소녀와의 연애'에서 잠시 언급되고, 5부 '춘소초'(春宵抄)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어느 비오는 봄밤의 이야기다, 무애의 연설을 들은 문학소녀가 비를 철철 맞으며 홀랑 멧새같이 그를 찾았던 것이다.

 

"선생님, 나 영어 좀 가르쳐줘요! 그리고 시도, 문학도. 전 여학교 3년생, 아무것도 아직 몰라요. 그러나 문학적 소질은 담뿍 가졌으니, 좀 길러 주세요."

 

당시의 그녀에 대한 무애의 인상은 이랬다. "그 똑똑하고 야무지고, 앙큼한 품이 몹시 귀엽다. 고 참새 같이 작은 몸, 빛나는 눈, 훤칠한 이마, 낭랑한 목소리." 하지만 문학소녀와의 연애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강경애는 나중에 장하일을 만나 간도로 도망치듯 이주했다. 그녀는 「소금」(1934), 「인간문제」(1949) 등을 발표하여 근대 리얼리즘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무애의 공은 강경애가 지닌 작가로서의 재능을 알아보고 이끌어 내준 것이다.

 

所遇無故物, 焉得不速老 (소우무고물, 언득부속로)
“옛날에 있던 것들을 이제는 만나볼 수가 없으니, 어느새 이다지 늙었단 말인가.”

 

무애가 인용한 고시(古詩)의 한 구절이다. 책을 대하는 내 마음이 바로 이랬다. 현란하고 감칠 맛 나는 국보의 글을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나매 반갑기 그지없다. 잊혀져 가던 책을 ‘제대로’ 다시 내준 출판사 편집진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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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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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괜찮다, 힘들지 않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죽어 가고 있다. 시들어 간다. 그 무언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트라우마, 그림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다

‘문학의 프리즘에서 비춰 본 심리학.’ 이번에 정여울 작가가 우리에게 들고 온 화두다. 그이는 어릴 적부터 안아온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문학작품 속에서 자신과 닮은 상처를 지닌 주인공들을 찾아 대화하고, 소롱하며 치유의 길을 발견했다. 책은 그렇게 찾은 서른 편의 작품과 등장인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문학은 내게 진정한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다. 어느 날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리 잠자에게서 자본주의 삶의 무게에 짓눌린 한 남자의 비애를 느낄 수 있고,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권씨에게서 빈궁할지언정 저버릴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을 읽어낸다.

G. 미쇼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운명이 인간의 ‘힘의 의지’를 좌절시킬 때 어떤 특수한 감정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바로 ‘비극의 감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트라우마와 상처로 인해 불우한 삶을 보내야했던 문학 속의 주인공을 대하며 비극의 감정과 마주한다.

그 속에서 나는 공감하고, 공명하며 동시에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 내 삶도 그럭저럭 살만 하네 싶다. 작가 위화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살기보다, 때로 삶 그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난 문득 떠올려본다. 그래, ‘아픔’은 ‘앞으로’의 명사형인지도 몰라.

 

“그 모든 트라우마는 내게 말한다. 트라우마를 없앨 수는 없지만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상처를 완전히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상처와 함께, 상처를 안고, 상처를 보듬고, 때로는 상처로부터 배우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상처는 엄청난 예외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필수적 성립 조건이다.” (250쪽)

 

저자는 아들러, 프로이트, 융 등 심리학의 거장 중에서 융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어느 매체에 따르면 작가는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을 자주 들춰본다고 했다. 융은 에고, 개인적 무의식, 집단 무의식이 우리의 자기(Self)를 구성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년의 위기’에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심리학자였다. 어쩌면 융의 심리학은 작가에게 푸코가 말한 '에피스테메'인지도 모른다.

집단 무의식을 잘 그려낸 작품에 뭐가 있을까? 작가는 『책 읽어주는 남자』를 꼽는다.  소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독일 전체의 집단적 무의식을 건드리고 있다.

그이는 은연 중 융의 사위일체설을 드러낸다. 우리의 본성 내부에 ‘악’의 가능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은 융이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융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파괴성을 지켜보면서 기독교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에 하나-악 또는 아니마(남성에 깃듯 여성성)/아니무스(여성에 깃든 남성성)-를 더했다.

기독교는 악을 밖으로 몰아내면서(가령 하늘에서 쫓겨난 루시퍼) 악을 타도하기 이한 폭력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융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심리적 갈등, 즉 분열된 자아는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주변의 자극을 향해 리액션만 하기 바쁜 것이 ‘마음놓침’의 상태라면 ‘자아’라는 연기자의 페르소나를 뚫고 ‘자기’라는 존재의 핵심을 향해 날아가는 또 하나의 나는 ‘마음챙김’의 주제다. 또한 내 안의 모든 트라우마와 언제든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내면의 검투사다." (238~239쪽)

 

지킬 박사의 이중 인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지킬은 무의식과의 접촉에는 성공했지만 무의식과의 화해, 통합, 그로 인한 치유의 성찰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한다. 우리 내면에 깃든 선과 악은 의식과 무의식과의 대화를 통해 통합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더 깊고 너른 자아의 우주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비평가 샤를 단치에 따르면 고전의 영원한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위대한 독자다. 현재 읽히지 않는 걸작은 미래에는 소멸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평론가 로저 애버트는 한 줄의 영화 평을 쓰기 위해 때로 영화 수십 편을 한꺼번에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저자 역시 한 줄, 한 단락의 명구를 건져 올리기 위해 수많은 책들을 살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의 울림과 공명하는 문구를 만났을 때 난 치유의 힘을 얻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저자가 건넨 고전을 꼽씹어 읽어보련다. 모르지 않는가, 그 속에서 진정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그것은 “자기 치유의 노력이고 더 나은 삶을 살려는 끈질긴 자유의지” 덕분이다. 이는 곧 자기 완성을 위한 산책이요, 여정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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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브루스 커밍스 지음, 조행복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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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었던 2010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이후 새롭게 기밀 해제된 자료를 추가하는 등 한국 전쟁을 총정리했다. 그'미국인이 미국인을 위해 쓴 한국전쟁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보면서, 내전을 초래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힘의 기원을 일본의 식민통치 시대까지 확장한다.

 

"특히 불평등한 토지 보유, 한국인 중 일부는 항일 운동에 참여하고 다른 일부는 일본에 협력했던 것, 그리고 수많은 한국인이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일본의 방대한 산업화와 전시 동원 노력에 복무해야 했던 193545년의 10년 동안 평범한 한국인이 겪은 경악스러운 혼란에 그 뿌리가 있다."(163)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일본의 한국 식민통치 시기(1910~1945)의 특징이었던 계급 간의 분열과 항일투쟁의 분열에서 비롯된 내전이었다.

 

미국은 한국 전쟁을 통해 새로운 체계로 도약했다. 미국은 방위비를 대폭 늘렸고, 해외 기지를 광범위하게 구축했으며, 안보 국가를 수립했다. 미국을 세계의 경찰국가로 만든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바로 한국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은 미국인이나 우리 모두에게 잊혀진 전쟁이 되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미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보수 진영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2016년 10월 21일 제주칼호텔에서 ‘미국의 책임과 제주의 학살'이란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그는 2017년 4월 제2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그는 한국 전쟁 중 벌어진 잔혹한 학살과 광범위한 공습에 대해 주목한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이 투하한 폭탄의 총량은 120만 톤이었다. 미국은 한국에서 645천 톤의 폭탄을 투하했는데(32557톤의 네이팜탄은 별도), 이에 비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전쟁구역 전체에 투하한 것이 503천 톤이었다. 북한의 22개 주요 도시 중에서 18개 도시는 최소한 50%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북한의 도시와 마을의 파괴 정도는 “40~90%까지로추산되었다.(226) 저자에 따르면 북한 지역은 공습으로 '달의 표면'처럼 변했다.

 

저자는 최근 미국의 트럼프와 존 매케인 등 극우 진영이 북한을 겨냥하여 화염과 분노”, “절멸이라는 망령을 불러낸 것은 역사의식 없는 정치인의 소행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2017년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내전을 기록한 역사가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그는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이러한 이해 없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의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에 우리는 한국 전쟁을 새롭게 조명하는 한편, 남북한 공동체 차원의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

 

커밍스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넬슨 만델라에 비견되는 화해와 치유의 정치를 발견했다. 그는 이번 책을 김 전 대통령께 헌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07년 제1회 김대중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북핵 위기를 빠르게 푸는 방법? 저자에 따르면 북한이 요구하는 두 가지 사항, 즉 최종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국 전쟁을 끝내고, 북한을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왜 미국은 이것을 거부할까? 이는 바로 러시아와 중국을 포위·압박하기 위한 군사적, 정치적 책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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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2-25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신문 기사에서 커밍스 교수가 한국전쟁의
기원을 일제시대 만주국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들은 군대에 들어가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일본 제국군이 되어,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공산주의 계열
조선 독립군들을 일본군보다 더 혹독하게
탄압했죠.

그런 이유 때문에 해방 공간에서 구 만군
으로 복무한 이들과 독립투사들이 같은 하
늘을 지고 살 수 없는 그런 불구대천의 원
수가 되었다는 분석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랑지기 2017-12-28 07:37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의견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경제의 특이점이 온다 - 제4차 산업혁명, 경제의 모든 것이 바뀐다
케일럼 체이스 지음, 신동숙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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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singularity)’은 본래 함수 값이 무한이 되는 변수 값을 의미하는 수학 및 물리학 용어다. 대표적인 예로 물질의 밀도가 무한히 높아지는 블랙홀의 중심을 들 수 있다. 특이점에 도달하면 기존의 규칙이 깨지기 때문에 다음을 예측하기가 평소보다 더 어려워진다.

저자는 특이점으로 두 가지를 든다. 대규모 실업 같은 경제적 특이점과 초지능의 실현 같은 기술적 특이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의 특이점이 기술의 특이점에 앞서 나타날 것이다. 가령 인공일반지능을 구축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경제의 특이점은 20~30년 뒤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경제의 특이점’(The Economic Singularity)으로 잡았다.

이 책은 IT혁명 (자동화, 인공지능, 딥 러닝,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로봇, 3D , 퀀텀 컴퓨팅,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과 관련된 미래 전망서와 논문·보고서들을 정리한 다음, 저자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목차를 보면 자동화의 역사’ ‘이번에는 다를까?’ ‘타임라인’ ‘해결해야 할 문제’ ‘시나리오’ ‘요점과 권고사항등 모두 6개 장으로 돼 있다.

 

 

가령 인공지능을 보자. 저자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오늘날 가장 강력한 기술이자 향후 엄청난 영향력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주도해나갈 것이다.

천재 신경과학자 데미스 하사비스가 2011년 설립한 스타트업 딥마인드는 201312월 인공지능 시스템이 비지도 학습이라는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서 고전적인 비디오게임을 하는 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구글은 20141월 곧바로 4억 달러에 딥마인드를 인수했다. 20163월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는 이세돌 바둑 챔피언과의 대국에서 41로 승리했다.

구글은 201510랭크브레인이라는 기계 학습 기술을 검색 서비스에 도입했다. 언어를 벡터라고 불리는 수학적 개념으로 전환시켜 분석하는 이 기술은 특히 이전에 접해본 적이 없는 단어나 어구로 이루어진 검색의 15퍼센트에 적용된다.

검색 시장에서 구글의 진정한 경쟁자는 아마존이다. 현재 미국에서 온라인 쇼핑을 위한 검색은 아마존이 무려 38퍼센트를 차지한다. 구글의 경우 11퍼센트에 불과하다. 향후 인공 지능과 기계 학습을 둘러 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과연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대신하게 될까? 저자는 현재 인간이 보수를 받으면서 하는 일에 필요한 기술들을 앞으로 20~40년 사이에 기계가 모두 습득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하지만 기계가 초래하는 경제의 특이점이 반드시 모든 사람이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 집단이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다른 유형의 경제가 필요할 것이다.

 

 저자 케일럼 체이스(Calum Chace)

 

저자는 3타임라인에서 교통, 제조업, 소매업, 농업, 건설업, 기술, 공공설비, 금융업, 콜센터, 대중매체와 예술, 경영직, 전문직, 의료계, 교육 그리고 정부 등 15개 분야에 걸쳐 2021~2041년의 미래 모습을 10년 단위로 그려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하게 될 도전적인 문제들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경기 위축, 소득과 재산의 분배, 삶의 의미와 행복, 재화의 배분 그리고 결속 등 5가지다. 특히 저자는 마틴 포드와 달리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경제는 아직 부족함이 많으므로 본격적 시행을 위한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부족한 경제 체제에는 규제 하에 움직이는 시장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는 보편적 기본소득의 시행을 위한 부유함의 척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일까.

저자는 30년에 걸친 IT 마케팅과 경영 컨설팅의 경험을 살려 자동화의 역사에서부터 제4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주요 키워드를 정리하는 한편, 앞으로 요구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위험과 기회를 분석했다. 저자의 탁월한 통찰과 식견은 타임라인으로 보는 미래 시나리오편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기계와 인간의 과거, 현재와 미래 그리고 다양한 전문가들의 견해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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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말 1 - 6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6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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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의 타이틀은 시월의 말”(October Horse)이다. ‘시월의 말의 유래는 이렇다. 10월 이두스(전통적으로 전쟁 철이 끝나는 시기)에 그해 최고의 군마들을 뽑고, 경기장이 아닌 마르스 광장의 풀밭에서 두 필씩 전차에 묶어 경주를 했다. 우승팀 전차의 오른편에 묶여 있던 말은 경주 코스 근처에 마련된 마르스 제단에 바쳐졌다. 창으로 죽인 말의 머리는 소금덩어리와 함께 쌓아올리고, 꼬리와 생식기는 바로 포룸 로마눔으로 옮겨 레기아의 제단에 피를 뿌렸다.

의식이 끝난 후 말머리가 수부라 주민들과 사크라 가도의 주민들로 구성된 군중에게 던져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싸웠다. 사크라 가도 주민들이 이길 경우 말머리는 레기아 외벽에 걸렸고, 수부라 주민들이 이길 경우 마밀리우스 탑(수부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외벽에 걸렸다. 이 의식은 아마도 전쟁 철의 종료와 관계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야기는  카이사르가 품페이우스를 괴멸시킨 파르살로스 전투가 끝난 지 두 달이 흐른 기원전 4810월에서 시작된다. 아직 시월의 말은 아니다. 전투는 그해 8월에 있었다. 카이사르는 품페이우스 진영에서 항복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거둬들였다. 카시우스는 브루투스의 매제였다. 이들은 6년 뒤  옥타비아누스 진영과 최후의 전투를 벌인다. 이때가 진정한 시월의 말이다.

카이사르는 이집트로 건너가 품페이우스의 유해를 수습하고,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에서 신전으로 쫓겨나 있던 클레오파트라를 복권시킨다. 이어 그녀에게서 아들을 얻는다. 카이사르는 소아시아를 순례하며 술라의 개혁안을 회복시키고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하는 등 일련의 조치로 소아시아인들의 지지를 얻는다.

한편 카토와 키케로는 카이사르에 맞서려고 음모를 꾸미나 성공하지 못한다. 카토는 카이사르가 탑수스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결한다. 키케로는 나중에 안토니우스에게 죽음을 맞았다. 독재관의 기병대장 안토니우스는 권력을 남용하다 카이사르에게 질책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카이사르에게는 나이 열여섯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있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열일곱에 카이사르 지명 수습군관으로 역사의 무대에 데뷔한다. 2·3권에서는 옥타비아누스의 활약이 펼쳐진다.

 

파르살로스 전투 이후 카이사르의 진군로

 

작가는 당시 카이사르를 중심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던 역사의 시계 추를 좇는 한편, 다양한 인물의 군상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역시 압권은 카이사르의 능력과 인성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가령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에서 품페이우스의 머리를 찾아 정중히 예를 갖춰 화장한 것을 들 수 있다. 유골은 황금 단지에 넣어져 품페이우스의 아내에게 보내졌다. 카이사르는 23년간 친구이자 동료였고, 한때 사위였던 품페이우스에 대한 우정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또 있다 두 독재관 카이사르와 술라를 비교한 부분이다.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합리적이었고, 전투에 능했다. 또한 두 사람 다 정적에 맞서 로마로 진군해야 했다. 둘의 차이는 독재관으로 임명된 뒤의 행동 방식이었다. 술라는 공권박탈 조치를 취해 부유한 원로원 의원과 기사, 사업가들을 죽이고 땅을 몰수해 비어 있던 국고를 채웠다. 이에 반해 카이사르는 적들을 용서하고 그들 대부분이 재산을 지킬 수 있게 허락했다. 카이사르의 관용 정치는 오늘날 우리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살아남은 공화파 잔당들은 아프리카 속주에서 저항을 이어갔다. 카이사르는 탑수스에서 그 잔당들을 몰아냈다. 물론 카이사르는 마음의 빚을 지고 있던, 한편 겁쟁이였던 좀생이 브루투스의 일파에게 암살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원로원은 카이사르가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 독재관 임기를
10년으로, 감찰관 권한을 3년으로 정했었다. 이제 카이사르는 로마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14년간 고대했던 개선식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치를 계획을 꿈꾼다.. 먼 히스파니아에서 법무관으로 돌아왔을 때 적들의 농간으로 빼앗겼던 개선식이다.

6부의 대단원은 필리피 회전이다. 옥타비아누스·안토니우스 진영과 브루투스·카시우스 진영이 마케도니아 영내 필리피에서 맞선 전투다. 이 전투에서 브루투스·카시우스 군이 패배하면서 공화파는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이때가 기원전 4210. 바야흐로 최고의 군마를 뽑아 마르스 제단에 바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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