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볼까 고민하다가 이름을 많이 주워들은 기억이 나서 고른 <굿 윌 헌팅>. 보게 된 계기란 이렇게 우연하지만, 영화는 진국이었다. 재생해보니 구스 반 산트 감독이기도 했다. 쾌재라. <아이다호> 말곤 그의 영화를 본 적 없지만, <아이다호>는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굿 윌 헌팅은 참 단정한 영화다. 적정량의 감동과 교훈. 상당히 고전적인 소재인 천재 이야기, 상처받은 이와 그의 등대 이야기. 그러나 그런 고전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나는 2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뭔가가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게 뭐였을까?

  바로 풋풋함이었다. 그랬다. 굿 윌 헌팅에는 풋풋한 웃음이 있고, 풋풋한 냉정과, 열정이 있었다. 고전에 연두빛 객기가 섞여 들어갔을 때의 그 산뜻함이라니. '재미'. 이 영화에는 그게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 "That son of a bitch, he stole my line"에서 숀(로빈 윌리암스)의 마음이 간단하면서도, 잔잔하게, 하지만 깊게 느껴져서, '아, 멋진 대사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애드립이었다는 걸 알고 무지 놀랐다. 로빈 윌리암스, 멋진 배우구나.

  영화 내용과는 관계없이, 아주 재밌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숀 매과이어 교수(로빈 윌리암스)의 수업을 듣는 벙커힐 단과 대학의 학생, 베니역으로 나온 배우! 얼굴이 낯이 익어서 계속 생각하다 결국 그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Barna Moricz. <퀴어 애즈 포크> 시즌 113, 114에서 브라이언을 곤경에 빠뜨리는 킵 토마스로 출연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길모어 걸즈> 101에서 '조이'로 나왔으며, 최근 <세상 끝의 집>에서 조나단의 원나잇스탠드인 웨스로 출연하기도 했다. 오호~ 나의 기억력이 자랑스럽다. 나중에 캡쳐해서 페이퍼 쓸 예정.

  덧붙여서, 절제된 자막 만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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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룸 2004-12-2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토! ^^

明卵 2004-12-2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어느날 나타날거라는...^^ (파일을 못 찾고 있어요. 큭.. QAF도 길모어도 다 있던 건데ㅠㅠ)



투풀님, 뜻은 짐작이 가는데, 디토가 어느 나라 말인가요?

어룸 2004-12-2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명란님이 영화 '사랑과 영혼'을 안보셨단말임까?!!! ㅠ.ㅠ 거기서 데미무어랑 패트릭의 농담으로 나오거든요(어젠가 그제 케이블에서 봤더니 기억이 나서 써먹었지용^^a) 으음...이태리업니다요, ditto라고 쓰구요, 영어에서도 속어로 자주 사용됩지요^^

明卵 2004-12-2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렇군요! 좋은 거 알았네요^^

그런데 '사랑과 영혼'은 18금이예요. (흑.. 이런 거 무시하고 사는 듯 보이지만, 무지 보고 싶지 않으면 굳이 찾아보지는 않아요~)
 

  역도산이 세상을 삼킨다고? 그가 삼킨 게 어디 세상 뿐이겠는가. 그는 자기 자신까지도 삼켰다. 웃기 위해, 누구보다도 크게 웃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삼켜야만했다. 그랬던 그의 삶은 너무 처절했다. 이기기 위한 삶이란 이런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에, 그는 자신의 꿈을 말한다.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느때보다도 편안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읊조린다. 나는 내심 기대했다. 그래, 이 격렬한 삶도 이렇듯 평안하게 끝날 수 있어야지! 그런데 영화는 내 바람을 뒤집었다. 힘든 삶을 살았던 그인데, 마지막까지 허망했다.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삶이기에, 역도산이 마지막은 그다지 극적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씁쓸함만을 남겼다. 씁쓸함. 그리고 쓸쓸함.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내 취향과 너무 동떨어져서 펼쳤던 기대를 살포시 접었다. 설경구의 연기는 진정 심금을 울렸지만 역도산이라는 인물과 레슬링이라는 종목 자체가 나와 안 맞는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는 러브레터의 명대사다. 이 말이 '아야'가 '역도산'에게 쓴 편지 첫머리에 등장하는데, 이건 패러디일까? 아니면 전형적인 일본식 인사법일까? 그 부분에서 나는 패러디라 생각해서 킥킥거리고 웃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냥 인사일 수도 있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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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4-12-20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영화 꽤 구미가 땡기던데...설경구가 나와서 말입니다..^^

좀 그런가요?..ㅡ.ㅡ;

그리고 오뎅끼왔스데스까가 거기도 나온단 말이지요..ㅋㅋ

어룸 2004-12-21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뜨끈뜨끈한 영화를 보셨군요!! ^^

明卵 2004-12-21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나무님, 설경구 때문에 보시려고 한다면 강추입니다.^^ 단지 제 취향에 안 맞았을 뿐이예요. 희망을 주는 해피엔딩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상실감이 들었던 거겠죠... 지막에 참, 삶이란 이렇게나 슬픈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뎅끼왔스데스까ㅋㅋ



투풀님, 네~ 저 학원 마치고 온 가족이 영화관 나들이 했습니다^^ 동생은 중간에 울었어요, 무섭다고... 아~ 폭력적인 장면에는 익숙치 않아서, 12세 이상 관람가라는 게 놀라웠어요.
 

  조나단과 바비, 클레어의 이야기. 죽음과 삶, 동성애와 이성애의 구분이 얼마나 모호하며 무모한가를 느끼게 해준다. 보편적인 것은 무엇인가. 기묘한 러브 트라이앵글의 모습을 담은 영화이지만, 그것이 기묘할 게 뭔가. 어떤 관계가 있을 때 그것을 '무엇이다'라고 정의내릴 필요가 왜 있는가.

  세상 끝의 집, 그곳에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살았다. 상처받은 한 여자가 떠난다. 그래서 셋이 둘이 되었다. 둘 중 하나는 병에 걸렸다. 하지만 세상 끝의 집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있다.

  (OST 나오겠지? 음악이 참 좋았다.)

 

 

 

마음에 드는 대사들 (주의 : 틀린 게 있을 수 있음)


J What do you think about Ethan for a boy, or a Trevor?
   남자애면 이쓴이나 트레버가 어때?
C Let's not get too fancy.
   평범한 걸로 가자.
J If it's a girl, let's call her clare junior.
   여자애면 클레어 주니어가 좋겠어.
C One Clare is enough, thank you.
   클레어는 한 명도 벅차, 됐네.
J What's a kid gonna call Bobby and me?
   근데 바비랑 날 뭐라고 부르지?
C Oh, I've never thought of that. Daddy, I suppose.
   한번도 안 생각해봤는데, 아빠 아니겠어?
J Like Daddy 1 and Daddy 2?
   아빠1, 아빠2 처럼?
C We're gonna have to move, aren't we?
   이사해야겠지?
B Right.
   응.
J Funny family will need a third bedroom!
   이상한 가족은 세번째 침실이 필요할 걸!
C Frankly, I think funny family will need a whole neighborhood. 
   사실적으로 이상한 가족은 이웃이 필요할 걸.
J Somewhere where two out of three people passing by are not actively psychotic?
   세 명 중에 두 명이 이상하지 않은 곳 어때? (??-_-)
C Exactly.
   정확해.
B How about Cleveland?
   클리브랜드?
C&J No!
   안돼!
B Let's move here. (Woodstock)
   여기로 이사오자.
C Please repeat what you've just said?
   방금 뭐랬어?
B It's too hard to raise a kid in a city. Don't you think?
   도시에선 애 키우기 힘들다고. 안 그래?
C Well, what if the kid turned out to be, some sort of... I don't know, Heidi? I mean, how much goodness would we want?
   그런데 애가, 그러니까... 하이디같이 되면 어떡해? 내 말은, 얼마나 바라야 되는 거지?
J Grown up in the country doesn't do many one to good behavior. Most of the really interesting murderers come from (?) farms.
   시골에서 자라면 좋은 인격 형성이 안 돼. 대부분 살인자들이 농장 출신이라구.
B This is so adult! Looking at real estate! (??)
   참 어른스럽다! 중개업자나 찾아.
C We are adults, sort of.
   어른 맞잖아, 대충.
J Who the kid play with way out here.
   이런 구석에서 애가 누구랑 놀아.
C Maybe wooden creatures like Snow White did.
   백설공주처럼 숲속 친구들이랑 놀겠지.
J I don't want him hanging around with squirrels. They have personality disorders.
   다람쥐랑은 안 놀았음 좋겠어. 걔들은 성격장애란 말야.
C Stop it~
   뭐야~



C Is there anything you couldn't do?
   할 수 없는 게 있긴 해?
B ...I couldn't be alone.
   ...혼자는 될 수 없어.
C No. No you couldn't, could you...
  그래, 혼자선 못 있지...


B You're not freaked about the grave, are you? I mean, don't be. The dead are just people, too. The people who wanted the same things we want.
   무덤땜에 겁먹은 건 아니지? 그러지 마. 죽은 사람도 사람일 뿐인걸. 우리랑 똑같은 걸 원했던 사람들.
J What do we want?
   우리가 원하는 게 뭔데?
B I don't know, man. I mean our lives, right? I mean like this, this whole big beautiful noisy world. Everything it can happen.
   글쎄다, 우리 삶이 있잖아? 이 크고 아름다운, 시끄러운 세상같은 거. 뭐든지 일어날 수 있는.
J O-oh.
B I swear it, brother. Your folks love you, I love you. Nothing to fear.
   믿어. 너희 부모님은 널 사랑하셔. 내가 널 사랑해.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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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 '역시 중국영화는 나랑 안 맞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정반대다. 같은 감독의 <투게더> 때문에 중국영화는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패왕별희>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중국영화도, 이렇게 내 가슴을 울릴 수 있구나. <투게더>에서 내가 느낀 것이 위화감과 함께하는 짠 눈물이었다면, <패왕별희>에서 느낀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의 눈물이었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나를 놀래켰다. 육손이라 배우는 될 수 없다는 말에 그 길로 아이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어머니의 그 야박함, 그리고 절박함이 영화 전체를 깊이 암시하고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절박한가.

  시대의 격변기에 놓인 두 경극배우와 창녀, 또 한 사람의 경극배우는 나름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나간다. 처음에 보였던 그 잔혹함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질투, 애증, 연민과 같은 감정들이 그들 사이를 소용돌이치며, 마치 세상이 변하는 것과 같이 움직여간다. 파멸로, 파멸로. 그리하여 초패왕은 우희를 잃고, 샬로는 데이를 잃었다. 시대가, 사람이 그들을 서로에게서 앗아갔다. 배신하고 울게 만들었다. 모두는 뿔뿔이 흩어졌다. 

  영화가 끝을 향해 달릴수록, 대사에는 있지도 않았던, "나는 이렇게 사는 법밖에 몰라!" 라는 데이의 목소리가 크게, 귀를  찌르듯 들려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11년만에 재회한 샬로와 데이가 경극을 하다 "나는 비구니,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 계집아이도 아닌데..." 라는 대사를 한 후 미소를 짓는 순간, 귓가를 웅웅거리던 그 목소리는 눈녹듯 사라졌다. 그것이 그의 삶의 끝, 마지막이었으므로.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손가락을 잘렸을 때부터 이어져온, '본래 사내아이로 계집아이도 아닌데'라는 틀린,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맞는 대사를 부정당해야만 했던 삶의 마지막은 그렇듯 경극과 함께였다. 사랑하지만 미워했고, 미워하지만 사랑했던 샬로와 함께였다.

  데이, 혹은 도즈. 그의 영혼은 편안해졌을까. 틀린 대사를 외우고도 웃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왔을 때 죽어서,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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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4-12-14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장국영 나오는 영환 이게 처음인데요, 정말... 훌륭한 데이였습니다. 전 별 다섯개를 줘도 모자란다고 생각해요.

어룸 2004-12-14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 멋진 연기였지요? 저도 많이 울었었어요...TㅂT 감독도 동료배우도 장국영이 분장하고 나오면 정말 그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분위기에 함부로 말도 못걸었다고 하더군요^^

明卵 2004-12-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안 울었지만, 어제랑 오늘 아침까지, 속에서 펑펑 울어버린 듯 힘이 없었어요. 후유증이랄까, 멍-해서는 말도 별로 안 하고 싶고... 투풀님 말씀을 들으니 장국영은 멋진 배우였나보군요. 그의 출연작을 쫙 봐버릴까^^

아ㅜㅜ 아무리 봐도 저 위의 포스터 무지 섹시하군요.
 

  고전을 읽긴 읽어야겠는데, 어떤 책으로 읽으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무조건 읽기 쉬운 걸로 잡자! 라고 생각하여 잡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성공이었다. 
  춘향전의 줄거리라면 누구나 다 안다. 책 한 권으로 엮인 춘향전의 내용은 그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뭔가 특별한 게 있길 기대했기에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새로움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고전이란 새롭지 않음이 곧 새로움이기에 재밌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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