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 '역시 중국영화는 나랑 안 맞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정반대다. 같은 감독의 <투게더> 때문에 중국영화는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패왕별희>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중국영화도, 이렇게 내 가슴을 울릴 수 있구나. <투게더>에서 내가 느낀 것이 위화감과 함께하는 짠 눈물이었다면, <패왕별희>에서 느낀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의 눈물이었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나를 놀래켰다. 육손이라 배우는 될 수 없다는 말에 그 길로 아이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어머니의 그 야박함, 그리고 절박함이 영화 전체를 깊이 암시하고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절박한가.

  시대의 격변기에 놓인 두 경극배우와 창녀, 또 한 사람의 경극배우는 나름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나간다. 처음에 보였던 그 잔혹함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질투, 애증, 연민과 같은 감정들이 그들 사이를 소용돌이치며, 마치 세상이 변하는 것과 같이 움직여간다. 파멸로, 파멸로. 그리하여 초패왕은 우희를 잃고, 샬로는 데이를 잃었다. 시대가, 사람이 그들을 서로에게서 앗아갔다. 배신하고 울게 만들었다. 모두는 뿔뿔이 흩어졌다. 

  영화가 끝을 향해 달릴수록, 대사에는 있지도 않았던, "나는 이렇게 사는 법밖에 몰라!" 라는 데이의 목소리가 크게, 귀를  찌르듯 들려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11년만에 재회한 샬로와 데이가 경극을 하다 "나는 비구니,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 계집아이도 아닌데..." 라는 대사를 한 후 미소를 짓는 순간, 귓가를 웅웅거리던 그 목소리는 눈녹듯 사라졌다. 그것이 그의 삶의 끝, 마지막이었으므로.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손가락을 잘렸을 때부터 이어져온, '본래 사내아이로 계집아이도 아닌데'라는 틀린,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맞는 대사를 부정당해야만 했던 삶의 마지막은 그렇듯 경극과 함께였다. 사랑하지만 미워했고, 미워하지만 사랑했던 샬로와 함께였다.

  데이, 혹은 도즈. 그의 영혼은 편안해졌을까. 틀린 대사를 외우고도 웃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왔을 때 죽어서,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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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4-12-14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장국영 나오는 영환 이게 처음인데요, 정말... 훌륭한 데이였습니다. 전 별 다섯개를 줘도 모자란다고 생각해요.

어룸 2004-12-14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 멋진 연기였지요? 저도 많이 울었었어요...TㅂT 감독도 동료배우도 장국영이 분장하고 나오면 정말 그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분위기에 함부로 말도 못걸었다고 하더군요^^

明卵 2004-12-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안 울었지만, 어제랑 오늘 아침까지, 속에서 펑펑 울어버린 듯 힘이 없었어요. 후유증이랄까, 멍-해서는 말도 별로 안 하고 싶고... 투풀님 말씀을 들으니 장국영은 멋진 배우였나보군요. 그의 출연작을 쫙 봐버릴까^^

아ㅜㅜ 아무리 봐도 저 위의 포스터 무지 섹시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