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 초까지만 해도 <삼대>가 단편소설인 줄 알았다. (이 정도 길이는 가뜬하지! 라는 뜻이 절대 아니고, 단순히 잘못 알았단 말이다.) 장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전에 오해하던 버릇 때문에 그리 길지는 않겠거니,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오해 때문에 책이 도착했을 때 얼마나 난감했는지. 2~300쪽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건 700쪽이 넘는 게 아닌가! 완벽하게 착각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책을 잡기가 싫었다. 그래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미루고 미루다 읽긴 읽은 모양이다.
<삼대>는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다른 소설들―내가 읽어본 것 중에서만 이지만― 과 달리, 사회와 개인의 갈등보다는 개인간의 갈등에 치중하고 있다. 일제 시대를 그리는 작품들은 으레 독립을 위해 투쟁하거나, 일제의 탄압 아래 신음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었는데, <삼대>를 읽을 때는 '이 소설 배경이, 일제 시대가 맞지? 병화와 여러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 일제인 것 맞지?'라고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정도로 시대 상황이 실감이 안 났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일제 시대라고 크게 달라야 할 것인가? 우리의 주권을 빼앗겼다는 것은 분명 많은 변화를 불러 왔을 것이나, 여전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결국 비슷한 모습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니까. 싸우고, 크게 상처입는 것만이 역사의 흔적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일본말―병화는 '제이타쿠'라고 써놓고, 무어라고 번역했으면 좋겠나, 고 하기도 했다.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일본 반찬 가게와 그곳을 드나드는 단골 손님, 일본 술집. 서민들의 생활에 녹아든 일본의 모습 또한, 우리의 아픈 역사의 파편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삼대>의 특징 중 또 하나는 심리 묘사가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아, 진짜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법하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하는 맛이 있다. 작품 속의 모든 인물들이 현실적인 생각을 하며, 그림자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수긍하게 되고 마는 '심리'의 대부분이 인간의 어둡고 이기적인 면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눈에 들어오는 수원댁이나 매당집 같은 인물들은 순수한 악의만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악녀'로 그려지고 있었는데, 통속성이 짙은 만화나 연애소설에서 흔히 볼 수 볼 수 있는 인물형에 사뭇 놀랐다. 같은 부류라도 만화책에 나오면 '판에 박힌' 인간으로 보이고 <삼대>에 나오면 '간결하고 상징적인' 인간으로 보이는 나에게도 놀랐고 말이다. 소설에서는 악당에게도 행동의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이 악녀들은 행동의 이유라고 해봤자 자기 잇속 정도일까? 싶을 만큼 평면적이다. 문학작품은 작은 사회이니 만큼, 세상에는 이 정도로 '나쁘게 평면적인' 인물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못돼먹은 사람들도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살고 있겠으나, 역시 속이 시커먼 사람을 보는 게 즐겁지는 않다. 아니, 그보다도, 어떤 '의미'가 있다 해도 이런 삶은 너무 불쌍하다. 이따위로 사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제명에 못 죽을 테다.
작품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 '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죽을까 보아 생겁을 벌벌 내는 사람에게 자식들이 어서 죽기를 조인다고 해놓았으니 겁도 내는 것이 무리치 않다면 무리치지도 않을 것이나 게다가 몸을 꼼짝 못하는 생병이다. 워낙 잠이 없는 늙은이가 긴긴 밤을 새노라니 느는 것은 그런 까닭 없고 주책없는 공상뿐이다. 게다가 자식부터 노리고 있는 재산이 있다 생각하면 믿을 사람이라고는 그래도 한자리에서 자는 귀여운 수원집뿐이요, 그 외 놈년들은 남이요 한 푼이라도 뜯어먹지 못해서 눈이 벌게 돌아다니는 놈들뿐이다…… (205쪽)」
최근, 지난 유월 70대 할머니가 한강에서 투신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기사화 되었다. 돈이 없음에 대한 비관 자살이었을까? 천만에. 할머니는 60억 원대의 재산가였다.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소, 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나 돈이 있다고 꼭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적막한 아파트에서 가정부와 사는 것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사람이 할 일이 없으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딱히 할 일도 많이 없으셨을 터, 현실과 연결되는 '주책없는 공상' 속에는 언제나 별거한 남편과 엄마의 돈에 눈이 뒤집혀서 싸움질을 해대는 자식들이 떠돌지 않았을까. 조의관은 자살한 것은 아니나 그보다 더 비참한 비소 중독으로 숨을 거두었다. 돈이란!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주절주절 적어 보았는데, 정리가 안 된다. 그렇지, <삼대>도 꼭 나와 같은 꼴이었다. 작가는 이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읽는 사람으로서는 좀 더 알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갑자기 뚝 끝나버린 것이다. 갑자기 끝내버리는 이유가 있었던 걸까? '죽음'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걸까? 훌륭한 작품이라 하여 계속 해석하려 드는 것도 좋아뵈지는 않는다만, 영 궁금한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노트
여자는 밥만 짓고 아이만 기르라는 거냐고 흔히 말하데마는 세상에는 밥 짓고 아이 기를 손이 필요한 것을 어떻게 하나. 남자에게 유방이 생기기 전에는 여자의 가정으로부터의 해방이란 관념상 문제가 아닌가. 여자로 하여금 가정일 지키게 할 원칙을 버릴 이유가 어디 있나! (298쪽)
이렇게 말하면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설교가 나올 걸세마는 빵이 너무 많으면 체중이 생기는 경우를 생각해보게. 귀한 집 자식이 꽤 까다롭고 트집이 많고 물리기를 잘 하는 법이지만 나중에는 생명까지 물리고 시들해진 것일세. 제이타쿠 제이타쿠 하니 이런 제이타쿠가 어디 있겠나. 만일 사람에게는 빵만이 아니라면 봉건적 유폐의 마지막 희생이라고나 볼 것일세. 오는 시대의 여성은 결코 결혼을 잘못했다거나 실연을 했다고 자살하지 않네. 제 갈 길을 뚫어나갈 것일세. 거듭 말하거니와 사람은 빵만이 아니라 하지만 빵이 없을 때 사람은 대담하여지네. 용감하여지네. 지금의 중산계급더러 몰락하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나 자연지세로 몰락하는 날 그들은 생활난으로 자살할지는 몰라도 그런 제이타쿠한 조건이나 생각으로 자살하지도 않을 것이요, 또 그때에는 봉건적 유물도 불살라버리게 될 것일세. (400쪽)
이 여자의 몸의 어디서 고무 냄새가 날까! 어디서 직공 티가 보일까! 직업이란 그 사람의 육체만 외곬으로 기형적으로 발육시킬 뿐 아니라 정신상 심리상으로도 변작시키는 것이건마는 이 여자를 누가 보기로 어제까지 고무공장에 다니던 사람이라 할까. 자기의 직업에 동화하지 않는다는 것―자기의 주위와 환경에 휩싸이지 않는다는 것―다시 말하면 직공이 직공답게 되어버리지 못한다는 것은 그 당자에게 도리어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소시민성으로 직공 생활이라는 것을 천하게 생각하거나 자기의 가문이나 교육이 다른 허섭스레기 직공과는 다르다고 동배를 천히 여기는 자존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못할 것이다. 저 타고난 본바닥, 제 천성이 깨끗하고 기품이 높은 것이야 어찌하는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필순이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다. (5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