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지무지하게 많은 광고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5년이나 전에 쓴 "광고"와 "대중 문화"가 얼마나 가치 있을까? 라고 비웃음 섞인 물음을 던지며 읽기 시작한 책이다. 크게 소비와 광고의 관계, 사회와 광고의 관계, 광고의 다양한 장르, 광고 비평의 모습 등을 살펴보고 광고의 미래를 말하면서 끝을 맺는 형식인데, 우악스럽게 생긴 겉보기―차례와 표지―와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세상을 다 가져라'와 같은 '추억의' 광고들의 예가 많이 나와 있어 옛날 생각도 나게 하고, 글도 상당히 사람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암울한 표지 디자인은 용서가 안 된다.)

  광고는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무리 화장품 광고가 좋았다 해도 쓰던 화장품을 다 쓰거나 해서 필요해지지 않은 이상, 광고에 혹해서 충동구매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파격할인 광고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 필요에 의해 상품을 살 때는 매장에 가서 판매원의 설명을 듣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사용 후기를 참고한다. 상품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을 사게 하는 기능까지 있다는 것은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하긴, 이런 식으로 광고의 중요성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내가 광고의 영향력에 '무의식적으로' 지배받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하면 섬뜩해지지만.

  읽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것.

  보고 싶은 프로가 있어서 TV를 켰을 때, 화면 오른쪽 위에 프로그램 안내가 떠 있으면 기분이 좋다. 곧 내가 원하는 프로가 시작할 거라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고주나 광고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표시가 아주 눈엣가시인 모양이다. 그런 광고를 슬립 광고라고 한다는데, 글쓴이는 이 노이즈 현상에 거의 '분개'한다. 셋방을 내주고는 주인집 짐을 들여놓는 심보라고 말이다. 광고주협회에서 방송 3사에 슬립 광고에 대해 항의를 했다는 2000년 기사가 있는 걸 보니, 당시에는 슬립 광고로 인한 손해에 대해 아무런 보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타협점을 찾았을까? 프로그램 안내가 들어가는 것을 미리 알리고, 원작 그대로 나가는 것보다 광고료를 낮추면 되지 않을까?

  ㅂ자형 신문 광고도 있었다. 두 면에 걸쳐 凹모양으로 광고가 들어가고, 남는 공간에 기사가 들어가는 형식이었다. 굉장히 기발한 광고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신문 읽기의 혁명'에서 광고주의 부정적인 힘에 대해 읽은 후라 그렇게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광고로서는 '아이디어 사냥의 산물'이겠지만, 신문의 세계에서 이런 광고는 '기사를 압박하는 돈의 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과도한 팝업창이 짜증을 부르는 것처럼, 신문에서 기사를 가릴 정도의 광고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아닐까?

  광고는 변한다. 세상을 타고, 시간을 타고. IMF 경제 위기 때의 광고들이 보여주듯, 유동근이 트라이 광고에서 상반신을 보여준 것에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보여주듯. 옛날 광고들이 가득한 책을 보고 나니 지금의 유행이 곧 '구식'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한달 뒤, 1년 뒤, 5년 뒤의 TV에는 어떤 광고가 나올까?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광고 유행어가 나올까? 눈이 가는 곳마다, 발이 닿는 곳마다, 그리고 시간이 가는 곳마다 광고는 숨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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