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우 속을 여행하다 식당에 들러 아침을 먹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태풍 소식을 들으니 비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더군요. 괜히 무안해졌습니다. 이렇게 '팔자 좋게' 놀러다녀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 모든 반지하/지하에 사시는 분들에게 햇살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린 언제 아파트로 이사가?

(한겨레21, 2001년09월11일 제376호)


   “어릴 적에는 비오는 게 참 좋았는데…. 큰물지면 왜, 수박도 떠내려오고 가끔은 돼지도 떠내려오고 그러잖아요, 하하. 근데 요샌 비, 하면 덜컥 겁부터 나요.”

   강옥순(43세, 서울)씨는 애써 유쾌함을 가장했지만, 목소리에는 어느새 쓸쓸함이 묻어 났다. 잇따라 두 번씩이나 물난리를 만나 살림살이가 쑥대밭이 된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앞날에 대한 기대만 있다면 어두운 과거쯤이야 추억거리로 남을 수도 있으련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늘에서 행운이 떨어지지 않고서야 반지하살이를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만 곱씹을 뿐이다.

지상의 방 한 칸은 이루지 못할 꿈

   강씨 가족이 지금의 반지하 셋방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4년째. 첫 계약 뒤 2년 되던 해 다시 계약을 맺었지만 전세 보증금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2천 만원이다. 수해를 입은 데 대해 미안했던 탓인지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년 5월에 전세기간이 끝나는데 주인은 다른 데로 이사를 가라고 해요. 뭐, 쫓아내겠다는 건 아니고 주인집에서도 물난리 때문에 지하 셋방에는 넌더리를 내고 있는 겁니다. 이사갈 곳만 정해지면 언제든 보증금을 내주겠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어디 마땅히 갈 데가 있어야지요. 돈도 없고…. 올 가을에 전세금이 얼마나 올랐습니까.”
   강씨 가족이 이곳 반지하로 이사온 지 2년 되던 해인 99년의 수해는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 집안에 물이 차기는 했지만,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세간살이도 대부분 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올 여름에는 달랐다. 집안에 들어온 물이 허리까지 차 올라 냉장고가 방  안에서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 다른 가전제품도 몽땅 망가지고 가구는 물에 젖어 비틀어졌다.
    “그게 7월 며칠이었더라, 날짜도 잘 기억 안 나네. 아무튼 일요일 새벽이었어요. 제가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다보니 보통 새벽 2시 넘어서 잠을 자거든요.”
   전날 낮에도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밤까지 이어지고 새벽이 돼도 그칠 줄 몰랐다. 새벽 3시를 넘어서면서 집 앞 길바닥의 배수구에서 물이 콸콸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시장통으로 이어지는 집 앞 길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집 안에 물이 차는 건 시간문제였다.
   강씨는 남편과 함께 비디오가게 바로 옆에 있는 반지하방으로 급히 내려가 곤히 잠든 아이들(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2학년)을 흔들어 깨워 위층 주인댁으로 대피시켰다. 세간살이는 미처 챙길 틈도 없었다. 옷가지 몇 개만 대충 싸들고 나오자 하수구에서 역류한 물이 파도처럼 들이쳤다. 역한 냄새는 느낄 새도 없이 양동이, 세숫대야를 동원해 물을 퍼 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팔이 빠지도록 물을 푸고 또 펐지만 들어찬 물은 한치도 줄어들지 않았다.
    “급한 김에 생각나는 대로 119로, 112로 마구 전화를 걸었지요. 처음에는 전화가 폭주하고 있으니 좀 기다리라는 안내가 나오더니 나중엔 아예 받지도 않더군요. 통장님댁으로 달려가 양수기를 빌려달라고 했지만, 이미 다른 곳에 빌려줘 남아 있는 것도 없고…. 어찌 어찌하여 겨우 양수기를 구했을 때는 이미 날이 훤히 밝아올 무렵이었습니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속을 좀 긁어놓을 수도 있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아주머니는 이렇게 비디오가게를 운영하고, 아저씨도 돈을 벌 테니 웬만하면 반지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돌아온 답은 역시 핀잔이었다. “하이고, 기자양반은 비디오 많이 보세요? 이거 돈 안 되는 거 잘 알잖아요. 여기저기 비디오가게 들어서고 하도 경쟁이 심해서 월세 30만원(보증금 1천만원)에 이것저것 붙는 세금을 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우유 배달하는 남편 수입까지 다 합쳐봐야 한 달에 200만원 벌기 힘듭니다.”
   반지하 신세에서 헤어날 길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이 ‘그 일’만 당하지 않았더라도. 넉넉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맞벌이니 만큼 몇 년 아껴 쓰고 모은다면 지상에 방 한 칸 마련할 정도는 될 형편이었다.
   강씨의 남편은 우유배달을 하기 전에 원래 조그마한 장사를 했다고 한다. 열심히 했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행운(?)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가까운 사람한테서 사기를 당해 벌어놓은 돈을 몽땅 날리는 불운을 겪은 것이다.
   “사람을 잘못 만나서, 그만….” 흐려지는 강씨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아저씨가 무슨 장사를 하다가 누구한테 어떻게 사기를 당했는지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건 말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꼬옥 다물어버려 머쓱하게 물러서고 말았다.

정부 지원금은 턱없이 모자라

   “사정 모르는 남들은 '애들 가르치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니냐'고도 해요. 맞벌이하면서 왜 반지하에 사느냐는 거지요. 그렇지만 우리 애들 사교육비 거의 안 써요. 초등학교 다니는 작은애, 글짓기학원에 보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애 둘한테 들어가는 돈 다 해봐야 한달에 50만원 꼴입니다. 이게 많이 쓰는 건가요?”
   올 여름에 겪은 물난리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주름을 더 보탰다. 정부에서 9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제때 지급되지도 않았던 데다 비디오, 오디오 등 축난 세간을 채워 넣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도배·장판 새로 하고 싱크대 고치는 것만 해도 지원금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잇따라 물난리를 당한 강씨에게 환기가 잘 안 된다느니, 햇빛이 들지 않는다는 따위 통상적인 반지하의 고통은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다. 다른 것 다 그만두고 더 이상 수해만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간절할 뿐이다. 비디오가게에서 한참 얘기를 나눈 뒤 집안을 한번 볼 수 있겠느냐는 요청에 강씨는 잠시 주저주저하더니 앞장을 섰다.
   시장통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비디오가게와 나란히 자리잡은 짙은 녹색 철대문의 다세대주택이 강씨가 세 들어 있는 집이었다. 대문에서 곧바로 이어져 내려가는 계단 끝에 닿자 알루미늄제 출입문이 앞을 막아선다. 문을 열자 오른쪽에 주방, 정면에 작은 방 하나, 왼쪽에 안방이 있다. 거실은 방과 방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10평 안팎 될까 싶었다.
   아들 둘이 기거하는 작은 방에는 책상과 침대가 놓여 있었다. 둘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좁아 보였다. 가을비가 오락가락 하는 사이로 잠깐 얼굴을 내민 햇빛이 실낱처럼 들어와 반지하치고는 그나마 밝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강씨 부부가 생활하는 안방은 대낮인데도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벽지를 새로 했음에도 허리 높이까지 젖은 흔적이 뚜렷해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엿볼 수 있었다.
   “그래도 다른 집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작은 방에는 점심때까지 햇빛이 드니까요. 제가 바로 옆에서 가게를 하고 있으니까 자주 환기를 시켜 공기도 괜찮은 편이고. 다행히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요. 그런데, 애들이 자꾸 ‘우린, 언제 아파트로 이사 가냐’고 묻네요, 자꾸….” 아이들 이야기에 이르자 강씨는 끝내 목이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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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의 백제 미륵반가사유

 - 김진경

이제 여중학교짜리 애가
남자애와 살림을 차렸는지
찾아간 산동네
단칸방 앞에서 불러도 대답은 없고
방문을 여니
희미하게 비쳐드는 햇빛 속
옷궤짝 위에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있다
슬퍼하는 겐지
무슨 비밀스러운 걸 알았다는 겐지
빙긋이 웃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그 애의 눈빛이 깊어
그냥 방문을 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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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 연주(하모니카) 김현식, 1991년(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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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8-2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아이가 잠들어 스피커를 열진 못했지만....아, 제목만 봐도 머리 속에 그 하모니카 소리가 애잔하게 울려 퍼집니다. 제목과 어우러져 더 기막힌....

해콩 2004-08-22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10년쯤 전에 외지에 있었는데요, 그 어느날 몸과 마음이 아주 힘들었거든요. 지하도를 건너는데 왼 총각(?)이 돌아 앉아 하모니카로 이 곡을 연주하고 있었답니다. 그 때 그 지하도엔 저랑 그 총각만 있었는데 제 등뒤로 아련히 떨리며 멀어지던 그 선율들... 지금도 가끔 그 지하도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그 총각은 귀신이었을까요? ^^ㅋ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요? 그 총각은 제 존재를 전혀 몰랐을텐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에게 힘이 되고 각인되는 그런 인연도 있나봅니다. (이 이야기가 수고해주신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했으면 좋겠네요.)

느티나무 2004-08-22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거긴 개학이 언제인가요? 근데 왜 교감샘들은 대부분 깐깐하실까요? 우리 학교는 좀 안 그러시지만...
해콩님 수고하긴요, 간단한 일인데요. 낼 지리산으로 가는데 또 비가 오고 있네요. 축구 응원도 할 겸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저녁엔 고민남이랑 마트가서 장도 봤는데... ㅋㅋ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에게 힘이 되고 각인되는 그런 인연>이라???

해콩 2004-08-22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오는 지리산은 어떨까요? 방학의 끝자락... 시험 때문이 아니라 방학이 안타까워서 더 고단합니다. 세상은 적막하고... 음악은 쓸쓸하고... 고민남샘은 잘 계신가요? 내일 다른 분(최종 네분?)들께도 안부전해주세요. 지리산에게도요. 비도 오는데 조심해서 다녀오시고...산 속은 춥겠지요? 담번엔 저도 꼭!!
 

   폭우 때문에, 또 중간에 사진기가 잠들어 버려서 제대로 된-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된 사진이 있기야 하랴만-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특별한 여행이었다.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남은 사진이라도 같이 나누고 기록해 두고 싶다. (내 사진 몇 장을 본 사진기자님께서 내 사진에 표정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사진을 보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정림사지 5층 석탑 1(정면)

 

 


정림사지 5층석탑 2(뒷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정림사지 5층 석탑. 절터 한 가운데에 의젓하게 자리한 이 오층석탑은 백제가 멸망해 간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채 1,400년을 버텨 오고 있다. 나무로 만들던 탑을 돌로 완벽하게 재현해 낸 백제 돌 예술의 결정체! 실제로 가서 보면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비 오는 저녁, 무량사

   무량사 들어가는 마을의 장승을 놓친 것부터가 실수(?)였다. 태풍의 전주곡인 비는 억수 같이 퍼붓는데 보이지도 않는 해는 다 저물어가는지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무량사. 이번 여행에 이곳을 들르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을까? 정말 안타깝게도 비 때문에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사진기가 조금만 흔들려도 사진이 엉망이었다.

   2층으로 된 대웅보전도 당당하고(대웅보전 내부는 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를 맞고 서 있는 5층석탑과 석등도 대웅보전의 위세에 걸맞게 늠름하다. 대웅보전의 문살도 무척 아름답고, 대웅보전 건너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훌륭했는데... 마음도 급하고, 비는 내리고, 사진은 제대로 안 나오고... '에라, 모르겠다. 다음에 또 오라는 뜻인가 보다.' 하며 마음을 접었다.

   이 사진도 엉망이라 망설이다가 무량사를 다시 보고 싶을 때 찾아보기 위해서 올려둔다.

 

 


성주사터 3층 석탑들

   남들은 하나도 가지기 힘든 것을 이 절터는 제대로 된, 수준급의 탑들을 네 개나 가지고 있었다. 금당터 앞의 수려한 5층석탑은 말할 것도 없고, 특이하게 금당 뒷편(사진의 오른쪽 밑 부분이 발굴된 금당터의 모서리이다.)에 나란히 자리잡은 중앙/동/서3층석탑들. 역시 비가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 한 장 남기도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역시 다음에 다시 들러야 할 곳이다.

   그리고 절 뒤편의 야트막한 산에 푸근하고 넉넉한 소나무들 역시 장관이었다.

 

 


해미읍성

   서산의 해미읍성. 잔디밭과 담벼락과 하늘. 모처럼 갠 날씨가 반가웠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 사진기는 제 몫을 다했다는 듯 심술을 부리며 잠들어 버렸다. 읍성의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를 비롯해서 찍어서 기억해야 할 곳이 하나 둘이 아닌데... 여기서부터는 마음에 담아가는 게 좋겠다는 결심을 하니 의외로 눈이 더 밝아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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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8-21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미읍성,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평야지대에 저리 가지런한 성이 있는 건지.

느티나무 2004-08-2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말 하면 우습지만 해미읍성, 참 이쁘더군요. 가지런하게 쌓아올린 돌담이 꽤 높이가 있었습니다. 성 안의 나무들도 아주 좋구요.

kimji 2004-08-25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성 안에 들어서고서 깜짝 놀랬더랬습니다. 공간도 넓직하고 (당연한 얘기겠지만요), 그 안의 나무들도 (빽빽히는 아니었지만) 좋더군요. 저는 해미읍성에서 오랜 시간을 못 보내 멀찍이 조망만 했는데, 참 좋았다는 기억입니다.
무량사 사진을 보니, 또 반가워서 그냥 못 지나치고요. 저는 겨울에 갔었는데, 동행과 김시습을 이야기했던가 그랬네요. 무량사에서 폭우를 만나셨군요. 저는 무량사,하면 폭설이 기억이 난답니다. 아, 정림사지 석탑도 근사하죠.
표정이 없는 사진. 사진이 객관적 지표의 역학을 하기 힘들다는 건 디카를 만지작거리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너무 많은 내가 담겨서 왜곡이 심한 편인데, 그래서인지 늘 님의 그 '표정없는 사진'의 담백함이 좋게 느껴졌었답니다. 표정없는 사진,은 충분히 칭찬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하튼 '자신만의 사진'을 만든다는 사실일테니까요.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시지요? ^>^
 

   조금 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폭우 속을 달려 무엇을, 누구를 만나고자 떠난 것이었는지 아득해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 내 나라, 내 땅의 아름다움과 만났고,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연'의 넉넉함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의 방향은 부산에서 출발해서 충남 부여를 거쳐 보령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부여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정림사지 5층 석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백제 문화의 찬란한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국립부여박물관도 관람했습니다. 그리고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고란사, 낙화암, 사자루와 부소산성 주변을 걸었습니다. 부여에서 보령으로 가는 길에 만난 비 오는 저녁의 무량사는 이번 여행의 최고 답사지였습니다.

   둘째 날에는 보령에서 홍성을 거쳐 서산 해미, 덕산까지 갔습니다. 시작은 전날 둘러보지 못한 보령 근처의 성주사지였는데, 폐사지의 처연함과 주변 산세의 아늑함을 고루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서산 해미에서는 읍성에 들렀습니다. 읍성에서 회화나무와 건너편에 있는 느티나무를 만져 보았지요. 그리고 성곽을 따라 읍성을 한 바퀴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개심사에 갔습니다. '洗心洞 開心寺' 멋진 이름이지요? 다음 발길은 서산 마애미륵삼존불로 이어졌습니다. 그 유명한 백제의 미소! 한 번 눈길을 준 사람은 백제의 미소 곁을 떠나고 싶지 않더군요. 저는 특히 귀여운 반가사유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폐사지인 보원사터. 시원하게 솟아 있는 5층 석탑이 그렇게 당당할 수 없는 절터입니다. 마지막 일정으로는 예산의 수덕사. 수덕사는 대웅전과 대웅전 앞을 지키는 느티나무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폐가로 방치되고 있는 수덕여관이 안타까웠구요.

   돌아오는 날은 별다른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루 정도 더 여유가 있었다면 안면도에도 가 볼 생각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빠듯하더군요. 오는 길에는 아산의 외암민속마을에 잠깐 들렀습니다. 기와집 대청 마루에 앉았더니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한잠 넉넉히 잤구요.

   천안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근데 제 디카가 첫날 이후에 전원이 나갔지 뭐에요.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네요. 정말 보여 주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다음에 다시 가 보라는 운명인가 봅니다. 어쩔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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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0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mji 2004-08-25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예전에 디딘 동선과 비슷하네요. 부여, 공주가 워낙에 작기도 하겠지만 말이죠. 저는 부여,공주 / 개심사, 서산, 수덕사 이렇게 따로따로 다닌 길이었는데, 수덕여관이 폐가로 방치되고 있다니 정말 아쉽네요. 저는 수덕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그 수덕 여관 앞에 있는 배롱나무가 아주 근사했는데 말이죠. 수덕사에는 비가 오는 날 올랐더랬어요. 108계단을 우비를 입고 올라갔던 일도 생생하고요. 하지만 수덕사보다는 수덕여관의 배롱나무와 뒷곁의 수국이 더 인상깊었던 걸음이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어느 작가가 한 말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백제는 임을 잃은 여인의 소복같은 도시라고 했던가요. 고란사를 들어가기 위해 탄 백마강의 짧은 시간의 배도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저는 궁남지와 신동엽생가까지 들렀었는데, 해가 뉘역뉘역 질 때여서 그랬는지 사람 기분이 다소 가라앉았던 기억이 나네요. 궁남지는 꽤 예뻤다는 기억도 있고요.
저는 서산삼존마애불을 보고 개심사로 갔는데, 너른 물가를 만나는 일도 참 좋았답니다. 개심사, 올 초여름에는 한참 공사중이었는데... 때론 그래요. 그냥 그대로, 낡으면 낡은대로, 허름하면 허름한대로 그냥 존재하게 두면 안되나... 싶은 생각 말이죠.
뭐, 여하튼 참 이상하게도- 누군가 내가 미처 디디지 못한 곳을 발걸음한 흔적을 읽을때는 그 발걸음이 부러워 마음이 성성하고, 내가 디딘 공간을 누군가 같은 동선을 따라 걸었다는 흔적을 읽을 때는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부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저, 님의 걸음걸음, 그 동선을 따라가다보니 제각각의 계절과 제각각의 일행, 그리고 혹은 혼자 걸음들이 떠올라서 이야기가 길어졌어요.

느티나무 2004-08-25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려는데 틀지도 않은 장필순의 '제비꽃'이 저절로 나오네요. 수덕여관은 이제 쓸쓸히 퇴락해 가더군요. 개심사도 좋고, 백제의 미소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마음이 설레더군요. 그리고, 맞아요. 누군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다닌 흔적을 보면 반갑고 부러운 거. 딱 맞는 표현이네요. 그리고 그 글을 통해 자신이 다녔던 그 길, 그 길을 함께 했던 사람(들), 혹은 그 길을 걸었던 자신과 만나고 있겠지요. 좋은 일입니다. 돌아볼 일이 있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