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폭우 속을 달려 무엇을, 누구를 만나고자 떠난 것이었는지 아득해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 내 나라, 내 땅의 아름다움과 만났고,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연'의 넉넉함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의 방향은 부산에서 출발해서 충남 부여를 거쳐 보령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부여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정림사지 5층 석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백제 문화의 찬란한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국립부여박물관도 관람했습니다. 그리고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고란사, 낙화암, 사자루와 부소산성 주변을 걸었습니다. 부여에서 보령으로 가는 길에 만난 비 오는 저녁의 무량사는 이번 여행의 최고 답사지였습니다.

   둘째 날에는 보령에서 홍성을 거쳐 서산 해미, 덕산까지 갔습니다. 시작은 전날 둘러보지 못한 보령 근처의 성주사지였는데, 폐사지의 처연함과 주변 산세의 아늑함을 고루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서산 해미에서는 읍성에 들렀습니다. 읍성에서 회화나무와 건너편에 있는 느티나무를 만져 보았지요. 그리고 성곽을 따라 읍성을 한 바퀴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개심사에 갔습니다. '洗心洞 開心寺' 멋진 이름이지요? 다음 발길은 서산 마애미륵삼존불로 이어졌습니다. 그 유명한 백제의 미소! 한 번 눈길을 준 사람은 백제의 미소 곁을 떠나고 싶지 않더군요. 저는 특히 귀여운 반가사유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폐사지인 보원사터. 시원하게 솟아 있는 5층 석탑이 그렇게 당당할 수 없는 절터입니다. 마지막 일정으로는 예산의 수덕사. 수덕사는 대웅전과 대웅전 앞을 지키는 느티나무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폐가로 방치되고 있는 수덕여관이 안타까웠구요.

   돌아오는 날은 별다른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루 정도 더 여유가 있었다면 안면도에도 가 볼 생각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빠듯하더군요. 오는 길에는 아산의 외암민속마을에 잠깐 들렀습니다. 기와집 대청 마루에 앉았더니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한잠 넉넉히 잤구요.

   천안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근데 제 디카가 첫날 이후에 전원이 나갔지 뭐에요.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네요. 정말 보여 주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다음에 다시 가 보라는 운명인가 봅니다. 어쩔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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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0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mji 2004-08-25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예전에 디딘 동선과 비슷하네요. 부여, 공주가 워낙에 작기도 하겠지만 말이죠. 저는 부여,공주 / 개심사, 서산, 수덕사 이렇게 따로따로 다닌 길이었는데, 수덕여관이 폐가로 방치되고 있다니 정말 아쉽네요. 저는 수덕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그 수덕 여관 앞에 있는 배롱나무가 아주 근사했는데 말이죠. 수덕사에는 비가 오는 날 올랐더랬어요. 108계단을 우비를 입고 올라갔던 일도 생생하고요. 하지만 수덕사보다는 수덕여관의 배롱나무와 뒷곁의 수국이 더 인상깊었던 걸음이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어느 작가가 한 말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백제는 임을 잃은 여인의 소복같은 도시라고 했던가요. 고란사를 들어가기 위해 탄 백마강의 짧은 시간의 배도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저는 궁남지와 신동엽생가까지 들렀었는데, 해가 뉘역뉘역 질 때여서 그랬는지 사람 기분이 다소 가라앉았던 기억이 나네요. 궁남지는 꽤 예뻤다는 기억도 있고요.
저는 서산삼존마애불을 보고 개심사로 갔는데, 너른 물가를 만나는 일도 참 좋았답니다. 개심사, 올 초여름에는 한참 공사중이었는데... 때론 그래요. 그냥 그대로, 낡으면 낡은대로, 허름하면 허름한대로 그냥 존재하게 두면 안되나... 싶은 생각 말이죠.
뭐, 여하튼 참 이상하게도- 누군가 내가 미처 디디지 못한 곳을 발걸음한 흔적을 읽을때는 그 발걸음이 부러워 마음이 성성하고, 내가 디딘 공간을 누군가 같은 동선을 따라 걸었다는 흔적을 읽을 때는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부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저, 님의 걸음걸음, 그 동선을 따라가다보니 제각각의 계절과 제각각의 일행, 그리고 혹은 혼자 걸음들이 떠올라서 이야기가 길어졌어요.

느티나무 2004-08-25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려는데 틀지도 않은 장필순의 '제비꽃'이 저절로 나오네요. 수덕여관은 이제 쓸쓸히 퇴락해 가더군요. 개심사도 좋고, 백제의 미소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마음이 설레더군요. 그리고, 맞아요. 누군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다닌 흔적을 보면 반갑고 부러운 거. 딱 맞는 표현이네요. 그리고 그 글을 통해 자신이 다녔던 그 길, 그 길을 함께 했던 사람(들), 혹은 그 길을 걸었던 자신과 만나고 있겠지요. 좋은 일입니다. 돌아볼 일이 있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