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때문에, 또 중간에 사진기가 잠들어 버려서 제대로 된-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된 사진이 있기야 하랴만-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특별한 여행이었다.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남은 사진이라도 같이 나누고 기록해 두고 싶다. (내 사진 몇 장을 본 사진기자님께서 내 사진에 표정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사진을 보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정림사지 5층 석탑 1(정면)

정림사지 5층석탑 2(뒷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정림사지 5층 석탑. 절터 한 가운데에 의젓하게 자리한 이 오층석탑은 백제가 멸망해 간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채 1,400년을 버텨 오고 있다. 나무로 만들던 탑을 돌로 완벽하게 재현해 낸 백제 돌 예술의 결정체! 실제로 가서 보면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비 오는 저녁, 무량사
무량사 들어가는 마을의 장승을 놓친 것부터가 실수(?)였다. 태풍의 전주곡인 비는 억수 같이 퍼붓는데 보이지도 않는 해는 다 저물어가는지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무량사. 이번 여행에 이곳을 들르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을까? 정말 안타깝게도 비 때문에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사진기가 조금만 흔들려도 사진이 엉망이었다.
2층으로 된 대웅보전도 당당하고(대웅보전 내부는 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를 맞고 서 있는 5층석탑과 석등도 대웅보전의 위세에 걸맞게 늠름하다. 대웅보전의 문살도 무척 아름답고, 대웅보전 건너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훌륭했는데... 마음도 급하고, 비는 내리고, 사진은 제대로 안 나오고... '에라, 모르겠다. 다음에 또 오라는 뜻인가 보다.' 하며 마음을 접었다.
이 사진도 엉망이라 망설이다가 무량사를 다시 보고 싶을 때 찾아보기 위해서 올려둔다.

성주사터 3층 석탑들
남들은 하나도 가지기 힘든 것을 이 절터는 제대로 된, 수준급의 탑들을 네 개나 가지고 있었다. 금당터 앞의 수려한 5층석탑은 말할 것도 없고, 특이하게 금당 뒷편(사진의 오른쪽 밑 부분이 발굴된 금당터의 모서리이다.)에 나란히 자리잡은 중앙/동/서3층석탑들. 역시 비가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 한 장 남기도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역시 다음에 다시 들러야 할 곳이다.
그리고 절 뒤편의 야트막한 산에 푸근하고 넉넉한 소나무들 역시 장관이었다.

해미읍성
서산의 해미읍성. 잔디밭과 담벼락과 하늘. 모처럼 갠 날씨가 반가웠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 사진기는 제 몫을 다했다는 듯 심술을 부리며 잠들어 버렸다. 읍성의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를 비롯해서 찍어서 기억해야 할 곳이 하나 둘이 아닌데... 여기서부터는 마음에 담아가는 게 좋겠다는 결심을 하니 의외로 눈이 더 밝아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