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다. 여느 날처럼 보충수업을 마치고 폭염 속을 씩씩하게 걸어 집으로 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걸어서 20분 정도 걸려 걸어다닌다.) 그런데 마침 버스 정류장을 지나가려는데, 누구 버스에서 내려 나를 불렀다.
-엥, OO이? 참고로, OO이는 모반 반장으로 우리집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랑은 꽤 친한 녀석이다.
-아니, 왜 마을버스를 타고 와?(학교에서 마을버스 타러 가는 길이 그냥 걸어오는 길보다 더 머니까 내가 이렇게 묻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아~! OO동에서 좀 놀다 오느라구요.
-음, 보충수업 마친 지 30분 밖에 안 되었는데, 우째 OO동까지 가서 놀고, 이래 빨리 오노?
-씩 웃으면서, 3교시 마치고 도망 갔었어요.
-그랬구나! 나가서 어디 갔었는데? 누구랑 놀았어?
-아, 노래방! 오전에 가면 1시간에 얼마야? 요즘 너네는 무슨 노래를 불러? 시간내에 많이 부르려고 1절만 부르고 끊지? ㅋ
ㅎㅎ 정말이지 녀석과 환하게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만 묻고, 녀석도 부끄러움이나 긴장감 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각자의 집 앞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문득 든 생각! 아까 그 녀석이 우리반 반장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도망을 갔다면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다. 사유를 들어보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면 나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반 녀석들이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반은 학교에 왔다가 보충수업이 듣기 싫으면 도망도 가고 그러던데.(특히 우리반이랑 나란히 붙어있는 남학생반도 그러던데..) 우리반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아이들도 이젠 체념인지 습관인지 모르겠지만 왔다가 그냥 가 버리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담임인 내가 그럴 쉽게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체벌을 하거나, 벌금을 물리거나, 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무섭게 하는 편이라는 그런가 보다. 내가 주로 쓰는 말은 보충수업이 싫으면 미리 이야기해서 빠지든지(실제로 이번에 11명이 희망대로 보충수업을 안 했다.), 그렇게 도망갈 것이라면 보충수업을 안 하는 학교로 전학을 가든지...이다. 아이들은 그 말에 상당한 부담감을 갖는 모양이다.
아무튼 내 생각은 처음부터 어떤 일을 안할 수는 있어도 스스로 하기로 결정했다면 끝까지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게 자기 결정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왔다가 도망가는 것은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행동으로 여기기 때문에 아이들을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물론 이런 내 관점에 비판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OO을 만난 이후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반 녀석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담임 잘 못 만나서 남들 다 가는 도망도 한 번 못 가보고.. 두 번째는 담임의 마음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하는 것일까하는 것이다. 옆 반 선생님은 옆집의 아저씨와 같은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웬만한 잘못이 아니고서는 이웃집 아저씨는 그냥 지나치고 말테지만, 부모는 자식의 작은 잘못이라도 고쳐주고 싶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지는 이치는 분명한 것 같다.
우리반 녀석들에게 도망을 허락할 수 없는 성격 탓에 그 미안함을 덜고자 애꿎은 아이스크림만 여러번 돌렸다. 그리고 진짜 방학하는 날, 모두 고생했으니 내가 하루 놀아준다고 했다. 반응은? 이건 반어법도 아니고 역시나 썰렁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해수욕장을 다녀왔고 지금은 비로소 느긋한 마음으로 방학 첫날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