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동안의 의미 없는 보충수업이 끝났다. 물론 나름대로는 수업 준비도 열심히 해 가고, 수업 시간에도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으나, 내 노력과는 별개로 아이들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를 생각해 보면 괜한 자괴감이 든다. 방학 때도 보충수업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상한 나라!-대한민국의 한 교사는 이렇게 무력했다.

   내 수업만 잘 하면 된다는 허위는 이제는 벗어야하는데... 언제나 현실의 논리는 매서워서 무섭다. 부끄러운 이야기고 일부에 해당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이 보충수업을 거부해도 보충수업은 계속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냐면 나는 교사들이 보충수업이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보충수업을 하면서 자기 희생의 논리를 내세우지 말라. 진정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럽지 않거든, 그 때 다시 한 번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야기해 달라. 보충수업이 교사의 희생적인 봉사인가? 적지 않은 수입을 챙기면서 생색은 다 내는 모습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이를 테면 노동자가 내심 원해서 연장 근무를 하고 수당을 받으면서 자기는 희생한다고 여기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닐까?

(아,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늘 학교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렇다.)

   보충수업이 끝난 기념으로 아이들과 하루 놀고 싶다는 욕심을 비췄더니 아이들이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이유야 많겠지만, 내가 가장 아프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지난 학기 동안 아이들과의 관계가 정서적으로 그리 탄탄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학급야영, 금정산 등산-영화 관람, 해수욕장 물놀이, 모두 불참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했더니 여러가지 '당근책'에도 불구하고 불참이 제일 많았다. 어쨌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니까 불참하겠다는 녀석들은 빼고, 가장 많이 선택한 해수욕장 물놀이를 가기로 해서 오늘 다녀왔다.

  게다가 등산이 아니면 안 가겠다는 녀석 2명과 학급야영이 아니면 안 하겠다는 반장 녀석을 또 빼고 나니 달랑 8명! 나와 같이 해수욕장을 다녀온 이 녀석들에겐 2학기에 야자 휴가권 3장씩을 주기로 했다. 모처럼 해수욕장에 나온 것이니 또 내가 한 턱 쏘기로 했다.

   우리는 학교 근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사 먹고, 3시 10분 지하철을 타고 드디어 해운대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역시나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은 파도가 높아서 수영은 못한다는 것! 모두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표정이 역력한데, 일단 파라솔 2개를 빌려서 짐을 정리해 두고 우선 파도가 치는 물가로 나갔다. 안전요원들이 10M 간격으로 지키고 있었지만, 밀려오는 파도가 모래밭을 덮칠 때 물로 뛰어드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것 같았다. 짐을 지킬 사람이 없어서 나는 잠깐 물가에 있다가 파라솔에 앉아 녀석들이 노는 걸 보았다. 참, 참 행복해 보였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남들이 다 집에 갈 때까지 우리는 통닭을 시켜 먹고, 남아서 놀다가 6시가 되어서야 서둘러 짐을 챙기고 샤워장으로 가서 샤워를 했다. 소금기는 뺐지만 옷은 덜 마르고, 머리카락도 전부 촉촉한 게 싱그러웠다. 겉은 얄랑궂은 티셔츠에 슬리퍼를 질질 끌었지만, 잠시만 얘기해봐도 어린티가 팍팍나는 녀석들이 너무 귀여웠다.

   지하철 안에서도 녀석들은 적당히 시끄럽다.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가니 시간이 후두닥 달려가는 것 같다. 싱긋이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내가 먼저 내릴 때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방학 잘 보내고 개학하는 날 건강하게 만나자는 인사를 했다. 녀석들도 그 사람 많은 지하철 안에서 합창처럼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을 해 준다. 그럴 때 사람들의  시선이 참 묘한 것을 느낀다. 나도 다른 학생이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면 그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니까 말이다. 아무튼 오늘은 진짜 방학기념식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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