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었다. 최근에 우리 반에 아이들이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은 날이다. 혼란스러운 상태로 있던 무엇인가가 정리된다는 것은 그럭저럭 기분 좋은 일이다. 물론, 아이들의 마음까지 모두 정리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단은 나와 아이들의 심리적 대립 관계가 일단락 되는 것이니까 나로서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했다.
예상대로 무사히 수업이 끝나고나서 아이들과 이틀 간의 지루한 심리적 줄다리기를 끝냈다. 사고친 녀석들이 이번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런지 잘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나는 가뿐한 토요일 오후를 맞게 되었다.
토요일의 점심은 안해와 먹고, 시청 뒤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갔었다.(같이 가겠다는 안해를 만류(?)해서 먼저 집으로 보냈다.) 홍보가 덜 된 탓인지, 내용에 공감하는 선생님이 적어선지 이번 집회는 꼭 어디 숨어서 하는 꼴이다. 하기야, 토요일 오후 3시 30분이면 황금 같은 시간이 아니겠는가?
사실, 나도 눈 딱 감고 싶었지만,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읊을 건 아니고, 뭐 나름대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고 해 두자. 경남과 울산에서 부산까지 와 주신 여러 선생님들도 계셨고, 교대와 사범대 학생들도 함께 한 연합 집회여서 그런대로 구색은 갖추고 재미있게 놀았다.(?)
집회내내 따가운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서 혼났는데, 어느덧 해가 기울면서 고층 건물 뒷편으로 햇빛은 넘어가 버렸고 그 때쯤에서야 집회가 마무리되었다. 다음은 교육청 앞에까지 거리 행진이 있었다. 오랜만에 부모님께 가서 저녁을 먹겠다는 약속까지 해서 슬쩍 빠지려고 했는데, 거리 행진 끝나고 모두 저녁 먹고 갈 수 있도록 사람들을 좀 챙기라는 부탁까지 받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30분쯤 걸었나? 결국, 교육청까지 갔었다. 간단한 정리 집회도 하고, 낙지볶음으로 간단한 저녁도 먹었다. 그러다 생각이 나서 전화기를 보니, 부재 중 통화가 무려 5통. 다행(?)스럽게도 집은 아니었고, 장OO라는 녀석이었다. 문자메시지까지 한 통 와 있었다. 통화를 했더니 휴가 나와서 다른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있는데, 나중에 보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장OO는 무척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늦더라도 꼭 간다며 10시쯤으로 약속을 잡았다.
요즘은 예전에 담임을 맡았던 녀석들과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 받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오래 전에 담임을 맡았던 녀석들은 이제 슬슬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있고, 작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학생들은 내가 담임을 맡지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꽤 친했던 녀석들이 많았기 때문에 연락이 자주 오는 편이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올 때는 방향이 같은 선생님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왔다. 옛날에 살던 집에 오면 기분이 묘하다. 낯설기도 하고, 친근하기도 한, 아릿한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안해도 같이 왔다. 기다리느라 저녁을 못 먹은 안해가 거기서 대충 저녁을 먹는 동안, 나는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부모님은 곗날이라 1층 식당에서 손님들과 어울리고 계셨다. 아주 잠깐 집에 다녀가셨다. 사실, 본가에 온 이유도 부모님과 같이 저녁 먹으려고 한 것이었으나, 요즘 부모님은 주말마다 아주 바쁘시다.)
밤 10시. 부모님이 싸 주시는 반찬거리와 건과류를 챙겨들고 나섰다. 나는 집에서 2시간 동안 꼬박 잠만 자다가 다시 우리 집으로 나서는 셈이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안해를 먼저 집에 보내고, 장OO가 술을 마시고 있다는 약속 장소로 갔다.
반가운 얼굴들이 또 오종종 모였다. 장OO가 휴가 나온 기념으로 모인 자리라고 했다. 장OO는 7년 전에 우리 반 학생이었다. 그 친구들도 내가 그 학교에서 3년 동안 담임을 하는 동안, 나를 무던히도 속을 썩혔던 녀석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 육군 병장. 신기하기만 하다. 다른 녀석들은 이제 슬슬 제대를 해서 다시 사회 생활을 준비하고 있는데 장OO은 좀 늦게 군대를 가서 내년에 제대한다고 한다.
(거기서 묘한 우연이 있었는데, 장OO가 그냥 친구라며 두 명의 아가씨와 함께 나왔는데, 아직도 담임 선생님과 연락을 하고 있는 장OO와 그의 친구들을 부러워하다가 자기들도-참고로 다른 고등학교를 다녔음- 보고 싶은 선생님을 꼽는데, 그들의 입에서 나온 선생님이 바로 우리 학교에서 나랑 같이 근무하고 있으며, 평소에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고, 꽤 이야기가 잘 통하는 강OO 선생님이였다. 내가 강OO 선생님과 아는 사이라고 말하자 연락처를 달라고 하길래 전화번호를 불러줬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연락을 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술자리 한쪽에서는 7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넘으려는 두 전화기 사이의 안타까운 대화가 오고 갔었다.)
사실, 장OO는 좀 걱정스러운 아이였다. 공부는 물론 못 했고, 몸도 약해서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말도 좀 어눌하고, 생긴 모습도 약간 모자라게 생겼다. 행동도 좀 엉뚱해서 그 녀석의 행동을 보고 마음을 짐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도, 다른 사람이 대충대충 해 놓은 것보다 결과가 형편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난감한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그 때 졸업을 한 다른 녀석들은 꾸준히 만나기도 하는데, 장OO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한다고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다. 풍문으로나마 직장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말과 군대를 갔다는 소식만 들었다. 모처럼 만났으니 그 자리는 아주 유쾌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옛날 이야기들과 녀석들이 기억하는 학교 이야기들이 끊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 때는 녀석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었는데, 지금은 그 때의 기억이 안주거리가 되나 보다.
(지난 화요일인가에는 역시 그 때 담임을 맡았던 이OO이란 녀석이 전화를 했었다. 선생님, 점심 사 주세요. 학교로 갈까요? 그러지 말고, 학교 근처 어디서 보자!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학교 밖을 나가 이OO과 점심을 먹었다. 우리 반에서 젤 공부도 열심히 해서 그 열악한 환경을 딛고, 경상대학교 전기공학과에 들어간 녀석이다. 역시나 최근에 군대를 제대하고, 지금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집 근처의 방송통신대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가다 아침에 나를 보고는 전화를 한 것이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며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녀석은 그래도 일찍 철이 들어서 은근히 나를 응원해 주고는 했다. 그 때 우리 반이 참 재미있었다며 다른 아이들과 고등학교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내가 화제에 오른다고 한다. 그 때 우리 반, 정말 대단한 반이었다. 영화에 나왔어도 될만큼 늘 아찔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었는데... 지금 그 반을 다시 맡는다면? -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알고는 그런 반 절대로 맡지 못한다.
이OO과 점심을 먹고 나와 동네 문방구 앞에 놓인 꼬마 오락기 의자에 앉아서 파란 하늘을 보았다. 나른한 날이었다. 그 때 고등학생이던 녀석과 담임이었던 나는 7년이 지난 지금, 길거리에서 나란히 커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11시 30분. 녀석들은 좀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술값을 계산하려고 계산서를 집어들고 나오니 녀석들이 한사코 말린다.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의 술값은 내가 낸다. 입구까지 따라 나온 장OO이 갑자기 울먹였다. 음, 가슴이 벅차올라서 그 이후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척 따뜻했다.